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범야권의 요구에 굴복할 것인가?
선거에서의 승자나 패자가 된 이유를 들어보라고 하면 수백 가지를 들 수 있다지만, 이번 총선은 한 마디로 윤석열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라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임기 초반부터 국민들의 부정평가가 아주 높았는데도 윤 대통령은 스스로 부정평가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타고난 본성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고 쳐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바뀌라고 할 수 없으니까 본인이 먼저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총선 후로 미뤄도 될 의정갈등을 원칙론으로 밀어붙여 의료계의 반발을 산 것은 대표적이었다. 본인의 원칙인 의사정원을 고집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불통과 오만하다는 이미지를 남겼다. 정치 신인이자 대통령 본인과 이미지가 겹치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으로 하여금 원톱으로 선거를 치르게 한 것도 이번 선거에서 결정적인 전략 실패였던 것으로 보인다.
차기 대권 욕심을 가지고 있던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정치야말로 전문가의 영역인데도 불구하고 그를 발탁해 정치전선에 투입한 사람에게 잘못이 더 클 수 있다.
초유의 거대 여소야대가 버티는 국회 앞에서 윤 대통령은 기존의 통치 스타일이나 국정기조를 대범하게 바꿔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2027년 5월10일까지 남은 3년여, 그리고 임기가 끝나기 전인 2027년 3월 3일에 대선을 치를 때까지 윤 정권의 무력화를 시도할 범야권과 협치는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윤 대통령은 앞으로 예상되는 범야권의 무력화 시도를 어떻게 수습하고 다시 법치와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범야권과의 대화를 위한 대통령의 자기 혁신이 일어나야만 할 것이다.
개헌 저지선을 지켰다고 안심할 것도 없다. 만약 국민의힘 의원들 간의 이탈이나 반발이 나타나면 109석은 절대 안심할 수준이 아니다.
범야권에서 발의하게 될 김건희 특검법, 한동훈 특검법, 그리고 어이없는 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하고 재 표결 하게 하면 무력화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대항할 것인지 솔직히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1990년 여소야대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노태우 대통령이 오죽했으면 3당 합당을 했겠는가?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은 200석이 넘는 거대 여당 민자당을 탄생시켰었다.
지금은 그런 합당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방법은 하나,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 바뀌는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국정에 정치인을 대거 등용하고 국민과 소통을 강화하며 대통령 본인의 불통과 오만하다는 이미지를 썩 걷어내도록 해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대통령 본인의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라도 채워 같이 협력해 나가야 한다.
윤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인들을 부패집단으로 보고 정치 자체를 멀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대통령직은 정치가 80%를 차지한다는 것쯤은 이해하고 있을 법하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당정(黨政)분리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사법부 또한, 아마 윤 대통령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을 개연성이 매우 높아졌다. 사법부도 거대 야당 앞에서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재판의 진행이 더뎌지거나 지연될 수 있다.
영남을 제외하고 전국이 파랗게 변한 선거결과 지도를 보노라면 윤대통령의 국정개혁, 정치개혁은 방향은 옳았지만 이를 국민에게 제대로 설득하고 소통하며, 정치적 유연성 발휘가 부족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국민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했다”면서 사퇴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어떻게 해야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면 범야권의 요구에 굴복하고 말 것인가? 그것이 앞으로 남은 3년, 윤 대통령이 그려야 할 큰 그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