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12월 10일 국제성인역량조사(Programme for the International Assessment of Adult Competencies; 이하, ‘PIAAC’) 결과를 발표했다.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는 성인(16~65세)의 언어능력, 수리력, 적응적 문제해결력에 대한 핵심 정보처리스킬(skills) 수준을 30여개국 대상으로 조사해 비교한 지표로서, 10년 주기로 실시된다. 이번 2주기 조사에는 2013년 1주기 조사 때의 23개국보다 많은 31개국이 참여했으며 참여인원은 우리나라 6천여명 등 성인 약 16만 명이 참여했다.
우리나라 16~65세 사이 성인의 언어능력 평균 점수는 249점으로 OECD 260점보다 11점 낮았으며, 수리력은 253점으로 OECD 263점보다 10점, 적응적 문제해결력에 필요한 정보처리스킬은 238점으로 OECD 251점보다 13점이나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 영역 모두 OECD 평균보다 낮은 것은 한국 교육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OECD가 이들 세 영역을 조사 대상으로 삼은 것은 현대의 직장과 일상 생활에서 이들 영역이 가장 핵심적 능력으로 보기 때문이다. 더욱이 AI시대에는 생성형GPT 등을 통해 방대한 자료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인간의 창의성이 매우 중요한 인간 고유의 능력이 되고 있다. 언어력과 수리력, 문제해결력에 필요한 정보처리스킬은 바로 인간의 창의성과 밀접한 영역이다.
한국 교육이 이들 세 영역에서 모두 평균 이하를 보인 것은 대학입시에 포획된 까닭임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다.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선 창의적인 교육을 받지 거의 못하고 입시학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학원은 시험 점수를 당장 올리기를 바라는 학생들의 요구를 응할 수밖에 없으므로 일종의 ‘요령’ 교육에 치우친다.
세 영역을 하나씩 따져보고 대안을 제시해본다. 먼저 언어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독서와 글쓰기 훈련이 필요하다. 핸드폰에서 쓰이는 짧은 글만 과도하게 몰입하는 것은 언어력에 지극히 해로울 수밖에 없다. 호흡이 긴 독서를 통해 다양한 어휘와 문장을 접하고 사고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독서 교육은 정말 책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알 수 없으므로 독후감을 발표하고 책의 내용을 놓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지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독서에서 얻은 생각을 스스로 문장으로 표현해봐야 한다. 여러 문장으로 쓰인 글쓰기는 통합적이고 종합적인 능력을 길러준다. 독서와 토론만 하고 글쓰기를 안 하면 반쪽 교육에 불과하다. 토론과 글쓰기에서 창의성이 생긴다. 창의성에 입각해 보면 독서의 효과는 아주 적다. 글쓰기를 하지 않으면 마치 공장에서 원료를 잔뜩 수집해 쌓아놓고 제품을 생산하지 않은 꼴이나 다름없다.
외국어 능력도 언어력의 관점에서 교육이 필요하다. 영어의 경우, 한국어와의 비교하면서 구조적으로 이해하면 훨씬 빨리 외국어 습득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영어 교육은 한국어와 비교한 언어 구조 이해 없이 무턱대고 외우는 방식이다. 이러다 보니, 많은 시간을 들여 외국어 공부를 해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수리력도 문제를 사고하고 푸는 과정의 교육이 필요하다.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생각하는 과정이 생략된 채 수학을 공부하면 시간 낭비이다. 시험 점수를 따기 위한 수학 공부가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하고 끝까지 궁리해보는 수학공부라면 단 하나의 문제 풀이가 백 개의 문제를 공식과 암기에 의존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문제해결력을 위한 정보처리스킬 능력에 대해 OECD는 해결방법이 즉시 제공되지 않는 역동적인 상황에서 해당 문제를 정의하고, 필요한 정보를 찾고, 적절한 해결력을 적용하는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능력은 기획직과 연구·개발직은 물론이고 사무직, 영업직, 서비스직 등 거의 모든 업무 작업에 필요한 능력이다. 이렇게 중요한 능력임에도 교육현장에서 이를 위한 정보처리스킬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생성형AI 도구가 학교와 회사 업무에 급속도로 도입되고 있다. 생성형AI의 편리함은 인간으로 하여금 사고하고 논리적으로 추론하고 창의성을 발휘하는 과정을 생략해준다. 이렇게 되면 언어력과 수리력과 문제해결을 위한 정보처리스킬을 가지고 AI도구를 활용하는 사람과 이런 세 가지 능력이 없는 사람이 AI도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람들 사이에 엄청난 능력 차이를 보일 우려가 있다.
다행히 분석 대상을 16~24세로 한정할 경우, 언어능력 276점, 수리력 273점으로 OECD 평균(언어능력 273점, 수리력 272점) 수준이다. 또한 전체적으로 연령이 낮을수록 역량 수준이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정부는 이번 OECD 조사결과에 따라 “디지털 대전환 등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환경 속에서 맞춤형 평생학습 및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모든 국민이 평생학습 및 직업능력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관계부처가 협력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이 정도의 정부 대책으로 AI시대에 대비해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교육방법론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와 함께 디테일한 학습방법이 시급히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