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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일상의 경제학〕 돼지 농장에서 생긴 일(1)

운전기사 뒷자리에 앉아 출퇴근하는 사장님들의 눈에 가장 잘 띄는 건물이 어딜까? 그런 건물에 건축회사 간판을 걸면 사무실이 없더라도 건축의뢰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최근 남의 집 머슴살이를 끝내고 자립한 그는 사무실 낼 돈이 없었으나 건물관리인에게 매달 얼마간의 돈을 내고 건물 옥상에 그의 누이동생의 전화번호가 적힌 가짜 건축회사 간판을 달기로 했다. 그런데 일주일쯤 지났을까, 누이동생이 전화를 받았다면서 넘겨준 연락처는 어느 돼지 농장 총무의 번호였다.

 

돼지 새끼들이 죽어 나가는 농장

 

“우리 회사 사장님이 출근하시다가 로터리 건물 위의 옥상에 붙은 건축회사 간판을 보셨나 봅니다. 돼지우리 공사는 튼튼하고 안전해야 하니까 큰 회사에 맡겨야 한다고 하시면서 저 보고 연락을 하라고 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돼지 농장 총무가 어떻게 알고 전화를 했는지 궁금했던 그는 총무의 설명을 듣고, 간판을 옥상에 걸어두길 잘 했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찾아간 돼지우리는 충북과 경기도 경계 지역에 있었는데, 수천 마리의 새끼 돼지를 반년 동안 키워 마장동으로 보내는 그가 상상한 규모보다 큰 농장이었다.

 

“돼지 새끼들이 자꾸 죽는데 이유를 모르겠어요. 병 때문이 아닌데 추워서 그런지 잘 크지도 않고요. 그래서 돼지우리를 다시 지어보려는 것입니다”라고 40대 초반의 총무가 그에게 설명했다. 돼지 농장은 처음이었지만 자신이 고향 시골에서 돼지를 키워본 그는 경험을 살려 말했다.

 

 

“저도 돼지를 키워봐서 아는데요. 돼지는 매우 추울 때 얼어 죽거든요. 그래서 우리에 짚을 듬뿍 넣어줬지요. 여기는 콘크리트 바닥입니다. 콘크리트 바닥은 물청소하긴 좋지만 한 겨울철에는 얼음판같이 냉골로 바뀝니다. 제가 오늘 밤 여기를 지켜보면서 돼지 새끼 상태를 살펴보고, 어떤 돼지우리가 지어야 좋을지 사장님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날 밤 그가 있어본 돼지우리는 시베리아처럼 추웠다. 바깥의 매서운 한기가 아무렇게나 쌓은 돼지우리 벽돌 틈을 타고 바람에 전깃줄 엉키는 소리를 내며 들어왔고, 이런 매서운 바깥의 한기를 견디지 못한 돼지 새끼들이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다가 저체온으로 얼어 죽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 날 그는 사장에게 어젯밤에 자신이 보았던 상황을 그대로 보고했다. “돼지우리 안이 엄청나게 추었습니다. 제가 있어 봤거든요. 돼지 새끼들이 말을 못해서 그렇지, 추워서 얼어 죽을 것 같다고 제게 꽥꽥거리는 듯했습니다. 사람도 한겨울에 냉골에서 자다가 죽을 수 있잖아요. 돼지도 사람과 똑같습니다. 사장님, 돼지 새끼는 얼어 죽고 있어요,”

 

그의 보고에 충격을 받은 사장이 전 직원들을 사장실로 호출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들 말이야, 돼지가 왜 죽는지 몰랐어? 이 사람이 어제 돼지우리에 있어 보니 우리 돼지 새끼가 추워서 얼어 죽는다는 거야, 그래 돼지를 수십 년 키웠다면서 돼지가 얼어 죽는지도 몰랐단 말이야? 우리 돼지 농장을 다시 지을 거야.

 

이 사장님이 하라는 대로 해 알았어? 사장님, 우리 돼지우리를 어떻게 지을 실 겁니까?” 사장의 분노가 끝나는 동시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쏠리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장에서 느낀 그대로 말했다.

 

“돼지도 사람과 똑같습니다. 사람들의 방처럼 보일러를 놓고 벽을 두껍게 하고 스티로폼으로 외벽과 천장을 단열처리를 해서 돼지우리 전체를 단열 박스 형태로 만들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돼지는 추위에 견디고 잘 클 것입니다.”

 

돼지도 사람과 똑같은 존재이니까 온돌방을 만들어주자는 그의 아이디어에 수십 년 돼지를 키워온 전문가들은 일순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장이 최종적으로 말했다. “좋습니다. 우리 시범으로 돼지우리 한 동을 고쳐주십시오. 만약 효과가 있다면 우리 농장 전체를 고치겠습니다.” 

 

국방색 점퍼를 입은 가짜 직원들, 돼지우리 농장으로 입성하다

 

그렇게 되어 그는 가짜 건축회사 간판을 내걸고 처음으로 2천만 원짜리 돼지우리 공사를 수주하게 되었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간판만 있는 회사에 직원이나 인부가 있을 리 없었다. 인부를 구한다고 해서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농장 사장은 완벽한 공사를 해 주면, 전체 공사도 맡기겠다는 약속까지 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인부를 이끌고 현장을 지휘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문득 그는 평소에 존경하던, 선글라스를 끼고 혁명군을 지휘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을 떠올리며, 자신도 군용점퍼를 입고 선글라스를 끼기로 했다. 그리고 점퍼를 사서 회사 이름을 새기고 인부들에게 모두 입히면 의젓한 회사 흉내를 낼 수 있고, 자신은 인부를 지휘할 수 있을 듯했다.

 

그는 의류 시장으로 가서 국방색 점퍼 50벌을 사고 많이 사는 만큼 회사 명찰을 새겨 달라고 매장에 요구했다. 그렇게 회사 이름이 새겨진 점퍼를 들고 한 인력시장에 간 그는 망치질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았으나 망치질을 할 줄 모르면서 지원한 사람이 있었다. 천하의 오합지졸은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싶었던 그는 모인 인부들을 향해 말했다.

 

“저는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돈을 줄 겁니다. 잘못하면 바로 쫓겨날 각오를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있는 사람만 오십시오. 못할 것 같으면 지금 당장 못한다고 하십시오.” 그러자 10명의 인부가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들이 떠나자 그는 다시 그들에게 말했다.

 

“이 공사는 2주 만에 끝내야 합니다. 저도 처음 하는 일이어서 그 기간에 해내지 못하면 망합니다. 지금 40여 분이 계신 데 혹시 스스로 망치질을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좋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사람 가운데 망치질을 잘 하는 사람을 한 사람씩 데려와도 좋습니다.”

 

그의 호소가 먹혀서인지 출발장소인 시외버스 터미널에 모인 인부는 어디서 왔는지 망치질을 잘하는 10명 등 총 50명이 모였다. 그는 이들에게 자기 회사에서 일하려면 회사 점퍼를 입어야 한다면서 한 벌당 3천 원에 팔았다.

 

“점퍼를 입기 싫으신 분은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점퍼 값은 노임에서 제외하겠습니다.” 그러자 인부들이 잠시 술렁이다가 마치 좋은 회사에 취직한 양 좋아하며 점퍼를 입었다. 당장 똑같은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터미널에서 서성대자 터미널은 그들만의 장소처럼 보였다. 한 가지 복장으로 통일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두 눈으로 처음 보았다.

 

군인과 경찰에게 제복을 입히는 이유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런데 똑같은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한 버스에 올라타자 바퀴가 펑크가 날 직전이었다. 버스 운전기사는 출발할 수 없다고 투덜대면서 운전석에서 아예 내려와 버렸다. 그가 버스 사무실로 들어가 말했다.

 

“지금 이 사람들은 건축회사 직원들입니다. 저는 사장이고요. 돼지 농장 공사를 하러 가는데 지금 출발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저 버스 한 대가 예비차량인 것 같은데요. 손님이 많을 때 운행하라고 있는 거 아닙니까. 우리 직원을 합하면 저까지 51명이니까 예비차량으로 편의를 봐 주세요. 정말 급해서 그런 것이니 헤아려 주십시오.” 그가 사정하자 버스 사무실 직원이 말했다.

 

“직원이 이렇게 많으면 회사 차로 가야지요. 지금 운전기사가 없으니까 조금 기다리세요. 운전기사가 오면 출발하도록 할 테니 일단 버스에 탄 분들은 내리라고 하십시오.” 이렇게 되어 51명이 모두 똑같은 복장에 똑같은 회사 마크를 달고 버스에 오르니 마치 그들이 버스를 통째로 전세를 낸 것 같았다. 이 버스가 돼지 농장에 도착하고 버스에서 똑같은 국방색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내리는 모습을 본 돼지 농장 직원들은 이구동성이었다.

 

“역시 큰 회사는 뭔가 달라도 다르네.” 그 역시 큰 회사의 사장 겸 돼지 농장을 혁신적으로 개조할 혁명군 사령관으로서 대접을 받으며 당당하게 입성했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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