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올해 우리나라 쌀 생산량은 363~368만 톤으로 예측돼 지난해보다 0.7~2%가량 줄 것이라고 발표했다. 단위 면적당 생산량을 나타내는 단수는 10a(1,000㎡)에 520~527kg으로 벼의 생육에 좋은 기상 여건 덕에 벼알 수가 평년 대비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최근 고온으로 인해 전남과 전북, 경남 등지에서 벼멸구가 발생해 피해 면적이 3만 4천 ha(약 9,100만 평)으로 집계됐다고 밝혔을 뿐, 쌀의 품종과 밥맛의 변화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이에 비해 40년이 넘는 동안 일본의 슈퍼마켓에서 쌀 맛으로 압도적인 부동의 판매 1위를 지켜온 일본의 쌀 품종 고시히카리는 지난해 일본 전역에 걸쳐 기록적인 가장 뜨거운 여름으로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 다른 품종의 쌀에 비해서 고시히카리는 특히 열에 대한 내성이 약했다. 타는 듯한 기온은 낟알의 윤기를 흐릿하게 하고 잘 깨지도록 만들었다.
그것이 올해 일본에서 광범위한 쌀 부족 현상을 초래한 원인의 하나로 작용했다. 각종 재난에 대비해 쌀 사재기를 하는 통에 슈퍼마켓 쌀 판매대가 텅 비고, 그로 인해 소비자들이 공포감을 느끼면서 일본 관료들은 비축미를 방출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실은 일본의 자존심 고시히카리의 40년 전통이 기온 상승으로 깨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컸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로 시작하는 일본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무대인 니가타현은 미네랄이 풍부한 눈 녹은 물이 주변 산지에서 흘러들어 논은 항상 촉촉하다. 빈번한 산들바람과 저녁 소나기가 기온을 선선하게 유지해 일본에서 최고 품질의 고시히카리쌀을 생산하는 고장이다.
하지만 지난해 이 지역에서 생산된 고시히카리 쌀 가운데 5% 미만만이 더 높은 가격-60kg 가마당 6~7달러 이상을 받을 수 있는 최상품 등급을 받았을 뿐이다. 지난 10년 동안 니가타에서 생산된 고시히카리 쌀은 보통 80% 이상 최고 등급을 받고 있었다.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면서도 밥알이 탱탱하고 달콤한 맛을 가진 일본 쌀의 ‘왕’으로 군림해온 고시히카리 쌀의 운명이 기후 변화로 인해 상승하는 온도에 의해 뒤집히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지역 경제가 큰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여름의 기온 상승은 정말 심각했지요. 일본에서 가장 밥맛이 좋은 고시히까리가 열에 약하다는 것을 알고 몇 년 전부터 우리는 높은 온도에 내성이 있으면서도 밥맛을 유지하는 고시히카리를 만들려고 노력해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육종은 시간과 싸움이라...곧 열에 강한 고시히까리 품종이 개발될 것으로 봅니다.” 니가타의 농업기술 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 과학자가 한 팀이 되어 열에 강하고 맛도 좋은 고시히카리 연구를 지속해 온 이 연구 소는 확실히 열에 잘 견디는 새로운 형태의 고시히카리 품종을 만드는 열쇠가 신노스케 품종의 DNA를 포함해 다른 쌀의 DNA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여러 벼의 변종(變種) DNA 안에 열에 내성을 가진 어떤 패턴이 있다는 것을 찾아냈고 이 유전자 형질을 기존 고시히카리에 이식하는 이종교배 탐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특별한 DNA 염기 서열을 고시히카리 쌀의 그것에 붙여 기존의 맛과 향을 거진 새로운 고시히카리 품종을 얻는 일은 쉽지 않다.
연구소의 뒤에 널찍하게 펼쳐져 있는 논에서 연구원들은 고시히카리의 잡종 교배종과 열에 내성을 가진 형태의 쌀을 재배하고 있다. 그러한 잡종들은 다음에 다시 고시히카리와 이종교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그들이 모든 점에서 고시히카리와 같은, 그러나 열에 내성을 지닌 고시히카리 쌀을 얻을 때까지 되풀이할 것이다.
열에 내성을 가진 맛을 유지하는 고시히까리 후보군들로부터 나온 쌀은 연구소의 품질 관리실로 들어가, 점착도, 습도, 입자의 둥글기, 윤기 등이 측정될 것이다. 그리고 전문가 위원회의 위원들은 이 연구소의 50명에 달하는 전문 취사 요원들이 지은 밥의 향과 맛을 테스트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열에 내성을 가지면서 맛과 향이 뛰어난 고시히카리 한 종류가 채택될 될 것이고 그 씨앗은 니가타 등 일본 전역의 농부들에게 국가 주도로 나누어 주게 된다.
니가타현 우오누마에서 12만 평의 논에서 쌀농사를 짓고 있는 「신고 구와바라(38살)」 씨는 지난여름 쌀을 재배하기에 이상적인 기온보다 훨씬 더 높은 기온에 강타를 맞았다. 그는 자신이 생산한 고시히카리 쌀 가운데 40%가 안 되는 쌀만이 최고 등급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전부터 극심한 기온을 견딜 수 있는, 하지만 균에 감염되는 경향을 가진 신노스케를 조금씩 재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고시히카리를 포기하고 다른 품종으로 바꾸는 것에 회의적이다.
“지난해 고시히카리의 많은 낟알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보긴 했지만 그렇더라도 다른 품종으로 바꾸는 것은 도박입니다. 소비자들이 고시히카리 밥맛에 민감하니까요. 하루빨리 열에 강한 고시히카리의 신품종이 나오길 바랄 뿐이죠.”
니가타 쌀 소매상들에 의하면 소비자들은 여전히 고시히카리의 밥맛을 선호하고 있다.
위도 1도 차이에 따라 작물의 종류가 달라지는 농업은 기후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특히 식량 안보(안전보장을 줄인 말) 자급률이 100%가 넘어가는 유럽이나 미국, 그리고 생산 규모가 어마어마한 중국과 비교를 할 수 없는 우리나라 농업이 예나 지금이나 비교 모델로 삼을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일본 뿐이다.
기후 변화에 내성을 가진 맛있는 쌀 품종을 쉼 없이 연구하고 있는 우리나라라지만 점점 더 떨어지는 밥맛에 쌀 소비가 늘어나지 않는 악순환을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가 10년 뒤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식이 빵으로 바뀌어 있는 게 아닐까? 이는 우리의 식량 안보가 걸린 문제다. 40년 전통의 고시히카리를 지켜내려는 일본의 노력이 부러운 건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