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재들은 왜 특정 시대에 몰려있는가?
역사는 한 시대, 한 지역에 유난히 많은 창조적 인물이 탄생하는 기이한 현상을 보여준다. 아 테네의 페리클레스 시대가 그러했고, 산업혁명 이후 영국이 그러했다.그 중에서도 피렌체 르네상스는 압도적이다. 예술·과학·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이탈리아 반도의 한 도시가 인류의 지적 지형을 바꿔놓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해 미켈란젤로·라파엘로·필리포 브루넬레스키·마사초 등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숙이게 하는 인물들이 한 시대에 몰려 태어난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해석이 있지만 많은 역사학자가 주목한 지점은 의외로 소박하다. 바로 도제(徒弟) 시스템이다. 어린 도제들은 7세~10세 무렵 장인의 작업실로 들어가 물감을 가루내고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 과정에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실패하며 익힌 경험은 그 어떤 이론서보다 강력한 지적 자극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마스터를 뛰어넘고자 하는 욕망을 체득했다. 배움의 결핍이 오히려 창조성의 연료가 되던 시대였다. 멀리까지 갈 것도 없다. 50년 전, 우리나라에선 어린 시절 중국집에 들어가 배달과 심부름을 하던 도제들은 먹을 것과 잘 곳만 제공받고 일했다.
필자가 잘 아는 어느 중국집 주방장 겸 주인은 어린 나이에 배달된 그릇을 회수하려 갔다 오다 배가 고파 문밖에 내놓은 우동 그릇에 남은 국물을 마셨다고 주방장에게 된통 당했던 일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후 그는 이를 악물고 주방 일을 배워 중국요리 전문가가 되었다고 했다.
그런 일은 다른 중국집에서도 비일비재했다. 그러한 과정을 겪어 성장한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중국요리 문파(門派)를 이루고 있다. 중국집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 사라진 배움의 갈망 오늘날 우리는 도제 시스템이 일반적이었던 시대와 정반대의 조건에 살고 있다.
정보는 넘쳐나고 지식의 문턱은 무너졌다. 검색 한 번이면 개념이 정리되고 버튼 한 번이면 글이 요약된다. 이제는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답이 먼저 도착한다. 당장은 편하다. 인공지능이 알아서 척척해주니 말이다. 물론 아직도 인공지능이 못하는 영역, 이를테면 현장 취재, 새로운 부동산 매매계약서 작성 등 인간의 사고와 감정 그리고 선택이 개입되는 분야-을 제외하고는 그 편리함이 사고의 근육을 앗아가고 있다는 게 문제다.
그렇다면 AI가 요약해 주고 정리해 주고 심지어 창작까지 해주는 시대에 인간의 역할은 무엇일까? 반복 연습 없이 문제의식만 소비하는 습관이 굳어진다면 과연 우리는 기후 위기나 생태 분야의 문제처럼 난해한 의제를 해결할 능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못할 것이다. 창조적 인간은 풍부한 지식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확인하고 구축 한 지식 속에서 탄생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지식을 건너 뛰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도제 시스템이 남긴 마지막 교훈
르네상스의 도제 시스템은 단순한 기술 교육이 아니었다. 자기가 모르는 것을 스스로 파고드는 과정을 몸으로 체득 하게 만드는 장치였다. 이 과정은 매우 지루했고 고통스러웠으며 실패투성이였다. 하지만 바로 그 과정이 천재를 만들었다. 오늘 우리는 배움의 불편함을 너무 쉽게 제거한다. 실수는 AI가 수정해 주고 해석은 알고리즘이 대신해 준다.
그러나 생각의 깊이란 결국 불편함을 견딘 시간에서 나온다. 도제 시스템의 핵심은 논어의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군자구저기, 소인구저인(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즉, 군자 는 문제의 해결이나 배움을 자기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 (小人)은 남에게서 구한다는 말이다. 결국 배움이란 AI건 무엇이건 남이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다.
◇ AI는 도구일 뿐, 인간의 두뇌를 대리할 순 없다
AI를 배척하자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AI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것을 도구로 활용할 것인가, 아니면 사고를 대체 하는 장치로 편안히 기대어 앉을 것인가? AI를 베끼다 시피해서 리포트를 쓰고, 컨닝해서 시험을 치루면 어떻게 복잡한 사회적 문제의 해결이나 배움을 자기 자신에게서 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AI를 어떻게 선택할 것인지가 앞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해결 능력과 창조력을 결정할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 환경 생태 붕괴, 에너지 전환 같은 거대한 숙제는 요약된 과거의 자료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복잡한 배경을 스스로 파악하고 불완전한 문제를 천 천히 풀어보고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고 체계는 그 어떤 기계로 대신할 순 없다. 다시 배움의 욕망을 되찾아야 한다 오늘의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다른 게 아닐 것이다. 조금 더 읽고, 조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질문하는 습관을 들 이는 것이다. 읽은 것을 요약하고, 지식을 훔치고(지식과 경험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든다는 뜻) 연습을 반복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러한 귀찮음을 이기는 순간, 사고 (思考)는 다시 살아난다. 그러니까 요약 버튼을 누르기 전에 스스로 핵심을 찾고, 답을 요구하기 전에 의문을 정리하고, 자동화된 질문에 왜? 라는 질문을 붙이는 태도를 습관화해야 한다. 이 작은 실천이야말로 창조적 인간을 되살리는 최소한의 장치다. 서양의 르네상스나 우리나라 중국집에서 적용한 도제 시스템은 특별한 게 아니었다.
배움의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한 분야 대가의 지식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었다. 오늘 우리가 그 욕망을 되찾기만 한다면 인류는 AI 를 이용해 또 다른 르네상스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M이코노미뉴스 12월호 매거진 표지 인물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대담에서 “AI에 대한 과도한 기대보다는 기초기술과 다양한 산업의 동반 성장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며, AI에 능숙한 젊은 세대가 불편함을 감내하는 배움의 과정까지 모두를 AI에 의지한다면 우리 시대의 창의와 경쟁력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 동감을 표시했다.
AI는 이처럼 우리의 머리를 확정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사고를 퇴화시킬 수도 있다. 선택은 결국 우리 인간에게 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닌 태도다.
2025년 한 해를 마감하며 새로운 해에는 AI를 통한 전 산업의 기술 향상이 이루어지고, 이에 따른 일자리 창출이 이어져 젊은이들의 얼굴에 배움의 열정에서 우러나오는 미소가 가득하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