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인공지능(AI)은 산업과 사회 전반에 걸쳐 혁신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미국의 오픈AI,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은 생성형 AI를 중심으로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는 곧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이 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국내 1호 전산학 박사이자 컴퓨터 데이터베이스 분야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문송천 KAIST 명예교수는 한국의 AI 정책과 산업 전략에 대해 냉철한 진단을 내렸다. 그는 M이코노미뉴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소프트웨어’를 바탕으로 한 ‘AI 정책’에 대해 산업 생태계와 인재 구조, 그리고 소프트웨어 전략 전반에 대한 방향성을 내놨다. 본 기획을 통해 문 교수의 시각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AI 정책의 문제점과 향후 나아갈 방향'을 짚어본다.
◇ 방산에서 통상까지 흔드는 소프트웨어 혁명… 한국, 준비됐나?
글로벌 산업 구조가 급속히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소프트웨어의 파급력은 최근 트럼프발(發) 관세전쟁에서도 확인된다. 미국의 관세정책은 제조업에 큰 타격을 주고 있지만 소프트웨어 산업은 ‘관세 대상’에서 벗어나 안전지대로 꼽힌다.
이에 대해 문 교수는 “관세는 공항이나 항구 세관을 거칠 수밖에 없는 교역 실물에 대해 매기는 세금인 반면, 소프트웨어는 형체가 없기 때문에 공항과 항구에 설치된 세관을 거치지 않아 관세 대상에서 늘 제외된다”고 설명하며 관세전쟁 이후 마이크로소프트(MS) 시가총액이 애플을 역전한 것을 예로 들었다.
그는 “통관이 필요 없는 소프트웨어 두뇌산업을 하는 MS가 관세 무풍지대라는 특별하게 유리한 위치에 있기에 공장형 다른 업종을 앞서는 것”이라며 “애플은 소프트웨어보다 통관 대상인 스마트폰 기기 유형 제품으로 영업하는 기업이라 MS에 밀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에는 방위산업의 주도권도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록히드마틴과 같은 방산 대기업이 민간 소프트웨어 업체에 하청을 주던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AI 기술을 보유한 민간 소프트웨어 회사가 하드웨어 업체를 위탁 파트너로 활용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방위 전략은 이제 더 이상 전통적 무기체계에만 의존하지 않고 AI와 소프트웨어가 새로운 전략의 핵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소프트웨어(SW)가 산업 전반의 주도권을 쥐는 글로벌 흐름 속에서, 한국의 SW 산업은 여전히 한계에 직면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교수는 한국은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세계적인 하드웨어(HW)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에 걸맞은 소프트웨어 플랫폼이나 오픈소스 생태계는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경쟁력인 데이터와 알고리즘, 서비스 역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문 교수는 이에 대해 “AI 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서 나오는데 그것도 기본적인 OS와 데이터베이스의 개발이 뒷받침됐을 때 AI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MS나 구글과 같이 글로벌 OS를 만들 수 있는 정부차원의 산학연 생태계가 만들어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中은 ‘AI인재’ 대군 양성… 韓은 ‘의대’ 쏠림 “소프트웨어 인재양성 시급”
중국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청년 창업가 량원펑이 세운 '딥시크'는 미국의 최첨단 AI와 대등한 성능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중국 칭화대의 엘리트 반 ‘야오반’ 출신이다. 이 반은 중국 국가전산학박사 1호 야오치즈 교수가 지도하며, AI 정예 육성을 목적으로 설계된 고급 인재 육성 시스템이다. 중국 정부는 AI 학과를 전국 대학에 535개나 설치했고, 2023년 기준 AI 전공 학부생만 약 4만3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창업 친화적 생태계와 정부의 기술 실증 지원이 병행되어 AI 기업이 38만 개에 이르렀다.

이에 반해 한국은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문 교수는 한국의 소프트웨어 생태계 부진의 핵심 원인으로 인재 유출과 저조한 인력 양성 체계를 꼽았다. 그는 "이공계 최상위권 학생들이 소프트웨어보다 의학이나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현실"을 우려하며, 소프트웨어 산업이 매력적인 진로가 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우리나라 SW 교육시스템은 여전히 이론 중심으로 운영되며, 실무에 필요한 역량을 갖춘 인재를 배출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 중국 칭화대의 인재양성 시스템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문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딥시크 같은 혁신을 만들려면 칭화대 야오반과 같은 수준급 연구실 체제를 카이스트 등 핵심 대학에 보급해야 한다"며 "이제는 과도한 평등주의보다는 실력 중심의 연구 인재 양성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불어 ”기존 글로벌 OS와 DB를 활용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OS를 만들 수 있는 고급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하며 ”한국이 AI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가 되려면 OS, DB 고급 인재 5만명을 키워내야 하고 이들이 한국의 ‘딥시크’를 만들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정부도, 대기업도 여전히 HW 중심… “AI 생태계 설계부터 다시 시작해야”
문송천 교수는 한국이 AI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인재 등용의 원칙부터, 정부와 대기업의 전략까지 전면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AI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정부가 전략적 생태계 설계자로서 역할을 재정립하고, 대기업 역시 소프트웨어 중심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사례로 제시했다. 트럼프는 ‘국가효율부’라는 새로운 부처를 만들고, 장관에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를 앉혔다. 15개 부처 중 절반 이상이 IT·소프트웨어 전문가로 재편됐다. 이에 대해 그는 “혁신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만든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라고 설명하며 “반면, 한국은 정부 인재 등용에 있어서도 여전히 하드웨어 중심”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30년간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 등 핵심 부처 수장은 대부분 소재·기계 등 하드웨어 분야 출신이었다고 지적한 문 교수는 “이제는 AI시대에 맞게 소프트웨어 전문가가 정책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기존의 R&D 지원을 골자로 하는 정부 방침만으로는 AI 경쟁력은 확보되지 않는다며 “의료, 금융, 국방 등 주요 산업의 데이터를 AI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과 제도 개선이 시급하고 공공 데이터 개방과 창업 인프라 강화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문 교수는 “이제는 AI의 근간이 되는 소프트웨어를 국가 산업 전략의 중심축으로 삼아야 한다. 정부와 대기업이 하드웨어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인재와 소프트웨어 중심 전략으로 이동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AI 시대의 변방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며 “이제라도 소프트웨어에 중심을 두고 인력양성, 제도 개선 등 AI 생태계 구축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