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가 ‘오천피’와 ‘천스닥’을 달성하며 유례없는 호황을 이루고 있다. 이는 인공지능(AI) 발(發) 반도체 산업이 급성장하며 코스피 지수를 이끌었고 이재명 정부의 부양 의지가 더해지며 전례 없는 속도로 달성한 것이라는 평가다.
코스피 지수는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4000선을 넘어선 지 3개월 만에 5000선을 돌파했다. 43년 코스피 역사상 가장 가파른 성장이다. 코스피는 지난 22일 장중 한 때 5019.54를 기록하며 최고가를 찍었다. 지난 26일에는 코스닥이 4년여만에 1000을 돌파하고 1064.44로 장을 마감했다.
특히 지난 22일 이재명 대통령이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와 함께 한 오찬에서 디지털 자산을 활용한 ‘코스탁 3000’ 달성을 제안한 점이 ‘오천피’ 언급과 마찬가지로 향후 코스닥 지수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질적 성장을 담보하지 못한 과열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수 급등과 달리 한국의 실물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실물 경제가 받쳐주지 않으면 증시 지수는 단순한 숫자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 대형주 슈퍼사이클 이후 주가 급락할 가능성은?
코스피 지수가 5000선을 넘어서면서 이제 시장은 다음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일단 단기간 지수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치솟은 만큼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실제로 코스피는 1000과 2000선을 돌파한 이후 한동안 큰 폭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코스닥은 지난 2000년 3월 10일 종가 기준 최고치인 2834.40을 찍고 지속 하락했던 경험이 있다. 이러한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금리 인하 사이클이 종료되면 주가 흐름이 시간이 갈수록 약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주가는 반도체·AI·로봇 등 성장 산업을 중심으로 기업 실적 개선 기대가 강하게 반영된 영향이 크다. 특히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수출과 실적 호조가 코스피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개인 투자자 중심의 상법 개정,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배당 확대 정책 등을 추진한 것도 주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장 일각에서는 코스피 상승분의 상당 부분이 소수 대형 기술주에 의존하고 있어, 시장 전반의 펀더멘털 개선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최근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사상 최대 수준(1월 20일 기준 29조원)으로 증가한 점도 우려를 낳고 있다. 이른바 ‘빚투’가 향후 하방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 한국 경제, 유통업 불황·자영업자 수 급감 등 위기
경제 전문가들은 시장 지수의 급등이 실물 경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국의 GDP 성장률은 여전히 완만한 수준이며, 일부 지표는 개선 신호가 더디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증시 급등이 실물 경제의 체질 개선 없이 추진된 ‘가격 프리미엄’ 현상일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1%로 저조한 원인 중 하나는 고꾸라진 건설투자(-3.9%)와 설비투자(-1.8%)라고 했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소매판매액지수는 전월보다 3.3% 하락해 2024년 2월(-2.5%) 이후 낙폭이 가장 컸다. 대형마트(-14.1%) 슈퍼마켓(-8.7%) 백화점(-4%) 등 편의점을 제외한 주요 유통업태 모두가 내리막을 걸었다. 폐업 자영업자는 2024년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에 일각에서는 한국 경제가 활기를 되찾고 새로운 혁신 기업들이 탄생할 수 있도록 근본적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데 더욱 힘을 쏟아야만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AI·로봇·바이오 등의 연구개발 지원, 원전 확대 등 중장기 성장 기반을 정비하는 데 집중해야만 한다는 지적이다.
◇ 증권가, ‘코리아디스카운’ 완전 해소 기대...반도체 슈퍼사이클 지속 전망
한국 증시는 대외적인 변수에 취약한 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정책 방향, 글로벌 경제 변수, 지정학적 리스크 등 외부 요인이 증시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단기 급등이 빠른 조정으로 이어질 위험이 존재한다.
KB증권 리서치본부 투자정보전략팀은 지난 22일 ‘현실화된 KOSPI 5,000pt’ 리포트에서 “이번 정부 주요 공약이었던 ‘오천피’를 빠르게 달성했다”면서 “지수 레벨 안착을 위해서는 질적인 이익 구조 개선, 정책 모멘텀, 대내외 유동성 환경 모두 중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올해 순이익이 58% 증가할 전망인 가운데 증가분의 대부분이 반도체에 기인하기 때문에 오는 29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세부 실적이 중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했다.
한국 증시가 실물 경제와 괴리된 채 여전히 변동성의 위기에 직면해있다는 지적이 많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상승 여력이 남아있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한국 경제 성장률이 1%에 머물렀지만 올해에는 2%대 초반까지 상향 조정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증권가에서는 다음 코스피 지수 목표를 5200~5650으로 보고 있다. 증권사들이 올해 코스피 상단은 한국투자증권 5650, 하나증권 5600, KB증권 5500, IBK투자증권 5300, 대신증권 5300, SK증권 5250, 유안타증권 5200이다.
업계에 따르면, 해외 투자은행들도 한국 증시의 상승 여력이 남아 있다는 분석을 잇따라 내놓았다.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은 모스피 목표치는 기존 3700에서 5500으로 상향했다. JP모간은 기본 시나리오에서 코스피 목표치 5000을 제시하면서 강세장 6000·약세장 4000을 함께 제시했다. 골드만삭스도 한국 시장에 대한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비중확대’로 상향하고 목표치로 5000을 제시했다.
이 같은 해외의 시각은 한국의 경제가 저평가된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가능성이 높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다수의 증권가 애널리스트들도 이번 한국 증시 급등을 부정보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읽는다. 다수의 한국 기업들의 이익 창출 능력,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실적개선 기대감, 경제 성장률 상향 전망 등이 맞물리며 이익 구조의 질적 변화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증시가 코스피 5000, 코스닥 1000이라는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한 것은 분명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수의 급등이 시장의 체질 개선을 의미하는가, 단지 유동성 확대와 일부 업종의 과열된 주가 흐름을 반영하는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투자자들과 정책 담당자 모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 전문가 “주가 급등, 아직 실물경제로 이어졌다고 보긴 어려워”
최재원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경제학부 교수는 주가 상승이 실물경제로 파급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가가 오르더라도 기업들이 유상증자를 통해 실제 투자에 나서야 실물경제로 연결된다”며 “현재는 유상증자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주가 상승의 과실이 투자자, 즉 국민의 부로 이어지고 소비로 연결돼야 하는데, 최근 상승은 소수 종목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실물경제로의 전이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증권가 전망에 대해서는 “대체로 과거 수익률을 기반으로 미래를 추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제한 뒤, “현재는 AI 붐에 따른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이어지고 있고, 당분간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만큼 흐름이 일정 기간 지속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국내 증시가 반도체와 자동차 등 특정 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그는 “반도체와 자동차 비중이 큰 구조에서 이들 산업이 호황이면 주가는 오를 수 있다”면서도 “문제는 주가가 실물경제와 괴리된 채 움직일 경우 유동성 장세나 버블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또 “반도체 사이클이 종료될 경우 주가가 급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이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 “실물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춰 금융과 실물 간 괴리를 줄여야 한다”며 “과도한 유동성 공급보다는 실물 경제를 살리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주가는 미래를 반영하는 만큼 산업 경쟁력이 지속될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며 “반도체·자동차 외에 석유화학, 철강 등은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어 개선 과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지배구조 개선과 소액주주 권한 강화를 위한 상법 개정 등은 주식 투자 활성화와 기업가치 제고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거시적으로는 산업 경쟁력 강화가 보다 근본적인 과제”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