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이코노미 이홍빈 기자]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국내 총 사업체수는 354만5,000개, 전체 근로자수는 1,596만2,000명이다. 이 중에서 소상공인의 총 사업체수는 306만3,000개, 근로자수는 604만6,000명이다. 총 사업체수에서 소상공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86.4%며, 근로종사자 비율 또한 37.9%에 이를 정도로 매우 크다. 이 때문에 소상공인을 시장 경제의 모세혈관이라고 부른다. 동맥과 정맥이 흐르지 못하는 몸속 구석구석까지 피를 공유해 신체를 원활히 움직이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시장경제의 모세혈관이라 불리는 소상공인들의 한숨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소상공인(小商工人)이란 소기업 중에서도 규모가 특히 작은 기업이나 생업적 업종을 영위하는 자영업자들이다. 도·소매업, 음식업, 숙박업, 서비스업의 경우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자를 소상공인이라 부르며, 광업, 제조업, 건설업 및 운수업의 경우는 상시근로자 10인 미만 사업자를 소상공인이라 칭한다. <소기업 및 소상공인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 시행령 제2조>
다사다난(多事多難) 창업 일기, 결과는 다산다사(多産多死)
국내 소상공인들은 각종 어려움을 겪으며 ‘다사다난(多事多難)’한 시간을 보내며 결국 ‘다산다사(多産多死)’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생존을 위한 과당경쟁이 시장 내에서 매우 치열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소상공인들 사이에서는 5년만 버텨도 성공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2015년 기업생멸행정통계에 따르면 소상기업의 1년 생존율은 62.4%로 10곳 중 4집이 1년 안에 문을 닫는다. 그러나 생존율은 해가 지날수록 급격하게 떨어진다. 2년 생존율은 앞자리가 2단계나 하락한 47.5%, 3년과 4년 생존율은 각각 38.8%, 31.9%로 처음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5년을 버티는 경우는 27.3%로 전체 창업자 4명 중 단 1명만이 살아남는다.
그렇다면 소상공인들은 언제 폐업을 결심하게 되는 걸까? 중소기업연구원 남윤형 연구위원은 영업이익이 최저임금 이하로 떨어질 경우 대부분의 소상공인이 폐업을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남 연구위원은 “2015년 기준 폐업을 결정한 소상공인의 평균 월매출액은 1,051만원으로 영업이익이 112만원 수준이다”라고 전했다. 이는 2015년 최저임금 117만원보다 낮은 금액이다.
게다가 폐업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폐업을 결정하는 소상공인의 대부분이 빚을 지고 사업을 접어야 한다. 남 연구위원은 “평균 폐업비용은 집기처리와 인테리어철거, 처분수수료 등을 합쳐 138만원 수준이고, 창업 시 권리금으로 지불했던 금액회수 비율도 46% 정도로 낮아, 폐업시 평균 1,588만원의 부채가 남게 돼 이후 재기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전했다.
그러나 부채를 떠안고 폐업을 결정하는 소상공인들은 취업전선으로 뛰어들기보다는 재창업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남 연구위원에 따르면 폐업 후 재창업 전 취업경험은 18.1%로 평균 근무기간은 22.2개월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재창업을 고민하는 소상공인들의 대부분이 기존업종을 고수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음식점업의 재창업 비율이 64.8%로 가장 높았고, 이어 소매업(62.8%), 개인서비스업(49.7%), 제조업(49.8%)순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가장 재창업 비율이 낮은 제조업의 경우 음식점업이나 소매업, 개인서비스 등으로 업종을 전환하는 비율이 높아 과밀분야 내에서 창업과 폐업을 계속하게 되는 ‘회전문 창업’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남 연구위원은 “비전문분야 창업으로 인해 경쟁력에 한계가 불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소매업이나 음식점업 등 과밀분야로 과잉진입이 일어나 더욱 출혈경쟁이 심해지고 있다”며 “회전문 창업에 따른 자산 소진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냉혹한 현실
소상공인의 ‘회전문 창업’ 현상은 자유경쟁이라는 시장원리를 적용할 경우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회전문 창업만으로 소상공인들의 애환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흔히 두 경쟁 상대 사이에 힘의 격차가 많이 날 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비유를 들곤 한다. 다윗과 골리앗은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로 몸집이 크고 힘이 센 골리앗을 그보다 작고 약한 다윗이 이긴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성서 속 이야기 일뿐 현실 세계에서 다윗은 골리앗에게 한 주먹 거리도 되지 않는 나약한 존재다. 그리고 현실판 다윗과 골리앗 현상은 자본집약 자유시장경제 속에서 여지없이 적용된다. 골목 상권이라는 경기장에 라이트플라이급인 소상공인 외에 슈퍼헤비급인 대기업이 하나 둘 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8년 이후 소상공인으로 대표되는 국내 자영업자의 수는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반면 대형마트와 SSM(Super Super Market)은 그 범위와 크기가 확대됐다. 1999년 대형마트와 SSM의 개수는 각각 115, 208개였다. 하지만 2011년 8월 기준 대형마트는 444개, SSM은 940개로 10여년 만에 그 수가 4배 가까이 성장했다.
이와 함께 복합쇼핑몰 역시 늘어나는 추세다. 2015년 유통산업백서에 따르면 2000년까지 전국적으로 복합쇼핑몰은 3개에 불과 했다. 그러나 2001년부터 2005년 사이 2개가 늘어나기 시작한 이후 2006년과 2010년에는 10개가 더 생겨났다. 이듬해 2011년부터 2015년 사이에는 전국적으로 31개가 늘어나는 기염을 토하면서 본격적인 복합쇼핑몰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2016년부터 2018년에는 전국적으로 17개의 복합쇼핑매장이 더 들어설 예정이다.
생계형 소상공인의 눈물
“동네 빵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형제과 프랜차이즈가 주변에 입점한 이후로 매출 감소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머그컵과 빵을 무료로 나눠주고, 통신사 포인트 할인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에는 가게에 찾아온 일본인 학생들이 일본에서는 영세가게 옆에 대형 프랜차이즈가 들어서는 일이 없다고 하더군요. 우리처럼 작은 가게들이 망할 때까지 프랜차이즈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이어갈 것 같습니다. 저 같은 영세상인도 먹고 살 수 있도록 정부가 이런 현상을 막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소상공인은 대체로 생계형 업종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사업체가 영세한 규모의 1인 사업체나 가족사업체 형태를 띠고 있으며 가계와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생계형이라는 개념에 대해 법률로 정의가 내려진 바는 없다. 일부 법률에서 ‘살림을 살아 나갈 방도 또는 살림을 살아가고 있는 형편’정도의 사전적 의미로 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는 ‘생계형 자영업’, ‘생계형 서비스업’ 등이라는 말을 하며 ‘생계형’에 대한 개념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소상공인을 업종별로 보면 도·소매업이 85만2,000개(28.2%)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숙박 및 음식점업(60만6,000개, 20.1%), 운수업(36만개, 11.9%), 제조업(30만5,000개, 10.1%), 개인서비스업(27만9,000개, 9.2%) 등이다. 도·소매업과 숙박 및 음식점업 등 이른바 생계형 업종에 소상공인 사업체의 50%가 거주 중인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전국 패션업종 중소기업 202개를 대상으로 한 ‘대기업아울렛 입점에 따른 지역상권 영향실태조사(2015)’에 따르면 복합쇼핑몰이 입점한 이후 인근 패션업종 관련 중소기업의 84.2%에서 매출이 감소했으며 매출 감소량은 평균 43.5%로 매우 심각했다. 이에 복합쇼핑몰 입점으로 인해 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 역시 85.2% 수준으로 높았다. 특히 월 매출 2,500만원 미만 영세 업체의 95.2%에서 매출이 급감하는 현실판 다윗과 골리앗 현상이 일어났다.
법무법인 정도 양창영 변호사는 “복합쇼핑몰이 확장되면서 지역 내 소상공인의 영업환경이 악화되고 있고, 이는 지역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라고 전했다. 해당 문제에 대해 양 변호사는 대규모 유통업자들의 약속을 어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양 변호사에 따르면 L프리미엄아울렛은 복합쇼핑몰 개점을 앞두고 유명 해외명품 브랜드를 위주로 입점해 지역 상권에 있는 일반 브랜드와 중복되지 않도록 약속했으나, 개점 이후 실제 해외명품 매장은 20%에 불과했고 대부분 매장은 지역 상권에서 판매 중인 브랜드와 중복됐다. 이에 인근 상권의 매출은 급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S프리미엄아울렛의 경우 개점 당시 3,500명 수준의 지역 고용 창출을 약속했으나 실제 지역민 고용은 1,250명에 불과한 사실도 있었다. 양창영 변호사는 “대규모 유통업자들의 약속 불이행도 문제지만 정부의 유통산업 발전 정책과 지방자지단체의 복합쇼핑몰 유치 정책도 한 몫 하고 있다”며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송도점 개점 강행한 코스트코, 중기청 사업조정 권고
중소상공인의 반대와 정부의 사업개시 일시 정지 권고에도 불구하고 지난 1월 유통업체 코스트코는 송도점 개점을 강행했다. 인천광역시수퍼마켓협동조합 등 소상공인들은 코스트코 개점 유예를 결정해달라는 요청을 강력하게 해 왔으나, 실제로는 일부 제품 판매와 영업시간, 광고와 홍보 활동 등을 제한하는 권고문에 불과했다. 중소기업청은 코스트코 송도점 사업조정에 대한 사업조정심의회의 심의 결과를 담은 최종 사업조정안을 코스트코에 보냈다.
권고문에 따르면 송도점 코스트코에서는 3년간 담배 및 종량제 봉투를 판매할 수 없다. 아울러 국산 주류 중 소주(360㎖) 및 맥주 (355·500㎖·640㎖)는 20개 이상 묶음 단위로 판매해야 하고, 라면(유탕면류)역시 15개 이상 묶음 단위로만 판매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송도점 코스트코는 물품이나 용역판매를 촉진하거나 광고하기 위해 무료로 제공하는 인쇄광고물을 배포할 수 없으며, 송도점을 기준으로 직선거리 3km 내에서는 회원 모집 활동도 할 수 없다. 또한 장애인과 노약자, 온라인 및 대형가구 구매자 등을 제외한 구매 고객에게는 배달 서비스를 할 수 없으며,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영업시간도 제한된다. 만약 이를 위반할 경우 코스트코에는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예정이다.
한편 중소기업청은 이와 별도로 코스트코가 사업개시 일시 정지 권고를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해 최대 5,000만원의 과태료를 징수할 것이라고 알렸다. 이에 인천시수퍼마켓조합 관계자는 “코스트코는 애초에 협상할 마음이 없었다. 코스트코가 가져간 로얄티만 360억원인데 5,000만원에 눈 하나 깜짝하겠느냐”며 “조정안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더 할 수 있는게 없다”고 토로했다.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 목소리
지난 2월 24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 경제양극화 해소의 첫걸음!’이라는 주제로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중소기업계가 소상공인의 생존권과 가족생계 보장을 위해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의 시급한 법제화를 촉구했다.
법무법인 아인 차상익 변호사는 “국내 소상공인 시장은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면서 생계유지를 위한 대안으로 생계형 업종의 창업이 계속 증가해 과잉 경쟁이 이뤄지고 있으며, 대기업들이 생계형 소상공인 영역으로 대거 진출하면서 소상공인의 경제적 지위가 약화되고 있다”며 현행 소상공인 사업영역 보호 제도의 한계를 꼬집었다.
차 변호사는 “지난 5년간 대기업의 적합업종 권고 이행사항 평가에 대하여 조사 대상자 10곳 중 4곳은 대기업이 적합업종 권고 이행사항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라며 권고 사항이 잘 지켜지고 있지 않고 있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관련 중소기업계 의견조사 결과보고서(2016)’에 따르면 대기업이 적합업종 권고사항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고 답변한 경우 그 이유로 ‘편법을 활용한 우회진출’이 60.0%의 응답률을 얻으며 가장 많은 지적을 받았다. 다음으로 ‘권고사항 위반(30.0%)’, ‘실효성 없는 권고사항(20.0%)’가 뒤를 이었다.
이에 차 변호사는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대책의 일환으로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선정하도록 하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가 중소기업 사업영역 보호 제도로써 기능하기에 근본적 한계가 있다”면서 “현행 적합업종제도가 ‘상생’이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지정절차 문제를 시정하고 효과적인 실효성 확보수단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경제개혁연구소 위평량 연구위원도 “적합업종제도의 일몰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며 차상익 변호사의 의견에 궤를 같이했다. 위 연구위원은 “경기침체의 여파로 특히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사업여건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와중에 적합업종제도의 실효성논란과 폐지 찬반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해당 제도 일몰에 따라 일부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제도의 추가연장에 대한 논의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현재 중소기업계와 야당 측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의 법제화’를 주장하고 있으며, 대기업은 제도 폐지를 여당 측은 현 제도의 보완을 언급하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아 진전이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한국경제연구원 윤상호 연구위원은 “현재 영세업자에게 적합하다고 간주되는 시장이 영원히 영세업자에게 적합한 시장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윤 연구위원은 “영세업자에게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시장은 영세업 적합업종제도의 부재하에서도 자연히 영세업자에 귀속된 시장으로 남아있을 것이다”며 문제는 우리사회가 어느 특정업종이 영세업자나 중소기업에 적합한지 판별할 수 있는 지식과 통찰력이 부족한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장 혁신은 자유로운 시장의 진입과 퇴출로 가능하다”며 적합업종 지정과 법제화는 기존 시장 구조를 고착화시켜 모든 소비자에 피해를 주는 형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장의 역할, 장기적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박정수 교수는 “복합쇼핑몰 때문에 소상공인이 힘들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규제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이 원하고 편리한 복합쇼핑몰을 규제하자니 여러 관점에서 복잡한 현실이다”라고 운을 뗐다. 박 교수는 “근본적으로 상공인의 기본적인 시장에서의 역할은 서비스다. 시대와 상황이 변하면 수요에 따라 서비스도 변해야만 정당성이 부여 된다”며 시장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단기적인 대책일 뿐 장기적인 대책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교수는 “현재 소상공인의 가장 큰 문제는 과잉공급에 의한 과당경쟁이다”며 공급을 줄여나갈 수 있는 방안을 장기적으로 찾아야 한다. 자영업 생존율이 20% 수준으로 낮은 현실인데 창업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무모한 도전이다”라며 사회적 측면으로 각종 재무 컨설팅 등이 활성화 돼 창업의 낮은 성공률과 심각성 등 정보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기업 규제는 풀되 사회안전망은 강화해야 우리 사회가 갈등구조를 벗어날 수 있다”며 소상공인을 생계형과 혁신형으로 구분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