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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2월 19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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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속고 속이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

 

오늘날 사람들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가난과 실패가 아니라 남에게 “속는 것”인지 모른다. 속았기 때문에 가난하게 되고 실패했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우리는 늘 사방이 사기와 속임수로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기사 한 줄, 통계 숫자 하나까지 의심의 대상이 된다.

 

남산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보며 “어떻게 저 많은 사람이 다 먹고 살 수 있지요?”라는 질문에 고인이 된 한 정치철학자는 이렇게 답했다. “다 속고 속이면서 살아가는 거지요.” 씁쓸하지만 묘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말이다.

 

현대인은 속지 않으려 애쓰며 산다. 누군가의 의도를 간파하고, 숨은 이해관계를 추적하며, 거짓을 폭로하면서 지적 우월감마저 느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럴수록 피로는 깊어진다. 의심은 일상이 되었고, 신뢰는 점점 사치가 되어가고 있다.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1533~1592)의 회의주의는 흔히 “아무것도 믿지 말자”는 냉소주의로 오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간 인식의 한계를 자각하는 겸손의 철학에 가깝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 그는 스스로 그렇게 물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이성이란 믿을 만한 도구가 아니라고 보았으니까. 우리는 감각에 의존해 세상을 인식하지만, 감각은 자주 우리를 속인다. 이성 역시, 시대와 습관, 문화 등의 영향을 받는다.

 

이를테면, 어떤 사회에서는 당연한 도덕이 다른 사회에서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오늘의 상식이 내일의 오류가 되기도 한다. 그는 이런 사실을 통해 우리가 확실하다고 믿는 것들이 얼마나 불안정한가를 보여주려 했다.

 

이 때문에 그는 교조주의, 즉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확신을 경계했다. 실제로 그는 종교 전쟁으로 피비린내 나던 시대에 살았다. 그가 본 것은 확신이 만들어낸 참극이었다. 그래서 그는 단정 대신 유보, 광신 대신 절제, 공격 대신 성찰을 택했다.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해 11월~12월 한 달간 전국에서 실시한 '국민통합을 위한 5대 사회갈등 국민인식조사'(성인 7천명 대상)에서 정치·이념 (보수-진보) 분열이 심각하다고 답한 비율이 92.4%였다.

 

이를 보면 우리 사회는 지금 “무엇을 모르는가?”를 묻기보다 “누가 나를 속이는가?”를 먼저 묻는 듯하다. 진실을 찾기 위한 의심이 아니라,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의심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 우리는 더욱 분열되고, 각자의 진실은 서로를 향해 날 선 칼날이 되었다.

 

인공지능 시대는 이 혼란을 증폭시킨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AI는 그럴듯한 문장과 영상으로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흐린다. 어느 말이 옳은지, 어느 판결이 정의로운지조차 판단하기 어렵다.

 

전문가의 권위도, 제도의 판단도 예전만큼 절대적이지 않다. 정보는 넘치지만, 확신은 줄어든다. 우리는 ‘많이 아는 시대’에 살지만, 정작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는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기묘한 지점을 어떻게 건너야 할까?

 

첫째, 다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누가 나를 속이는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모르는가?”로 말이다. 확신을 조금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대신 대화의 가능성을 연다. 몽테뉴의 회의주의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지적 겸손이다.

 

둘째, 속지 않으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완벽하게 속지 않는 삶은 없다. 인간 사회는 일정한 신뢰 위에서만 작동한다. 모든 것을 의심하는 사회는 결국 아무것도 믿지 못하는 사회가 된다. 의심과 신뢰는 균형의 문제다.

 

셋째, 판단을 서두르지 않는 훈련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이 몇 초 만에 답을 제시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은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정보의 속도보다 사유의 깊이가 중요하다. 느리게 생각하는 힘, 그것이 인간이 기계와 다른 지점이다.

 

몽테뉴는 우리가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없다, 고 말했다. 그래서 습관, 전통, 관습, 공동체적 합의에 기대어 산다고 했다. 따라서 우리는 공동체적 토론의 장을 복원해야 한다. 알고리즘이 분절한 세계를 넘어, 서로 다른 생각이 부딪치되 상대를 제거하지 않는 공간, 언론과 교육, 시민사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거짓 아닌 진실은 혼자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다듬어가는 과정임을 명심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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