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명과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또 회의, 모임 등에 참석하지만 정작 마음을 기댈 사람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 친구 사귈 나이가 지난 건가?” 스스로 다독여 보지만, 고립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이처럼 사람들 속에 있는 데도 "외롭다"는 감정은 나이가 들수록 더 또렷해진다.
수도권에 사는 대학 친구와 가끔 전화를 주고받는다. 통화 끝에 늘 “살아 있을 때 자주 보자”는 말이 오간다. 말은 참 그럴듯하나 막상 그들을 만난다고 해서 내 고립감이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 추억은 반갑지만, 지금의 삶을 나눌 이야기는 점점 줄어든다. 서로가 변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위로보다 허전함이 남을 때도 있다.
그래서 용기를 내 동호회나 각종 모임이나 세미나에 나가 보기도 한다. ‘이번엔 다르겠지’ 하는 기대를 품고 가지만 대부분의 모임은 그냥 모임으로 끝난다. 명함을 교환하고 안부를 나누지만, 그다음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아 돌아오는 길에는 “역시 쉽지 않네”라는 실망감만 남는다. 필자가 이런 건 아닐 것이다.
그러다 문득 예전 일이 떠올랐다. 한창 활동할 때 한 세미나에 참석하며 명함을 쇼핑백에 잔뜩 넣고, 쉬는 시간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며 명함을 건넸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 무모하고 뻔뻔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4~5명에게서 “한번 따로 뵙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거리에서 전단지 100장을 돌리면 평균 5명에게서 연락이 온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경험이 중요한 힌트를 주고 있었다. 관계는 사실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확률 게임’이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반대로 조금 어색하고 민망해도 먼저 나서면, 생각보다 많은 가능성이 열린다.
그렇다면 나이 들어서도 이런 방식이 통할까? 답은 “그렇다”이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의식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젊을 때는 학교, 직장, 군대처럼 관계를 자동으로 만들어 주는 장치-이를 ‘우정 시장’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가 있었다. 하지만 나이들면 그런 시장이 사라진다. 그러니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친구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새 친구를 사귀고 오래가는 관계를 만들고 싶다면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목적을 내려놓고 관계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바로 자아 인식의 변화다. 단순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활동을 시작하거나 동호회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거나 더욱 깊이 있게 다지고자 하는 정체성과 관련된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임산부들은 대개 해산(解産) 전 교육에서 친구를 사귀려고 한다. 이는 자기의 경험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만날 뿐만 아니라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친구와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를 정의한다. 이러한 관계는 우리가 바라는 자아, 현재의 우리 모습,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될 모습을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을 준다. 그래서 취미를 잘 배우기 위해, 정보를 얻기 위해 모임에 나가면 관계는 부차적인 것이 되고 반대로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 자리에 나가면 태도가 달라져 질문이 늘어나고, 경청하게 되고, 상대를 기억하게 된다.
둘째, 숫자를 두려워하지 말자. 한두 번의 실패로 “역시 나는 친구 사귀는 데 소질이 없어”라고 결론 내리기엔 이르다. 명함 100장을 돌려 5명에게 반응이 오면 충분하다. 친구도 마찬가지다. 10번의 어색한 만남 끝에 한 명의 오래 갈 친구가 생긴다면, 그것은 지극히 성공한 투자다.
셋째, 깊어지기를 서두르지 말자.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금세 의미 있는 관계를 기대하지만 관계에도 발효의 시간이 필요하다. 가벼운 안부 인사, 커피 한 잔, 짧은 산책이 쌓여 어느 날 문득 “이 사람과는 말이 통한다”는 순간이 온다. 90대 중반인 저희 어머니가 오래전 실내 수영장에서 만났던 분들과 지금도 우정을 나누고 있는 걸 보면 그렇다.
“진정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이 있다. 친구는 많을 필요도 없고, 화려할 필요도 없다. 다만 내가 나서야 한다. 나이 들어 친구를 사귀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 용기는 고립된 삶에 작은 균열을 낸다. 그 틈으로 웃음이 들어오고, 이야기가 스며든다.
2026년 새해에는 기다리지 말고 한발 먼저 다가가 보자. 단, 친구는 만들어 가는 관계임을 명심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