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에 위치한 다람쥐 마을. 언뜻 들어보면 아이들 놀이 공간처럼 느껴지는 이곳은 사실 한정식 집이다. 화학조미료로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맛을 내는 여느 식당과 는 확연히 다르다. 일체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으로 음식을 만들어 자연의 맛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바로 그런 사장님의 느긋한 손맛이 담긴 집으로 떠나보면 어떨까?
경기도 덕소리 한적한 곳에 위치한 한정식 집이 있다. 도시의 화려한 네온 간판도 없고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눈 크게 뜨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다람쥐 마을은 이 미로 같은 위치를 찾아온 노력을 충분히 보상해 주고도 남는다. 정겨운 한옥 문을 열고 들어서니 10년 넘게 운영하고 계시는 조정래 사장님이 앞치마를 두른 채 주방에서 나와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어서 와 기자님, 우리 집은 신발 벗고 편하게 들어오는 거야.”
1층은 식당으로 쓰고, 2층은 식구들과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사신단다. 한옥집은 굉장히 아늑하면서도 넓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온통 나무로 되어있다. 사장님 부부가 직접 나무를 캐다가 손수 지으셨다는데 장인의 정신이 느껴진다.
“나는 나무를 너무 좋아해. 자연 하면 딱떠오르는 것이 나무잖아? 이런 집에서 살다 보면 강남의 저 비싼 아파트는 오라고해도 안 갈거야.”
조정래 사장님이 만드는 한정식은 특별하다. 담백하면서 깔끔하고 전혀 무겁지 않은 맛, 요즘같이 화학 조미료와 가공 식품들이 아니면 맛을 내지 못하는 여느 음식점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맛이다. 조미료를 쓰지 않는데도 이 정도의 맛을 낼 수 있으면 조정래 사장님의 내공은 타고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난 처음부터 요리에 소질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니었어. 음식점을 하게 된 이유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시작한 거야. 생업을 시작하기 전, 그 당시만 해도 아이들이 어렸고 내 품에서 떨어뜨려 놓고 싶지 않더라고. 아이들이 엄마 품을 그리워해서 허전해 하는 모습을 보기 싫었었지. 그래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시작한 것이 음식점이야.”
생계로 시작한 체인점, 하면 할수록 괴로웠어
생계를 위해 요리를 시작했다는 사장님은 처음에는 여느 평범한 가정 주부만큼만의 요리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음식점을 시작할 때 뭐 요리에 관한 지식이 없다 보니까 처음에는 남의 것을 받아다가 시작했지. 체인점을 했던 거야. 그런데 장사를 하면 할수록 실망한 점이 너무 많았어. 물론 우리가 외식업을 하면서 돈도 목적이겠지만 난 사람 몸에 들어가는 것이니까 음식은 건강이 먼저라는 생각을했거든.”
체인점을 하면 할수록 너무 괴로웠다는 사장님은 예전을 회상하며 열변을 토해 내신다. 건강을 해치는 음식은 음식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조정래 사장님.
“처음에는 체인점 본사에서 재료를 대주는 대로 가져다가 썼지. 체인점 본사에서 소스를 가져다주는데 이것을 만드는데 자기네들만의 노하우가 있다는거야. 내가 맹목적으로 노하우라는 것을 따라하기보다는 내가 만드는 음식인데, 그래도 일단 거기에 들어가는 재료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어? 그래서 체인점 본사에 이 성분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까 가르쳐 주지 않더라고. 그래서 결국 나 혼자 터득 해보려고 시도를 했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내 혀에 닿는 순간 쓰러질 뻔했다니까! 혀 끝이 갈라지는 느낌이더라고. 화학 조미료 맛이 어찌나 강하던지, 내가 그 때 당시에는 나이는 먹었었지만 세상 물정을 참 몰랐었던 것 같아. 남의 것을 가져다 쓰는 것은 둘째치고, 이런 음식들을 내 귀중한 손님들에게 먹이는 것이 참 괴롭더라고. 그러다 보니 한 보름간 몸살을 앓았지 뭐야.”
음식이 약이 아니라 독이 되어서는 절대 안돼
갑자기 인터뷰를 중단한 조정래 사장님은 주방에 쪼르르 들어가시더니 상황버섯 달인 물 한 컵과 샐러드 한 접시를 내오신다. “기자님, 배고프지? 먹으면서 말하자고. 먹어야 무슨 기운이 나서 이야기를 하던 말던 할 것 아니야. 이 것 말고도 주방에 내가 직접 여러 가지 만들어 볼 테니까 맛을 보라고. 내 음식은 그냥 음식이 아니라 약이야 약.”
샐러드는 참 독특하다. 음식점 뒤에 있는 텃밭에서 방금 캐내어 씻은 야채들과 바나나를 발효시켜서 만든 즙을 희석시켜서 샐러드 드레싱을 만들었다. 기름이 거의 들어가지 않아서 드레싱 자체를 수저로 떠 먹으면 마치 새콤달콤한 바나나 과즙을 먹는듯한 느낌이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들 중 한의사 한분이 계셔. 오랫동안 친분을 쌓아왔는데 체인점을 하던 당시 그 분이 어느 날 그러시더라고. 그렇게 고민하고 괴로워하지 말고 음식을 내 방식대로 만들라고! 그 말씀이 나에게는 참 용기가 많이 되더라고. 그때부터 기초부터 요리와 음식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어. 어떻게 하면 조미료를 쓰지 않고 맛을 낼 수 있을까? 내가 외식업을 한지 거의 30년 가까이 되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어. 꼭 의사만의 사람의 건강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음식 만드는 요리사들도 사람의 건강을 해치기도 하고 고쳐주기도 할 수 있다니까! 그런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
자연의 맛, 고향의 맛, 추억의 맛을 살리는 비결
조정래 사장님은 지금 같이 봄기운이 완연한 요즘, 겨울에 많이 사용하였던 연근, 말린 묵, 제철에 걷어놓았던 토란대, 시래기, 우엉을 가지고 주방에 들어가셨다.
“이 재료들을 가지고 음식을 해주면서 내가 겨울을 끝맺음 해줄게.”
포실포실한 두부 위에 달달하게 조린 우영을 놓고 간장 소스를 끼얹었다. 송송 채 썬 파로 마무리 하였는데 그 모양이 전혀 멋을 내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한껏 치장한 느낌이다. 다람쥐 마을에서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두부 요리라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탕수육도 선보였다. 하지만 보통 탕수육과는 다르다. 고기를 사용하지 않고 말린 표고 버섯과 느타리 버섯, 연근을 튀겨 탕수육 소스로 버무렸다. 음식은 화려하지 않게 만든다는 것이 조정래 사장님만의 고집이다. 사람이 화장을 할 때 수수하고 자연스럽게 하면 바라볼 때 편안해 지듯이 음식도 너무 많은 양념과 간을 들이면 오히려 망칠 수 있다. 그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최대한 군더더기를 빼는 것이 중요하다.
“버섯은 고기 맛이 나지. 채식주의자들과 스님들은 버섯으로 고기 맛을 느끼지. 나보고 아까 음식을 잘하는 비법이 뭐냐고했지? 제철 재료를 사용하는 거야. 요즘 같은 경우 땅에서 솟아나는 새싹으로 요리를 하면 좋지. 가을에는 감자, 뿌리 음식, 우엉, 연근, 버섯을 많이 쓰지. 겨울도 비슷해. 그리고 여름에는 호박, 가지, 고추, 고춧잎, 깻잎을 주로 사용하지. 나는 될 수 있으면 채소와 과일을 이용하여 음식을 만들려고 해. 물론 고기도 사용하지. 하지만 고기를 그냥 굽거나 양념하여 단순하게 요리하는 것보다는 한약재를 넣어서 요리한다든지, 어떤 야채와 궁합이 잘 맞을까 생각하며 항상 채소를 곁들이려고 노력을 해. 지금 우리 집 메뉴에 있는 수육도 10가지 이상의 한약재를 넣고 끓여서 만든거야. 그리고 우리 친정 어머니와 시어머니 덕도 봤지. 두 분 모두 음식 솜씨가 좋으셨거든. 내가 시골 출신인데 어렸을 때 어머니가 상을 차려주시는데 금방 밖에서 따온 상추며 된장이며 시래기며…, 장독대에 한 번 다녀오고 텃밭에 한 번 다녀오면 음식이 한 상 차려지는 거야! 그게 나에게는 고향의 맛이지. 세월이 흐를수록 그리워지더라고. 손님들에게 내가 어렸을 때 간직했던 추억의 맛을 전해줌으로써 항상 그 맛을 간직하려고 해.”
직접 담근 장류와 직접 가꾼 채소를 고집하는 이유
조정래 사장님은 주방에서 요리를 하다말고 자꾸 밖으로 나갔다 들어왔다 반복하신다. 밖에 꿀단지라도 있는 것일까? 이유가 궁금하였다.
“아, 우리 집 뒤에 넓은 텃밭이 있어. 나는 음식 만들 때 들어가는 거의 모든 재료를 내가 손수 농사지어. 요즘 시장에 가면 유기농 식재료들이 널려있기는 하지만 뒤에 텃밭이 이렇게 넓은데 뭐하러 굳이 사다 쓰지? 시장에서 파는 하룻밤 지난 채소와 이렇게 1년 내내 농사 지어서 바로 직접 딴 채소의 싱싱함과 신선함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말이야.”
텃밭을 가꾸는 일이란 쉬운 것이 아니다. 웬만한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면 배추 몇 포기 가꾸는 것도 힘들다. 식당을 운영하는 것도 힘들텐데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것일까?
“내가 직접 기르고 가꾼 것으로 음식을해서 손님들이 즐겁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더라고. 그러니까 신이 나서 텃밭도 가꾸고 다 하는거지.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손님들한테 드리면 내가 추구했던 노력이 전달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힘은 들지만 그 힘든 것조차 즐길 수 있는 것 같아.”
조정래 사장님은 밖에 텃밭을 구경 시켜 주는 김에 귀한 것을 보여주겠다고 하며 이번에는 앞마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앞마당에는 크기가 제각기 다양한 장독대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우리 집 보물들이야. 된장, 간장, 고추장들인데 다 내가 직접 담근 거야. 장들이 무슨 보물이냐고? 이래봬도 20년 묵은 된장, 간장도 있고 10년 묵은 고추장도 있어.”
특별히 귀한 장들을 맛보게 해주신다. 손으로 20년 묵은 된장을 찍어 먹어보았다. 살아있지도 또는 죽었다고 할 수도 없는 그 오묘한 발효 음식의 깊은 맛이 느껴진다. 20년 묵은 간장은 짜지 않다. 단 맛이 난다. 오래 묵은 고추장은 색깔이 춘장처럼 변해 있었다. 하지만 맛은 과일을 섞어 놓은 듯한 단 맛이 났다.
계획은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이 순간 그냥 최선을 다하는 것
“가끔 손님들이 장맛이 너무 좋다고 그러면 공짜로 장을 주기도 하지. 나는 손님들과 대화하는 것이 좋아. 가족 같은 마음으로 다가가고 내 음식이 어떤가 물어보고 맛있고 마음이 편안하다고 하면 내 마음도 편해지고… 주방에서 음식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손님하고 같이 어울리면서 식사 하실 때 내가 만든 음식에 대해서 설명을 해드리면 잡숫는 분이 마음이 더 편안해 질 것 아니야? 모르고 먹는 것보단 알고 먹는 것이 훨씬 낫지. 예를 들어 추상화를 그렸는데 설명이 없으면 뭘 그렸는지 누가 알겠어? 음식도 마찬가지야. 음식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잡숴보세요 하면 ‘두 그릇 주세요, 세 그릇 주세요’ 이러는 손님들이 많다니까(웃음).”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해가 어둑어둑 저물어 갔다. 인터뷰를 끝내기 전, ‘다람쥐 마을’ 사장님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했다.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음식을 만들어서 손님들이 즐거워 할 수 있게 하고 싶지. 계획은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야. 먼 미래를 놓고 세우는 계획은 누구나 다 세우거든. 하지만 먼 훗날의 계획도 오늘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아. 그래서 나는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종업원들에게 내일을 생각하지 말고 오늘 어떻게 하면 최선을 다해 살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라고 이야기를 해줘. 그거야 그냥.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
<MBC 이코노미 매거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