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중국 간 관세전쟁 격화로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는 가운데, 한국 배터리 산업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배터리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NGBS 2025’가 SNE리서치 주최로 10일 서울 양재 엘타워에서 열렸다.
이날 포럼에선 글로벌 리더들이 연사로 나선 가운데 일본 노무라증권의 안나디아 다스(Anindya Das) 연구위원이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에 대해 국가·지역별, 산업별로 이중 트랙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다스 애널리스트의 발언을 통해 '트럼프 정부의 원스톱 쇼핑(일정한 용도에 쓰이는 물품을 한 건물 안에서 한꺼번에 구입) 형태의 관세 무역'을 살펴보고, 국내 전략산업인 배터리 산업의 전망을 짚어본다.
◇ 트럼프 관세정책, ‘국가 vs 산업’ 이중트랙...“다각도로 中 겨냥”
안나디아 다스 연구위원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정책 핵심 축으로 ‘이중트랙 관세전략’을 가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첫 임기 당시 양자 간 무역 불균형 해소와 미국 제조업 부활이라는 기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지정학적 경쟁국에 대한 전방위 압박과 산업별 구조조정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해석되고 있다.
투 트랙 중 ‘국가·지역별 관세’는 특정 국가의 수출 전반을 겨냥한 관세로, 대표적으로 중국을 비롯해 '우회 수출'이 의심되는 국가들까지 겨냥하고 있다. 최근 미국 정부가 발표한 상호관세는 베트남에 46%, 태국에 36%의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이는 양국이 중국산 제품의 우회 경로로 이용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로, 미국의 무역 규제망이 중국을 넘어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다스 연구원은 밝혔다.
또 다른 축인 ‘산업별 관세’는 중국이 공급과잉이거나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한 산업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철강, 알루미늄 등이 그 대상으로 산업별 관세는 수출 자체를 억제하는 성격이 강해, 면세나 유예 조치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다스 연구원은 전망했다. 2018년 '트럼프 1기' 당시 철강 분야에서 우회 수출이 적발된 이후, 해당 품목에 대한 관세는 더욱 강화된 바 있다.

올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철강·알루미늄·자동차에 가장 먼저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는 미국이 기존에 중국 철강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 수입되는 물량이 크지 않지만 중국 철강을 싼 값에 수입해 비싼 값으로 되파는 캐나다, 멕시코, 베트남으로 인해 미국 철강기업과 노동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어 이에 대한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트럼프 2기의 관세정책은 단순한 보호무역주의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 자체를 재편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고 다스 연구원은 분석했다. 특히 IEEPA(국제비상경제권법)가 적용될 경우 한 번 부과된 관세는 면제받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장기적 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아닌디아 다스 연구원은 지금의 극단적 미-중 보호무역 관세 정책은 해외 기업뿐 아니라 미국 제조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2018년 철강 관세 이후 미국 내 철강 가격이 상승한 사례처럼, ESS(에너지저장장치) 및 전기차 배터리 관련 관세가 강화되면 미국 제조사들 또한 원가상승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이는 전기차뿐 아니라 전체 자동차 산업에도 간접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시진핑, 트럼프 관세정책에 맞대응... “중국은 일본과 다르다”
아니디아 다스 연구원은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이 1980년대 일본을 향한 제재와 유사한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주요 무역상대국에 대해 고율관세를 부과하며 산업 보호에 나선 점에서 유사성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1980년대 미국은 급성장하던 일본 자동차 산업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며 관세와 수입 자율규제를 동원했다. 이에 일본은 미국의 압박에 자발적으로 수출을 줄이고,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을 늘리는 방식으로 타협책을 선택했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미 시장에 남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현지화 전략을 수용했고, 이는 일정 부분 미·일 갈등을 완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중국은 일본과 다르게 미국에 맞대응하며 관세마찰이 '미중패권 전쟁'으로 격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관세를 125%로 대폭 인상한 데 대해 중국은 10일 낮 12시 1분부터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84%의 보복 관세를 발효하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각국에 대한 상호관세 부과를 90일간 유예하면서도, 중국에는 예외적으로 높은 관세를 적용해 사실상 양국 간 ‘치킨게임’ 양상을 띠고 있다. 이에 중국은 방산업체를 포함한 미국 기업 18곳을 추가 제재하고, 희토류 수출 제한, 농축산물 수입 중단 등 ‘맞대응 6대 조치’를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관영 매체 인민일보는 “미국의 경제적 괴롭힘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하며 내부 결속을 다졌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이번 갈등으로 인해 양국 간 상품 교역이 최대 80%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무역전쟁이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장기전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며, 글로벌 경제에도 상당한 파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니디아 다스 연구원은 “중국은 고용 중심의 내수 산업 구조를 갖고 있어 일본처럼 해외 생산 확대나 자발적 수출 자제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하며 앞으로 미중 관세전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 미중 관세전쟁에 '韓 배터리산업' 흔들…"수요는 늘지만 공급은 불안"
미중 간 관세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전기차 배터리 산업이 지정학적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산에 고율 추가관세를 적용했고, 이에 맞서 중국도 미국에 대한 보복 관세로 대응 중이다. 이런 영향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정교하게 얽혀 있는 전기차 배터리 산업은 전기차 캐즘(수요둔화)과 함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다스 연구원은 “현재 배터리에 사용되는 흑연, 리튬, 니켈, 코발트 등 핵심 원자재의 공급망이 중국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며 “특히 흑연은 중국 의존도가 사실상 100%로, 공급에 차질이 생길 경우 전 세계 배터리 생산이 마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미국이 중국산 원자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정책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유럽 등에 흑연을 캐내 공장을 짓고 싶어도 환경규제 때문에 공장을 세우고 수급을 확보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이는 결국 단기적으로는 공급망 재편이 쉽지 않으며, 오히려 관세압박이 가격상승과 수요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이 트럼프 재집권 이후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폐지를 포함해 전기차 보조금 축소, 세액공제 폐지, 전기차 대상 도로사용세 도입 등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미국에 배터리를 수출하고 있는 국내 배터리 기업들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고 밝혔다.
배터리는 전기차뿐 아니라 ESS(에너지저장장치), 스마트그리드, 데이터센터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 중인 핵심 산업이다. 그러나 관세로 인해 원가가 상승하고, 공급망이 정치적으로 흔들리는 지금의 구조는 산업 전반에 중대한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스 연구원은 이에 대해 “결국 배터리 산업은 구조적인 수요 증가라는 성장동력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정치와 관세 리스크라는 변수로 하방 리스크가 커 역풍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