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필자는 애프터 유(after you)라는 번역 소설을 거의 3주째 가방에 넣고 다닌다. 전동차 안에서 카톡에 답변하거나 유튜브를 들여다보다 독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해서다. 스마트폰의 영상과 뉴스, SNS가 쏟아지고, 궁금한 것은 검색 몇 번이면 알 수 있으니, 가방 속에 든 소설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깜박 잊어버리지 않을 수가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글과 책(text)을 읽는 것이 멋지고 세련된(hip) 문화로 받아들여지는 현상’을 뜻하는 ‘텍스트힙(Text Hip)’이란 말이 유행이라고 한다. SNS에는 책을 읽는 모습과 책의 문장(文章)을 찍은 사진이 올라오고, 독서 모임과 필사 모임도 생겨난다. 재미없고 오래된 매체처럼 느껴지는 책이 다시 ‘힙하게 된’ 건’ 어인 까닭일까? ◇ 정보는 넘치고 생각은 얕아질 때, 책의 가치가 시작된다 어쩌면 ‘텍스트힙’은 책의 진화라기보다 디지털 세계에 지친 인간의 반응인지 모른다. 지금 우리는 정보가 부족해서 힘든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넘치는 정보 때문에 피곤하다. 출근길에는 쇼츠를 보고, 일하는 동안에는 메신저가 울린다. 잠시 쉬려고 영상을 켜도 알고리즘은 다음 영상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우리는 하루 종일
지금부터 12년 전, ‘디지털 정당’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설렌 적이 있었다. 특히 스페인의 포데모스(Podemos)가 보여준 디지털 정당의 실험을 보면서 그랬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정당의 조직과 선거에 들어오면 정치의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수많은 사람을 조직하고 당원대회를 열고 선거운동을 하는 데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디지털 기술이 대신할 수 있다면, 아날로그 정치가 훨씬 싸지고 효율적으로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 진실을 판단하기 어렵게 만드는 시대 더 중요한 것은 참여였다. 시민들은 선거일 하루 투표하는 것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휴대전화로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을 듯했다. 정당 지도부가 결정한 것을 당원들이 추인하는 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누구나 의견을 내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보고, 정책을 선택할 수 있다. 필자는 그것이 직접 민주정치를 대신하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기술이 직접민주주의를 현실로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완전히 접은 건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이다. 스마트폰은 사람들을 연결했는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얼마 전 지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 그가 최근 화제가 된 국내 게임업체 창업자의 막대한 이혼 위자료 사건을 거론했다. “판결액이 2조원이라니, 이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액수가 한 사람의 손에서 감이 잡히지 않는 단위로 오가는 중이야. 우리 사회가 확실히 1%대 99%로 갈라져 버렸어. 허리 구실을 하던 중산층은 이미 사라진 것 같아...” 말끝을 흐리며 씁쓸히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지난 9월 18일자 신문에는 OECD의 새로운 중산층 기준이 보도되었다. OECD는 균등화 가처분 소득 중윗값(3744만 원)의 75%에서 200% 사이에 속하는 가구를 소득 기준 중산층으로 정의했다. 이를 연 소득으로 환산하면 1인당 2808만 원에서 7488만 원이다. 가구원 수로 나누면 1인 가구는 월 234만~624만원, 3인 가구는 월 405만~1081만원 선이다. 신문에 난 수치를 보다 그만 아득해졌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건만 나와 내 가족의 소득은 그 기준선 근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서, 혹은 내 삶의 궤적이 정교하지 못해서”라며 자책해 보지만, 가슴 한구석으로 밀려드는 헛헛함과
얼마 전 지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 그가 최근 화제가 된 국내 게임업체 창업자의 막대한 이혼 위자료 사건을 거론했다. “판결액이 2조 원이라니, 이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액수가 한 사람의 손에서 감이 잡히지 않는 단위로 오가는 중이야. 우리 사회가 확실히 1%대 99%로 갈라져 버렸어. 허리 구실을 하던 중산층은 이미 사라진 것 같아...” 말끝을 흐리며 씁쓸히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지난 9월 18일 자 신문에는 OECD의 새로운 중산층 기준이 보도되었다. OECD는 균등화 가처분 소득 중윗값(3744만 원)의 75%에서 200% 사이에 속하는 가구를 소득 기준 중산층으로 정의했다. 이를 연 소득으로 환산하면 1인당 2808만 원에서 7488만 원이다. 가구원 수로 나누면 1인 가구는 월 234만~624만 원, 3인 가구는 월 405만~1081만 원 선이다. 신문에 난 수치를 보다 그만 아득해졌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건만 나와 내 가족의 소득은 그 기준선 근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서, 혹은 내 삶의 궤적이 정교하지 못해서”라며 자책해 보지만, 가슴 한구석으로 밀려드는
짜장면 한 그릇값이 몇 년 사이에 여섯 배나 껑충 뛰었다. 그런데 그릇 속 내용물은 거의 유적 발굴 현장이다. 젓가락으로 잡히던 깜찍한 파란 강낭콩들은 다 어디로 이민을 떠난 걸까? 이제는 고기 조각 하나 찾으려면 돋보기를 들이대야 하고, 현미경이라도 동원해야 할 판이다. 가격표의 숫자는 인플레이션의 광풍을 타고 쑥쑥 자라나는데, 그릇 안은 기괴할 정도로 다이어트하고 있으니, 짜장면의 생존전략이 신비롭기조차 하다. 가격이 오르면 고기도 더 두툼해져야 정상 아닌가? 이건 거품경제가 아니라, 야무지게 뻥튀기를 튀겨놓은 꼴이다. 어디 그런 게 짜장면뿐이겠는가. 집값 소동을 보고 있으면 기가 찬다. 세상 사람들은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친다고 난리법석을 떨지만, 그건 서울 강남을 비롯한 서울과 수도권이라는 아주 특별한 동네 이야기일 뿐이다. 벌초하러 고향(내 고향은 부여다)에 가보면 갈 바람만 쌩쌩 부는 한적한 풍경이 펼쳐진다. 거품도 이런 거품이 따로 없다. 더 황당한 건 이 난리판을 잡겠답시고 정장까지 깔끔하게 차려입고 거창하게 기자회견을 열어 발표하는 정책이다. 이름하여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당당한 선언 말이다. 그분들 논리대로라면 이걸로 물가를 싹
어제 고전동호회에서 주역 64괘를 배우고, 난생처음 동전 세 개로 점을 쳤다. 몇 달 동안 주역의 기초를 공부했다. 훈장님은 너무 어려운 공부 하다가 회원들이 지칠까 염려됐는지 점치는 법을 알려주신 것이다. 50개의 산가지와 동전 세 개를 이용해 괘를 얻었다. 그런데 아뿔싸. 내가 얻은 괘의 내용이 지금의 내 처지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내 약점을 너무 정확하게 들여다보는 것 같아 마음이 괴로웠다. 내가 애써 외면하고 있던 모습까지 거울처럼 비춰주는 듯했다. 그러나 ‘주역의 괘는 변화가 들어 있다. 그래서 주역의 점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단순히 맞히는 일이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떤 자리에 있으며 그 자리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살피는 일’이라는 훈장님의 말씀에 위안을 받았다. 오늘 아침 TV 뉴스에서 국회의 청문회 소식을 들었다. 주역의 괘와 청문회가 무슨 관계가 있으랴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닮은 구석이 있었다. 청문회에서는 한 사람의 과거가 하나씩 펼쳐진다. 그동안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가 자료와 질문을 통해 드러난다. 본인은 그 순간의 질문에 답하고 있지만, 질문하는 사람들은 한마디의
◇참 이상한 음식 라면 밀가루와 물로 만든 면을 기름에 튀기고, 소금과 조미료가 듬뿍 들어간 국물에 말아 먹는다. 영양학적으로만 보면 매일 먹기에 썩 좋은 음식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세계인은 라면에 열광한다. 세계라면협회(WINA)가 발표한 최신 집계를 시간 단위로 환산하면 재미있는 숫자가 나온다. 1년: 약 1,242억 900만 식. 하루: 약 3억 4,033만 식. 1시간: 약 141만 8,000식. 1분: 약 23,630식, 1초: 약 394식이다. 그러니까 지난해 기준 전 세계에서 1초마다 약 394개의 인스턴트 라면이 소비된 셈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전 세계에서 1초에 약 400개씩 라면이 팔려 나간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소비량은 40억 6100만 식으로 세계 9위이고, 1인당 소비량은 약 79식으로 베트남에 이어 세계 2위다. 라면은 이제 어느 한 나라의 서민 음식이 아니라 지구촌의 보편적인 한 끼가 됐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라면을 이토록 강력한 음식으로 만들었을까? 그 답을 찾으려면 봉지 안의 라면을 볼 게 아니라, 수천 년 전 인간이 밀을 갈아 반죽하던 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밀은 인류가 발견한 가장 위대한 저장 식량이었다. 밀
◇초가공식품 시대가 감춘 자본주의 식탁의 착시와 본질 노릇노릇한 황금빛 표면, 한입 베어 물면 귓가에 울리는 경쾌한 바삭함, 그리고 손가락에 묻은 짭조름한 소금 알갱이. 패스트푸드의 영원한 지배자, 감자튀김을 마주한 순간 우리는 이성보다 식욕의 움직임을 경험한다. 그런데 “감자튀김이 몸에 나쁜 진짜 이유는 감자가 아니라, 튀김기 속 기름(식물성 종자유) 때문이다”라는 사실을 들으면 잠시 멈칫해진다. 카놀라유, 대두유, 옥수수유 같은 기름이 만성 염증을 유발하는 독성 물질이라는 걸 소셜 미디어에서 접하면서도 먹을 때는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먹는 감자튀김에 쓰는 식물성 기름에 중독이 된 것일까? 아니면 거대 식품 산업이 쳐놓은 또 다른 덫에 걸린 걸까? 어찌 된 일인지 실험실의 엄격한 데이터들을 동원해 그 논리적 실체를 스캔해 보았다. 1. 기름이 범인이라는 날카로운 논거 "기름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이들의 주장에는 꽤 그럴듯한 화학적·생물학적 근거가 있다. 핵심은 ‘오메가-6 지방산의 과다 섭취’와 ‘고온 가열의 함정’이다. 대다수 패스트푸점은 단가를 낮추고 바삭함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대두유나 옥수수유 같은 식물성 종자유(Seed
어머니의 기침이 넉 달 넘게 이어졌다. 기침약을 먹으면 거짓말처럼 멎었지만, 약이 떨어지면 어김없이 기침이 다시 시작됐다. 처음 찾는 곳은 이비인후과였다. 처방약을 먹을 때만 잠시 호전될 뿐 끊이질 않는 기침에 의사는 “내과적 문제일 수 있으니 엑스레이를 찍어보라”고 권했다. 결국 내과와 이비인후과를 같이 하는 병원을 찾아가 엑스레이를 찍었고, 다음 날 의사는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본 뒤 “폐에는 이상이 없다”라는 진단을 내렸다. 의사는 “알레르기 증상 같다”는 의견과 함께 기침이 날 때 복용하라며 사흘 치 약을 처방해 줬다. 기침의 근본 원인을 완전히 찾아낸 것은 아니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머니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어쩌면 성공한 사람들의 비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할 줄 안다는 점이다. 흔히 우리는 성공한 사람을 보며 혼자만의 힘으로 역경을 이겨낸 자수성가형 인물을 떠올리곤 한다. 강인한 의지와 뛰어난 능력, 끈기와 추진력 같은 개인적 자질만을 성공의 비결로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일궈낸 성공의 이면을 들어다 보면 언제나 수 많은 조력자의 헌신과 숨은 도움이 자리하고
요즘은 AI가 세상의 모든 정보를 읽고 분석하고, 요약하며 심지어 기사를 쓰는 시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워싱턴포스트를 2억5천만 달러에, 세일즈포스의 창업자 마크 베니오프는 타임지를 1억9천만 달러에 각각 인수했다.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크리스 휴즈 또한 뉴 리퍼블릭을 전격 인수했다. AI 시대의 승자라고 불리는 슈퍼 리치들이 종이신문 시대를 끝냈다고 선언한 지 오래인데, 왜 사라져가는 것처럼 보였던 종이신문의 세계에 거액을 베팅하는 것일까? 돈이 남아돌아서일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누구보다 미래를 잘 아는 사람들이다.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AI가 정보를 거의 무한하게 만들어 낼수록 희소해지는 것은 정보 자체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와 그것을 믿게 만드는 신뢰라는 사실을 말이다. ◇인간은 정답보다 이야기에 끌린다 AI는 정답을 찾는 데 탁월하다. 수십억 개의 데이터를 순식간에 비교하고, 과거의 패턴을 찾아내고, 가장 합리적인 답을 계산한다. 정확성과 효율성, 최적화의 세계에서 인간은 AI를 이기기 어렵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세계는 수학 시험이 아니다. 현실의 기
◇에어컨이 꺼지는 순간의 공포, 인류 소멸 우려된다 7월 말부터 8월 첫 주까지 2주 동안 폭염과 열대야가 그칠 줄 모르고 이어졌다. 필자는 아파트 14층에 살고 있는 덕에 예전에는 한여름에도 베란다를 통해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선풍기 한 대면 그런대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는 에어컨 없이는 하루도 견디기 힘든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24시간 가동되는 차가운 인공 바람에 완벽히 적응해 있다. 문득 밤중에 서늘한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한다. ‘만약 이 열대야 속에 갑자기 전기가 나가버리면 어떻게 하지?’ 지진이나 대형 재난을 걱정하는 사람처럼 전력망이 마비되어 에어컨이 멈춰버린 방 안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갖게 한다. 그때 깨달았다. 우리가 누리는 현대의 문명과 일상은 열기를 식혀줄 전력망이라는 아주 아슬아슬한 줄타기 위에 올려져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 모든 비명 같은 더위는 수천 km 떨어진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내 방 창문 너머까지 바짝 다가와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구 온도의 균형을 잡는 280ppm의 이산화탄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본래 아주 정교하게 제어되는 에너지 시스
지난 8월 26일 네팔과 티베트 접경의 히말라야에서 발생한 대참사는 인간이 자연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거대한 빙하와 암석을 포함한 산의 사면(斜面)이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얼음과 돌, 진흙과 물이 뒤섞인 토석류가 계곡을 따라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일부 분석에 따르면 토석류의 이동 속도는 시속 180㎞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가공할 급류는 네팔 북부의 작은 하천인 렌데 콜라(Lhende Khola, 콜라는 네팔어로 개울이라는 뜻) 를 타고 내려와 중국령 티베트와 네팔 국경을 가로지르는 보테 코시강(Bhote Koshi)과 트리슐리강(Trishuli) 수계로 이어지며 약 100㎞에 걸쳐 계곡을 휩쓸며 마을과 도로, 교량, 수력발전 시설과 국경 인프라까지 집어삼켰다. 9월 1일 현재 네팔 당국이 집계한 사망자는 1,000명을 넘어섰고, 수천 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우리는 흔히 이런 사건을 ‘천재지변’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정말 자연이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우리에게 재앙을 내리는 것일까? 미국지질조사국(USGS)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참사는 대규모 빙하 붕괴가 암석과 얼음의 산사태를 일으켰고, 이것이 하천으로 쏟아
“인공지능이 찾아낸 단 하나의 정자, 우주에서 생명을 찾던 기술이 이제 지구에서 생명을 만들고 있다” 뉴욕타임스 8월 28일 자 「An unexpected path to fatherhood opens for many, 많은 이들에게 뜻밖에 아버지가 되는 길이 열리다」 란 제목의 기사를 읽다가 눈길이 간 대목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윌리엄스 박사 연구팀이 개발한 ‘STAR(Sperm Tracking and Recovery)’라는 기술 이야기다. 말 그대로 정자를 추적해 찾아내고 회수하는 시스템이다. 무정자증이나 극심한 희소 정자 증상이 있는 남성에게 정자 하나를 찾는 일은 망망대해에서 바늘 하나를 찾는 것과 같다. 정액 속에는 수많은 세포와 찌꺼기가 섞여 있어 숙련된 연구자가 현미경으로 뒤져도 좀처럼 찾기 어렵다. 상황에 따라서 한 검체를 이틀 동안 살펴도 정자를 발견하지 못한다. STAR는 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인공지능에게 맡겼다. 사람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미세 유체 칩의 통로로 정액을 흘려보내면서 고속카메라가 초당 약 300장의 영상을 찍는다. AI는 그 수많은 영상 속에서 정자처럼 보이는 물체를 골라내고, 진짜 정자로 확인되면 미세한 밸브가 열려 정자
저녁 7시 반, 어둠이 아파트 뒷산 수명산의 나무들 잔가지 사이로 스며들 때, 필자는 습관처럼 운동화 끈을 푸는 대신 양말을 벗어 맨발이 된다. 그리고 오르막 산길을 오른다. 구두 속에서 온종일 숨죽이고 있던 10개의 발가락이 시원한 산 공기를 맞으며 기지개를 켠다. 한 달 전 맨발로 첫발을 디딘 산길은 생소하고도 아찔했었다. 작은 돌과 모래의 거친 흙바닥이 발바닥을 찌르르 자극했다. 열대작물인 코코넛(야자나무)의 열매껍질에서 추출한 천연 섬유(코이어, Coir)를 꼬아서 만든 야자 매트를 밟을 때는 푹신한 감촉이 전해온다. 그렇게 어둠 속을 밟으며 오르기 25분. 산 정상에서 다시 내리막길을 걸어 산자락 끝에 조용히 둥지를 튼 황톳길에 도착해 30분 정도 항해를 시작한다. 그리고 발을 씻고 왔던 길을 거꾸로 돌아오면 맨발 걷기는 끝난다. 돌이켜보면 이른바 ‘황톳길 걷기’의 원조는 충청권 소주 업체인 선양(옛 대선주조)의 조웅래 회장이 조성한 계족산 황톳길일 것이다. 기업인의 사재 출연으로 시작된 이 소박한 시도는 순식간에 전국 지자체로 번져나갔다. 전국 맨발 산책로는 약 2,000곳으로 총길이가 825km다. 2023년 말만 해도 전국에 약 230여 곳에
며칠 한 방송사 출신 PD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농산물 경매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우리나라 농산물은 대부분 공영도매시장을 거쳐 거래된다. 경매사는 농산물의 규격과 크기, 중량, 외관, 신선도, 출하량 등을 종합해 가격을 결정한다. 이 제도는 생산자에게는 공정한 가격을, 유통업자에게는 효율적인 거래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말하자면 생산과 유통을 위한 시장인 셈이다. 그런데 소비자 입장에 서보면 조금 다른 의문이 생긴다. 가장 비싼 농산물이 과연 가장 맛있는 농산물일까? 가장 큰 사과가 가장 향기로운 사과일까? 가장 달고 단 수박이 가장 좋은 수박일까?-사실 텃밭에서 무농약으로 재배한 천연 수박은 그렇게 달지 않았지만 먹고 나서 깔끔한 뒷맛이 일품이다. 또한, 가장 규격이 좋은 토마토가 가장 영양이 풍부한 토마토일까? . 지금의 경매가 평가하는 것은 주로 상품성이다. 운송하기 쉽고 저장하기 좋으며 규격이 일정한 상품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상품성이 아니라 먹는 품질이다. 맛과 향, 영양, 안전성, 건강성은 소비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다. 상품성이 높은 농산물과 소비자가 가장 만족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