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간 쌓인 그을음의 두께가 보여주는 세계 최초의 석유 생산지
유엔 기후변화협약(FCCC,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에 참여한 회의 당사국들(Conference of Parties)은 매년 한 번씩 총회를 열어 의사결정을 한다. 이를 영문 첫 글자를 따서 COP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COP29는 29번째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라는 뜻이다.
올해는 오는 11월 러시아와 이란 사이에 끼어있는 카스피해 연안의 작은 산유 국가인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열리게 되는데, 바쿠는 지금까지 100년 이상 석유와 가스를 생산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초의 석유 도시다. 어떻게 그런 석유 도시에서 UN 기후총회가 열리게 되었는지 의아스럽기 짝이 없지만, 몇 달 뒤에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날라온 기후 관련 외교관들이 해마다 뜨거워지는 지구의 앞날을 놓고 치열한 언쟁을 벌이 기 위해 모일 것이다.
아제르바이잔은 불의 나라로, 페르시아어 '아자르'와 나라라는 뜻을 가진 아랍어 '바이잔'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특히 수도 바쿠에서는 기원전 3천 년 전부터 석유와 가스가 곳곳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1848년 세계 최초로 석유가 생산된 곳이 이곳 비비-헤이밧(Bibi-Heybat) 유전이다. 이는 세계 최초로 상업적 시추가 이뤄졌다는 미국 펜실베이 니아의 드레이크 유정(1859년)보다 10년 이상 빠르다.
바쿠에서 몇 마일 떨어진 카스피해 연안의 한 지역은 100년이 넘는 동안 검은 도시라고 불리고 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집과 공장의 지붕과 벽은 정유 과정에서 나오는 그을음의 두께로 얼룩덜룩하다. 화석 연료의 유산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인구 천만의 나라에서 올해 유엔 기후총회가 열리게 된 것은 정말이지 우연한 기회였다.
유엔 기후 회의는 아메리카, 서유럽, 아프리카, 아시아-태평양, 동유럽 등 5개 대륙에서 5년 주기로 총회를 개최하기로 되어 있는데 올해는 동유럽이나 코카서 스의 23개국 중 한 국가에서 열릴 차례였다. 그런데 마침 개최국 후보국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적 개심을 보임에 따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했고 유일하 게 남은 아제르바이잔이 개최권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화석 연료 퇴출인가? 아니면 전환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그의 기사를 인용하자면 COP 개최국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개최 장소를 제공하고 행정적 서비스를 수행해야 하며 통상 120개국이 넘는 세계 정상들의 의전과 안전 등 세계 최대 정치행사로 부상한 COP의 격에 맞는 서비스를 해야 하는데, 이는 무척 버거운 일이다. 특히 유엔기후변화 협약(UNFCCC) 사무국과 의제를 조율하고 참여국들과 일일이 사전 협의를 하는 등 해야 할 일이 많다.
관련 회의도 거의 1년 내내 개최된다. 많은 동의와 협조를 얻어 내는 일이 녹녹치 않다. 그래서 COP 의장국과 사무국은 각국과 최대한 협조를 얻어 내는 다양한 스킬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지난해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렸던 「COP28」에서 오랜 논의 끝에 설립된 ‘기후 피해기금의 운영안’도 이번 COP29 의 주요 의제 중의 하나인 가운데 이번 총회에서의 핵심 의제는 화석 연료의 퇴출이다.
우연이든 의도적이든 이번 COP29가 산유국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리게 됨으로써 UN 기후총회는 이집트, 아랍에미리트에 이어 3년 연속 산유국이 의장국이 됐다.
지난해 COP28에서는 “화석 연료의 단계적 퇴출”이란 명문을 막기 위해 OPEC 등 산유국과 다국적 석유 가스 기업들의 반발과 로비가 거셌다. 결국 폐막 하루를 연장하면서 ‘화석 연료의 전면적 퇴출(phase out of fossil fuels)’ 표현을 ‘화석 연료로부터의 전환(transition away from fossil fuels)’으로 수정해 가까스로 합의문이 만들어진 가운데 ,세계 12위의 아랍에미리트 국영 석유회사, ADNOC(Abu Dhabi National Oil Company,)회장인 술탄 알자베르(Sultan Al Jaber)의장이 곤욕을 치렀다.
그런데 지구온난화의 원인과 결과가 유산처럼 전시되어 있고, 화석 연료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토론 방식이 아닌 강권 통치가 이루어지는 아제르바이잔에서 UN 기후총회가 좋은 결실을 맺을지 벌써 극단의 기온상승을 경험한 세계인들이 회의 결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아제르바이잔은 무흐타르 바바예프(Mukttar Babayev) 환경자원부 장관에게 이번 총회의 책임을 맡도록 했다. 그가 세계적으로 관심이 큰 UN 기후총회의 책임자가 될 것이 고 거의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아제르바이잔 어느 시골 지역에 모인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녹색 전환 아이디어를 개발한 나라처럼 그렇게 유명한 나라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이번 총회가 우리에겐 새로운 출발이 될 것입니다.”
올해 58살인 바바예프 장관과 그의 팀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다양한 이해관계, 이를테면 산유국의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의 녹색 전환과 바누아투와 같이 가라앉고 있는 섬나라의 입장을 균형 있게 처리해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이들은 글로벌 기후변화 위기에 대처하는 정책 경험을 가지지 못했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그들의 기후 변화에 대한 학습곡선만큼은 수직으로 상승한 상태인 듯하 다.
이들 또한, 화석 연료를 벗어나는 이른바 글로벌 에너지전환을 두려워하는 일부 자국민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사실상 거의 모든 아제르바이잔의 수출품은 석유와 가스로 되어 있다. 바바예프 장관 자신도 중간 간부를 거치면서 승진한 자신의 경력 대부분을 국영 석유회사에서 보냈다. “세계가 가능한 한 빨리 화석 연료를 태우는 일을 멈춰야 만 한다”는 광범위한 합의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바바예프 장관은 유럽이 서둘러 러시아 공급망을 대체할 나라를 찾으면서 최근 지정학적 무대에서 자기 나라가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 화석 연료, 특히 천연가스의 생산을 두둔하고 나섰다.
그는 “석유와 석탄과 비교해서 가스는 덜 해로운 천연 에 너지 자원”이라고 말했다. 또 “만약 유럽 국가들이 천연가스에 반대한다면, 왜 아제르바이잔에 더 많은 가스를 달라고 요구하는가?”라고 물으면서, EU 에너지 담당 집행위원인 카드리 심손(Kadri Simson)을 언급한 다음, “그가 바쿠에 1년에 3~4번씩 오는 이유”를 상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