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앞당기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원전, 수소와 같은 고효율 무탄소에너지를 폭넓게 활용할 것이다.”
지난해 9월 윤석열 대통령이 제78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CF(Carbon Free) 연합’을 제안하면서 한 말이다. 윤석열 정부는 원전 확대 정책이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현실적인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과연 정부의 선택은 옳은 길로 가는 것일까.
원전은 탄소 중립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국은 CF연합을 주도하며 원전을 통한 탄소 중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 단체들은 원전은 탈 탄소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전이 갖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원전 우선 정책의 위험성을 알리려 노력하고 있다.
이 물음에 답하고자 녹색전환연구소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13주기를 앞두고 이슈브리프를 발간했다. 급격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는 재생에너지를 통한 에너지 전환을 하고 있다. 과연 원전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일까. 녹색전환 연구소의 '윤석열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 이대로 괜찮은가?'(저자 전성하 연구원)를 바탕으로 원전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하나씩 들여다 보자.
◇윤석열 정부의 원전 우선 정책
윤석열 정부는 출범 전부터 문재인 정부의 탄소중립정책을 비판하면서 기후·에너지 정책 방향의 대대적인 전환을 예고했다. 2022년 7월 확정된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에서는 ‘실현가능하고 합리적인 에너지 믹스의 재정립’을 표방하면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와 원전 수명연장을 통해 2030년 원전 발전량 비중을 30% 이상으로 상향하겠다고 밝혔다.
원전 생태계 복원, 2030년 원전 10기 수출을 목표로 ‘원전수출전략추진단’ 신설, SMR 4,000억 원 투입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2023년 1월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는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에서 밝힌 대로 2030년 원전 발전량 비중을 2021년 10월 수립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 이하 NDC) 상향안의 23.9%에서 32.4%로 대폭 상향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을 확정했다. 반면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30.2%에서 21.6%로 하향 조정됐다. 또한 산업부는 ‘2024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원전 차액계약을 도입해 원전 활용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전기사업법' 제34조제1항에 따르면, 차액계약이란 발전사업자와 전력구매자가 전력거래가격의 변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기준가격을 설정하고 기준가격과 전력거래가격 간 차액을 보전하도록 하는 계약을 의미한다. 같은 법 같은 조 제2항은 산업부가 고시하는 전력량에 대해 차액계약으로 전력을 거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직 해당 고시에는 원전 발전량에 차액계약이 명시돼 있지 않으나, 향후 차액계약으로 원전 사업자에게 일정 가격을 보장해 원전 발전량 비중 상향을 뒷받침하겠다는 방침이다.
2024년 2월 윤석열 대통령은 SMR을 포함한 원전산업 지원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만약 11차 전기본에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담기면 2015년 7차 전기본 이후 9년 만에 포함되는 것이다.
원전 확대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예산도 대폭 확대됐다. 2023년 8월 산업부가 발표한 ‘2024년 예산안’에는 원전 지원 관련 단위사업인 전력산업기반조성사업 예산으로 1,421억 원이 편성됐는데 이는 전년(89억 원) 대비 14배 이상 증액된 것이다. 세부사업으로 △원자력 생태계 지원사업 112억 원(23억 원 증액) △SMR 제작지원센터 구축사업 1억 원(순증) △원전 생태계 금융 지원사업 1,000억 원(순증) △원전수출보증사업 250억 원(순증) △원전 기자재 선금 보증보험 지원사업 579억 원(순증) 등이 포함됐다.
이 외에도 혁신형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개발사업 예산 또한 전년(39억 원) 대비 7배 이상 늘어난 333억 원이 편성됐다. 같은 해 12월 21일 국회에서 산업부가 편성한 예산 대비 4,452억 원 증가한 11조 5,188억 원 예산안이 통과됐다.
전력산업기반조성사업 예산은 1,422억 원으로 정부안 대비 1억 원 증액됐고, 혁신형소형모듈원자로 기술개발사업 예산 333억 원은 정부안 그대로 확정됐다. 원전 지원 예산 삭감을 통해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에 제동을 걸어야 할 국회가 오히려 예산 증액을 승인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원전 신규건설과 수명연장의 문제점
우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원전 신규 건설과 수명연장의 문제점을 △에너지전환 △경제성 △지속가능성 △안전성 4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자.
△에너지전환 : 글로벌 흐름에 역행하는 원전 확대 정책
2023년 세계 원자력 산업 현황 보고서(The World Nuclear Industry Status Report, 이하 WNISR)에 따르면, 원전 투자 규모는 2004년부터 2010년까지 꾸준히 확대되다가 그 이후로는 증감을 반복하며 연간 500억 달러 미만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2022년 기준 재생에너지 투자는 태양광 3,000억 달러, 풍력 약 1,700억 달러로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투자가 급속도로 확대되는 가운데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 이하 IEA)는 2023년 신규 재생에너지 보급 용량이 507GW에 달하며 이는 2022년 보급용량보다 50%가 늘어난 수치라고 밝혔다. 2025년 초에는 역사상 최초로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석탄화력 발전량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원전 건설 추이를 보면, 1979년 최고치(234기)를 찍은 후에 급격히 감소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다시 늘어났으나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는 제자리걸음인 상황이다. 전 세계 원전 발전량 비중도 1996년을 기점으로 계속 줄어들어 2022년 9.2%를 기록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이하 OECD) 회원국 가운데 1차 에너지 대비 재생에너지 비율(2.1%)이 가장 낮다.
전성하 연구원은 "이러한 상황에서 현 정부는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 목표는 낮추고 원전 발전량 비중 목표는 높였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그 어느 나라보다 파격적인 에너지 전환 목표를 수립하고 이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글로벌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원전 확대 정책의 또 다른 문제는 원자력이 재생에너지보다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 기여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이하 IPCC) 6차 보고서에 따르면, 태양광과 풍력에 비해 원자력이 2030년 온실가스 순 배출량 감소에 대한 잠재적 기여도는 더 적고 비용은 더 많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탄소중립 달성의 시급성을 고려할 때 원전은 타 발전원에 비해 착공부터 상업운전을 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IEA와 원자력기구(Nuclear Energy Agency, 이하 NEA)가 공동으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신규 원전의 건설에 소요된 비용·기간 모두 계획보다 늘어났다.
프랑스의 1.6GW급 Flamanville 3호기는 2007년에 착공해 2013년 준공·상업운전이 예정돼 있었으나 기술적 문제로 지연돼 올해 상반기에야 핵연료 장전과 가동이 가능할 전망이다. 2016년 착공한 영국의 3.4GW 급 inkley Point 1·2호기도 2025~2026년 상업운전을 시작할 계획이었으나 공정상 문제로 15개월에서 최대 5년 연기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경제성: 원전 vs 태양광, 승자는 정해졌다
원전 확대 정책이 안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세계 최대 독립 투자은행인 Lazard의 연간 대규모(utility scale) 발전원 균등화발전비용(Levelized Cost of Energy, 이하 LCOE) 비교 분석에 따르면, 대규모 태양광의 경우 2009년부터 2022년까지 보조금을 받지 않는 평균 발전 비용이 MWh당 359달러에서 60달러로 83% 감소했다.
균등화발전비용이란 발전소의 설치 및 운영, 해체까지 소요되는 비용 총액을 총생산 전력으로 나눈 값이다. 같은 기간 해상 풍력의 LCOE는 MWh당 135달러에서 50달러로 63% 하락했다. 반면 원자력 발전 비용은 MWh당 123달러에서 180달러로 46% 상승했다. 원전은 현재 대규모 발전원 중 가장 비싼 발전원이라는 뜻이다.
24개국 243개 발전소의 비용 데이터를 분석한 IEA·NEA 보고서는 2025년에 LCOE가 가장 낮은 발전원을 육상 풍력(MWh당 50달러)으로 전망하고 있다. 1MW급 이상 태양광 LCOE는 MWh당 56달러, 원전 LCOE는 MWh당 69달러로 예상된다.
Lazard의 분석 과정에 사용후핵연료 처리 비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방사성폐기물 관리비용 및 사용후핵연료관리부담금 등의 산정기준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2022년 1월 기준 국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운반·처분 비용은 약 2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전 신규건설과 수명연장으로 인해 사용후핵연료가 추가로 발생하면 사용후핵연료 관리 비용은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원전 중대사고 시 발생할 천문학적 손해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2023년 12월 기준 일본 후쿠시마 제1 원전 사고에 따른 배상·제염 비용은 213조 원에 달한다. 반면 한국전력공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원전 중대사고 발생 시 예상되는 손해배상액은 약 596조 원에 달한다. 폐로, 제염, 행정경비 등을 포함하면 840조 원으로 늘어난다. 한해 국가 예산(2024년 657조 원)을 웃도는 비용이다.
사고가 무조건 나는 것은 아니지만 불안 요소는 분명 감안을 해야 한다. 만에 하나 사고가 났을 경우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원전은 그만큼 위험 부담이 큰 산업이다.
녹색전환연구소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보다 국내 원전 중대사고 발생 시 예상 손해비용이 높은 이유는 평균적으로 국내 원전 인근 지역의 거주 인구가 더 많고 지역소득과 임금 수준이 더 높기 때문이다. 원전의 경제성 문제는 발전비용과 중대사고 손해비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내 원전 사업자는 자금 조달에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3대 연기금 운용사 중 하나인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APG)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확보와 사고저항성핵연료 사용 조건을 유럽 연합에 못 미치는 기준으로 원전을 친환경에너지에 포함해 한국 원전 관련 투자는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의 소요전력량을 100% 재생에너지 발전 전력으로 사용하겠다는 글로벌 이니셔티브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에는 2024년 2월 1일 기준 전 세계 426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RE100 참여기업은 자사 협력 기업에 재생에너지 이용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국내 기업의 참여도 늘어나는 추세다(국내 36개 기업 참여).
녹색전환연구소는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원전이 포함된 CF(Carbon Free) 연합을 추진하는 것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산업부에 제출한 보고서는 RE100 이니셔티브의 확산 속도와 영향력을 고려할 때 CFE(Carbon Free Energy)가 RE100을 대체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분석하고 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2023년 5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82.4%가 CF100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은 원전 발전 전력을 사용하는 국내 기업의 부담을 가중하고 해외 이전을 가속할 수 있다.
△지속가능성: 심화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문제
원전 신규 건설과 수명연장이 야기하는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생활권으로부터 10만 년 이상 영구적으로 격리해야 하는 사용후핵연료가 더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산업부 분석에 따르면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원전 수명연장,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등이 포함됨에 따라 2021년 12월 문재인 정부가 수립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서 추산한 사용후 핵연료 발생량(약 63.5만 다발)보다 15.9만 다발이 추가 발생(25%↑)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각 원전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포화시점도 앞당겨졌다. ‘제2차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는 사용후핵연료를 영구적으로 처분하기 위한 부지선정 절차 착수 이후 20년 내 부지선정 완료 후 중간저장시설을 확보하고, 37년 내 동일 부지에 영구처분시설을 갖추겠다는 로드맵이 그러져 있다.
전 연구원은 "2025년 전 세계 최초로 사용후핵연료 처분 시설 운영을 시작할 핀란드도 1983년부터 부지선정에만 17년이 걸린 것을 고려할 때 무리한 목표가 아닐 수 없다. 당장 올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안(이하 특별법)이 통과돼 내년부터 부지선정 절차를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2045년 전까지는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부지 내 저장해야 한다. 그때까지 원전 지역 주민들만 고스란히 방사능 오염 위험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어 "정부가 원전 수명연장뿐만 아니라 신규 건설까지 추진하는 상황에서 제한 없이 늘어날 사용후핵연료로 인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에 대한 비판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정부는 원전 확대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도구로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을 추진하기 이전에 원전 수명연장과 신규 건설 정책부터 재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전성: 늘어나는 1·2등급 원전 고장과 전쟁의 볼모, 원전
단 한 번의 원전 사고가 인간과 자연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원전의 안전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재생에너지가 아닌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이 안고 있는 한계는 명확하다고 녹색전환연구소는 밝히고 있다.
국내 원전 사고·고장 현황을 분석한 결과, 국내 첫 원전인 고리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한 1978년부터 2023년까지 전체 원전 사고·고장 건수는 1990년대 233건을 정점으로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1·2등급 고장은 1980년대까지는 일어나지 않다가 △1990년대 4건 △2000년대 7건 △2010년대 19건 △2020년대 5건으로 최근 들어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 '원자력이용시설의 사고·고장 발생시 보고·공개 규정'의 ‘사건 등급평가 지침’에 따르면 사건 등급은 0등급부터 7등급까지 모두 8등급으로 분류된다.
등급이 높아질수록 고장·사고에 따른 위험도 커진다. 0등급은 “정상 운전의 일부로 간주되며 안전성에 영향이 없는 고장”, 1등급은 “기기 고장, 종사자의 실수, 절차의 결함으로 인해 운전 요건을 벗어난 비정상적인 상태”, 2등급은 “사고를 일으키거나 확대시킬 가능성은 없지만 안전계통의 재평가가 요구되는 고장”을 의미한다.
사건 등급평가 지침은 등급 분류 이후 1등급은 “허용된 운전범위를 이탈”, 2등급은 “안전 관점에서 중대한 고장”이라는 정의에 적절하게 부합했는지 최종 확인을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추가로 분석한 결과, 2010년부터 2023년까지 발생한 1·2등급 고장 24건의 원전 가동 연수 중간값은 26.5년으로 나타났다. 해당 원전의 설계수명이 30~40년인 것을 고려할 때 적지 않은 수치다. 이처럼 1·2등급 고장이 증가하는 것은 노후한 원전의 수가 늘어나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그만큼 강도 높은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원전은 평상시에도 기계적 또는 인적 요인으로 인해 사고·고장이 발생하고 있어 인근 지역 주민들은 방사능오염 위험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월성 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균열 및 차수 구조물 손상으로 인한 방사능 오염수 누출 사건도 발생한 바 있다. 한빛 3·4호기 격납건물 건설 과정에서 공기 단축을 위해 콘크리트 다짐 작업이 부실해 다량의 공극이 발생한 사건은 신규 원전 건설 시 무리한 기간 단축이 어떤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지 드러냈다.
전쟁이 일어나면, 원전의 위험도는 더욱 커진다. 2022년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자포리아 원전 점령은 전시에 원전이 얼마나 취약한 발전원인지 전 세계에 보여줬다.
녹색전환연구소는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원전 밀집도가 가장 높은 동시에 지정학적 위험에 노출돼 있는 국가이다. 만에 하나 전쟁이 일어날 경우, 원전이 교전국의 볼모가 될 위험은 매우 높다. 원전 발전량 비중이 높을수록 전쟁 발발 시 예방조치로 원전 가동을 중단하기 어렵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2023년 6월 윤석열 정부는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하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능력 고도화를 첫 번째 주요 안보 도전요인으로 보고, 국가안보 제1목표로 ‘국가 주권과 영토를 수호하고 국민 안전을 증진’를 설정했다. 그러나 원전 확대 정책이 국가안보에 오히려 위협이 될 가능성에 대해 제대로 검토했을지는 의문"이라고 제기했다.
△원전 대국에서 탈원전으로 전환한 독일
독일은 원래 원전 대국이었다. 1969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1200MW급 원전을 발주했고 2000년에는 발전 용량 기준 세계 4위였다. 그러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2000년대 초 독일 사회민주당(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 이하 SPD)과 녹색당(Bündnis 90/DieGrünen) 연립정부는 원전 사업자와 ‘핵 합의’를 도출한다.
이를 토대로 원전운영기간을 32년으로 제한하는 내용과 원전별 생산 가능한 잔여 전력량을 '원자력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및 위험 방지에 관한 법률(Gesetz über die friedliche Verwendung der Kernenergie und den Schutz gegenihre Gefahren(Atomgesetz)'(이하 원자력법)에 명시했다.
하지만 2009년 출범한 독일 기독교민주연합(Christlich Demokratische Union Deutschlands),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Christlich-Soziale Union in Bayern), 자유민주당(Freie Demokratische Partei) 연립정부는 다시 사업자와 원전 수명연장에 관한 협상을 추진했고, 그 결과 17기 원전에 대해 평균 12년 수명 연장하기로 하고 원자력법 개정을 추진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자 메르켈 총리는 원전 수명연장 결정을 철회하고 늦어도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겠다는 내용의 원자력법 개정을 추진한다. 다만 독일 연방의회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발의 영향으로 마지막 원전 3기는 2023년 4월 15일까지 임시 연장 운영하기로 2022년 11월 결정했다. 2023년 4월 15일 독일은 마지막 원전 3기를 폐쇄하면서 완전한 탈원전 국가가 됐다.
김수진 단국대학교 행정법무대학원 탄소중립학과 교수는 "독일의 정당정치에서 원전 이슈가 의제화되고 수십 년에 걸쳐 논쟁 됐기 때문에 탈원전을 이룰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문재인 정부 시절 수명연장한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를 영구정지하고 원전 신규 건설을 백지화하긴 했으나 탈원전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지 못했고, 2020년 국회의원 선거와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탈원전을 공약화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한다.
녹색전환연구소는 "문제는 원전 문제가 정당정치에서 주된 논쟁 이슈로 부각되지 않아 탈정치화됐다는 것이다. SPD가 주류 정당으로서 원전 확대 정책에 대해 거부권자(veto player) 역할을 한 것처럼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원전 확대 정책 추진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는 제1야당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연구원은 "IPCC 6차 보고서는 향후 10년간의 온실가스 배출 감소 수준이 지구 온난화를 1.5도 또는 2도로 제한할 수 있는지를 크게 결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원전은 비용이 많이 들고 건설에 긴 시간이 걸린다. 사고로 인한 방사능 오염 위험에 노출돼 있으며 사용후핵연료 처분과 주민 수용성 문제 해결은 난망하다. 에너지 안보와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원전이 적합한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오히려 원전 확대 정책은 올바른 대안 모색을 지연시킨다. 한국 사회가 원전의 경제성과 안전성, 지속가능성의 한계를 고려하면서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정책 방향 및 과감한 목표 설정, 책임 있는 이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정부의 선택과 국회의 대응이 대한민국의 탄소중립 경로와 미래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