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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3월 31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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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주의 문화를 죽이는 ‘공모’

 

전남 나주시에는 수십 년, 적게는 수년 동안 지역을 기반으로 묵묵히 활동해 온 시민사회단체와 예술단체들이 있다. 이들은 단순한 사업 수행자가 아니라 지역의 문화와 공동체를 실제로 만들고 지켜온 현장의 주체들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모든 사업이 ‘공모’라는 이름으로 전환되었다. 1월에 제출하고 2월에 심사하는 데 올해는 2월에 제출하고 같은 달에 심사했다. 사업이 이미 시작되어야 할 시점인데 선정 여부를 기다리는 꼴이다. 이 공모 방식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윤병태 시장과 이 예산을 승인하고 행정을 감시해야 할 시의원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다. 사업은 원래 전년도부터 계획하고 준비하며 다음 해로 이어가는 연속과 지속의 과정이다. 그런데 당해 연도에 모든 것을 결정하는 공모 방식을 정상적인 행정이라고 할 수 있는가? “공모는 공정하다”고 하면 그만인가?

 

수십 년을 버텨온 나무와 어제 심은 모종에게 똑같은 물을 주고 “같이 대했으니 공정하다니. 이런 공정은 공정이 아니라 기계적 평등일 뿐이다. 쌓아온 경험과 연륜을 부정하는 행정은 기록을 지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수십 년간 다져온 시간을 다시 ‘0’에서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공정이 아니라 폭력이다. 연속성 없는 공모는 예술가와 단체에게 내일이 없는 삶을 강요하는 꼴이니까.

 

해마다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심사를 기다리며 사업의 생사를 맡겨야 하는 구조에서 무엇을 계획할 수 있을까? 무엇을 축적할 수 있으며 무엇을 성장시킬 수 있단 말인가? 

 

행정이 ‘검토 중’이라며 시간을 보내는 두 달 동안 현장에서는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펜을 들던 사람은 운전대를 잡고, 무대를 지키던 사람은 생계를 위해 현장을 떠난다. 숙련된 기획자와 예술가가 떠난 자리에는 경험도, 축적도 남지 않는다. 그 무형재산 손실의 피해는 결국 시민에게 돌아간다. 이 때문에 질 낮은 프로그램, 단절된 공연, 이어지지 못하는 문화 경험.

 

나주의 봄은 3월에 오지만, 나주의 문화는 이미 1월에 얼어 죽는다. 이 구조에서는 사람은 사라지고 사업만 남는다. 행정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끝내 사람을 현장에서 밀어내고 있다. 공모 방식이 지역 단체를 성장시키는 구조인지, 아니면 행정이 관리하기 편한 구조인지 의문이 드는 이유다.

 

필자는 뿌리 깊은 나무를 키울 생각은 없고, 해마다 새로운 화초만 갈아 끼우는 이 방식이 결국 나주의 문화 생태계를 사막으로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십 년을 버틴 단체에게 해마다 신규 단체와 같은 기준으로 다시 평가받으라 하는 것은 공정이 아니라 모욕이다.

 

선거철에는 시민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골목을 누비던 시의원들은 현장의 목소리 앞에서 침묵한다. 예산을 세우는 것이 시의원의 책임이 아닐진대, 예산 집행의 감시와 견제는 어디 갔는가?

 

행정의 편의를 위해 시민의 권리를 외면하는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책임의 회피일 뿐이다. 시중에는 시의원들이 4년 임기의 계약직 공무원과 다르지 않다는 말까지 나온다. 시의회 의원이라면 오랜 세월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단체들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것인지, 어떻게 더 큰 무대로 나아가게 할 것인지, 어떻게 나주의 얼굴로 키워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 주시길 바란다.

 

물론, 새로운 사업에는 공모가 필요하다. 경쟁도 필요하나 기존의 축적과 새로운 가능성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를 같은 기준으로 묶는 정책은 결국 아무것도 키우지 못한다.

 

단체의 성격과 축적을 반영한 다년도 지원제, 성과에 따른 자동 연장 구조, 기존 단체와 신규 단체를 구분하는 평가 체계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잘하는 곳은 확실히 지원하고, 그만큼 책임도 분명히 묻는 구조로 말이다. 그것이 예산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길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불가능해서가 아닐 것이다. 행정이 귀찮고, 책임지기 싫기 때문이리라. 공모의 공정함이 경험의 가치를 지우는 순간, 문화는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얕아진다. 이제는 경쟁의 형식보다 축적된 시간과 현장의 무게를 함께 존중하는 제도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의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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