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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경제를 살려내는 일은 시대정신이자 국민적 여망입니다!

유성엽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


<M이코노미 김소영 기자> 자연과 문화예술이 어우러진 정읍에서 무소속으로 두 번씩이나 당선된 이력을 가진 유성엽 3선 의원이 최근 국회의원연구 단체인 ‘경제재도약 포럼’을 발족했다. 대한민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실천적인 경제정책을 제시하고, 여야 의원 및 가계전 문가들과 연구와 토론을 지속적으로 해나간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의 경제정책을 우리실정에 맞게 수립 해야 비로소 경제를 재도약 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 유 위원장은, 현재 서울과 정읍을 오가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유성엽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을 만났다. 


지난 8년간 우리나라는 연 평균 경제성장률이 3%에 불과하다. 2011년 이후 5년 동안 매년 세계 평균보다 낮은 성장률이다. 이처럼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세계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고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게 되면 후발개 도국이 우리의 해외시장은 물론 국내시장까지 잠식해 들 어올 수 있다. 중국과 인도의 역사가 이점을 여실히 증명한 다. 유성엽 위원장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경제위기가 진행 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조선과 해운 사업의 부실화 는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유 위원장은 철강과 석유화학 등도 조만간 부실해질 것이라며, 우리 경제의 주력인 장치산업은 국민소득 3만5천 달러를 견뎌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을 유성엽 위원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Q. 우리나라 경제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A. 우리 경제의 위기는 경제정책 실패에서 온 것입니다. 분명히 경제정책 실패인데도 정부는 원인을 찾지 못하고 세계경제탓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인식을 갖고 있는 정부가 과연 경제를  살려낼 수 있을 것인가 의구심마저 듭니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흔히 말하는 그런 위기가 아닙니다. 경제파탄 직전에 벌어지곤 했던 그런 파국적인 위기에요. 특별한 관심과 각별한 각오로 대응해야 할 파국적인 경제위기가 닥쳐오고 있는 겁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양극화가 더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해고를 당해도 못사는 사람부터 당하고 사업이 망해도 영세업체부터 망합니다. 양극화의 근본적인 가장 큰 원인은 경제난이 초래돼서 생긴 겁니다. 정부가 그걸 찾으려고 노력해야 해요. 이 불평등을 해소하고 격차를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무책임하게 복지타령만 줄기차게 외치고 있습니다. 성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인데도 복지에 묻혀 경제가 외면당하고 있는 겁니다. 그동안 정부가 무얼 했는지 생각해보세요. 우리나라 경제가 부진해지기 시작한 것은 2008년입니다. 당시 경기를 회복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정책수단을 펼쳤어요. 하지만 경제를 살려내지 못했죠. 오히려 성장률만 해가 갈수록 떨어졌습니다.


현재로선 2% 중반의 성장률도 버거운 실정입니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재정지출이 연평균 7.2% 증가해서 경상 GDP 의 성장률이 5.7% 보다 높았어요. 현 정권에 들어와서도 초기에는 재정지출 증가율이 2~3%대로 억제했으나 지난 해 8.6%로 증가시켰죠. 그럼에도 경기를 살려내지는 못했어요. 지난해 말 국가채무가 590조원을 훌쩍 넘었습니다. 재정위기의 위험성만 키운 셈이죠. 여기에다 공기업 등 정부 산하기관까지 모두 합하면 국가부채는 1,200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거기다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경기도 활성화된다면서 환율방 어정책을 펼쳤는데, 이 또한 실패했습니다. 이명박 정권에 서는 2007년 연평균 929원이었던 환율을 2008과 2009년 에는 한때 1,500원을 넘어서게 한 적이 있습니다. 현 정권 에서도 1,050원대까지 떨어졌던 환율이 한때는 1,250원 대 를 넘어섬으로 인해 2007년보다 30% 이상 높았던 적도 있습니다.


경기가 장기간 부진해지면서 취업난이 심각해지니까 인위적인 일자리 창출만 하잖아요. 이렇게 되면 오히려 경제를 더 어렵게 해서 지속적인 일자리를 더 없애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됩니다. 오히려 실업률을 더 높이는 정책인 것이죠. 정부나 정치권은 입만 열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일자리는 목적이거든요. 일자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자리 자체에다 손을 대는 것보다는 경제를 살려 내 지속적인 일자리가 생기도록 해야 합니다. 청년 실업률 이 12.5%까지 높아지니까 위헌적인 청년고용할당제를 거론하는 겁니다. 이러한 땜질식 처방으로는 몇 년 지나면 또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Q.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요?


A. 우리가 지금의 위기를 헤쳐 나가려면 경제정책 실패의 정확한 원인규명을 해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실패의 원 인과 결과를 제대로 분석해서 원인에 처방을 해야 하고, 목 적과 수단을 잘 구분해서 훌륭한 목적일수록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을 강구해야 합니다. 목적에 치중하는 겁니다. 복 지확대라든가 분배개선은 전부다 목적이란 말이에요. 꼭 해야 하는데 그 자리에다 복지자체를 외쳐버리니깐 책임있 게 복지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겁니다. 복지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러려면 경제 활성화가 되어야 세수가 걷힐 것 아닙니까. 그래야 책임있게 뒷받침하는 복지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 생각은  안하고 국민들 귀에 솔깃 하고 국민들 귀에  달콤한 이야기만 외치는 겁니다.


우리나라가 경제정책을 실패한 이유에는 몇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우선 고환율 정책입니다. 고환율 정책은 경제 성장에 도움이 클 것 같지만 수출에 별 도움이 안 되면서 내수에 치명적인 타격을 줍니다. 두 번째는 공공부문의 비대화입니다. 우리나라는 GDP에서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이 48%나 됩니다. 공공부문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나 라의 경제는 힘들거나 소득 수준이 낮습니다.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안정적이다 보니까 인력과 자원이 몰리 는 현상이 나타나는데요. 이렇게 민간부문에 가야할 자원이라든지 인력이 공공부문에 몰리게 되면 나라 전체의 생 산성이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논쟁은 국내 경제 전문가나 관료들 대부분이 우리나라 GDP성 장에서 수출이 기여하는 정도를 51~52%로 본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기준을 잘 선정해서 계산을 해보면 GDP성장에서의 수출비중이 13%, 내수가 87%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수출이 차 지하는 비중이 51~52%라고 한다면 수출이 늘어나면 늘 어날수록 성장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실제 현장에 이루 어지는 것을 보면 수출이 많이 늘어나도 경제성장에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결과를 볼 때 우리가 GDP성장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잘못 인식하고 있 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만큼 우리 정부도 이제는 문제를 정확히 인지하고 국제 수지가 흑자를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환율을 점진적으로 떨어뜨려 기업들 이 혹독한 시련을 겪어 내도록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과 같이 환율이 높으면 해외바이어들이 와서 가격을 깎아달라고 하면 우리 기업들이 가격을 깎아주면서 까지 수출을 합니다. 그러니 나라에는 별 이득이 없죠. 기 업들이 자구노력을 통해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해 야 합니다. 가령 신제품 개발이나 품질 향상, 그리고 디자 인과 포장개선 등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죠. 지금과 같 이 정부가 가격경쟁력을 보장해 주면 기업은 안주해 버리게 됩니다. 한 때 일본이 환율을 떨어뜨리면서 고도성장을 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일본 기업들이 혹독한 시련 속에서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해 왔던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금융산업 규제완화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자본시장 통합법은 은행 등 대형 금융회사의 기득권 을 보장하기 위한 규제 장치에 불과합니다. 이 법률이 모험 적인 금융인과 금융기업을 탄생하지 못하도록 해서 높은 국민소득을 견디어 낼 사업의 발달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인텔이나 구글이 한국에서 창업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미국은 400대 부호 중에서 상속을 받은 사람은 20대에도 미치지 못하고 무일푼으로 시작한 사람이 2/3에 육박합니 다. 돈이 없어도, 배경이 없어도, 배우지 못했어도,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출세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도 기회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금융산업의 진입규제부터 풀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험적인 금융회사와 금융인이 태어나 번창할 수 있고 기득권에 안주해 있는 은행 등의 금융대기업을 변신시킬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분배 개선이 중요합니다. 소득 상위계층은 소비성향이 낮은데 반해 소득 하위계층은 소비성향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배개선은 목적일 뿐 수단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성장을 시킬 수 있는 수단이 먼저 강구되어야 분배가 개선될 수 있고, 성장이 이뤄져야 분배 개선을 위한 정책도 비로소 펼칠 수 있게 됩니다. 성장이 앞서고 분배가 뒤 따르게 되면 성장과 분배는 선순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단과 목적의 구분은 이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Q. 최근 소통에 대한 관심이 참 많습니다. 위원장님께서는 지역구 주민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계시는지요?


A. 저는 18대 총선에 나설 때 국회의원이 된다고 하더라도 서울로 이사 가지 않고 지역구인 정읍에서 살겠다고 다짐 했었습니다. 현재도 그 약속을 지키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지역민들과 더 많이 만나고 접촉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저녁에는 집이 있는 정읍으로 내려갑니다. 차를 타고 두 시간 반이면 도착하는데 요즘에는 KTX가 생겨서 1시간 35분 정도로 많이 단축 됐습니다. 간혹 회의가 늦게 끝난다든지 이른 아침 조찬이 잡혀 있는 날에는 자취하는 딸들이 사는 집에 가서 잠을 잡니다만, 가급적이면 지역구 에 가서 지역민들과 세상사는 이야기도 들어보고 고민거리도 듣습니다. 저는 지역민들과도 가급적이면 솔직하게 얘기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것은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노력 했는데 안 되더라. 이런 것은 우리 스스로 해결해 보자. 이렇게 솔직하게 얘기하면 지역민들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올해 합류된 고창지역민들도 그런 저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시고 ‘저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구나! 솔직한 편이구나’ 그 러면서 제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죠. 지역민들의 이야기는 적극적으로 듣고 실행에 옮기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최선을 다하지만 안 될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는 솔직하게 왜 안 됐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고요. 저는 결국 소통이라는게 이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꾸며서 적당히 숨기면서 좋은 면만 보이려고 하는 소통이 아니라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지역민들이 이런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Q. 리더십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습니다. 경험했던 리더십이 있다면 소개해주십시오.


A. 조직구성원들의 역량을 하나로 결집시켜서 시너지 작용을 내야하는 리더십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달리 적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때로는 권위적 리더십에서부터 때로는 민주적 리더십까지 그 스펙트럼을 넓게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전북도청 환경 보건국장 시절, 임실과 정읍 일원에 걸쳐있는 옥정호의 상수원보호구역 지정과 관련해서 지역주민들과 마찰이 심했습니다.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여러 개발 제한이 가해지고 재산권을 침해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주민들의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저는 주무국장으로 시위의 현장에 직접 찾아가 온갖 욕설과 위협을 감내해 내며 주민들과 대화를 시작했고, 때로는 읍소도 하고 때로 는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인간적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밀고 당긴 끝에 주민들을 설 득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전라북도 일원의 대규모 사업의 성패가 놓여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발휘한 리더십이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 정읍시장이 되어 해당 지역주민들에게 가졌던 빚을 갚겠다는 생각 으로 옥정호 주변 정읍시 산내면 일대에 대대적으로 구절 초를 심고 공원을 조성했습니다. 매년 10월초 열리는 옥정 호 구절초 축제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Q. 위원장님께서는 전라북도 정북에서 무소속으로 두 번씩이나 당선된 이력이 있습니다.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된 계기와 압승을 거둔 결과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A. 쉽게 말하면 컷오프가 된 겁니다. 복당을 신청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복당을 처리해주면서 유일하게 저만 복당을 안 시켜줬습니다. 그러다보니깐 무소속이잖아요. 그런데도 압승을 했어요. 컷오프 되기 전에 여론조사를 해보니까 우세하게 1등으로 나왔죠. 그런데도 컷오프를 시키니까 지 역민들이 한 마음이 돼서 저를 뽑아 준 겁니다. 원래 정읍 이라는 곳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의 고장입니다. 왜 유권자들이 가장 지지하는 사람을 민주당에서 컷오프 시켰냐며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이 발휘된 것입니다. 제가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정읍시장을 하다 보니까 기본적 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읍시장을 할 때도 그런 데로 잘했다고 시민들이 평가를 해서 평판이 괜찮았고요. 그런 결과라고 봅니다.


Q. 지역구인 정읍과 고창은 어떤 곳입니까?


A. 정읍은 산수가 아름답고 자연이 아주 조화로운 고장입 니다. 실제 산도 반절이고 평야도 반절인 곳이 정읍입니다. 남동쪽으로는 산이 50퍼센트 북서쪽으로는 평야가 50퍼 센트입니다. 평야만 있다든가 산만 있다든가 그렇지 않고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고 있어요. 이렇게 균형 있고 조화로운 산수를 바탕으로 최초의 백제가요 ‘정읍사’ 최초의 가사 ‘상춘곡’ 최초의 향약과 호남우도농악의 발상지가 있는 등 문화예술들이 풍성하게 꽃을 피웠던 곳입니다.



다음은 조선왕조실록입니다. 지금은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는 조선왕조실록만 해도 임진왜란이 일어나 춘추관과 충주·성주 사고의 실록이 모두 병화에 소실되자 전라도 태인의 선비인 안의와 손홍록이 사재를 털어서『태조 실록』부터『명종실록』까지 13대의 실록 804권과 기타 소장 도서들을 모두 정읍의 내장산으로 옮겨놓았다가 이듬 해 7월에 정부에 넘겨줄 때까지 1년여 동안 번갈아가며 지켜 후세에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1894년 일어난 갑오동학 농민혁명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역사의 변혁과 발전을 주도 한 곳이 곧 정읍입니다.


또 고창은 환경이 아주 잘 보존되 어 있는 곳으로 고창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지역으 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자연 속에서 김성수 부통령, 김상엽 총리, 진의종 총리 등 대단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됐습니다. 고창은 생태고장이기도 하지만 인물고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읍, 고창 둘 다 아주 자랑스러운 지역 입니다. 20대 국회의원 중에 고창출신만 해도 6명이나 됩니다. 정읍출신이 3명에다 며느리 셋을 합해 정읍에서만 6 명이 배출됐어요. 우리 정읍과 고창출신이 합쳐서 12명이고 저까지 포함하면 13명이나 됩니다.


Q. 행정고시를 합격해 공직자로서 길을 가시다가 정치를 하게 됐는데요. 정치인이 되고자 마음먹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A. 공직자의 길은 전북도청에 이어 내무부(지금의 행정자 치부)에서 시작했습니다. 당시 정치권에서 지방자치 부활 논의가 한창이었는데 내무부 지방자치기획단에 이어 지방 기획국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95년 외형상 지방자치가 전면 실시되면서 제가 담당자로서 기획했던 지방자치제도가 지방에 제대로 뿌리내리는지 확인하고 싶어 내무부에서 전라북도청으로 전입을 신청했습니다. 30대 젊은 나이에 주요 보직 국장을 역임하면서 신선한 행정 스타일을 마음 껏 펼칠 수 있었고 2002년 42살의 나이에 민선 3기 정읍시 장에 도전해서 당선된 겁니다. 당시 저는 전북 지역 단체장 가운데 ‘인사공정성, 청렴도, 대외교섭능력’ 등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Q. 정치를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을 텐데요. 가장 기억에 남은 인물은 누구이며 롤 모델이 있다면 그 이유를 말씀해주십시오.


A.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무소속이었 지만 18대 총선 끝나고 제가 처음 만난분이 김대중 전 대통령인데 약 2시간 가까이 많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역경을 딛고 자기가 가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대통령까지 하신 분인데 정말로 인동초 정신을 갖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항상 나라의 미래와 비전을 생각하며 앞서 나가셨던 그런 모습을 존경합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그 뜻을 잃지 않고 유지한다는게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견디기 힘든 어려움을 겪으셔서 생각도 깊으시고 정말로 깊이 있는 정치를 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전 대통령께서 생전에 살아 계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해요. 서생적인 문제의식과 현실적인 상인 감각을 균형 있게 가져라. 그러지 않으면 정치꾼이 된다. 현실적 정치에 안주하면서 입신양명만 생각하면 정치꾼이 된다는 말씀이시죠. 이 두 가지가 격이 되어야 큰 정치를 해 나아갈 수 있다는 그분의 말씀을 가끔 떠 올리며 부족하지만 부끄럽지 않은 정치인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위원장님께서는 사람들을 만날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요?


A. 사람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진정성에서 우러나오는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각자 사고와 철학이 있기 때문에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이해해야 합니다. 서로 ‘다름’을 바탕으로 그 간극을 좁혀가는 것이 소통이고 그 기저에는 진정성이 깔려 있어야 합니다. 정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정반합(正反合)의 발전지향적인 길로 나아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정치행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도 솔직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복선 없이 솔직담백하게 대화하면서 의견을 개진했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서로의 의견을 절충해 나가고요. 그래서 저는 되도록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할 때도 복선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 솔직하게 자기의 생각, 자기의 마음, 자기의 뜻을 표출하지 않는 경우들도 많지만 가급적이면 솔직하게 느끼고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 합니다. 너무 솔직해서 손해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솔직한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Q.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으며 어떤 방법으로 극복하게 됐는지요?


A. 2006년, 전라북도 도지사 공천을 위한 당내 경선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준비 부족으로 실패했습니다. 당시 제 나이가 46세였는데 인생에서 가장 좌절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로부터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될 때까지 약 2년 간 공백 기간이 있었는데, 그 공백이 오히려 앞만 보고 달려왔던 인생을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당시 크고 작은 자리 제안이 왔지만, 인생을 돌아보자는 뜻에서 여러 제안을 거절하고 대학(大學) 등 고전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농촌의 현장에 나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소통도 했고요. 큰 틀에서 보면 어려움 속에서도 뜻은 이루었던 것 같습니 다. 그런 의미에서 행운아였다고 생각합니다. 힘들었지만 실패했던 경험들이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큰 도움도 되고요. 선거에 떨어져보지 않은 사람은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고 하잖아요. 한 번씩 떨어지고 실패도 해봐야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힘들 때 더 단단해지고요. 지금은 그때의 시간이 의정활동에 화수분이 되고 있습니다.



Q.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 있다면 어떤 책입니까?


A. 약관의 나이에 공직에 입문하면서 항상 흐트러짐 없는 몸가짐을 위해 매순간 엄하게 규율해왔습니다. 논어를 스스로를 연마하고 올바른 방향을 선택하기 위한 규범서로 삼을 정도로 논어(論語)는 제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준 책입니다. 저는 젊은 친구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논어를 직접 읽기가 어렵다면 충북대학교 강형기 교수님께서 저술하신 ‘논어의 자치학’이라는 책을 읽는 것도 좋습니다. 논어의 자치학은 정치와 행정, 경영 전반에 걸 쳐 지식과 지혜를 간결하면서 힘 있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정치의 요체라고 비중 있게 언급한 근자열 원자래 (近者說 遠者來)는 정읍시장으로서 자치를 실현할 때 가장 기본으로 삼은 행동지침이기도 했습니다. 박경리 선생 님의 토지와 조정래 선생님의 태백산맥은 근현대사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Q. 정치인 유성엽은 어떤 사람입니까?


A. 우리나라 정치는 ‘불신’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표 리부동하고 상황에 따라 말 바꾸기를 잘하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제가 제도 정치권에 들어와 보니 그런 오해를 받기 충분한 상황도 있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자신의 소신과 달 랐던 얘기를 다시 뒤집으려 할 때는 반드시 이전 입장에 대 한 해명과 분명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개인 적으로 신뢰받는 정치인이 되기 위해 한번 약속하고 자신 의 입을 통해 나온 얘기는 반드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편 입니다.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부터 현재까지 정읍에서 국회로 출퇴근하고 있습니다. 시민들과 약속했던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시민단체와 대학 등 으로부터 ‘거짓말 안하는 정치인 상’, ‘ 매니페스토 약속대 상’ 등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Q. 경제가 어렵다보니까 힘들어 하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한 마디 해주시죠.


A. 우리는 기본적으로 좋은 체격을 타고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류 열풍을 타고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에 파고드는 저력도 있고, 올림픽에 나가 힘든 가운데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경제가 힘들지만 경제정책만 잘 펼치면 비정규직/정규직 문제가 아니라 70살 이 넘어도 일할 수 있는 평생직장의 나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경제정책을 잘만 펴면 5년 후에 5~6만불, 10년 후에 8 만불 내지 10만불 시대를 열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젊은이 들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자기가 원하는 일자리를 찾아서 일을 하지 못하는 자체는 엄청난 고통이고 좌절일 겁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십시오. 우리 정치권에서도 정부에서도 대한민국의 위기인 경제를 살려나가기 위해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Q. 위원장님의 어린 시절이 궁금합니다.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요?


A. 저는 굉장히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전라북도 정 읍 옹동면 산성리 옻밭골이라는 시골인데 어릴 때 옻이 많이 올라서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폐교가 된 초등 학교를 다녔는데 80명이 한 학급을 이루는 아주 조그만 시 골학교였습니다. 가난한 집안이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집에서 소유해서 경작했던 논은 약 8마지기 정도였는데 부친께서 부지런하셔서 돈을 임대해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할머니께서 함께 사셨는데 제가 3남1녀 중 큰아들이다 보니 극진히 보살펴주셨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졸업한 후 인근 면에 있는 중학교에 가서 1, 2학년을 마치고, 3학년 때 전주 신흥중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그때부터 객지 생활을 시 작했던 것이죠. 이후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사회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고 세상을 균형 있게 바라보는 마음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Q.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해나가실 건지 각오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A. 교육이 미래를 책임지는 것이기 때문에 공교육 살리기를 통해서 사교육비 부담문제를 해소하는 문제에 대해 노력할 계획입니다. 얼마 전에는 국회 경제재도약 연구포럼도 만들었습니다. 어제 창립주년 행사도 했습니다. 제가 교문위원장이지만 경제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경제문제에 특강자료를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경제재도약 연구 포럼과 같은 것을 통해서 대한민국 경제가 다시 재도약 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정부와 기업을 변하게 만들고 경제 살리기에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경제가 어려우면 해결 가능한 일도 갈등이 증폭됩니다. 결혼도 안하지 않습니까? 저출산이 심각하지만 문제는 결국 돈이거든요. 경제가 잘 돌아가면 결혼해서 애도 낳고 하는데 경제가 어렵다 보니까 아이를 낳지 않는 겁니다.


우리 청년들의 일자리도 없는데 실업자가 어떻게 장가가고 시집가겠어요. 이제 경제 살리기는 생존의 문제입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지금의 어려운 난국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MeCONOMY magazine September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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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의대 정원 확대는 불변”... 의협 차기회장 “대정부 강경투쟁”
대한의사협회가 임현택 차기 협회장을 중심으로 대정부 강경 투쟁에 나설 전망인 가운데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가 의료 정상화의 필요조건이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27일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27년 만의 의대 정원 확대는 의료 정상화를 시작하는 필요조건”이라며 “의대 정원을 늘려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의사 수를 확충해야한다" 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의사들은 갈등을 멈추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 의료 정상화 방안을 발전시키는데 함께 해달라"고 말하며 "의대 교수들은 전공의들이 하루빨리 복귀하도록 설득해주고 정부와 대화에 적극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전공의에 이어 의대 교수들마저 사직서 제출이 이어지면서 의료 공백이 심화할 것으로 보인데. 그런 가운데 정부는 공중보건의사(공보의)와 군의관 200명이 현장에 추가로 투입할 예정이다. 한편, 임현택 의협 차기 회장 당선인은 "전공의 등이 한 명이라도 다치면 총파업을 하겠다"며 강경대응 입장을 굽히지 않아 의정 간 갈등이 쉽게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26일 결선투표에서 당선된 임현택 회장의 임기는 오는 5월 1일부터지만, 의대 입학정원 증원에 반발해 꾸려진 의협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