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주식 시장 시가총액이 지난달 고점 대비해 4조달러(약 5,832조원)가 증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관세 전선을 확대하면서 미국 경기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해지면서 주식시장의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10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2.70% 급락했다. 올해 들어 최대 낙폭이다. 이에 따라 S&P 500 지수는 지난달 19일 사상 최고치 대비 8.6% 후퇴한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지수 종목 편출입까지 반영하면 10% 가까이 빠진 셈이다. 이 기간 지수 편입 종목들의 시가총액은 4조달러 빠져나갔다.
이날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도 4.00% 폭락했다. 지난해 10월 이후 처음으로 1만8,000선이 무너졌다. 이날 낙폭은 2022년 9월 이후 2년6개월 만에 최대다. 나스닥 지수는 작년 12월 사상 최고치 대비 10% 넘게 하락하며 기술적 조정 영역에 들어섰다.
이 같은 폭락에 앞서 시장 일각에선 변동성 확대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들이 나왔다. 지난해 중반부터 증시 약세를 전망해온 모건스탠리의 마이클 윌슨은 관세 부과와 재정 지출 축소로 인해 기업 실적이 감소하면서 올해 상반기 S&P 500 지수가 5,500선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JP모건과 RBC 캐피털 마켓 등 월가 은행의 시장 예측가들도 '트럼프의 관세'로 인해 경제 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특히 이날 주식 시장 폭락은 경기 침체(recession)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기름을 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방송된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경기 침체를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그런 것에 대해 예상하는 것을 싫어한다"며 "(이런 일에는) 과도기가 있다. 우리가 하는 것은 부를 미국으로 다시 가져오는 큰일이며 성과를 만드는 것은 시간이 조금 걸린다"라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무역 관세 확대 촉발로 상대국들의 보복 조치가 잇따르면서 소비와 기업 투자에 불확실성이 짙어질 우려가 시장에서 커지고 있던 터에 나온 발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약간의 혼란"으로 치부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대목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관세 부과가 목표치(2%)를 향한 둔화 흐름을 멈춘 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해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이 덮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노무라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포트폴리오 책임자 매트 로우는 관세 부과에 대해 "'미국 예외주의'를 믿는 욕구가 매우 강하다"며 "그러나 현실은 우리가 모든 것을 스스로 하려 한다면 모든 것이 훨씬 더 비싸질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주식시장이 폭락했을 때처럼 행정부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개입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주가 폭락의 배경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웰스 인핸스먼트의 선임 투자전략가 아야코 요시오카는 "우리는 커다란 투자심리 변화를 분명히 봤다"며 "과거에는 효과가 있었던 많은 것들이 이제 효과가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