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홍수, 태풍 등 기후 변화가 몰고 오는 역대 최악의 재앙이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잉카문명의 본산인 페루의 고산 지대 청정 빙하수가 기후변화로 인해 식초같이 신맛으로 오염됐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도대체 페루의 고산 지대에서 지난 40년간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페루의 한 고산 지대, 식초 냄새가 나는 죽음의 붉은 강
남미 최대의 안데스산맥의 지맥(支脈)이 뻗은 잉카문명의 본산, 페루의 한 고산 지대는 수천 년 전에 형성된 빙하가 녹은 맑은 물과 고산 특유의 적요(摘要)함을 간직한 빈 계곡을 타고 전설이 소리로 전해지는 별세계 같은 곳이다. 하지만 지난 40년간 지구의 기후가 변화하면서 빙하가 턱없이 녹는 바람에 수정 같던 계곡물이 식초 맛이 나는 강산성 물로 변했고 강물은 녹이 슨 것처럼 붉은색을 띠고 흐른다.
이는 종말을 다룬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올해 70살인 디오니시아 모레노 씨는 높이 6천m가 넘는 여러 봉우리와 722개의 빙하가 있는 안데스산맥의 한 지맥인 길이 200km의 코르디예라 블랑카( Cordillera Blanca)산맥의 해발 고도 1,390m 높이에서 흐르는 샬랍(Shallap) 강이 그녀가 사는 잔쿠(Jancu) 마을로 연어가 득실대는 맑은 물을 실어다 준 시절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때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똑같이 아무 고민 없이 안심하고 이 물을 마실 수 있었다"라면서 "이제 물이 빨갛다. 아무도 마실 수 없다"고 그녀는 말했다.
한눈에 보면 이 강은 광산 오염의 희생자인 것처럼 보인다. 구리, 은, 금의 주요 생산국인 페루에 가 본 사람들은 금방 그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페루의 폐광 근처에 가 보면 물이 종종 녹이 낀 것처럼 붉은색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샬랍 강을 이처럼 붉게 만든 범인은 광산이 아니었다. 기후 변화였다. 페루의 코르디예라 블랑카 산맥은 특히 기온 상승에 민감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열대성 빙하가 밀집해 있는 곳이면서 페루의 주요 담수 공급원이다.
◇해빙으로 노출된 암석의 화학 반응으로 독성 물질 생성
페루 고산의 빙하는 수천 년 동안 한편으로 녹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겨울에 쌓인 눈이 얼음이 되어 녹은 만큼 보충되는 선순환을 이어왔다. 하지만 1968년 이후, 빙하는 이상 기후로 40% 이상 줄어들었다. 그러자 빙하가 녹은 부위로 노출된 암석에서 비바람으로 인해 화학 반응이 일어났고 이때 독성 물질이 방출되면서 강물이나 지하수에 스며들어 오염이 본격화되었다.
이 과정을 ‘산성 암석 배출’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단계적 연쇄 반응으로 수자원을 오염시켜 큰 문제를 일으키며 심각한 것은 이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고 페루 카예타노 에레디아 대학교의 생물학자이자 안데스산맥의 수질을 연구하는 라울 로아이자 교수가 말했다.
그에 따르면, 샬랍 강의 상류에는 해발 4천m 높이에 자리한 ‘샬랍 호수’가 있는데 호수 위쪽에서 퇴빙( :표면에서부터 빙하가 차차 녹아버리는 현상)이 일어나 황화철인 황철석이 풍부한 치카마 지층(Chicama Formation)이 380에이커(약 39만 평)가 지표로 노출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빙하가 녹은 물이 지층의 암석 위를 흐르고 이때 황화철이 부식성 화학 물질인 수산화철과 황산으로 변하면서 암석에 들어있는 중금속을 밖으로 나오게 만들어 다시 빙하가 녹은 물과 섞이게 만든다.
◇식초 맛의 산중 호수, 60개 이상 오염 진행 중
이로 인해 샬랍 호수는 현재 pH가 4 미만으로 식초와 거의 비슷한 산성을 띤다. 예전 같으면 빙하가 녹은 pH7의 중성의 순수한 물이었을 것이다. 페루의 국립 빙하 및 산악 생태계 연구소(Inaigem)에 따르면, 이 강물은 산성을 띨 뿐만 아니라 환경 품질 기준을 초과하는 납, 망간, 철 및 아연 등이 포함되어 있다.
페루 보건 당국은 이 때문에 샬랍 강과 마찬가지로 산성화된 다른 하천 몇 개의 강물을 마실 수 없으며 농업용수와 같은 다른 목적으로 소비될 수 없다고 물 사용을 금지했다. 하지만 이 물이 대부분 농업용 수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작물 재배를 위해 계속 사용하고 있다.
“일부 식물이 시들게 할 수 없지 않느냐”고 농부들은 한숨을 쉰다.
‘산성 암석 배출’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프라를 부식시킨다. 모레노 씨의 남편인 75세의 후안 셀레스티노는 송어가 처음 샬랍 강에서 사라졌을 때 마을 사람들은 누군가가 오염 물질을 강에 내다 버렸다고 생각했다. 강 자체에 문제가 있는 줄 몰랐다. 페루의 국립 빙하 및 산악 생태계 연구소(Inaigem)는 문제 지역을 확인하기 위해 위성 사진을 이용해 빙하 호수에서 반사되는 햇빛 스펙트럼을 분석했다. 그 결과 이 산맥에 있는 60개의 호수가 매우 산성으로 바뀌어 있음을 확인했다.
지금까지 테스트한 8개의 빙하 협곡 중 5개에서 산성 암석배출이 있음도 확인했다. 이처럼 빙하가 활발하게 녹고 있는 안데스산맥의 고지대에서 빙하가 녹은 물은 산성화가 심하고 중금속으로 오염돼 대부분 마실 물로 부적합하다. 또 다른 리오네그로 강도 마찬가지다. 이 강에 의지해 사는 캔레이 치코 마을은 강에서 끌어올린 물의 pH 수치를 높이고 중금속을 줄이기 위해 토종 갈대를 심은 연못과 운하 시스템을 건설했다.
하지만 이 노력을 홍보하고 주도했던 농부인 비센테 살바도르씨는 2021년 위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아들 조엘 살바도르(45세)는 “아버지의 주요 식수원은 강이었다"면서 “지금은 샘물조차 오염이 되었다“고 절망적으로 말했다.
◇중금속 오염된 신맛 나는 샘물, 건기에는 샘물조차 말라
이곳 지하수 샘물은 오랫동안 안데스산맥에서 내려온 물보다 더 깨끗하다고 여겼는데 지금은 일부 샘들이 말라가고 있으며 그나마 남아 있는 물은 중금속을 함유하고 있다. 농부인 59세의 식스토 레온은 작년에 그의 가족이 마신 샘물에서 신맛이 나기 시작했는데 마을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복통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빙하가 녹기 시작했을 초기에는 수량이 풍부했다. 그러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코르디예라 블랑카에서 내려온 물이 흐르는 강 유역은 수량이 정점을 찍고 나서 지금은 오히려 건기가 되면 수량이 줄어들고 있다.
더구나 그런 물조차 ‘산성 암석 배출’로 인해 점점 더 위협을 받고 있다. 이미 20년 전부터 도시로 흘러드는 두 개의 강 유역은 산성화되고 있었다. 이를테면, 후아라스(Huaraz)에 물을 공급하는 공공 서비스 회사인 「EPS Chavin」은 2006년 신경계에 독성을 가진 금속인 망간이 검출된 두 곳 중 한 곳의 물 사용을 금지했다. 그렇지만 물공급이 달리자 이 회사는 중금속이 포함된 산성화된 물을 처리하기 위해 1,000만 달러 규모의 처리 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다.
페루의 국립 빙하 및 산악 생태계 연구소(Inaigem)는 2030년까지 해발 4800m 이하의 코르디예라 블랑카 빙하는 사라질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이로 인해 빙하가 덮고있던 암석이 노출됨으로써 강과 지하수 오염은 계속될 것 으로 예상했다.
◇빙하가 사라지고 붉은 강이 흐르는 세상의 종말
여러 봉우리의 하나인 「파스토루리」는 얼음이 너무 많이 녹아 빙하라고 하기가 무색하다. 한때 이곳은 관광객들이 스키를 타기 위해, 혹은 캠핑하러 몰려들었지만 지금은 빙하가 녹은 물이 피가 난 듯이 붉은색을 띤 웅덩이로 모일 뿐이다. 맑은 강에서 송어를 잡을 수 있고, 높은 봉우리들은 두꺼운 눈과 얼음이 덮고 있고 산비탈에서 샘물이 솟아나고, 가축을 방목하는 풀이 허리 높이까지 자라던 풍요로운 젊음을 그리워하는 주민들은 때때로 세상의 종말을 말하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주장이 옳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빙하가 사라지고 붉은 강이 흐르면 그게 말세가 아니고 무엇인가요?”
한 주민의 말을 들으면 고산 지대에 던져진 생태계의 시한폭탄이 째깍째깍 곧 터질 것만 같다. 고산 지대의 물을 지배하며 잉카문명을 일궜던 이들의 조상이 종말을 향해 흘러가는 강물을 보고 뭐라고 할까?
(이 글은 Taj가 퓰리처 센터 지원금을 받아 현지에서 쓰고 뉴욕타임스 국제판 11월 21일 자 As glaciers melt, rivers run red의 제목으로 실린 기사를 필자가 보충하며 재구성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