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세계적으로 비핵화 포기를 선언한 지금 한국이 미국이 반대하지 않는 이상 ‘핵추진 잠수함’을 추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우라늄도 ‘핵무기’가 아닌 군함 추진체로 사용할 경우 국제규정이나 조약, 협정에도 저촉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지난 12일 유용원 의원(국민의힘)이 주최한 ‘한국형 핵추진 잠수함 도입의 필요성과 전략’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핵추진 잠수함’은 북한의 핵무기, 중국의 해양 장악 등을 억제하는 최고의 전략 무기라고 강조했다. 이뿐 아니라 한국의 방산·조선 산업의 경제효과도 끌어낼 수 있어 핵잠수함 개발을 기존 ‘비닉사업’에서 ‘국책사업’으로 전환해 국가 기술력을 총결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핵’ 억제수단 최선봉에 ‘핵추진 잠수함’
북한은 2023년 ‘핵무기 고도화’를 헌법에 명시했다. 같은 해 디젤 잠수함에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탑재했고 지난해에는 김정은이 핵잠수함 건조 사업을 현장 지도했다는 소식이 보도되기도 했다.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와 병력을 파견한 대신 러시아로부터 핵잠수함 기술을 이전받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가운데 북한이 이에 성공한다면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게도 치명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 군사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북한의 SLBM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무기는 ‘핵잠수함’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원자로’로 동력을 얻는 핵잠수함은 뛰어난 생존력으로 자국 육지가 공격받아도 적국에 보복이 가능해 핵전쟁 억제수단의 최선봉에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슷한 전략무기로 항공모함이 있지만 가성비 측면에서 ‘핵잠수함’이 최고로 꼽힌다.

기존 디젤 잠수함은 배터리 충전을 위해 하루에 1,2회 수면 가까이 부상해 공격 당할 위험이 크고 속도도 핵잠수함에 비해 두 배 이상 느려 생존능력이 취약하지만 핵잠수함은 '핵연료'를 사용해 식량과 승조원 체력에 문제가 없는 이상 무제한 수중작전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북한의 SLBM(잠수함탄도미사일) 위협에 실질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이정익 교수는 “핵잠수함은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해도 연료 장전 주기를 2년 이상으로 설계할 수 있기 때문에 작전지역까지 전출력 순항이 가능하다”며 “이런 이유로 핵잠수함은 북한의 SLBM탑재 잠수함의 추적·감시 작전에 필수적인 전략무기”라고 강조했다.
◇ 중국, 일본의 해양영토 확장 야욕... '핵추진 잠수함 운용' 절실
대전대학교 송승종 특임교수는 해군력의 전략경쟁이 수상에서 수중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의 해군력 증강이 수상함뿐 아니라 잠수함에서도 미국을 뛰어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중국의 함정수는 370척으로 미국의 295척을 앞질렀다. 이뿐 아니라 잠수함도 중국은 현재 72척으로 2030년에는 79척까지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다. 반면 미국은 현재 67척으로 2030년에는 오히려 46척으로 줄 것이라고 송승종 교수는 예측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미국의 조선업계의 노후화로 잠수함 건조 시스템 정상화가 5년 이상 걸릴 것이라 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의 해군력 강화가 남중국해 분쟁으로 나타난 해양영토 확장의 야욕을 실현시키고 있는 모양새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90% 이상을 자국 해역이라고 주장하며 필리핀을 비롯해 주변국들과 영유권 분쟁을 자처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최근에는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에 무단으로 대규모 구조물을 설치한 것이 밝혀지며 서해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우려도 사고 있다.

해군 잠수함 함장 출신인 문근식 한양대 특임교수는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는 주변국의 해양 영토 확장 위협 대응 전력에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교수는 “중국은 2000년대 이후 ‘근해방어 원해호위’ 전략 구사를 위해 전력증강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항모 및 진급 전략핵잠수함, 상급 공격핵잠수함을 실전배치하며 서해 내해화 및 이어도 등 해양 영토확장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일본은 2005년 이후 해군력이 급성장하며 3대 안보문서를 개정해 전쟁 가능 국가가 됐고 4000톤급 다이게이급 신형잠수함을 건조하며 해군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이는 독도 영유권 분쟁과 7광구 개발 등에 위협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중국 및 일본의 독도와 이어도 등 해양영토 확장야욕에 대응할 수 있는 전력으로 핵추진 잠수함 운용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 핵잠 기술, 미래 신성장 동력... 호주는 제조업 부활 노려
핵잠수함 개발·운용이 국가 안보뿐 아니라 국내 방산·조선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최근 한국의 방산·조선 산업이 해외수출 황금기에 들어서면서 핵추진 잠수함 기술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전망이다.
호주는 2021년 미국, 영국과 함께 중국의 인도태평양 영토 야망을 억제하기 위해 방위 파트너십인 오커스(AUKUS)를 결성했다. 오커스의 핵심에는 핵추진 잠수함이 있다. 호주는 향후 30년간 2500억 달러 규모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 계획을 세우고 더불어 자국의 제조업 부활이라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정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향후 30년 간 2만개의 일자리와 간접 고용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GDP도 약 1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며 특히 조선, 첨단 제조업 분야, 엔지니어링 등의 기술혁신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개발 또한 동일한 경제효과가 있을 것이라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 호주와 달리 세계적 수준의 조선업 역량과 방산 기술이 있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방산 전문가들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는 국내 조선업계의 브랜드 가치를 상승시키고 방산수출 증대에 기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핵잠수함에 들어가는 소형 원자로 기술은 일반 선박에 활용 가능하고, 쇄빙선이나 LNG 선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문근식 교수는 “핵추진 잠수함 도입은 군사력 증강을 넘어, 신산업 발전과 경제 활성화, 확보된 소형 원자로 기술의 실용화, 국제 방산 경쟁력 확보 등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국가 전략 과제”라며 “이제는 핵잠수함을 안보뿐 아니라 경제 측면에서도 반드시 이뤄야 할 미래 산업으로 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 "핵 잠수함 개발, 이제는 당당하게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야"
한국의 빠른 핵잠수함 개발을 위해서는 더 이상 대외비 사업(비닉사업)이 아닌 국책사업으로 지정해 국가 기술력을 총 동원해 집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북한이 비핵화 포기 선언을 공언한 이상 이를 억제할 수 있는 ‘핵추진 잠수함’ 개발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게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국핵안보전략포럼의 조성국 박사에 따르면 핵잠수함을 개발해 실전에 배치하기까지 5~18년이 소요되고 SSBN(전략핵추진잠수함)은 7~22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 박사는 “한국이 핵추진잠수함 개발 사업을 당장 추진하더라도 10여년 이상은 소요되어 2034년 이후 진수할 수 있고 시운전 등 소요기간 등을 고려하면 2036년 이후에나 목표한 임무를 시작할 수 있다”며 하루라도 빨리 핵잠수함 개발 국책사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나라 핵추진 잠수함 사업은 비닉(秘匿) 사업으로 지정돼 있다. 비닉 사업은 추진하는 모든 내용과 현황이 비밀로 진행되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더라도 개발 기관 및 기업 간 협력이 어렵다. 특히 보안 문제로 인해 해외 기업에 ‘최종 사용자 증명’을 할 수 없어 국내 개발이 어려운 특정 장비의 해외 구매가 불가능해 핵잠수함 개발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문근식 교수는 “전 세계 핵 추진 잠수함 개발 역사에서 국가 기술력을 총결집하기 위해 모두 국책 사업으로 선정하고 공개적으로 추진해 성공한 사례가 대부분”이라며 “반면 인도는 해군에 맡겨 은밀히 추진하다가 개발 기관 간 협력 부재 및 불화로 실패했고, 결국 러시아 핵 잠수함을 임대해 운용 노하우 터득 후 32년 만에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이미 전 세계에 비핵화 포기를 공언한 지금, 동맹국인 미국도 반대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비닉 사업으로 추진할 이유는 없다”며 “농축도 20% 미만의 우라늄을 군함의 추진체로 사용할 경우, 이는 국제규정이나 조약, 협정 등을 위반하지 않기에 숨길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M이코노미뉴스가 만난 방산관련 전문가는 “북한이라는 가난한 나라도 핵잠수함을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핵잠수함을 만든다는 얘기를 못하나”라고 답답해하며 “이제는 의지만 있다면 만들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안보도, 경제도 든든하게 받쳐주는 핵잠수함 개발 사업을 이제는 정말 시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