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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mbceconomy 커버스토리-이인제 새누리당 의원(1)

“정통성에 대한 신념이 강한 세력이 집권하면서 경제도 키우고 통일문제도 주도해 나가야 합니다”

이인제 의원이 15년 만에 정치고향인 새누리당으로 돌아왔다. 복잡한 정치역점을 거치고 나서 지역민들의 기대에 부응코자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 들어가 농민들을 위한 법안을 챙기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또 한반도통일연구원을 출범시켜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이인제 의원을 만났다. interview  김소영 기자

신한국당 시절, 의원님께서 이회창 후보와 경선을 했지만 굴복을 하여 당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 상황과 다시 15년 만에 친정으로 오게 된 감회를 말씀해주십시오.

꼭 15년 2개월 만에 정치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정당이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있고 지금도 변화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당시 저는 3당이 합당을 해서 민자당으로 당명을 변경했다가 신한국당으로 있을 때 경기도지사로 나갔죠.
 
이후 1997년 17대 대선 때 독자출마를 위해 탈당을 하고 국민신당을 창당했는데요. 이후 복잡한 정치역정을 거쳐 돌아온 것 같아 감회가 새롭습니다. 지금의 심정을 말한다면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온 느낌인데요. 제가 당을 떠나고 늦게 복귀한 것은 저의 의지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 숙명적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충청지역에 역점을 둔 선진통일당 대표로 있다가 합당했는데요. 지역주민들도 그걸 바랬습니다. 그래서 이제야 지역정당시대의 낡은 정치를 극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큽니다. 15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너무 많은 변화가 일어나서 제가 떠날 때와 분위기가 다르지만 당원들이 잘 대해줘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당시 이회창 후보와 경선을 한 후 왜 탈당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국민들이 궁금해 했는데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것 같지 않습니다.

당시 제가 경선을 100% 승복했죠. 이회창 후보 손을 들어주고 저는 경기도지사로 복귀했는데요. 그때 이회창 후보 지지율이 55%, 김대중 후보 지지율이 35%였습니다. 이 후보가 압도적으로 지지율이 높았죠. 그런데 이 후보의 아들 병역문제가 터지면서 일주일 만에 지지율이 추락하기 시작해서 삽시간에 7%까지 추락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후보교체가 논의돼야 되는데 당시 당내 기득권세력들이 2~3개월이 지나도록 그 상태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미 경선에서 탈락해 도지사로 가있는 상황인데도 제 지지율이 계속 상승하고 있었고요.

그런데도 당내에서는 후보교체를 생각도 못하고 있었죠. 그 상태로 가면 김대중 후보 당선이 기정사실이었습니다. 당시 세계적인 흐름도 이미 40~50대로 세대교체가 되고 있는 시점이었는데요.

러시아만 해도 푸틴 대통령이 40대 중반이었고, 미국 클린턴 대통령도 50대 초반이었습니다. 또 영국 토니 블레어는 훨씬 더 젊은데도 차기 총리로 임명되기까지 6개월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어요. 일본의 하시모토 역시 총리가 되어 있었고, 중국 시진핑도 마찬가지였고요.
 
21세기 글로벌 시대로 큰 흐름이 가고 있었기에 저는 우리나라도 그에 대응하는 젊은 리더십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3김 시대의 또 한 분이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요청이 아니라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나 혼자만이라도 국민과 함께 새 시대에 부응하는 노력을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던 겁니다. 그래서 당을 만들고 출마하게 됐는데 국민의 힘은 위대했습니다.

9월 21일에 탈당을 해서 창당을 했는데 11월 1일경, 여론조사에서 제가 1등으로 올라선 겁니다. 이후 더 큰 여론조사에서는 38%라는 국민지지율을 확보했죠. 그때 김대중 후보가 36%, 이회장 후보가 17%였습니다. 이틀 후 전당대회를 통해 정식후보가 되면 그 상승추세는 바로 당선으로 갈 수가 있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이회창 후보와 김대중 후보가 “이인제가 YS한테 200억을 받았다”는 터무니없는 허위사실을 만들어서 전 언론에 유포시키면서 전 언론이 일주일간이나 이 허위사실을 대서특필했고 그 결과 제 지지율이 절반으로 떨어지면서 결국 3등으로 끝났습니다.

정치라는 게 결국 현실이거든요. 저는 그런 현실적인 기반이 약했기 때문에 당선되지 못한 겁니다. 당시만 해도 고민을 참 많이 했습니다. 이미 도지사를 하고 있기도 하지만 나이가 49세밖에 되지 않았기에 맨주먹으로 나와서 대통령을 하겠다고 무모한 결정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세계적인 흐름이 그랬고, 우리나라의 현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저를 불렀기에 개인적인 안정을 위해서 움츠리고 앉아 있기만은 어려운 상황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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