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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트럼프 ‘핵보유국’ 논란 유감

 

지난 2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표현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서울과 워싱턴, 도쿄 등지에서 활동하는 외교안보 전문가 사이에 예민한 반응이 줄을 이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해석한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미국 백악관에서는 28일 미국 정부가 ‘완전한 북한 비핵화’를 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자 일부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비핵화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정책 기조를 보여줬다고 안심하는 반응을 보였다.

 

현재 대한민국은 현직 대통령 내란 사건으로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인데 핵보유국이라는 표현을 두고 나라가 크게 출렁이는 모습을 보여서 안보 불안감이 더욱 커지는 형국이다. 그렇지만, 지난 1주일 넘게 사람들을 우왕좌왕하게 만든 핵보유국이라는 표현은 오해와 편견의 결과물이고, 불필요한 걱정을 유발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유감스럽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차근차근 따져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일 폭스TV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게 연락을 취해볼 생각인지를 묻는 질문에 “I will”이라고 답변했다. 그러겠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Now, he is a nuclear power”라고 말했다. 직역하면 ‘이제 그는 핵강국이다’가 된다.

 

그의 언급은 논리적 비문으로 들리기 때문에 의역을 해야 한다. 의역을 하면 ‘이제 그는 핵강국의 지도자다’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런데 언론 보도를 보면 ‘북한은 이제 핵보유국이다’라고 번역됐다. 그러나 이 표현은 무지와 오역의 결과다.  ‘nuclear power’라는 용어 자체가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표현이고, 거기에다가 잘못된 번역이 겹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지구상에서 핵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는 8개국인데, 미국과 러시아 등 NPT, 즉 핵무기확산금지조약에서 정식으로 핵무기 보유가 가능한 5개국을 핵보유국(nuclear-weapons state, NWS)으로 표현한다.

 

5개국 외에 핵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가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3개국인데, 이들은 비공식, 또는 불법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기 때문에 NWS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들 3개국을 지칭할 때, 또는 이들을 포함해 8개국을 통칭하는 경우에 nuclear power(핵강국) 또는 nuclear armed state(핵무장국)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의 경우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고, 보유하는 것도 사실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에 인도 등의 경우에 비슷하게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는 다르다. 왜냐하면 미국 등 정식 핵보유국들이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에 대해 핵무기 보유를 묵인하고 이들과 정상적 외교 관계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우는 미국 등 정식 핵보유국들이 주도하는 NPT 체제에서 핵무기 보유를 인정받은 바가 없고, 묵인을 얻어낸 것도 아니어서 불법적으로 핵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다. 그래서 핵무기와 관련해 북한을 지칭하면서 NWS는 당연히 사용할 수 없고, nuclear power나 nuclear armed state 표현 사용도 자제해야 한다.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핵무기 보유를 묵인받은 것처럼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상기한 세 가지 표현 외에 핵무기 보유와 관련해 북한을 간명하게 묘사할 수 있는 표현이 마땅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 중에는 국제법적 차이점에 대해 알지 못하고 북한을 nuclear power로 지칭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 언급이 그런 경우다. 발언 맥락을 살펴보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묵인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라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세한 표현 차이를 알 수 없고, 안다고 해도 거래를 중시하는 트럼프가 북한에 대해 공짜로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거나 묵인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한국 언론이 트럼프 언급과 관련한 논란을 보도하면서 ‘nuclear power’를 ‘핵보유국’이라고 번역한 것도 오해와 편견을 유발한 요소다. 이 말은 ‘핵강국’ 또는 ‘핵무기강국’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핵보유국에 해당하는 용어는 NWS뿐이기 때문이다. 핵강국으로 써야 할 표현을 핵보유국으로 번역하니, 마치 트럼프가 북한을 NWS로 인정한 것으로 오해하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NWS로 인정하거나 북한의 핵보유를 묵인한다면 대한민국 외교안보 기조는 근본적으로 변경돼야 할 것이다. 독자 핵무기 개발은 물론 한미동맹 파기도 검토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 언론에서 외국 상황을 보도할 때 의역이 가능하고 어떤 경우에는 반드시 의역을 해야 한다. 그러나 nuclear power를 핵보유국으로 표현하는 것은 치명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차후에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계해야할 것이다.

 

오해든 편견이든, 논란이 발생하자 트럼프 행정부는 부랴부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대응에 나섰다. 지난 28일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대변인인 브라이언 휴즈 언급이 나온 것이다. 그는 한국 언론의 이메일 질문에 답신을 보내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완전한 북한 비핵화를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마도 주미 한국 대사관에서 백악관이나 국무부에 연락해서 한국 국민들이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된 만큼 미국 정부가 북한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지 않고, 북한 비핵화를 추구한다는 점을 확인해야 한다고 설득한 결과일 것이다. 문제는 휴즈 대변인 언급에 대해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면서 앞으로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지칭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트럼프 발언을 핵보유국 인정으로 해석하는 것과 정반대 방향의 실책이라고 할 수 있다.

 

휴즈 대변인 언급은 아마도 백악관 국가보좌관 마이클 월츠 또는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 승인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미국 정부 정책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고, 트럼프 행정부 고위 당국자 사이에서 유사 실수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앞으로 다른 기회에는 해당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우리 언론이 nuclear power를 핵보유국으로 번역하는 한 앞으로도 이번 사례처럼 불필요한 논란이 재연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미국에서 북한 문제를 다루는 관리나 전문가 집단의 최근 태도를 보면 매우 부정적이라는 점도 우리가 긴장감을 가져야 하는 또다른 이유다.

 

워싱턴에서는 북한 비핵화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북한은 믿을 수 없는 존재고, 북한과의 핵협상은 언제나 대형 외교 참사를 유발할 수 있는 소재로 알려지면서 북한 문제, 북핵 문제에 대한 피로감과 혐오감, 좌절감이 심각한 수준이다. 그러니 북핵 문제에 관련해 미국에서 부정적인 언급이 나올 가능성은 점점 커지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은 외교가 중요한 나라고, 북핵 문제는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좌우하는 사활적 이익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 대통령 발언 맥락을 심층적으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번역도 잘못해서 불필요하게 불안과 우려감을 조성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세계 10위권 선진국이 됐고, 대한민국이 외교로 먹고 사는 나라라면 적어도 외교 분야 전문가들은 미국 대통령 발언 정도에 대해서는 신중하고 정확하게 의미와 배경 분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외교 문제를 다루는 언론인들도 정확한 보도와 논평으로 불필요하게 국가 역량을 낭비하는 일이 없이 생산적인 공론장을 제공한다는 언론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각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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