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쌀, 의무수입’이라니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진보당 이대종 농민당 대표의 말이다.
쌀은 단순한 우리의 주식만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의 삶과 함께하며, 농업의 중심에 있었다. 선조들은 쌀을 먹거리를 넘어 생명과 정체성의 상징으로 여겼다.
또한, 기후위기와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은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다시 부각되고 있다. 트럼프 2기 시대를 맞아 급변하고 있는 통상 환경 역시 우리 농업이 대응 전략을 재정비해야 할 때이다. 쌀은 단순한 무역 품목이 아니라 국가 식량안보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WTO 협정에 따라 연간 40만 7천 톤이 넘는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고 있다. 이에 국내 생산량의 11%를 넘는 규모로 쌀값 하락과 과잉 재고를 부추기고 있다.
◆ 정부, 쌀 소비량 감소·구조적 생산 과잉 이유 들어 '8만 ha' 벼 재배면적 감축 시행
WTO 출범 30년, 쌀 관세화 10년이 지난 지금, 쌀 의무수입 제도를 재검토하고 국내 농업의 현실과 식량 자급률을 반영한 통상정책을 마련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소비량 감소와 구조적 생산 과잉이라는 이유를 들어 8만 ha의 벼 재배면적 감축을 시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 정부의 정책은 농민의 경작권을 침해하고 식량 주권을 위태롭게 하는 발상이며, 무엇보다 40만 8천 톤의 쌀 의무 수입물량에 따른 시장 교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농민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기만적인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023년 기준, 국내 쌀 소비량은 약 365만 톤에 그쳤다. 생산량은 이를 웃도는 376만 톤이었다. 여기에 매년 40만 톤 이상의 수입쌀이 의무적으로 유입되면서 연간 50만 톤 이상의 재고가 누적되고 있다. 이로 인해 정부는 연간 1조 원 이상의 예산을 들여 비축미를 매입·관리하고 있으며, 결국 그 부담은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고 있다.
국내산보다 가격이 저렴한 수입쌀이 시중에 유통되면서 쌀값은 하락 압력을 받고, 농가의 수익은 감소하고 있다. 특히 소규모 농가와 고령농은 경영악화로 생계 위협에 시달리고 있으며, 농촌 공동체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이러한 위기는 단지 농업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지정학적 위기 속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미·중 갈등, 중동 정세 악화 등으로 글로벌 곡물 공급망은 언제든 차단될 수 있으며, 실제로 국제 곡물 가격은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곡물 자급률은 쌀을 제외하면 10%대를 밑돌고 있다.
◆ 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자급률 90% 이상 유지하는 곡물
쌀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자급률 90%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곡물이다. WTO 협정에 따른 의무수입 제도, 통상문제나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식량안보와 주권의 문제다. 따라서 이제는 명확한 전략과 비젼을 가지고 쌀 의무수입물량 감축을 위한 재협상에 나서야 할 때라는 주장들이 거세지고 있다.
최근 일본은 쌀 소비 감소를 이유로 수입물량 감축과 국내 농업 보호를 선언한 바 있다. 쌀 관세화 유예의 대가였던 의무수입물량이 관세화 이후에도 여전히 유지되는 것은 자명한 불평등 조약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그리고 이 불평등한 조약이 시장을 교란하고 생산기반을 파괴하는 부작용을 계속해서 낳고 있다. 이 불평등한 조약을 바꾸는 것, 주권국가답게 필요에 따라 수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 현재의 농업 희생적 통상정책으로는 지속 가능한 농업과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담보할 식량 주권을 지켜갈 수 없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에 쌀 의무수입 제도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국제협상 전략과 정책 대안을 모색하고 농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지속 가능한 농업과 식량주권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을 위해 지난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쌀 의무수입, 이대로 좋은가?” 트럼프 2.0 시대 농업 통상의 새로운 대안 모색 토론회>를 개최됐다.
◆ 쌀 의무수입 물량, 감축·철폐하는 재협상...부정적 결과만 도출하지 않아
발제를 맡은 이해영 한신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이번 토론회에서 “우리 정부가 WTO에 조정을 신청하면 협상 절차가 시작되며 금전보상, 농산물 타품목 또는 에너지·무기 등 대체양허, 공적개발원조(ODA) 등을 조건으로 쌀 의무수입량 조정을 협상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해영 교수는 “경제적 손익만 따져보면 쌀 의무수입 물량을 감축·철폐하는 재협상은 부정적 결과만 도출하지 않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한국이 추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결코 천문학적 수준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다자 협상에서는 한일 공조를 시도해 볼만하다. 다자 협상이 개시된다면 반드시 양자 협상과 연계해 실리 확보에 나서야 한다”면서 “‘재협상을 하면 손해’라는 태도로 일관하기보다는 지속 가능한 대안을 찾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MMA(WTO 농업 협정(AoA, Agreement on Agriculture)에 따라 회원국들이 농산물 시장을 부분적으로 개방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 물량의 감축/철폐가 한국 농업은 물론이고 지정학적 위기에 직면한 한국사회 ‘식량안보‘(식량자급률 등)의 전략적 과제라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면서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우선 목표치를 MMA 물량의 50%, 75%, 100%로 나눈 다음, 다시 이를 단기, 중기, 장기 즉 최장 10년의 시계열로 배치한 뒤, 협상의 레버리지로 주로 현금 보상과 대체양허라는 2가지를 상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복수의 AI를 통해 현행물량 유지와 비교해 십 수회에 걸친 ‘실험’을 통해 몇 개의 시나리오를 구성해 보았다”며 “순경제적인 이해득실만을 놓고 볼 때 재협상을 통한 MMA 물량 감축/철폐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행’과 비교할 때 감축/철폐가 순경제적으로도 부정적인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다. 또 2개의 레버리지 혹은 경제외적 정책수단등의 최적 조합을 통해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는 일은 즉 정책결정자의 통제범위안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정부 측은 ‘하면 손해’식으로 모르쇠로 일관하고 농민 때문에 과잉생산이 됐다고 하지만 결국 그 근거는 여전히 미궁이다. 이제 같이 머리를 맞대고 지속가능한 대안을 찾아야 할 시간”이라고 덧붙였다.

◆ 국가의 식량 주권, 기본권과 생명권에 해당...국제적 재론 필요
이어진 토론에선 식량주권이 자유무역의 협상 대상인 점에 대해서는 국제적 재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박형대 진보당 전라남도의원은 “국가의 식량 주권은 기본권과 생명권에 해당되는 것으로 어떤 나라도 상대방 국가에 대해 간섭하거나 협박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며 “특히 국제질서의 불안정, 기후위기 속에서 식량주권은 각 나라별 고유의 권한으로 인정하고 침범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박형대 의원은 “‘자유무역에서 식량주권 제외’에 동의하는 국제적 연대 형성해야 한다. 1990년대 UR협상 과정에서도 농업을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도 강력히 존재했고, WTO 농업협정문에는 ‘식량안보 및 환경보호의 필요성을 포함하여 비교역적 관심 사항을 유의하여’라고 명시되어 농업의 특수성이 일부 인정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농민단체는 국제연대체인 La via campesina(농민의길) 등과 함께 국제적 여론과 힘을 조성해야 한다”며 “정부는 트럼프의 일방적 국제질서 선언에 방어하는 외교가 아닌 새롭고 정의로운 국제질서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WTO 출범 이후 만들어진 ‘쌀 의무수입제도’ 틀에 갇혀
열띤 토론이 이어지는 가운데 식민지적 낡은 틀, 이제는 바꿔야 할 때라면서 “외국쌀 먹인 자식은 에미, 애비도 몰라본다”는 위트 섞인 비판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엄청나 (사)전국쌀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은 “우리는 여전히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 1995년 WTO 출범 이후 만들어진 ‘쌀 의무수입제도’의 틀에 갇혀 있다. 한국은 쌀 시장 개방을 늦추는 대가로 1995년부터 의무적으로 일정량의 쌀을 수입해야 했고, 그 기준은 1988년~1990년 당시 쌀 소비량의 7.96%를 적용한 연간 40만 8,700톤”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제도는 2025년 현재의 쌀 소비구조와 농업 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이미 국내 쌀 소비량은 당시보다 크게 줄었고, 국내 재배면적과 농가 수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면서 “정해진 수입량은 30년 넘게 고정된 채 유지되고 있다. 이것은 국내 농업을 희생시키는 구조이며, 이제는 반드시 재협상을 통해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엔은 2018년 총회에서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에 관한 선언’을 채택하며, 농민이 자신의 지역과 국가의 식량 체계를 결정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농사를 지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쌀 수입 구조는 국내 농민들의 이러한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엄청나 의장은 “세계적으로도 기후위기와 식량 위기는 동시에 심화되고 있다. 2022년 인도는 국내 식량 안보를 이유로 쌀 수출을 제한했고, 2023년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세계 곡물 가격이 폭등했다”며 “주요 곡물 수출국들이 자국 보호를 우선시하는 가운데, 한국은 자국의 재배면적을 감축해 외국쌀의 수요기반을 국내에 조성하는 정책을 실제 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불안정성이 앞으로 더 빈번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의 심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오늘날, 이 같은 변동성은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쌀 수입은 위기 상황에서 언제든 중단되거나 지연될 수 있는 불완전한 식량 확보 수단이며, 지속 가능한 식량안보를 위해서는 수입 의존을 줄이고 국내 자급 기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쌀 의무수입제도는 시대적 상황, 국내 농업 현실, 그리고 국제 무역 환경 변화에 따라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제도”라면서 “소비가 줄었는데 수입량은 유지되고, 농가는 무너지고 있으며 기후위기 속 식량자급률은 떨어지고 있다. 2015년 관세화 이후에도 남아 있는 이 제도의 모순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