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 메쎄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적층제조(3D프린팅) 전문 전시회인 ‘폼넥스트(FORMNEXT) 2024’에는 세계 864개 업체가 참가해 장사진을 이뤘다. 10회 째로 열린 ‘폼넥스트 2024’는 축구장 7개 크기인 52,000m² 전시장에 적층제조 관련 소재·장비·소프트웨어 기업이들이 대거 참가했다.
첫날인 11월 19에는 오픈 전부터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진풍경이 펼쳐지면서 적층제조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나흘간 진행된 전시회에는 3만4404명의 관람객이 방문했으며 이중 48%가 해외 방문객으로 나타나 세계 각국의 적층제조 기술에 대한 관심의 뜨거움이 확인됐다.
한국도 3D프린팅 전문단체인 3D프린팅연구조합(이하 연구조합)이 산학연 관계자 37명과 함께 참관단을 꾸려 참석했다. 참관단은 19일부터 22일 나흘간 ‘폼넥스트 2024’를 참관하고 하이델베르크 3D프린팅 데이터센터와 포르쉐 적층제조센터를 방문해 글로벌 적층제조 기술의 현황을 확인했다.
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확인한 세계 적층제조 기술에 대한 정보를 15일 판교 스타트업캠퍼스에서 ‘폼넥스트 2024 보고대회’를 열어 국내에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미국을 필두로 한 기술 선진국들이 ‘3D프린터’를 국가안보기술로 지목해 수출통제에 들어가면서 각국의 기술 현황과 시장 트렌드에 높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보고대회를 통해 글로벌 적층제조 기술 트렌드를 알아보고 우리의 대응점을 살펴봤다.
◇ “3D프린터는 영역확장 중” 3D프린터의 제조업 양산화·대형화 시대 성큼
2010년 대 3D프린터가 국내에 소개된 후 단순히 시제품 제작이나 취미에 그치던 용도가 현재는 제품 개발, 역설계, 양산 등 산업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연구되며 쓰이고 있다. 하지만 제조업 혁명을 꿈꾸던 기대는 3D프린터 기술 난이도와 장비 및 생산비용의 높은 단가, 제작 속도 등의 제약으로 양산·대량화의 벽은 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폼넥스트 2024’에서 3D프린터가 제조업의 새로운 방식이 아닌 핵심 기술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구조합은 이를 이끈 건 DED와 WAAM, BJ 등의 기술이라고 분석했다. DED(Directed Energy Deposition)는 금속분말이나 와이어를 레이저 또는 전자빔으로 용융하여 적층하는 기술로, 복잡한 형상의 부품을 정밀하게 제작하는 게 가능해 고가 부품인 항공·우주산업에 탁월한 성능을 발휘한다.
와이어적층기술인 WAAM(Wire Arc Additive Manufacturing)은 금속 와이어를 전기 아크열원으로 조사해 빠르게 대형구조물을 만들 수 있어 주목받는 기술인데, 높은 적층속도와 비용 효율성이 강점으로 꼽힌다.
또, 빠르게 접착제를 도포하는 초고속 생산기술로 한 층을 도포하는 시간이 15~30초 정도로 짧아 대량 맞춤 부품을 빠르게 생산하는데 유리한 바인더젯(BJ) 기술은, 3D프린터의 느린 적층속도로 인한 양산 한계를 뛰어넘게 하고 있다.
진덕영 진흥테크 대표는 “위 기술은 기존 제조업계에서 불가능했던 대형구조물 제작과 맞춤제작을 가능하게 해 제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며 “BJ 기술과 와이어적층기술은 수요 업체가 요구하는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 반도체·바이오·코스메틱 분야서도 활약... “점점 더 작게, 더 위대하게”
3D프린팅 기술은 대형구조물뿐 아니라 점점 더 미세한 영역에서도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PμSL(Projection Micro Stereolithography) 기술은 마이크로미터(μm) 단위의 세밀한 출력이 가능해 생명과학, 의료기기, 전자공학 등에서 활발히 응용되고 있으며, 나노광학 및 초소형 전자부품 제작에까지 활용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유병진 이브솔루션즈 엔지니어는 "폼넥스트에 ‘Micro 3D 프린팅’이란 타이틀로 전시하는 회사가 많이 보였다"며 “과거에는 전시품들이 크고 투박했다면 현재는 소형화되어 더 정밀하고 섬세하게 표현되어 반도체나 의료기기, 바이오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 필요한 어플리케이션들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미용관련 ‘패치’ 제품에 쓰이는 미세바늘(Microneedle)이 3D프린팅 기술을 통해 체내 약품 흡수율을 높이는 갈고리 형태로 변화되고 있다"며 "바이오 분야에서는 세포를 배양하는 구조설계 중 기존 가공으로 불가한 것들을 ‘Micro 3D프린팅’으로 개선된 사례들도 확인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기술들은 반도체 공정에도 활용되고 있다. 유 엔지니어는 “마이크로 3D프린팅을 대표하는 해외 회사들이 기존 초소형 3D프린팅 출력품에 코팅이나 도금으로 전도성을 띄게 해 전기·전자나 반도체 공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후공정을 선보였다”며 “레진을 활용한 리소그래피 3D프린터 장비들은 고해상도에 초점을 두어 25um 미만 더 나아가 2um, 나노 단위까지 3D프린팅을 할 수 있는 산업이 됐다. 3D프린팅 제조사들이 해당 기술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만큼 향후 발전 가능성이 높은 산업”이라고 전망했다.
주사용 산업계에 대해선 “마이크로니들, 마이크로칩 등 의료 쪽과 반도체 소켓 및 지그류 전기전자 등 산업계에서도 활용도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며 “도금 가능한 소재성질을 활용해 무전해 도금으로 도파관에 활용된 케이스도 인상적이었다. 금속 프린팅으로는 구현할 수 없었던 feature size(반도체 등 회로의 최소선폭)에 전도성이 필요했던 유저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탄소제로·가성비 위한 3D프린팅 기술
이번 폼넥스트는 ‘2050 탄소제로’와 원가절감을 위한 3D프린팅 기술과 금속분말 재사용 기술 발전이 눈에 띄었다는 게 참석자들의 반응이다. 금속분말의 경우 원가가 높기에 기존 시브를 이용한 분말회수 및 재사용 기술이 보편화된지 오래인데 ‘Repowder’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며 분말을 구형화해 재사용하는 기술이 전시됐다는 것이다.
신진국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단장은 "예전 모든 종류의 분말과 맞춤형 분말까지 제공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글로벌 기업들이 차분해지고 있는 분위기였다"며 “1kg 정도의 커스텀 합금(custom alloy)을 기업 내에서 분말화하는 기술이 상용화되어 과거처럼 합금을 만들기 위해 최소 5~6kg가 필요하지 않다. 소규모의 진공 주조 기술과 분말 자동에어 분급장치, 분말 제조장치를 같이 이용하고 프린팅 기술을 접목하면 합금개발이 아주 손쉬워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분말은 소량 맞춤형이 가능하게, 분말소결방식(PBF)의 경우 재활용을 강조한 것이 이제 시장이 가성비 단계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탄소제로를 위한 유럽 제제인 EURO7 대응을 위한 3D프린팅 기술 접목도 주목된다. EURO7은 자동차 타이어나 브레이크 패드가 마모되며 발생하는 미세입자 등 오염물질 배출도 규제 범위에 포함시켰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3D프린팅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강민철 3D프린팅연구조합 이사는 ▲고성능 코팅 브레이크 디스크 기술(디스크 표면에 내마모 코팅을 적용하여 마찰로 인한 입자 배출을 줄이는 기술), ▲세라믹 브레이크 기술(기존의 주철 디스크 대신 세라믹 소재를 사용하여 미세먼지 발생을 최소화), ▲저마찰 브레이크 패드 기술(환경 친화적 소재를 사용해 마모로 인한 입자 배출 감소) 등에 3D프린팅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중국기업 약진, 일본기업 부상... 우리나라는?
이번 폼텍스트 전시회에는 중국기업의 전시규모가 감소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업계 관계자들은 적층제조가 미국 수출통제 품목에 포함되면서 중국산 3D프린터 산업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놨다. 중국의 3D프린팅 기술은 정부 주도의 산학연 연구 합작으로 우리나라보다 앞선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중국 기업들의 전시규모 축소 이유에 대해 신진국 단장은 “중국 자체의 내수 시장만으로도 충분해 글로벌 전시회 참가에 대한 실익을 따지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더욱 소극적으로 전시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탑티어로 일본 기업의 부상이 예상된다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지난해 1월 일본 니콘이 독일 SLM솔루션스를 인수하고, 이번 전시회에 일본 전자현미경 명가인 JEOL이 EBM(전자빔) 3D프린터를 전시했다는 것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면서다. 이들은 소재강국 일본이 대외적으로 조용해 불안했는데 니콘이 인수합병 전부터 DED(고에너지직접분사) 기술을 중심으로 오랜 기간 준비한 가운데 SLM솔루션스 인수로 솔루션을 완성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분석했다.
이런 흐름에 대해 신진국 단장은 “GE가 과거 스웨덴 EBM 장비 기업인 Arcam을 고가에 인수하면서 EBM에 대한 거의 유일한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었는데 JEOL이 EBM 사업을 시작한 것은 우리가 못 본 고부가가치 시장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각 나라가 3D프린터 글로벌 시장을 공격적으로 확장해 나가는 가운데 한국도 빠르게 경쟁력을 키워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우리끼리 경쟁할 게 아니라 글로벌 시장으로 판로를 확대해야 다 살 수 있다”고 절박함을 드러냈다.
해외 전시회에 한국기업들이 적극 참가하고 국내에서도 국제적인 전시회를 마련해 해외 판매 발판을 마련함과 동시에 국내 기업의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기업 활용사례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내실을 다져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3D프린팅연구조합 관계자는 “예전 글로벌 활용사례 만을 앞세워 기술·장비의 보급에 초점을 맞추는 시기에서 벗어나 기업의 활용·응용 사례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기업 또한 이러한 기술 확산에 협조하고 홍보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며 “더욱 넓은 선택의 폭을 제공할 수 있는 재료와 체감 가능한 응용사례를 중심으로 다시 한번 혁신의 방향을 모색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