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0년대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사랑할수록’을 부른 주인공 부활의 4대 보컬 김재희가 새로운 모습으로 팬들 곁으로 돌아왔다. 인간의 한계와 싸우며 안나푸르나 토롱나패스(해발 5416m, 토롱나)고개를 넘었다는 그는 이번 탐험을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고 돌아왔다고 했다.
가을의 향기가 코끝을 자극하는 9월, 오지탐험에서 돌아왔다는 가수 김재희를 만났다. 한때 팬들의 가슴에 아름다운 가을을 듬뿍 담아주었던 테리우스는 오지탐험의 피로가 풀리지 않은 듯 했는데도 여전히 멋졌다.
그의 이번 오지탐험은 EBS 다큐프로그램인 세계견문록 아틀라스 3부작 네팔 안나푸르나 등반코스 편이다. 네팔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토롱나 계곡 등반에 성공하고 돌아왔다는 그는 많은 산을 등반했지만 이번처럼 힘든 적은 없었다며 웃었다.
“애초 제작팀은 틸리초 호수, 무스탕, 토롱나 계곡 중에서 코스를 선택하라고 했는데 기왕이면 어려운 코스를 등반해보자고 생각해서 제가 가장 어려운 코스인 토롱나 계곡을 택한 겁니다. 이곳은 워낙에 고지가 높고 위험해서 그동안 열어 놓질않았다가 몇 해 전부터 열었다고 하더라고요. 전문 산악인조차도 오르기 힘들 정도로 가파르고 높아서 고산 증으로 매년 목숨을 잃는 산악인들도 많다고 해요.”
밤이 되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세계에서 지낸 보름은 그에게 어떠한 고난이 닥쳐와도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인내를 안겨줬다.
“이번 탐험은 저에 대한 검증입니다. 노래하는 가수로서 모든 연령층을 섭렵하는 가수는 아니더라도 동시대를 살아가며 나를 사랑해준 팬들에 대한 감사와 큰 욕심 없이 함께 살아가야겠다는 그런 다짐을 안겨줬으니까요. 또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산을 통해 인생을 배워
산을 오르는 사람 중에는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중간에 포기하고 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상황은 우리가 사는 이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번 탐험에서 그는 눈보라가 치고 높이 올라갈수록 공기가 부족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증상이 나타나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수도 없이 많았다고 했다.
특히 해발 4천m쯤 올라가면서부터는 한 발자국을 옮기는 것도 힘들었는데 여기서 포기한다면 앞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신념 하나로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데만 꼬박 12시간이 걸리더라고요. 고산증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는데 심한 배 멀미에다 술이 만취한 상태로 몸살이 난 것 같은 그런 증상 있잖아요. 정말로 죽을 것 같은 그런 증상이 계속되는데 나중에는 이대로 죽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더라고요. 어떻게든 산에서 내려와야 했는데 너무 무리를 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무릎에 물이 차서 주사기로 빼내야 할 정도로 고생이 많았습니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산이 좋은 이유를 자신의 맘속에 가지고 있는 것들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자신이 품었던 것들을 산에다 하나씩 내려놓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어 삶의 재충전이 되기 때문이다. 그 역시 이번 오지탐험을 통해 많은 것들을 내려놓았노라고 했다.
자신에 대한 도전
“이번 탐험은 저에 대한 도전입니다.” 그는 노래하는 가수로서 모든 연령층을 섭렵하는 가수는 아니더라도 동시대를 살아가며 자신을 사랑해준 팬들에 대한 감사와 큰 욕심 없이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산을 통해 배웠다고 했다.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도 산을 통해 배웠다고 했다.
네팔을 신의 보물창고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는 그는 앞이 막히는 듯 하다 폭포가 나오고 조금 더 가면 또 다른 폭포가 나오는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 나약한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정말로 너무 묘한 거예요. 오르다 보면 아마존이 있고 조금만 가면 끝없는 사막이 펼쳐지고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니까 이게 내가 사는 지구인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네팔에 멕시코, 캐나다, 뉴질랜드, 미국이 다 있는 겁니다.” 이번 오지탐험에서 많은 것들을 훔쳐왔다는 그는 그 모든 것들을 노래에다 담아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더욱 다채로워질 겁니다. 노래에다 자연의 원래 색을 담고 싶어요.” 그는 이번 오지탐험을 통해 앞으로 무대에 섰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는 어떤 느낌을 주도록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생겼다고 했다. 그만큼 자신을 사랑해준 많은 팬들에게 다양성을 보여 줄 생각이다. 지금껏 다양하지 못하게 살아온 것에 대한 후회보다는 잘 다듬어서 보다 깊이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다.
그는 무엇보다 지난 과거에서 벗어나 앞으로 가야할 날들에 대한 정리를 했다. 먼 곳을 바라보며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잡으려고 했다간 낭떠러지에 떨어질 수 있다는 것도 산을 통해 깨달았다.
“가장 가까이 있는 것에 충실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 같아요.”
인생의 시작점 다시 찍어
1993년 부활의 보컬로 ‘사랑할수록’을 부르며 활동한 그는 부활 앨범 최대 판매량의 기록을 세우고 있다.
이후 그는 노래 부르는 가수 대신 산에 오르는 자연인으로의 삶을 택했다. 오죽하면 등산복 모으는 것이 취미가 됐을까.
그는 산에 오를 때 입을 수 있는 옷이란 옷은 다 모았고 어지간한 산은 다 타봤다고 말할 정도로 산사나이로 살아왔다. 그가 세계의 높은 산에 과감한 도전장을 낸 것은 지난 2011년이다. 그해 11월 KBS ‘영상앨범 산’에 등장한 그가 스위스 국경에 위치한 알프스 산맥의 준봉 마터호른(4,478m)을 등반한 모습을 본 팬들은 눈을 의심해야 했다.
“이번 섭외도 그때 방송을 보고 한 것 같더라고요. 저 또한 언젠가는 네팔에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섭외를 받고 그 시기가 조금 빨리 왔다는 생각이 들었죠.” 산에서의 생활은 현지인이 운영하는 곳에서 했다. 이곳이 얼마 전부터 현지인이 운영하는 롯지문화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숙소인데 태양열을 통해 전기를 공급하더라고요. 하지만 오후 6시가 되면 전기를 끊어버리고 한 번 고장이 나면 며칠 씩 안 들어오다 보니까 전기 공급이 안 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봐야죠. 가장 힘든 건 씻지 못하는 거였는데 유일한 청결유지 도구가 물수건이다 보니 찜찜함이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죠”
그는 지난 8월 28일에 출발해서 9월 16일에 한국에 돌아왔다. 새로운 음반이 나오고 나서 뭔가 새로운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는 그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를 넘은 후 인생의 시작점을 다시 찍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위해 예술가들이 한 번쯤은 올라보면 좋은 곳이라고 소개했다. 산이 주는 다양성을 보면서 예술에 대한 창작성도 생길 수 있고 자신이 빠져 있는 세상에서 빠져나오는 전환점과 더불어 환기도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새 음반 ‘가슴에 머물다’
가수 김재희의 새로운 음반 ‘가슴에 머물다’ 역시 노래의 의미는 형에게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형에 대한 그리움 외에 지인들에 대한 그리움도 이 노래에 담았다.
“제 인생의 모든 게 형에게서 시작된다면 굳이 부정하지 않기로 했어요. 제 가슴에 머물게 두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거죠. 다른 분들이 제게 있어 형은 어떤 의미냐고 묻는데요. 한마디로 MSG같은 겁니다. 그런 거 있잖아요. 너무 많아도 그렇다고 없어서도 안 되는 그런 존재와 같다고 할까. 아무튼 제게 있어 형은 그런 존재죠.”
그의 어릴 적 환경은 힘들다고 말하는 것조차 사치스러울 정도로 어려웠다. 3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큰 형과의 나이차이 때문에 한 살 터울인 형(재기)과 유별난 형제애를 자랑했다. 토닥거리며 싸우다가도 밖에 나가서는 똘똘 뭉쳤고 사춘기시절 힘든 고민도 둘이서 나눴다. 그런 형이었기에 형의 빈자리는 아주 긴 시간동안 그를 방황하게 했다.
90년대 온 국민의 애창곡이 되었던 ‘사랑할수록’을 끝으로 긴 방황의 늪을 헤매는 매순간마다 그의 마음속에서 형은 늘 함께 했다. 가수 김재희가 새로운 음반으로 가을남자가 되어 돌아온다는 소식에 벌써부터 팬들의 가슴은 설렌다. 진한 커피향이 확~당기는 그의 목소리가 올 가을여행에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길 기대한다.
MeCONOMY Magazine October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