윤석열 대통령은 1일 오전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취임식 때의 하늘색 넥타이를 맸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담화문 발표 전 참모들에게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초심을 되새기려 한다,”고 말했다.
이날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취임 후 세 번의 담화였는데 50분의 분량으로 가장 길었다.
2022년 10월 30일 이태원 참사 관련 담화는 2분, 지난해 11월 29일 세계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 불발 관련 담화는 10여분이었다. 윤 대통령은 A4용지 43쪽짜리 담화문을 읽어 내려가면서 중간 중간 입을 굳게 다물었고, 때론 목소리가 떨렸다.
역대 급 길이의 담화문에 대해 대통령 실은 “의료개혁에 대한 윤 대통령의 설명이 부족했다는 국민과 당의 지적을 겸허히 수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 불편을 조속히 해소해드리지 못해 송구한 마음”이라고 사과부터 한 윤 대통령은 이후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한 언론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참모들은 전날 오후까지도 설명 형식을 정하지 못했다. 4·10 총선을 9일 앞둔 시점이라 대국민담화 대신 2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윤 대통령의 입장을 로키(low-key)로 알리자는 의견도 있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총선 직전 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원을 늘리기로 한 과정을 국민에게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가 강해 대국민 담화로 결정됐다. 출입기자단에 일정이 최종 공지된 건 31일 오후 10시 35분이었다.
윤 대통령은 담화문 발표 직전까지 참모들과 메시지를 수정했다. 그중 의대 정원 2000명 확대와 관련해 “더 좋은 의견과 합리적 근거가 제시된다면 정부 정책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는 법”이라는 표현을 두고 논의가 가장 길었다.
그 전까지 “논의할 수 있다”던 메시지가 “바뀔 수 있다”가 된 건 윤 대통령이 대화에 진정성을 보인 것이라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정치적 득실을 따질 줄 몰라서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다”며 한·일 관계 정상화와 화물연대 파업 당시 대응을 언급한 것도 마지막에 추가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당과 국민에게 진심을 알리고 싶어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대통령실 안팎에선 “여전히 초심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는 비판도 나왔다. 당선인 시절인 2022년 3월,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대해 50여분간 설명하고 기자들 질문에 일일이 답했다. 그때와 달리 일방적인 소통 방식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취임 후 딱 한 번 했다. 2022년 8월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이었다. 도어스테핑(약식 회견)도 2022년 11월 이후 멈췄다.
비판 여론이 쏟아졌던 ‘이종섭ㆍ황상무’ 사태 관련 언급이 없었던 점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윤 대통령이 총선 전 의료개혁으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며 “다만 이 정도 노력으로 야당이 제기하는 불통 프레임을 넘어설지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정부의 정책은 늘 열려있는 법"이라며 의료계에 "통일된 안을 정부에 제안하면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이면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고 국민·의료계·정부가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체 구성도 제시했다.
하지만 전국 의대 비대위원회와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의사협회(의협), 전공의 모두 총의를 모으지 않고 각자 본인들의 주장만 하고 있는 데다 ‘증원 철회’를 정부가 수용할 유용할 카드라고 주장하고 있어 의사들이 이른바 ‘통일된 안’을 제시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 의정갈등은 선거를 앞두고 격랑으로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