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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30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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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특별기획-제1편] 기후 위기와 콩

지난 1929년 미국의 식물원정대가 한반도 전역에서 콩 종자를 수집해 갔다.

 

그로부터 100년이 다 된 지금, 우리는 그 콩을 미국에서 수입해 가공식품으로 만들어 먹거나 사료로 쓰고 있다. 한반도에서 비롯된 콩이 지구의 온도계가 되고 인류의 식탁을 흔드는 시대, 콩을 잃어버림은 우리의 미래를 잃는 일이다.

 

지구의 기온이 1도 오르자, 농산물의 생산비와 소비자가가 오르고 가뭄과 장마는 더 길어지고, 깊어지고 있다. 자기 뿌리에 뿌리혹박테리아를 만들어 공기 중의 질소를 포집해 스스로 질소비료를 만들어 성장하는 한반도가 원산지인 콩에도 이상 신호가 감지된다. 우리 밥상 위의 된장국 두부, 콩나물은 더 이상 평범한 식재료가 아니다. 그것은 기후 위기의 최전선에서 흔들리는 생명 지표다.

 

◇ [제1편] 한반도를 떠나, 미국으로 간 우리나라 콩

 

1920년대 초 미국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식량, 특히 단백질 자원의 부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당시 미국의 주요 단백질원은 육류였지만 가격이 비싸고 공급이 불안정했다. 그러자 미국 농무성(USDA)은 식물성 단백질, 특히 콩(soybean)에 주목하게 된다.

 

그 시점에 미국 내 콩 재배는 미미했지만 중국 요동 반도의 대련 항에서는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서 재배되어 남만주 철도로 수송되어 온 콩과 콩기름이 전 세계로 수출됐다. 조용한 어촌이었던 대련 항이 콩과 콩 가공식품을 수출하는 무역항이 된 것은 어쩌면 만주와 한반도가 콩 산지였으니 필연적인 결과인지도 몰랐다.

 

요동 반도의 끝, 고구려, 발해의 영토였던 대련항은 1880년대 청나라가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1894년~1895년 조선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청나라로부터 요동반도(랴오둥)를 할양받게 되었다. 게다가 일본은 영국과 영일동맹을 맺으며 확고한 요동 지배권을 형성하려 들었다.

 

그러자 부동항을 얻기 위해 동아시아를 지켜보던 러시아는 그러한 일본의 팽창에 위기를 느끼고 독일, 프랑스와 함께 일본에 대대적인 외교적 압력을 행사하는 3국 간섭 정책으로 1898년, 청나라로부터 관동주(다롄, 뤼순 등)를 조차(租借)하여 둥칭철도(東淸鐵道, 하얼빈에서 대련항까지의 철도 노선)를 부설하고 대련항을 「다르니」(Дальний; 「멀다」)라고 명명한 뒤 프랑스 파리를 모델로 하여 이 항구를 군사 및 무역의 거점 도시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이 1904년에 발발한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같은 해 5월에 이곳을 무혈점령했다. 러시아는 1905년 포츠머스 조약을 맺어 일본에 다렌 항과 동청철도를 양도했다. 일본은 즉시 「다롄」항으로 이름을 바꾸고, 1906년 ‘남만주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해 이 항구와 철도를 중심축으로 하여 사실상 만주 지역의 관개, 광업, 산업, 무역 등 광범위한 경제 식민 활동의 거점과 운송수단으로 개발해 나갔다.

 

특히 만주에서 생산되는 콩과 콩기름을 대련 항을 통해 일본 자국은 물론 세계로 수출했으므로 미국 등 당시 농업 대국들은 만주와 한반도, 일본 등지에서 생산되는 콩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뿐만 아니라 콩은 일상적인 주식이 될 수 있고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있었다. 이에 따라 콩의 원산지를 찾아가 유전자원과 재배기술을 확보하자는 프로젝트가 미국에서부터 시작되게 된 것이었다.

 

1929년 미국 농무성은 식물유전자원 확보를 위한 국제 탐험개획의 일환으로 동양 지역 탐사를 추진했다. 이 계획을 주도한 인물이 윌리엄 모스(William J. Morse, 1884~1959) 박사다. 그는 1907년부터 미국의 콩 연구의 아버지로 불렸으며 일찍부터 콩의 원산지는 한반도와 민주 일대라는 일본 학자들의 연구에 주목해 왔다. 그래서 그는 만주. 조선, 일본 등을 중심으로 야생종과 재배종을 직접 수집하고 유전적 다양성을 연구하려 했다.

 

이리하여 만들어진 미국 식물 동양 탐사대는 팔레몬 하워드 도셋(Palemon H. Dorsett, 1862~1943)을 수석 식물탐험가(plant explorer)로 하여 1929년 2월 18일 미국을 출발했다. 3월에 일본에 도착한 탐사대는 일본의 재배종 및 야생종 탐색을 시작했으며 같은 해 10월 21일 조선으로 이동해 약 6주간 조선 전역에서 종자 수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들은 이듬해 봄과 여름 사이 다시 조선과 만주 일대를 돌아다니며 재수집에 나섰다가 연말에 그동안 모은 콩 종자와 콩 농사 자료, 사진 등을 가지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들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수집한 콩 종자는 총 4,471점으로 이 가운데 우리 나라(조선)의 것이 전체의 73%인 3,379점(76%), 일본 579점(13%), 만주 513점(11%)이었다. 모스 박사는 보고서에서 “조선에서 모은 자료와 사진만으로도 훌륭한 책을 쓸 수 있을 정도”라고 기록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수집한 3천여 종이 넘는 우리나라 콩 종자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사라졌을까? 아니면 보관되어 있을까? 보관되어 있다면 어디에 있는 걸까? 그리고 그들 탐험대는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 어떻게 우리나라에서만 그 많은 콩 종자를 수집할 수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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