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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2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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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과 회복의 의류 대서사시···유니클로의 미국 무역 장벽 뚫기

 

 

◇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회장의 미국 무역 장벽 뚫기

 

유니클로 창업자인 야나이 다다시(柳井正) 회장은 “사업은 인생과 같다. 넘어져도 일어서는 자만이 다음 길을 본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일본 최고 부자이자 패스트 ​​리테일링(Fast retailing) 그룹의 수장이지만 그의 사업 여정은 절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의 도전과 실패는 세계 경영의 냉혹함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과정이다.

 

유니클로가 성장하려면 미국 시장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는 야나이 회장은 지금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미국이야말로 그에게 있어서 엄청난 낙관주의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우려를 낳게 하는 원천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유니클로의 저렴하면서도 품질 좋은 기본 의류는 젊은 미국 쇼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미국에서의 사업을 확장하도록 만들었다. 실제로 미국은 유니클로의 성장 전략의 핵심이다.

 

올해 76세의 야나이 회장은 전후 일본에서 성장하며 미국 문화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는 1949년 부모님이 남성복 가게를 운영하던 야마구치현 우베시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이 운영하던 그 가게는 시골의 평범한 양복점이었다. 그러나 그는 남들이 하는 옷가게처럼 하기 싫었다. 대신 옷을 파는 가게가 아니라 옷을 시스템으로 유통하는 사업을 꿈꾸었다.

 

가정에서 캔버스화를 즐겨 신었고, 갭과 같은 캐주얼 브랜드에서 유니클로에 대한 영감을 얻은 그는 1950년대 시트콤 "아버지가 제일 잘 안다"를 TV에서 시청했던 기억이 난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옷보다 1960년대 초에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아이비리그 출신이 만든 의류 브랜드, 밴 재킷을 입었다.

 

야나이 회장이 1972년 가업을 이어받아 의류 사업을 시작했을 당시, 그에겐 남성 정장 전문 매장과 밴(Van) 재킷을 판매하는 두 번째 매장이 있었다. 그는 밴 매장이 유니클로의 뿌리, 즉 저렴한 캐주얼 의류의 대규모 잠재력을 확립했다고 말했다. 1984년 야나이 회장은 히로시마에 유니크 클로딩 웨어하우스(Unique Clothing Warehouse)를 설립했는데 이후 그 이름을 줄여 유니클로(Uniqlo)로 불렀다. 유니클로는 빠르게 성장하여 첫 10년 만에 일본 전역에 100개의 매장을 열었다.

 

◇ 전 세계에 2500개 매장 운영, 보호무역에 공개적으로 반대

 

싸고 품질 좋은 캐주얼을 내세운 유니클로는 일본의 경기 침체 속에서도 급성장했다. 2000년대 초 일본 전국에 800개 이상 매장을 열며 폭발적인 성공을 거뒀다. 그러자 그는 미국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미국으로 진출하고 정복한 것은 순전히 그의 개인적인 업적이다. 여하튼 유니클로 매장은 현재 전 세계에 2,500개가 넘는다.

 

야나이 회장으로 하여금 1960년대와 1970년대 의류에 눈을 뜨게 한 것은 미 동부 해안의 프레피 유스 스타일 (미국의 명문 사립학교 학생들인 프레피들이 즐겨 입는 스타일. 단정하고 깔끔한 특성 때문에 가족 단위의 일상복이나 교회, 지역 커뮤니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차림새) 이었다. 그래서 그는 미국 시장에 대해 가장 큰 애착을 느낀다.

 

유니클로는 2005년 뉴저지에 첫 매장을 열었지만 이후 2022년까지 북미 사업에서 수익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 시장이 확대됨 몇 년간 패스트 리테일링은 연간 순이익이 28억 달러라는 역대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정책과 지나치게 높은 관세는 유니클로의 글로벌 공급망에 큰 타격을 줄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유니클로는 두 자릿수 관세가 부과되는 지역인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있는 공장들을 꼼꼼하게 관리하고 있다.

 

야나이 회장이 일본 기업 리더로서는 드물게 미국이 고립주의로 선회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는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마음대로 이 나라에 얼마를, 저 나라에 얼마를 할당할지 정하는 게 정말 괜찮은 건가요?”라면서 “그것은 세계 무역을 분열시키고 세계 발전에 분명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나라이고, 우호적인 나라잖은가. 저는 더 건강한 미국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라는 희망을 피력했다.

 

2000년대 초, 야나이 회장은 자신의 옷이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라는 조짐을 느꼈다고 했지만, 첫 해외 진출은 순탄치 않았다. 2001년 런던에 일본 밖에서 첫 매장을 열었고, 이후 영국에만 21개 매장으로 빠르게 확장했으나 2003년에는 그중 16개 매장을 폐쇄해야 했다. 이후 미국 뉴저지 교외 쇼핑센터에 세 개의 매장을 열며 미국 시장 진출을 시도했지만, 역시 실패로 끝났다.

 

야나이 회장은 그 시절을 "도전과 실패의 연속"이라고 표현한다. 하기야 당시에 누구도 유니클로 브랜드가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그때 야나이 회장은 당시 미국의 고급백화점 체인인 뉴욕 버그도프 굿먼(Bergdorf Goodman)의 부사장이었던 유키히로 카츠타 씨를 영입했다.

 

◇ 분열된 시대에 균형의 옷깃을 세워줄 경영인

 

카츠타씨는 유니클로가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모델을 구축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유니클로는 중국에서, 나중에는 베트남과 방글라데시 등의 국가에서 비용 효율적인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제한적이고 일관된 주요 제품 라인을 설계하고 있었다. 유니클로는 '타쿠미'라고 불리는 베테랑 일본 섬유 장인들을 해외 공장에 파견했다.

 

이후 유니클로는 중국으로 판매망을 확장해 2010년경부터 중국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중국의 중산층이 성장하는 상황을 활용하여 유니클로는 중국을 회사의 국제적 성장의 주요 동력으로 삼았다. 그런 중국 매출이 최근 급감한 대신 미국은 흑자 전환점에 도달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북미는 이 브랜드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유니클로 패스트 리테일링의 임원인 카츠타 씨는 최근 회복세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촉발된 저렴한 캐주얼 의류 수요 덕분이라고 보고 있다. 유니클로는 2027년까지 북미 지역에 현재 106개 매장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200개 매장을 열 계획이다.

 

야나이 회장은 여전히 ​​아시아 중산층의 성장에 따른 성장을 기대하고 있으면서도 미국 시장이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렇지만 의류 사업의 불투명한 전망은 문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여전히 ​​소비를 늘리고 있지만 소매업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호황이 얼마나 지속될지 확신하지 못한다. 일각에서는 내년 초 가격 인상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측한다.

 

야나이 회장은 관세 부과 여부와 관계없이 유니클로가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공급망을 이전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부족한 노동력과 어려운 산업 환경 등 미국의 현재 상황은 의류 산업을 육성하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유니클로는 전 세계 30여 나라에 생산라인을 두고 있다.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에서 원단을 만들고 봉제한다. 이 복잡한 글로벌 네늩워크는 자유무역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미국이 자국 중심의 생산으로 회귀하면 유니클로 패스트 리테일링은 물론 세계의 수많은 기업이 타격을 입는다. 그래서 야나이 회장은 “정치보다 시장의 힘을 믿는다”고 강조한다.

 

“벽을 세우는 국가는 결국 자기 자신을 가둔다. 경제의 자유는 인류의 진보”라고 말하는 야나이 회장, 그는 지금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에서 도전과 회복의 의류 서사를 써내려 가는 중이다. 보호무역의 장벽이 높아지고 세계가 흔들릴수록 우리는 그가 무역의 정신과 시장의 자유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증인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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