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의지가 우리 시대의 통일이슈를 핫하게 만들고 있다. 멀고도 먼 이야기이거나 독일의 이야기로만 알았던 통일에 다양한 분야의 에너지가 집중되고 있다. 최근 들어 통일대박론, 이산가족상봉, 통일준비위원회 구성,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최종 보고서 발표, 영화 <신이 보낸 사람>의 흥행 등은 통일이 현실이 되도록 해야 할 당위성과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여전히 안타까운 이산가족 상봉3년 4개월 만에 재개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지난 20일부터 5박 6일간 1,2차로 나뉘어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진행됐다. 1차 상봉에서 남측 이산가족 82명이 북측 가족 178명을 만났고, 2차 상봉에서는 북측 가족 88명이 남측 가족 357명과 재회했다. 이산가족 상봉은 다시 이별의 아픔을 안고 지난달 25일 끝났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2000년부터 시작해 이번까지 총 19차례 걸쳐 열렸다. 그러나 혜택을 본 이산가족은 지난 15년 동안 고작 2000명 남짓하다. 상봉 신청자 12만9264명 중 지난 수년 사이에 5만8천여 명 가까운 실향민이 사망했고 현재 생존자는 7만1480명이다.
이런 추세로 가면 500년 넘게 걸려야 전원이 상봉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게다가 생존자들의 연령이 대부분 80세를 넘은 고령자들이라 북녘의 가족을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이들은 지칠 만큼 지쳐서 더욱 가슴이 절박하다. 아픈 이산가족 문제를 정치 군사적으로 이용만 하려는 북한은 예정되어 있던 약속조차도 돌연 취소하는 등의 행동을 서슴치 않아 이 또한 늘 가슴을 늘 조리게 만든다.
사실 이번 상봉에도 북한은 반나절의 찔끔 상봉, 동숙(同宿) 불허, 정치구호·체제선전은 종전과 다름이 없었다. 이 때문에 노환으로 만남을 포기하거나 상봉 과정에서 건강 악화로 중도 귀환하는 사람이 있었고 치매로 알아보지 못하는 안타가운 사연들도 잇달았다.
동서독의 ‘인간적 고통의 완화’ 이산가족 정책
여기엔 1971년 동서 베를린 간 직통전화 개설, 1972년 이산가족 방문과 일반인 여행을 보장한 ‘통행협정’의 체결 등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동독은 교류 과정에서 동독을 방문하는 서독 주민에게 의무적 환전과 비자 수수료 지불(단계적 액수 인상)을 요구했고, 서독은 이를 수용했다”고 전했다.
또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산가족은 병문안 등 인도적 이유가 있으면 언제든 상대방 지역을 방문할 수 있게 됐고, 점차 방문 기간과 횟수도 늘어났다. 서독 주민의 동독 방문은 1969년 110여만 명에서 1970년 265만여 명, 1971년 266만여 명, 1972년 620여만 명으로 급증했다. 1981년에는 ‘이주에 관한 협정’이 체결돼 매년 2만5000명 가량의 동독 주민이 서독으로 이주했고, 1987년에만 500만의 동독인이 서독을 방문할 수 있었다.
이처럼 독일 통일은 상호 방문과 인적 교류를 통해 닫힌 국경이 조금씩 열리고 또 신뢰가 쌓이면서 달성됐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 사례에서 보듯 이산가족 문제는 철저히 인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산가족의 고령화로 인해 시간이 촉박하고 거동이 불편한 점을 감안, 우리나라의 발달된 통신 기술을 이용한 화상 상봉도 확대해야 한다. 납북자, 국군포로에 대한 대책도 절실하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열린 ‘통일을 여는 국회의원 모임’ 조찬 강연에서 이산가족문제에 대해 “앞으로 5년 내 풀지 않으면 답이 없다”며 근본적 해결을 촉구했다. 이어 류 장관은 “마지막 한 분이 남아계실 때가 이산가족문제를 해결하는 시점이 돼서는 절대로 안 된다”며“앞으로 5년 이내 이산가족문제를 획기적이고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이산가족문제를 더 이상 해결하지 않겠다고 얘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북한주민인권도 이젠 유엔안보리 의제 돼야”
이 기자는 “시야를 넓히면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과 제네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최종 보고서 발표 간 숨어 있던 연결 고리가 보인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의 대외 전략에 밝은 전직 고위 관료 B씨는 “북한이 ‘2월 20일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들고 나온 시점은 유엔 COI가 최종 보고서 발표를 예고한 시기와 겹친다”고 말했다.
상봉이 확정된 14일은 1년간 북한 정권의 인권 침해를 조사해 온 COI가 최종 보고서를 발표하기 3일 전이었다.그가 전하고 있는 COI 보고서는 ‘앞으로 북한 인권을 다룰 때 최고 권위를 갖게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비롯해 북한 지도부를 국제형사재판소(ICC)나 특별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권고했다는 점에서 북측엔 충격적이다.
유엔이 리비아 사태에 개입할 때 적용한 ‘보호책임(R2P·Responsibility to Protect)’을 북한에 적용해야 한다고도 했다. R2P는 국가가 자국 시민을 보호하지 않거나 할 수 없을 경우 국제사회가 그 책임을 맡아야 한다는 개념이다. 북핵 문제처럼 북한 인권도 이제는 유엔 안보리의 주요 의제가 돼야 한다는 ‘명령’인 셈이다.유감스럽게도 COI의 보고서는 3일 뒤에 열린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스포트라이트를 내주었다. 외국 미디어뿐 아니라 국내 언론도 남북한의 헤어진 가족이 부둥켜 우는 모습에만 주로 앵글을 맞췄다. 북한의 이런 꼼수 덕분에 북한주민의 처참한 인권은 영화<신이 보낸 사람>을 통해서나 알려지게 됐다.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구성
박 대통령은 “이곳에서 한반도의 통일을 준비하고 남북 간의 대화와 민간교류의 폭을 넓혀갈 것”이라며 “외교·안보, 경제·사회·문화 등 제반 분야의 민간 전문가들과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 국민적 통일논의를 수렴하고 구체적인 통일한반도의 청사진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를 통해 남북 간, 세대 간 통합을 이뤄 새로운 시대의 대통합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며 “저는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초석을 다지고 반드시 한반도의 통일을 이뤄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내년이면 한반도가 분단된 지 70년이 된다”며 “너무 오랜 시간 우리는 분단의 아픔과 고통을 안고 살아왔다. 이번 이산가족의 상봉을 통해 보셨듯이 분단의 비극이 사랑하는 가족과의 천륜을 끊고 만난 후에 또다시 헤어져야 하는 뼈저린 아픔과 고통을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대한민국의 대도약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한반도시대를 여는 통일을 준비하는 게 필요하다”고 전했다.
“저는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초석을 다지고 반드시 한반도의 통일을 이뤄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대통령 직속으로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켜 체계적이고 건설적인 통일의 방향을 모색해나가고자 한다. 이곳에서 한반도의 통일을 준비하고 남북간의 대화와 민간교류의 폭을 넓혀갈 것”이라고 비전을 선포했다.
각계각층 참여하는 국민통합적기구로
어제도 밝혔듯이 통일준비위원회는 정부와 여당, 야당,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와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국민통합적 기구가 돼야 한다”면서 “민주당은 집권 십년 동안,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하는 등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한 다양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여야 모두 민족의 중대 문제인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당리당략적, 또는 정략적 차원을 뛰어 넘는 민족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은 통일준비위원회 구성과 운영에서 거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자세를 갖고 있다”고 화답했다. 한 “통일준비위원회는 구성단계에서부터 정부와 여당, 그리고 야당, 또 시민사회와 각계각층이 참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 통일준비위원회 구성을 위한 여-야-정 실무준비팀 구성”을 제안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연결이에 이병철 평화협력원 비확산센터 소장은 “통일 공공외교는 정부 혼자만 수행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국책연구소, 대학교, 민간 전문가 그룹 등과 연계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마침 최근 통일연구원, 국립외교원, 국방연구원 그리고 국가안보전략연구소 등 4개 국책 연구기관들이 외교·안보·통일 정책 역량강화 및 협력방안을 내용으로 하는 협약서를 맺었다.
그러나 통일준비위가 제대로 가동되기 위해서는 통일과 관련한 대학 내 연구소들과 한국개발연구원 등 경제·사회·문화와 관련한 국책 연구기관의 참여도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특정 정권의 성향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통일에 대한 보수와 진보를 포용하는 담론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게다가 통일이라는 단어가 젊은 세대에게 점점 낯설어지는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통일준비위에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많이 포함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어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양 당국의 최고 지도자의 뜻을 반영해서 직접 담판하는 남북고위급접촉 창구가 개설됨으로써 남북현안의 포괄적 해결의 대화 틀은 마련됐다”며 “지금까지는 통일 대박론과 중대제안이란 거대담론에 공감대가 형성돼서 이산가족상봉이란 첫 결실을 거뒀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북핵과 관련한 악순환의 고리와 대결의 악순환의 고리를 동시에 끊기 위한 포괄적 평화협상을 추진하는 것이다. 새로운 포괄적 평화협상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연결해서 여러 갈래의 양자협상과 다자협상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며 보다 더 거시적인 입장을 내비췄다. 통일에 대해 에너지가 집중되고 있는 이때에 “북한 주민들이 다른 세상이 있다는 점을 알도록 한국 정부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데메지에르 전 동독 총리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고언은 새길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