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도급 대금을 부당하게 깎은 현대중공업이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물게 됐다. 더욱이 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은 공정거래위원회 현장 조사에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교체하고 관련 자료들을 외장하드디스크에 은닉해 과태료도 부과받았다.
공정위는 18일 하도급업체들에 선박·해양플랜트·엔진 제조를 위탁하면서 사전에 계약서면을 발급하지 않고, 하도급대금을 부당하게 결정한 현대중공업에 과징금 208억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또 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주)에 시정명령을 부과하고, 법인을 고발 조치했다.
아울러 공정위의 현장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한국조선해양(주)에 법인에 1억원, 임직원 2명에 2,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앞서 지난 6월 기존 현대중공업은 한국조선해양으로 사명을 변경해 지주회사가 됐고, 분할신설회사로서 같은 이름의 현대중공업을 설립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한국조선해양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207개 사내하도급업체에게 4만8,529건의 선박 및 해양플랜트 제조 작업을 위탁하면서, 작업 내용 및 하도급대금 등 주요 사항을 기재한 계약서를 작업이 이미 시작된 후에 발급했다.
이로 인해 하도급업체는 구체적인 작업 및 대금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우선 작업을 진행을 해야했고, 한국조선해양이 사후에 일방적으로 정한 대금을 받아들여야 하는 불리한 지위에 놓이게 됐다.
또 한국조선해양은 2015년 12월 선박엔진 관련 부품을 납품하는 사외하도급업체들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어 2016년 상반기에 일률적으로 단가를 10% 인하해달라고 요구했다. 만일 단가 인하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강제적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압박했다.
하도급업체들은 단가를 일률적으로 10% 인하할 수밖에 없었고, 2016년 상반기 9만여 건의 발주 내역에서 48개 하도급업체를 대상으로 51억 원의 하도급대금을 깎은 사실이 확인됐다.
48개 하도급업체는 밸브, 파이프, 엔진블록, 패널 등 납품하는 품목이 다르고, 원자재, 거래 규모, 경영상황 등도 각각 달라 일률적인 비율로 단가를 인하할 만한 정당한 사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조선해양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사내하도급업체에게 하도급대금을 결정하지 않은 채 1,785건의 추가공사 작업을 위탁하면서, 작업이 진행된 이후에 사내하도급업체의 제조원가보다 낮은 수준으로 하도급대금을 결정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사내하도급업체와의 실질적인 협의는 없었다.
특히 한국조선해양은 공정위의 현장 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하기도 했다. 한국조선해양과 소속 직원들은 2018년 10월에 진행된 공정위 현장 조사 과정에서 조사대상 부서의 273개 컴퓨터 저장장치(HDD)와 101대 컴퓨터(PC)를 교체했다. 또 관련 중요 자료들을 사내망의 공유 폴더와 외부저장장치(외장HDD)에 은닉했다.
공정위는 현장조사 과정에서 조사대상자의 저장장치 교체 사실과 중요 자료를 별도로 보관한 외부저장장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파악해 교체 저장장치와 외부저장장치의 제출을 요구했다. 하지만 한국조선해양은 제출을 거부하고 이를 은닉하거나 폐기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장기간 문제점이 지적돼 온 조선업계의 관행적인 불공정 행위에 제동을 걸었다"며 "특히 조선업계에서 '선시공 후계약' 방식으로 사전에 하도급업체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작업을 시작한 후에야 계약서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 엄중히 조치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