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연구 과정에서 다른 저자의 글을 그 저자의 허락과 인용 표시 없이 베끼는 것을 ‘표절’이라고 말하고, 사실 그 정도만 알아도 충분하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한 도덕․윤리적 개념에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 교육부훈령에 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을지는 의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교육부훈령 제449호, 2023. 7. 17., 전부개정)의 내용 가운데 ‘표절’과 ‘부당한 중복게재’를 다룬다. 특히 ‘부당한 중복게재’는 이른바 ‘자기표절’이라는 단어와 함께 살핀다. 결론부터 말하면, ‘자기표절’은 표현 자체가 형용모순인 틀린 단어이다. 그 이유는 뒤에서 살핀다.
◇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에서의 ‘표절’, 그리고 ‘저작권 침해’와의 차이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1조 제1항 제3호는 표절을 “일반적 지식이 아닌 타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 또는 창작물을 적절한 출처표시 없이 활용함으로써, 제3자에게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인식하게 하는 행위”로 정의하였다.
그리고 다음 네 가지를 표절의 예시로 든다. ① 타인의 연구내용 전부 또는 일부를 출처를 표시하지 않고 그대로 활용하는 경우(가목), ② 타인의 저작물의 단어·문장구조를 일부 변형하여 사용하면서 출처표시를 하지 않는 경우(나목), ③ 타인의 독창적인 생각 등을 활용하면서 출처를 표시하지 않은 경우(다목), ④ 타인의 저작물을 번역하여 활용하면서 출처를 표시하지 않은 경우(라목) 등이 그러하다.
이 규정에서 보다시피, 표절에 해당하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타인”의 것을 “적절한 출처표시 없이”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범위는 전부나 일부를 그대로 쓰는 것 뿐만 아니라, 타인의 것을 표현만 변형하여 쓰더라도 표절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단, ‘자신’의 것을 활용하거나 적절한 출처표시를 했다면 표절이 아니다. 연구윤리에서의 적절한 출처표시는 대표적으로 논문에 기재하는 각주(脚註)나 미주(尾註)가 있다. 각주는 각 문단이나 쪽마다 주해를 붙이는 것이고, 미주는 마지막 쪽에 한번에 주석을 모두 붙이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각 학술지의 투고 규정마다 작성 방식이 다르므로 그에 따르면 된다.
추가적으로 헷갈릴 수 있는 것은 ‘표절’과 ‘저작권 침해’는 무엇이 다르냐는 점이다.
일단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의 내용을 기준으로 보면 표절은 ‘연구윤리’에 관한 것에만 해당하는데, 해당 지침 제2조 제1호는 ‘연구자’를 「학술진흥법」 제2조 제5호에 규정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학술진흥법」 제2조 제5호는 각종 교육시설 및 연구기관에 소속된 교원이나 연구원, 그리고 「대한민국학술원법」 및 「대한민국예술원법」에 따라 학술활동 또는 예술창작활동의 지원을 받는 과학자 및 예술가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가령 「대한민국학술원법」 및 「대한민국예술원법」에 따라 지원을 받지 않는 예술가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예술작품의 표절 문제 등은 우리나라 법령상 ‘표절’이라 할 수 없고, ‘저작권 침해’ 문제로 다뤄야 한다.
그런데 표절은 ‘적절한 출처표시 없이’ 타인의 저작물을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활용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면, 저작권 침해는 허락 없이 타인의 저작물과 ‘실질적으로 유사한 표현’을 창작하는 것을 요건으로 하므로 출처표시보다는 표현의 ‘실질적 유사성’에 방점을 둔다. 다시 말해, 표절과 저작권 침해는 온전히 동일한 개념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 제2호 : 출처명시의무
「저작권법」 제37조 제1항은 저작물을 이용하는 자에게 그 출처를 명시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고, 같은 조 제2항은 이용 상황에 따라 합리적이라고 인정되는 출처 명시 방법을 활용하되 실명이 표시된 것은 실명으로, 이명(異名 : 본명 외에 달리 불리는 이름)이 표시된 것은 이명으로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규정을 위반하면 「저작권법」 제138조 제2호에 따라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 금액은 과태료가 아닌 ‘벌금’이기 때문에, 출처명시의무를 위반하여 기소가 되고 유죄의 재판이 확정되면 전과자가 되는 것이다. 이 점은 연구윤리에서의 표절은 물론, 저작권 침해의 경우에도 모두 해당하는 것이니, 독자들은 꼭 유의하기 바란다. 그만큼 출처표시가 중요하다.
◇ ‘부당한 중복제개’와 ‘자기표절’
앞서 살폈듯이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은 표절에 대해 ‘타인’의 것을 활용하는 점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고려하면, 이른바 시중에서 많이 거론되는 ‘자기표절’이라는 개념은 자체적으로 형용모순인 셈이다. 애초에 타인의 것을 무단으로 활용하는 개념인 표절에 ‘자기’라는 수식어를 의도적으로 붙임으로써, 저작자 스스로 자신의 저작물을 여러 곳에 활용하는 행위 일체를 나쁘게 취급하도록 하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단어에 불과하다.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1조 제1항 제5호는 ‘부당한 중복게재’를 “연구자가 자신의 이전 연구결과와 동일 또는 실질적으로 유사한 저작물을 출처표시 없이 게재한 후, 연구비를 수령하거나 별도의 연구업적으로 인정받는 경우 등 부당한 이익을 얻는 행위”로 정의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출처표시가 없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연구비 수령이나 별도의 연구업적 인정 등의 부당한 이익까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부당한 이익을 얻는 것이 없다면 자신의 저작물을 여러 차례 활용하는 것만으로 연구윤리 위반이라고 할 수 없는데, 이러한 경우까지 형용모순적 표현인 ‘자기표절’이라고 일컫는 것은 중복게재가 정당한지 여부와 무관하게 이를 자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이 왜 중복게재 행위 전체가 아닌 ‘부당’한 중복게재만을 연구윤리 위반이라고 하는지 그 의미를 분명히 새겨야 한다.
◇ 추천도서
이 글에서 다룬 사항들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전문적인 내용이 잘 정리된 것을 찾고 싶다면, ① 남형두 지음, 『표절론 – 표절에서 자유로운 정직한 글쓰기』, 현암사(2015), ② 남형두 지음, 『표절 백문백답』, 청송미디어(2017) 등 두 권의 책을 참고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