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리스크와 이상기후 발생이 잦아지는 현실에서 식량안보를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닌 국가안보 핵심과제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는 8월 28일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23년 GDP 기준 14위)의 경제대국이지만 옥수수, 밀, 대두 등 주요 곡물을 90% 이상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식량이 남아 수출하는 국가는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러시아, 호주, 우크라이나 등 6개국에 불과한 반면, 식량이 부족한 국가는 130여개에 달한다.
영국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가 산출한 2022년 식량안보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중국에 비해 종합점수 순위가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은 37위에서 44위 사이 위치했으나, 일본은 10위권 이내를 유지해 식량안보 측면에서 우리나라보다 상당한 강점을 보였다. 중국은 같은 기간 중 49위에서 25위로 순위가 급등해 식량안보지수가 크게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기준 식량안보지수의 세부 평가지표별 한‧중‧일 순위를 보면, 한국은 113개국 중 ‣식량 구매능력(51위), ‣공급능력(11위), ‣품질 및 안정성(50위) 등 평가항목 4개 중 3개 부문에서 일본과 중국보다 순위가 낮았고, ‣지속가능성·기후변화 적응력 부문에서만 일본과 중국 사이인 34위에 위치했다.
세계 곡물 유통시장은 미국 ADM 등 4대 메이저 기업이 전통적 강자로 독과점을 형성 중이며, 아시아 지역 내에서는 일본과 중국이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동남아는 한국의 13배에 달하는 농지와 풍부한 곡물 생산을 자랑하지만, 산지 유통, 수확 후 관리(저장·가공) 및 물류·인프라 부족 등으로 밸류 체인 면에서는 한국보다 떨어진다고 한국경제인협회는 밝혔다.
일본 정부는 과거부터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의 자금 지원 및 무역보험을 통한 보증 등을 민간 농업협동조합(Zen-Noh)과 종합상사에 제공 중이며, 이미 미국·브라질·캐나다에서 해외 곡물 유통망 체계를 구축했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정부 차원의 대규모 공적 자금을 투입해 해외 현지 유통기업을 인수하는 등 곡물 유통망 강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반면 한국은 해외 곡물 유통망 구축 측면에서 일본·중국에 비해 초기 단계 수준이다. 이에 더해 곡물 확보 면에서는 대량 곡물 수입국과 비교해 국내 수요가 적어 곡물 구매 시 국제입찰 시장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고, 국제 곡물가격 변동 시 농산물 물가 또한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조다.
작년 일본·중국은 자국 식량안보를 위해 관련 법을 제·개정했고, 해당 법은 올해 모두 발효됐다. 이를 통해 자국 식량공급 및 수급(비축)등을 국가안보 차원으로 다뤄 향후 발생 가능 변수를 대비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우리나라의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에는 구체적인 식량안보 개념이 없고, 제1조 목적 상에도 공급망 리스크 등 외생변수로 인한 안정적 식량공급이 점차 어려워지는 현실을 명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식량안보를 법에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국은 일본과 중국에 비해 해외 곡물 유통망 확보에서 미진한 데다 밀·대두의 비축기지 또한 국내에 마련되어 있지 않아 곡물 수급 불안정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고, 해당 곡물 국내 공급은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중, 일 간의 주요 곡물자급률을 보면, 한국의 자급률은 19.5%인 데 비해 일본은 우리보다 조금 높은 27.6%이고, 중국은 92.2%로, 월등히 높은 자급률을 보이고 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식량은 국민 생존과 직결된 필수재라는 점에서 식량안보는 앞으로 단순한 먹거리 문제가 아닌 국가안보와 연결되는 사안”이라며, “식량공급 안정을 위해 선도기업을 적극 지원‧육성하고, 해외 곡물 공급망 확보와 비축에 적극 노력하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