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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과 진로, 그리고 직업의 향방-직업의 원리와 개인의 전략들(7)

우리 공동체의 방향
「한자의 역설」(김근 저, 삼인)이란 책에서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어느 조선족 동포가 한중문화의 차이를 간단하게 비교한 예화를 읽은 적이 있다. “한국인은 이웃 사람이 무엇인가를 해서 돈을 벌면 너도나도 함께 뛰어들어 그 일을 따라하고, 중국인은 이웃 사람이 돈을 벌면 그가 어떻게 돈을 벌고 쓰는지 구경합니다”라고 그 조선족 사업가는 말했다.

김근 씨는 이 예화를 소개하면서 한국은 노출증의 문화구조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중국은 관음증의 문화구조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관음증의 문화를 지니게 된 데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통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체제를 벗어난 행위에 대해 가혹한 처벌이 뒤따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정해진 틀을 벗어난 행동을 따라 해도 되는지를 지켜본 뒤에 안전하다고 판단하면 그때서야 ‘우르르’ 따라한다는 것이다. (179~180)

김근 씨는 한국은 노출증의 문화를 갖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지만 하여튼 한국과 중국의 문화는 시차를 갖고 우르르 따라한다는 것은 개성을 강조하는 창조적 문화와는 거리가 멀다.

스스로 자기가 하고 싶고, 잘 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것은 동양사회가 수천 년 이래로 전체주의 체제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의 입장에서 볼 때 일반의 흐름과는 다른 행동은 ‘역모’와 ‘반란’을 꾸미는 듯’ 불길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비슷한 일과 행동만 강요하는 분위기를 저항하기란 한 개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비슷한 일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 무엇이든지 과도해지고 지나침이 발생한다. 한국과 중국은 모든 분야에 걸쳐 일종의 거품적 속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성장 자체도 거품을 자연적으로 유발하는데, 이와 같은 정신 문화를 갖고 있는 한국과 중국 경제와 사회는 구미 국가들에 비해 거품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또 거품을 유발하는 문화 속에서는 묵묵히 자료를 축적하고 조용한 가운데 창조에 몰두하는 분위기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한국인은 창조적 문화를 만들어주고 동기를 부여해주기만 한다면 일정한 정도 이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한국은 학력과 학연, 지연 등으로 얽힌 후진적 인맥 사회인고로 한국인 각 개인은 자신의 창조적 역량을 발휘하기를 싫어한다. 이는 조선 시대, 양반들의 가렴주구에 저항하기 위해 최소한도의 농산물만을 생산했던 농부들의 마음과 비슷하다.

한국에서 실력을 보상받을 수 있는 삼성전자나, 학력과 각종 연줄에서 다소 자유로운 극히 일부의 기업에서 창조적 문화가 조성되어 ‘기적적’인 창조를 하기도 한다.

한국의 문제점은 한국인들이 비창의적 문화 전통과 의식을 갖고 있는 가운데 비창의적 교육을 받고, 비창의적 조직에서 일하며, 비창의적 국가의 법과 제도, 행정 아래 놓여 있는 점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한국의 공동체가 창조적 프로페셔널과 기업가를 양성하는 전략을 무엇일까.

창의성을 촉발하는 성취 동기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미국은 개척정신, 영국은 Sir 귀족작위 수여 제도, 일본의 장인 문화 등이 있다. 즉 평범한 신분이지만 열심히 하여 큰 업적을 낸 사람들에 대해 사회적으로 존중하는 문화가 있고, 큰 보상을 주는 나라는 반드시 크게 번성한다.

역사적으로 상류층에만 권력과 명예와 보상 등 모든 것이 주어지는 국가는 곧 멸망했다. 하류층들의 창의성과 에너지를 끌어내는 문화를 가진 국가는 발전했다. 상류층은 자신들이 가진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연히 폐쇄적이고 완고해진다. 이에 반해 하류층은 도전의식과 창의성, 개방성을 갖고 있다. 국가의 지도자들과 지배층이 서민 하류층을 억압하면 그 사회는 발전이 중단되고 침체를 면치 못했다.

한국 역사를 되돌아보면 일반 백성들의 열정과 창의성을 진작하는 제도나 관습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것들을 배제해왔음을 알 수 있다. 삼국 시대에서 고려 시대까지는 국내외적으로 전쟁이란 강력한 도전이 있었던 탓에 일반 백성들의 존재감은 있었던 듯이 보였으나 조선 시대로 넘어오면서 사농공상의 계급적 구분은 더욱 엄격해져 조선 후기에 무기력의 극치를 보여주었던 것 같다.

그러나 다행히도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향상심’이 강하다. ‘향상심’이란 보상이 아주 적더라도 상승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것을 말한다. 데이비드 랜즈는 상류층보다 민중으로부터 다양하고 창의적인 제안들이 분출되고, 그러한 것들이 받아들여지는 사회만이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The Wealth and Poverty of Nations,  David S. Landes, 32)

사실 창의성을 진작시키는 것도 제도적으로 만든다든지, 관습적 혹은 관행적인 특정 계층이 형성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예를 들자면 서양의 중세시대 길드 조직이 기득권화되어 개혁에 저항하였다. 인간은 무리를 지으면 반드시 집단의 이익을 지키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장인 정신’은 본받을 만 하지만 기술자들의 기술우위 자부심이 너무 강하여 더 큰 범위의 혁신에 저항하고 있다. 일본 경제가 상당한 경지에 오른 후에 그 절정의 시기를 오래 가져가지 못하고 떨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러므로 미국의 개척정신처럼 ‘느슨하지만’ 상위 개념의 가치나 정신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상위적인 가치나 정신을 기준으로 삼으면 기득권층이 형성될 틈이 적고 항상 반성하게 되고 교정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일본의 ‘장인 정신’을 ‘세끼몬 정신’이라고 해서 개인적인 철학적 정신으로 승화시켜놓긴 했지만 아무래도 보편적 가치와 윤리측면에서 볼 때는 기술자 중심의 특정 계층에만 적용되는 좁은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자기가 속한 집단에 이익을 추구하기 쉬운 ‘장인정신’보다는 한국인의 향상심이란 유전적 인자를 잘 이용하여 ‘널리 사람들에게 이롭게 하라’는 우리 고유의 ‘홍익 정신’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 홍익 정신은 한민족이 다른 민족보다는 우수하다고 전제하는 선민적 의식은 희박한 것 같다. ‘널리 사람들에게 이롭게 하라’는 뜻은 다른 민족과 타인들 위에 군림하겠다는 의식보다는 그들을 위하여 심부름하는 사자가 되겠다는 뜻이 더 강해 보인다. 이러한 홍익 정신은 개인 내면의 만족을 찾는 세끼몬 정신보다는 한 차원 높은 사랑과 평화의 이타적 정신이며 21세기 글로벌 지구촌 시대에 가장 적합한 정신세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어떤 사회가 지키는 가치적 정신이나 규범은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단순해야 한다. 그것이 너무 정밀하게 정의되고 복잡하게 서술되면 그것은 철학적인 이론이나 사상이 돼버려 일반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또 어떤 이는 특정 민족과 사회에 고유한 정신을 강조하는 것은 세계화 시대에 맞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민족이나 사회, 개인 등 각 개별 주체들의 다양성을 부인하는 모순을 갖게 된다.
 
제러미 리프킨은 그의 책 ‘유러피언 드림’에서 미국인들에게만 적용될 수밖에 없는 ‘아메리칸 드림’이란 미국 정신은 선민주의이고 보편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세계화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폄하 하였다. 이는 세계화 시대라고 해서 미국인, 프랑스인, 독일인,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은 각자 고유의 민족 혹은 문화적 정신은 다 버리고 세계 공통의 보편적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으로 들리는데 이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각 국가나 민족은 자기의 특장대로 세계 문화에 기여하면 되는 것이다.

한국인은 우리 민족 심성에 면면히 내려오는 인정 많음과 향상심, 홍익 정신으로 세계화 시대에 널리 세계인들에게 도움이 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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