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공통의 가치와 신념인 문화라고 본 사람은 새뮤얼 헌팅턴 전 미국 하버드대 교수다. 그는 한국인의 검약, 투지, 근면, 교육, 조직, 기강, 극기 정신이 한국의 발전을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압축 성장 과정에서 과거의 가치가 퇴보하고 물신주의, 배금주의, 배타주의, 극단의 대결과 혐오 등 퇴행적 가치가 생겼다. 현실에 안주하고 도전과 개혁정신은 약해지고 대화와 타협의 중재문화는 없고 계층, 이념, 성별, 세대별 갈등도 증폭되었다.
그렇다면 그러한 퇴행적 문화는 누가 만든 것일까? 혹시 인터넷과 AI 등 첨단 소통 수단은 아니었을까? 마침 뉴욕타임스에 미국의 정치평론가 로스 도우댓(Ross Douthat)이 쓴 “인터넷은 진보의 적인가, Is the Internet the Enemy of Progress?-2024년 4월 19일 온라인 기사”기고문이 있기에 소개한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더 이상 편을 가르지 않고 선진국에 걸맞는 21세기 형 가치규범을 가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인터넷은 인류의 진보를 끝장낼 것, “쥐라기 공원” 작가의 예언
세계의 선도적인 기술-낙관주의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강조한 기술 진보의 미래에서 과량(過量)의 염세주의를 발견할 때가 있을 수 있겠지만 드문 일일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전투적인 벤처캐피털리스트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 미국의 넷스케이프,Netscape 창설자, 1972~)의 앱 X를 따라가다 보면, 그가 마이클 크라이튼이 쓴 1995년 “쥐라기 공원”의 속편 “The Lost World”에서 인용한 메시지를 광범위하게 유통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크라이튼은 자신의 소설에서 언제나 선견지명이 있는 이안 말콤(Ian Malcolm) 박사의 입을 통해, 인터넷이 인류의 진보를 끝장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것(인터넷)은 혁신이 끝났음을 의미한다”는 말콤 박사는 “전 세계가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그러한 생각은 대규모의 죽음이다”라고 말했다. 모든 생물학자는 고립된 작은 그룹들이 가장 빠르게 진화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신이 천마리의 새를 대양의 한 섬에 풀어 놓으면, 그 새들은 대단히 빠르게 진화할 것이다.
그런데 당신이 만 마리를 큰 대륙에 풀어놓으면, 그들의 진화 속도는 떨어질 것이다....그리고 지상의 모든 사람은 혁신이 오로지 작은 집단에서만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3명을 한 위원회에 두면, 그들은 뭔가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10명이라면, 이뤄내기 더 힘들 것이다. 30명이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3천만 명을 위원회에 두면,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매스미디어의 결과다-매스미디어는 어떤 것이든 일어나지 못하게 막는다.
매스미디어는 다양성을 뒤덮어 버린다. 그것은 모든 곳을 똑같이 만든다. 방콕, 도쿄, 런던을 보자. 어느 도시의 어느 구석에나 맥도날드 햄버거집이 있고, 또 다른 구석에 베네통이 있으며, 거리를 건너서 갭(Gap) 가게가 있다. 지역적 차이는 사라진다. 모든 차이는 없어진다. 매스미디어 세상에서는 상위 10개 순위의 책, 레코드, 영화, 아이디어를 제외한 모든 것은 덜떨어진 것으로 존재한다.
사람들은 열대 우림에서 종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면서 우려한다. 하지만 지적 다양성은-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자원인데 그건 어떤가? 그것은 나무들보다 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50억 인구를 우주 공간에서 몰아넣으려고 계획하는 중이다. 그래서 전 종족들이 하나로 꼼짝없이 얼어 버릴 것이다... 모든 사람은 똑같은 것을 똑같은 시간에 생각할 것이다. 지구의 균일성.“
위 인용문은 벌써 29년 살이나 먹었다. 그러니까 앨 고어(Al Gore)의 눈에 진짜 인터넷 시대가 여전히 희미한 빛이었을 때 쓴 것이다. 말콤의 예언은 아주 인상적인데-오히려 그의 예언보다 더 유명한 건, 존 해먼드(John Hammond)의 놀이 공원(=쥐라기 공원)에서 어떤 나쁜 일
이 생겼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렇다. 그 인용문이 지금 시대의 모든 것에 관한 관심을 포착하고 있는 건 아니다(오히려 순식간에 예언의 한계가 노출되었다).
그렇지만 그 인용문은 아주 많은 예측을 했다. 이를테면 한 번 어떤 것이 뜨면 인기 유행 몰이가 된다거나, 중위권 음악가들과 소설가들이 대형 스타들의 우위에 둘러싸여 사라지고, 알고리즘이 모든 이를 비틀스에게 가도록 조종함으로써 새로운 음악에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것, 예술과 건축으로부터 호텔 장식, 자 동차 디자인과 인스타그램의 모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서 평균이 지배하는 시대가 된 것 등이다.
여러분은 더 나아가 그 인용문은 2011년, 타일러 코웬(Tyler Cowen)이 확인한 1990년대 최초의 인터넷 붐에 뒤따라서 생산성 둔화와 실망스러운 경제 성장의 대침체가 온다고 예측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기간에 자유주의 서구 지도자 계급의 주목할 만한 이데올로기적 집단 사고, 즉 다보스 맨(Davos Man)이 등장한 데 이어 깨어있는 시대에 순응하는 엘리트들이 늘어나는 것을 예측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그 인용문은 지역적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현대의 아이폰이 닿는 거의 모든 나라와 지역에서 출산율 저하라는 눈에 두드러지는 현상을 예측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혁신과 개선을 가로막는 거대한 세계화 문화
바로 앞의 이 논점이 조지 메이슨 대학교수인 로빈 핸손(Robin Hanson)이 최근에 말콤/크라이튼의 논거를 업데이트해 제안한 핵심이다. 호주의 온라인 잡지인 「Quillette」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세계화와 균질화로 인해, 크라이튼이 “Lost World”에서 기술하는 대략적인 방식처럼, 문화적 경쟁이 감소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사적 영역의 개인 기업들처럼 경쟁하다가 만약 성공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면 빠르게 죽어 나가는 다양한 무리의 문화적 모델 대신에, 세계화라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거대한 문화”를 향하도록 하는 경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이는 몇 개의 거대 규모의 문화 모델들이라든가 아니면, 단일한 세계 문화일 수도 있다. 이 같은 모델은 처음에 이득인 듯 보이지만 길게 보면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최근 규모 면에서 큰 도약을 이룬 거시적 문화는 내부-문화 혁명, 평화, 무역과 부의 빠른 성장에 원동력을 증가시켰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몇 안 되는 거대한 문화로 인해 오늘날 기근, 질병 혹은 전쟁의 고통을 훨씬 덜 겪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 때문에 우리는 훨씬 적은 문화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기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긴 안목으로 볼 때 혁신은 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거시적 문화를 개선할 기회를 포기하게 될 것이다. 문화를 선택할 폭이 너무 좁고 약해서-적어도 단기적으로–문화적 추이(推移, 변해 감)가 잘못된 것을 알았다 쳐도 이를 되돌릴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니 거시적 문화는, 우리의 선택지가 약해서 마치 기업 문화가 정점에 달하면 기울어 가듯 기능장애로 표류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현실에 적응해 나가지 못하는 거대한 문화적 이동은 대체 출산율 이하를 보이는 현상과 함께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이유로, 선진 세계는 재생산 모델로 수렴되었으나, 그런 모델은 이미 인구노령화로 이어지고 있으며 노골적인 인구 붕괴-지금 붉은 경고등이 깜빡거리고 있는 한국처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인구 붕괴가 기술적, 경제적 진보를 늦추게 될 것이라는 점은 확실히 보증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핸손(Hanson)은 더 나가고 있다. 인구감소로 세계는 “매노파교도, 아미쉬파, 정통유대교도처럼 편파적인 문화”로 뒤집힐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한때 “20년마다 두 배가 늘어나던 인구의 감소는 우리의 주류 문명을 몇 세기 안에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고 쓰고 있다.
그에게 이런 현상은 기본적으로 로마의 몰락 시나리오와 같다. 배타적인 종교적 소수집단이 초기 기독교인의 역할을 하고, 나머지 우리는 타락한 로마 엘리트가 되는 배역 말이다.
핸손(Hanson)은 보편적이고 현실 적응성이 사라진 문화는 파괴된 잔해에서 더 많은 경쟁력이 생기는 것처럼 추락하거나 붕괴해 이를 극복해 내는 과정을 겪지 못하면 우리 문화는 로마 제국의 멸망과 같은 종류의 비운을 피할 수가 없고, 과거의 활력을 되찾기가 어렵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어서http://www.m-economynews.com/news/article.html?no=43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