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이 다가온다. 그런데 배추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알몸 절임배추’의 기억이 생생한데, 중국 배추가 시장에 쏟아질 판이다. 생배추를 들여온다니 그나마 한 걸음 양보, 눈 감아 준다고 치자. 겨우내 서민들의 밥상을 책임져 주기엔 중국 배추가 너무 무르다는 얘기도 논외로 하자. 하지만 양배추로 김치를 대체하자니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일부 언론이 양배추 김치를 칭송한다. 저의가 심히 의심스럽다. 이제 세계인들도 한국 김치를 즐긴다. 그래도 양배추로 김치 담가 먹는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 중국이 한국의 김치 역사를 탐하는 이유가 뭔가. 김장 김치는 우리 문화유산이다. 전통과 맛의 보고다. 묵은지를 좋아한다면 양배추 김치와 비교하는 것 자체를 허튼소리라 할 것이다. ‘금배추’도 사실 농가와는 관계가 먼 얘기다. 헌법에 명시된 대로 정부는 농민의 이익 보호를 위해서라도 적실한 대책을 제대로 강구하라.
배춧잎 빛깔 만원 한 장 내고 배추 한 통 샀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한 포기에 2만 원까지 하는 ‘금배추’가 등장하는 등 배추 대란이 시작되었다. 9월까지 이어진 폭염으로 여름배추 품귀 현상이 일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폭염으로 배추 공급량이 줄어 가격이 급등했다는 말만 되뇌고 있다. 해마다, 시즌마다 고장 난 레코드처럼 무한반복이요, 길 잃은 철새처럼 뒷북 대응으로 헤매고 있다.
◇고랭지 배추가 사라지고 있다
지금 시기에 시장으로 출하되는 배추는 여름 고랭지 배추이다. 대표적인 고랭지 배추 재배지로 알려진 곳은 태백 매봉산과 강릉의 안반데기이다. 이곳은 여름에도 시원해 배추 재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었으나 지난해에는 기온이 33℃까지 치솟았고, 올해는 폭염주의보까지 발령되었다. 기온 상승은 병해충의 확산을 촉진해 생산에 큰 타격을 줬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2000년대 대관령 지역의 평균 최고 기온은 12.4℃였으나, 2010년대에는 12.8℃로 상승했고, 최근 5년(2019∼2023년) 동안에는 13.5℃를 보이는 등 갈수록 기온이 높아지고 있다.
고랭지 배추 재배 면적과 생산량은 얼마나 줄어들었을까? 통계청에 따르면, 고랭지 재배 면적은 1996년 1만 793ha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매년 평균 2.9%씩 감소해 왔다. 지난해는 5,242ha로, 1996년에 비해 51.4%나 줄어들었다. 고랭지 배추 생산량은 2000년 38만 5,000톤으로 정점을 찍은 뒤 매년 2.3%씩 줄어들어 지난해에는 22만 1,000톤으로 1996년보다 36.5% 감소했다.
해발 1,200m에 위치, 132ha(약 40만 평)에 달하는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매봉산 지역은 약 30%가 휴경에 들어갔다. 생산비 증가로 인한 농가의 수익성 악화도 재배 면적 축소의 원인이다. 2022년 고랭지 배추 농가의 경영비는 2002년에 비해 2.8배 증가했지만, 소득은 1.1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 ‘농사지을수록 손해다’라는 농부의 말이 빈말이 아니다.
◇ 양배추로 김장하라?
치솟는 배추가격을 잡겠다며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참 가관이다. 공급 측면에서는 중국산 배추를 소매시장에 풀겠다 하고, 소비 측면에서는 배추 대신 양배추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김장용 배추를 양배추로 대체하라는 것은 김장의 전통과 맛을 철저히 무시한 처사다. 설익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아무리 양배추가 싸다 해도 배추 대신 양배추 먹으라는 정부가 제대로 된 정부인지, 측은지심에 이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중국산 배추는 품질 문제와 안전성 우려로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아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배추가격 급등을 잠재우기 위해 소매시장에 중국산 배추를 투입하려 한다. 중국산 배추는 주로 도매시장에 공급되었고, 소매시장에 유통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크기 때문이다. 민간 업체들이 중국산 배추를 들여오고 있지만, 정부가 공급량 조절을 목적으로 수입을 추진한 사례는 올해를 포함해 2010년, 2011년, 2012년, 2022년 등 다섯 번에 불과하다.
김치시장 현황을 살펴보면, 여름배추 가격 급등으로 김치 수입량도 크게 증가했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김치 수입량은 17만 3,329톤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비위생적인 ‘알몸 절임배추’ 동영상 파문 이후 한동안 감소했던 중국산 김치 수입이 다시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2021년 김치 수입액은 1억 4,074만 달러로 전년(1억 5,243만 달러) 대비 7.7% 감소했으나, 2022년부터 수입이 다시 증가해 2년 연속 1억 6,000만 달러를 넘고 있다. 수입된 김치는 주로 외식업체나 급식소에서 사용된다. 국내산 김치는 저렴한 중국산 김치에 밀릴 수밖에 없다. 수입이 늘어나면 국내 농가 경영에 타격을 주어 농민 수는 줄어들고, 그 결과 재배 면적도 축소되어 기후위기에 따른 수급 조절 및 가격안정에 실패하는 악순환이 또 반복된다.
여름배추 가격을 잡겠다며 정부가 또 다른 방편으로, 산지 유통인과 농협이 보유한 배추를 조기에 시장에 풀 수 있도록 출하장려금을 계속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배추가격을 단시간에 잡기는 어렵다. 배추의 생육기간이 약 3개월이기 때문에 새로운 산지에서 출하가 시작되는 10월 중순까지는 높은 가격이 이어질 것이다. 게다가 현재의 독점적 수탁 경매 중심의 가락시장 유통구조상 계속 배추가격이 널뛸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비는 하나?
여름 ‘금배추’에 이어 가을 ‘다이아몬드배추’가 될까 우려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올해 가을배추와 겨울배추 모두 재배 면적이 줄어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재배(의향) 면적이 1년 전과 비교해 2.1% 줄고, 생산량은 4.3%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남부지방에 집중된 폭우로 인해 배추 농가의 피해가 심각하다.
특히, 김장철에 사용되는 가을배추와 겨울배추의 최대 산지인 전남 해남 지역이 이번 폭우로 큰 피해를 보았다. 해남의 가을배추는 전국 생산량의 17%, 겨울배추는 무려 65%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폭우로 해남 지역의 배추밭 약 611㏊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피해 면적은 해남 전체 배추밭의 15%에 달한다. 이로 인해 배추가격 상승이 김장철까지 이어질 것이다.
문제는, 알고도 적절한 대응을 못 하는 정부의 무능력이다. 지난 5월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여름철 기상재해에 대비하여 주요 농산물 수급 안정에 만전’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보면, “7~10월 출하되는 여름배추의 재배(의향) 면적은 전년 대비 4.6%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이미 사전 대책 마련이 필요함을 인식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왜 이 지경인가. 더 심각한 문제는 현장과 동떨어진 안이한 태도가 만연했다는 점이다.
국책 연구기관의 한 선임연구원은 모 신문사 인터뷰에서 “지금 배추가격이 높기 때문에 오히려 농가에선 (가을)배추를 더 많이 심으려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수확량이 늘어나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면서 “또 여름배추는 강원도 고랭지 지역을 중심으로 재배되는 반면 김장철에 쓰는 가을배추는 전국에서 재배되기 때문에 일부 지역에 피해가 있더라도 이를 상쇄할 수 있다”고도 했다. 관료들도 이와 다르지 않은 태도를 보인다. 태평스럽기 짝이 없다.
◇임시방편, 땜질 처방… 이제 지겹다
정부의 단기적인 수급 조절 정책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내 배추 농가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더불어 유통구조 개선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가격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헌법 제123조 4항에는 ‘국가는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에 노력하여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한다’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헌법이 부여한 책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그동안 반복된 기상이변에도 정부는 손을 놓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배추가격 불안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기적인 대책도 전무한 상황이다. 배추 수급 조절을 통해 김장철 물가 안정을 꾀하겠다지만, 이런 단기적인 대책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기후위기에 따른 작황 부진은 반복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도 그때마다 중국산 배추에 의존해 임시방편, 땜질식 대책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소비자와 농민 모두에게 외면받는 무능한 정부로 낙인찍힐 것이다. 그 결과는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