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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파괴되면 사람도 기업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블랙야크 강태선 회장

 

동대문 1평 점포의 신화, 미군 배낭을 고쳐 팔기 시작해 국내 굴지의 아웃도어 기업을 만든 블랙야크의 강태선 회장. 그는 기업의 매출보다 서울 근교의 수백 수천 개의 산에서 솟아나야 할 약수터의 물이 마르고 있다며 걱정했다. 전문 등반가이기도 한 그가 전 세계의 산을 다녀보면서 얻은 결론은 하나, 끝 없는 성장을 요구하는 자본주의적 기업에서 지구에 휴식을 주는 친환경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신이었다. 제초제로 풀이 죽은 둘레길에 충격을 받았다는 블랙야크 강태선 회장을 만나 환경을 살리며 지속 가능한 기업 경영이 가능한 것인지, 그의 ESG 경영 선언을 들어봤다. 

 

Q. 블랙야크라는 이름이 참 멋진데, 어떤 동물입니까?

 

 강태선 회장   히말라야 3000m 이상의 고산에서 사는 동물입니다. 우리가 2500m 이상으로 올라가면 산소가 부족해서 생활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그런 곳에서도 사람이 살고 있지요. 그들은 야크로 농사를 짓고 물건도 운반합니다. 예전에 우리나라의 소가 그랬듯이 히말라야 고산에서의 야크는 사람을 위해 사는 동물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지요. 야크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고, 야크는 사람에게 털과 고기를 주고 있으니까요. 

 

Q. 야크가 검은 털을 가진 블랙만 있습니까?


 강태선 회장   점박이도 있고 흰색도 있고 얼룩무늬도 있습니다만, 85%는 새카맣습니다. 

 

Q. 블랙야크 앞에 붙은 BYN은 무슨 뜻인가요?


 강태선 회장   우리 회사의 브랜드이자 상호인 블랙야크를 가지고 미국, 독일 등 유럽에 진출하다 보니 그 이름이 현지인 들에게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블랙야크의 Black에서 B를 따고, Yak에서 Y를 따서 BY로 했고, 거기에 Network의 첫 글자 N을 붙여서 BYN으로 만든 겁니다. 그것을 영어로 풀어보니 ‘Base Camp In You A New Life’가 되었는데, 우리말로 ‘당신의 새로운 삶의 베이스캠프’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BYN을 블랙야크의 브랜드 앞에 내세우게 되 었지요. (하하하)

 

우리가 살아 가려면 기본이 잘 되어 있어야 하잖아요. 베이스캠프가 잘 갖춰져야 히말라야 원정을 할 수 있듯이 우리의 삶도 탄탄해지는 거지요. 그런 정신을 가진 블랙야크 옷을 입으면 그래서 여러분의 새로운 삶이 시작 될 겁니다.  

 

 

Q. 왜 그렇게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강태선 회장  우선 힘이 나지 않습니까? 블랙야크 옷을 입고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히말라야, 로키산맥으로 떠나는 즐거움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어요. 그냥 집에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탁한 공기 속에 얼마나 나태해지겠습니까. 블랙야크 옷을 입고 나가면 힘이 난다 이거죠.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듯이 블랙야크 옷을 입는 순간 히말라야의 기운이 그냥 확 밀려오는 거지요.

 

Q. 동대문 의류 상가의 한 평짜리 매장에서 시작해서 6,500억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으로 성장했지요?


 강태선 회장  한때 매출이 6,500억 원이 넘을 때가 있었지만 최근 코로나-19의 여파로 많이 떨어진 측면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 회사는 매출보다는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자부심이랄까, 전 세계의 고봉을 정복했던 전문 산악인들에게 사랑 받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Q. 현재 몇 개 나라에 수출하고 있으며, 매출이 가장 많은 나라는 어딥니까?

 

 강태선 회장  현재 28개 나라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매장 수는 약 800개이고요. 매출이 가장 많은 나라는 아무래도 우리나라입니다만, 중국의 성장세는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Q. 중국에서 블랙야크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강태선 회장  중국인들의 블랙야크에 대한 선호도가 아주 좋습니다. 블랙야크 서식지가 바로 티베트이거든요. 티베트는 중국령이잖습니까? 운남성(雲南省)이나 사천성(四川省)에 가보면 야크 동상이 아주 많고, 블랙야크에 대한 중국인들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관점이 아주 좋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50년 전 블랙야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강태선 회장  아무것도 없었죠. 한 평도 너무 과분했으니까요. 도시 정비가 안 돼 있을 때라서 점포 앞의 인도를 침범해서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Q. 고향이 제주라고 하셨지요?


 강태선 회장  그렇습니다. 지금은 통합됐습니다만, 남제주군 중문면 하예리 45번지에서 태어났죠. 지금은 중문관광단지 안에 들어가 있는데 그곳은 어릴적 제 놀이터였습니다.


Q. 서울로 오신 이유가 있었나요?

 

 강태선 회장  제주도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통행 금지가 있을 때라 아침에 출근해서 밤 11시까지 일하면 집에 못 갔어요. 퇴근은 시켜줬지만, 통행 금지가 있으니까요. 스트레스가 너무 많은 겁니다. 그래서 산이 많다는 서울에 가서 등산이나 하고 와서 일해야겠다고 서울로 온 겁니다. 서울에 와 보니까 도봉산, 북한산, 관악산, 청계산, 수락산 등등 정말 산이 많더라고요. 산에 올라가려면 배낭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당시에는 군수 물자가 아니면 배낭이 없었어요. 군용 배낭을 수선에서 팔았는데 미군 배낭을 메고 산에 올랐다 배낭이 제 등과 맞지 않아 움직일 때마다 스치는 부분이 너무 아픈 겁니다. 

 

그래서 그 배낭을 뜯어서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길래 몸에 맞지 않는지 알아봤지요. 그런 다음 동대문 종합시장에 가서 원단을 사다가 제가 본을 뜬대로 잘라서, 옷을 수선하는 분께 가져가서 바느질을 부탁했어요. 그렇게 해서 만든 배낭을 메고 산에 다녀보니 너무 편 한 겁니다. 얼마나 신이 났던지, 휴가 기간이 끝난 줄도 몰랐어요. 제주도에 가는 걸 깜박 잊어버렸던 거지요. 그래서 서울에 주저앉게 되어 버렸어요. 

 

 

Q. 그럼 아웃도어 사업에 뛰어드신 계기가 있었나요?


 강태선 회장  제가 직접 디자인한 배낭을 하나씩 만들어 팔아보니까 아주 잘 팔렸어요. 그래서 이걸로 사업으로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긴 겁니다. 배짱 좋게 이모님께 30만 원을 빌렸습니다. 당시로 치면 큰돈이었습니다. 일단 그 돈으로 점포를 얻었고, 배낭만 80개를 만들어 산에서 만났던 지인들을 개업식에 초청했습니다. 배낭은 1시간도 안 되어 다 팔렸어요. 그런데 내일 돈을 주겠다던 사람들이 아무도 안 주는 겁니다. 그게 고스란히 부채로 남았죠. 막막하데요. 그렇다고 제주도로 갈 수도 없고요. 이모님께 이실직고했죠. 그래서 이모님 회사에서 빚을 갚을 때까지 무보수로 일을 했고, 다시 이모님께 부탁해서 돈을 빌려 재 도전을 했지요. 

 

Q. 그 어려움을 한 평짜리로 재도전했는데, 어떻게 극복하신 거예요?


 강태선 회장  방법은 없었어요. 이제는 내일 준다는 말은 절대 믿지 말자, 돈을 안 주면 물건을 주지 말자. 만지지도 못하게 하자. 이 철학을 지켰습니다. 실패해서 교훈을 얻은 것이었죠. 또 고객들의 진실성을 놓치지 말자, 찾아오는 사람들은 모두 산에서 만났는데 제가 이익만 추구하려고 한다든가 품질이 떨어지면 신뢰가 무너지잖아요. 이 두 가지만큼은 꼭 지킨다는 신념으로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Q. 디자인도 직접 하셨나요?

 강태선 회장  디자인이라고 할 건 없지만 나름 기능성 배낭이 었죠. 그걸 메고 산에 가면 만나는 분마다 배낭이 아주 멋있다고 했어요. 아마도 국산 배낭 1호 배낭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Q. 기능성도 뛰어났나요?


 강태선 회장  당시 기능성은 검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몸에 딱 붙으니까 편하더라, 이 정도였죠. 경험에 의한 디자인이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그게 기능성이라고 하면 기능성이겠죠. 

 

Q. 제주도 사투리 중에 다른 지역에 사시는 분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사투리는 뭐가 있을까요?


 강태선 회장  ‘절갱’이라는 과일이 있어요. 바나나식 과일인데 바나나는 아니고 제주도 특산품입니다. 아주 맛이 좋습니다만 생산량이 많질 않아서 대도시로 유통이 안 됩니다.

 

Q. 블랙야크가 큰 기업으로 성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강태선 회장  결정적인 계기라기 보다는 기업인들이 다 마찬가지겠습니다만,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미래에 대한 예측과 도전, 그리고 실천입니다. 아무리 좋은 예측도 말로만 하고 실천을 안하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Q. 축적된 성장을 해왔겠지만 어떤 터닝포인트가 있었을 거 같은데요?

 

 강태선 회장  한국에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를 최초로 등정한 산악인 고상돈 대원이 저의 제주도 친구입니다. 그가 귀국했을 때 김포공항부터 시작해서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 환영을 받았죠. 국민적 영웅이었어요. 그때가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습니다. 등산 붐이 일어나 배낭 모양만 갖추고 있으면 다 팔릴 정도였으니까요. 배낭을 만드는 사람도 별로 없었구요. 

 


 

Q. 코로나-19 기간에도 오히려 매출이 늘었다고 하던데요?

 

 강태선 회장  코로나-19 첫해는 많이 떨어졌습니다만, 다음 해부터 국민의 인내가 한계에 이르기 시작하면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욕구가 생겼고, 젊은이들이 산을 찾으면서 지난 해 매출이 늘어났습니다. 

 

Q. 위기를 기회로 바꾸셨던 사업적인 감각, 또는 능력을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하시겠습니까?


 강태선 회장  국립공원에 관리공단이 생기면서 지난 92년 국립공원 내에서 취사라든가 야간산행을 금지했습니다. 그때 까지만 해도 야영 장비를 팔 수 있었는데 금지된 겁니다. 당시 제가 히말라야 원정 갔을 때였을 겁니다. 문득 앞으로 분명, 산에도 패션 시대가 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는 그때부터 광고를 시작했지요. 그리고 실제로 산악 패션 시대가 왔어요. 아웃도어 붐이 일어난 겁니다. 

 

Q. 최근 빈 페트병으로 옷을 만든다고요?


 강태선 회장  우리가 먹는 생수병을 재활용해서 옷을 만듭니다. 현재 우리 회사 제품 중 재활용 친환경 제품은 약 40% 정도인데 내년 50%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 2층 공간에는 페트병을 재활용하는 과정부터 K-PET 재생 섬유로 만든 의류, 신발, 가방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늦은 감이 있습니다. 선진국들은 이미 버려진 페트병을 재활용해서 제품 소재로 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그 원료를 수입해서 제품을 만들었죠. 아쉬운 점은 국내에서 버려진 페트병 재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우리 회사는 오랜 기간 시장 조사도 하고 연구를 통해서 투명 페트병 자원 순환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처음에는 힘든 과정이 있었지만 여러 기업이 동참해 주면서 지난 2020년 7월, 이 원단으로 티셔츠를 만들어 국내 최초로 우리나라 페트병 패션 상품을 시장에 출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현재는 약 100 종류가 넘는 원단이 개발돼서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고요. 원단 소재의 감촉이라든가 항균, 항취(抗臭) 기능이 아주 뛰어납니다. 이 친환경 소재는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아주 시원합니다. 

 

 

Q. 페트병을 재활용하려면 정부라든가 민간단체 등의 협조가 필요할 텐데요?


 강태선 회장  환경부에서 많이 협조하고 있습니다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법적으로도 지방자치단체를 지원해야 한다고 봅니다. 기업은 투자하고 국민은 분리수거를 하는 등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만 버려지는 쓰레기가 경제적인 효과를 내고 경제도 선순환이 됩니다.

 

우리나라는 전기자동차를 살 때 정부가 지원을 해주잖아요. 이같이 페트병 재활용 제품을 사면, 정부가 지원금을 주는 제도를 국회가 논의해야 하지 않겠어요? 일반 소비도 중요 하지만 정부가 소비할 수 있는 군복이라든가 경찰복과 같이 공직사회에서 소비되는 옷들도 우리나라의 플라스틱 재활용 제품을 사 주고요. 

 

 

Q. 외국에서도 쓰레기를 수입해 오고 계시는 데 어느 정도인가요?


 강태선 회장  작년, 재작년에 일본, 대만, 중국에서 들어온 게 약 7천200톤입니다. 전체 소비량의 약 60%가 외국에서 오는 겁니다. 가격이 비싸지는 않습니다만, 어쨌든 돈 주고 사 오고 있습니다. 왜 외국에서 쓰레기를 사다가 재활용하냐고 하는데 기업이 꼭 이익만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설사 지금은 손해가 오더라도 기업이 사회적으로 해야 할 역할이 라면 마다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Q. 세계적인 환경기업의 대열에 블랙야크가 합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구촌 환경보호에 관심을 가지신 배경이 있으십니까?


 강태선 회장  저는 기업인이면서 산에도 다니는 등반가입니다. 고산 등반을 아주 많이 했죠.

90년대까지만 해도 히말라야에 가면 자연이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환경변화를 느끼지 못할 정도였죠. 그러다 2천년대 들어서면서 빙벽이 떨어져 내리고 빙하가 녹으면서 물이 없던 곳에 물이 생기는 겁니다. 지구 온난화를 직접 본 것이죠.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히말라야 청소부터 시작했습니다.

 

2016년부터는 중국 네이멍구 쿠부치 사막에서 황사 방지를 위해 펼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환경운동가와 기업이 상반된 의견이 많았습니다만, 이제는 서로 공존해야 합니다. 기업도 환경에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왔단 얘기죠. 특히 우리 회사는 아웃도어 기업이기 때문에 자연과 더불어 성장해야 하고 환경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입니다. 

 

Q. 고향인 제주도에 무려 1천억 원을 들여서 야크 마을을 설립 하셨다죠? 어떤 마을입니까? 


 강태선 회장  요즘 인구가 줄고 있지 않습니까. 스트레스도 많고요. 산업화 사회에서 지치고 나약해진 분들의 휴식 공간입니다. 제주도가 관광지라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농어촌 휴양단지를 만든 겁니다. 글자 그대로 쉬면서, 놀면서, 농어촌의 자연과 풍경을 감상하는 생활을 하면서 쉬어보자, 그런 취지로 만든 게 야크 마을입니다.

 

야크라는 동물이 세상에 태어나 죽을 때까지 인간을 위해서 모든 걸 다 주고 가는 데 그런 서비스를 야크 마을에서 한번 받아 보시는 게 어떠냐는 것이지요. 야크 마을은 자연 그대로 보존 돼 있습니다. 건물을 자연을 밀어내고 지은 게 아니고 자연 그대로 살렸습니다. 건물은 짓는 자리만 파내 올렸습니다. 원래 있던 소나무는 그냥 그대로 있고, 모든 나무는 나무대로 그대로, 돌도 있는 생겨난 그대로 그냥 있습니다. 

 

 

Q. 발생하는 수익은 지역사회에 다 환원합니까?


 강태선 회장  기업을 하고 기업이 돈을 벌면 그 돈에 대한 역할이 있어야 합니다. 돈을 갖고 갈 수는 없잖아요. 돈의 역할을 만들어 놓고 지역사회에 돌려주는 겁니다. 사회에 환원하는 하나의 수단이죠.


Q. 히말라야 네팔 청소년을 위해 상당히 좋은 일을 하고 계시는데 어떤 일이십니까?

 

 강태선 회장  5년 전 네팔에 큰 지진이 나지 않았습니까. 엄청난 지진이 있고 나서 전 국민이 파괴 되다시피 했습니다. 당시 네팔에서 가서 후원금을 내고 복구사업에도 동참했습니다. 막상 가서 보니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과정이 있었어요. 한 마을을 복원하는데 참여하여 초중고 학교 건물을 복원하고 의료시설이 부족한 것도 보충해 주고요. 요즘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커피나무를 심는다든지, 박을 키우는 것들을 자문해주면서 네팔 국민이 자립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장학생도 육성하고 있는데 최근 코로나 때문에 많이 모으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계속할 생각입니다.

 


Q. 회장님이 원래는 유명한 산악이셨다면서요. 유명한 산악인들이랑 같이 등반도 하셨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분은 누구일까요?

 

 강태선 회장  우리나라에서 8천m 14개 봉우리를 등반한 친구가 일곱 명인데 이들 중에 3명과 같이 했어요. 저보다도 더 유명한 엄홍길 대장은 79년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만나서 오늘날까지 같이 친분을 갖고 있고요. 세계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개 봉우리를 오른 오은선 씨하고도 같이 등반하고요. 근래에는 14좌 완등한 김미곤 대장도 같이 등반했습니다. 제가 유명한 산악인이 아니라 제가 도와주는 친구들이 유명한 산악인이 된 것이죠.

 

Q. 기업 50년 인생을 정리하면서 강태선 회장의 성공 비결 뭐라 고 생각하십니까?


 강태선 회장  강태선 = 블랙야크다. 블랙야크는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을 위해서 고기와 털과 심지어는 배설물까지도 다 내놓습니다.  블랙야크만은 못하더라도 저 또한 모든 노력을 다해서 야크와 가까운 생활을 하고 살아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히말라야에 가서 고산 등반을 하면서 산소 부족한 데서 블랙야크가 사는 것만큼 저도 고통을 받아 왔느냐, 이걸 비교하면서 기업에 접목하는, 어떻게 보면 나 자신이 나약한 점을 채찍질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위기도 많았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강태선 회장  위기가 오면 정면 돌파합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가 와서,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된다고 하잖아요. 되는 부분이 1%라도 있는 걸 찾아내야죠. 호황과 불황이 뭐예요. 60% 안되고 40%는 잘 된다는 거잖아요. 아무리 호황이라도 불황은 있습니다. 안되는 분야가 있어요. 안되는 분야에 서면 안되겠지요. 어떤 위기가 오더라도 잘 되는 부분을 찾아내서 그게 1%가 되든 5%가 되든 방법을 찾아서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저는 늘 ‘정면 승부를 걸라’고 강조합니다. 이것 때문에, 후퇴하겠다, 하면 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호시우행(虎視牛行)입니다. 호랑이 같이 보고, 소 같이 신중하게 행동을 하라는 거지요. 베트남 전쟁 영웅이 쓴 책을 읽다 보니까 ‘남과 다르게 싸워야 이긴다’고 쓰여 있더라고요. 똑같이 하니까 안된다는 것이거든요. 다른 방법을 찾아내면 된다는 의미죠.

 

 

Q.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회장님께서 꼭 해주고 싶은 메시지는 뭘까요? 

 

 강태선 회장  길을 따라 가되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라, 이 말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만, 취업도 안 된다, 결혼도 어렵다, 이게 다 어려운 쪽으로 생각하게 되면 어렵습니다. 불만을 가지면 되는 게 없어요. 되는 쪽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취업이 안 된다면, 눈높이가 높아서 안되는구나, 하고 눈높이를 낮추면 취업이 안 될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결혼도 그런 생각을 가진다면 충분히 잘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사람이 자기 욕구를 100%에 놓고 거기에 맞추려고 하면 되는 게 없어요. 100%가 필요하지만, 70%~80%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도전해야 갈 길이 보입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간다, 간다고 한들 앞이 보일 리 없죠.

 

흔히 ‘길이 끝나는 시점에서 등반을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등반은 길이 없어요. 길이 끝나는 시점에서 등반을 시작해야 하니까요. 길이 있기를 바라면 안 되는 거죠. 어렵지만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면서 등반하는 이런 생각만 가지고 있다면 젊은 친구들의 꿈이 새롭게 보일 거라고 봅니다. 

 

Q. 회장님께서는 지속 가능한 기업을 위해서 ESG경영을 강조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강태선 회장  지난 2015년 UN에서 정한 지속 가능한 경제사회 활동이 있습니다. 그 뒤로 ESG가 나왔어요. 그전부터 그런 말이 있었지만, 개념정리가 안 됐었죠. 그러다가 UN에서 지속 가능한 경제사회 활동을 선포하고 그걸 지키자고 한 겁니다. 지난달 16일 국회에서도 ESG 민간합동정책 토론회도 열려서 저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습니다.

 

저는 산악인이고 아웃도어를 하는 기업을 경영합니다. 우리 기업은 산과 자연과 연관이 많으니까 환경과 지속 가능한 경제 활동을 꾸준히 해온 것이고 앞으로도 더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플라스틱을 재활용해서 옷도 만들고요. 기업이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과거에는 기업이 돈만 벌었다면, 요즘은 많은 변화가 왔습니다. 개념의 변화가 왔어요. 돈은 벌더라도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대상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선 환경을 생각하고 재활용을 통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언젠가 이낙연 전 총리께서 우리 회사를 방문하셨는데 플라스틱을 재활용해서 옷을 만든다고 하니까 “당신 그거 거짓말 아니냐”고 하시는 겁니다. 직접 보시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고 했더니 직접 보시고 나서 “진짜구만~” 하시며 웃으시더라고요. 

 

 

Q. ‘자연이 파괴되면 인간이 생존할 수 없다고 합니다.’고 합니다. 회장님이 보시기에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강태선 회장  환경이라는 단어는 80년대에 생긴 겁니다. 그전에는 환경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어요. 그러다 산업화로 인해 공장에서 폐수가 나오고, 오염이 시작되니까 환경운동이 시작됐습니다. 그럼, 그전에는 환경이 전혀 없었냐. 그러지 않습니다. 산에 가서 쓰레기도 줍고 소나무에 붙은 송충이도 잡고 했던 게 환경운동의 시초입니다.

 

식목 행사도 자연 보호거든요. 식목 행사 시초가 1947년 4월 5일 효창공원에서 처음 시작된 겁니다. 그때부터 자연 보호가 시작된 것이죠. 지금은 어때요? 지구를 살리자, 탄소 중립 이런 고차원의 단어가 나오잖아요. 환경에 변화가 왔다는 얘깁니다. 과거에는 땅에서 농사를 지을 때 농사를 짓고 흙을 일 년 쯤 쉬게 했어요. 땅심을 기른 다음에 농사를 지었죠. 그게 바로 환경보호입니다. 땅도 힘이 있어야 풀을 성장시키니까요.

 

지난해 여름에 제주도 올레길을 두 바퀴 돌았는데 밭에 풀이 없어요. 제초제를 뿌려버리니까요. 일손이 없어서겠지만 다음 자식 세대는 어떻게 합니까. 한계가 온다는 거죠. 옛날에는 약수터가 있었지만 지금은 물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말라버렸어요. 우리가 그 심각성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내 일인데 남의 일처럼 생각한단 말이에요. 서울 근교만 해도 산이 수백 수천 개인데, 그 많던 약수터가 하나도 없다는 건 심각한 겁니다. 산을 좋아하는, 자연을 사랑하는 기업인으로서 이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기업을 해야겠구나, 하고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오늘 장시간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 했습니다. 우리 기업의 제품을 사랑하시고 아껴주시는 소비자 여러분과 환경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감사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MeCONOMY magazine July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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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후손 20명, 한국 국적 취득
독립유공자 후손 20명에게 대한민국 국적이 수여됐다. 법무부는 11일 서울시 서대문구에 위치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제77주년 광복절 기념 독립유공자 후손 대한민국 국적증서 수여식’을 가졌다. 오늘 수여식에서는 독립유공자들의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고 그 후손이 대한민국 국적을 받아 온전히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자리를 축하하기 위해 이들에게 국적증서를 수여했다. 이날 행사에는 독립유공자 후손인 장호권 광복회장과 독립유공자 후손이자 대한민국 특별공로 특별귀화자 1호인 인요한 박사가 참석해 "선배 귀화자이자 독립유공자의 후손, 대한민국 국민으로 같다"며 "이 땅에서 행복을 꿈꾸며 함께 살아가자”고 격려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계봉우 선생의 증손 계에두아르드 씨와 조명희 선생의 현손 김나탈리아 씨, 강연상 선생의 외증손 김유리 씨 등 후손 20명에게 국적증서를 직접 수여했다. 김유리 씨는 “할아버지의 독립활동을 잊지않고 기억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자랑스러운 한국인디 되겠다”고 말했다. 또 김나탈리아 씨는 “할아버지는 고려인 문학의 아버지이자 민죽문학의 선구자이시며, 후학 양성에 크게 기여한 위대한 분”이라며 “할아버지의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