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26일에는 생활고에 시달려 온 서울시 송파구의 세 모녀가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을 남기고 동반 자살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으며, 10월30일에는 빌라 15채를 보유한 인천시 남구 일가족이 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동반자살해 자살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이런 가운데, 우리사회의 생명경시 풍조에 경각심을 일으키고자 한국생명존중법연구회와 국민권익위원회는 11월3일 국회입법조사처에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존중을 위한 권익구제 강화방안’ 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를 주최한 한국생명존중법연구회 김일수 회장을 만나 우리 사회에 생명존중 문화가 필요한 이유를 들어봤다.
Q.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자살률이 급증하거나 흉악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는 생명존중 사상을 멸시하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 같습니다.
A.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 당 28.5명으로 OECD국가 간 자살률 12.1명에 비해 2배 이상 많으며, 10년 넘게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자살이나 인천 일가족 동반자살 같은 사건도 있고, 인터넷 ‘자살사이트’를 통해 젊은이들이 자살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초 장정우 작가가 일본인 남편과 결혼해 사회적, 문화적 갈등으로 자살충동을 지녔다가 이를 극복하고 ‘자살! 죽여버리기’라는 책이 출간하였습니다. 장 작가는 자살을 꿈꾸었다가 자살할 생각을 죽이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내 자신이 우리 사회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서 책을 내게 된 것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한국에서 생명가치가 경제적인 논리나 불공정의 문제, 외로움 등의 이유로 자살을 선택하는 풍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사회가 생명을 우선시하고 거기에 포커스를 맞추는 정책과 법제도를 체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한국생명존중법연구회를 설립하였습니다.
Q. 약자 및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해 법제도를 연구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A. 자살이나 생명경시 문제를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법제도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즉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생명을 존중하는 의식을 널리 확산하기 위하여 삶과 죽음, 자살에 관한 조사 연구를 하고 생명존중과 관련되거나 약자 및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를 연구하고 개선하는 비영리 재능기부 단체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숨 가쁜 고도성장의 길을 걸으며 생명을 소홀히 여기는 제도로 일관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생명을 보호해야 할 법과 제도가 오히려 생명을 처분대상으로 삼는 현실에 이르렀습니다. 저희 법연구회는 이런 잘못된 법과 제도에 저항하고 ‘법적인 소란(Legal Noise)’를 일으켜 국민들의 의식을 개선하고 근본적으로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자 합니다.
Q. 어떤 활동을 해 오고 계시는지요.
A. 주요 사업으로는 연구활동, 교육사업, 출판홍보 및 컨설팅 사업이며, 이런 사업들을 통해 국민 행복과 희망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첫째, 연구활동을 통해서는 생명존중과 관련된 법제도와 소수자 및 약자를 위한 법제도의 개선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자살방지, 생명에 해를 끼치는 사이버 및 바이러스 테러,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행위 근절 및 과거 잘못된 관행의 단절, 소수자 및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복지 등 각종 법제도를 연구하고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 교육사업은 자살 방지 및 생명존중 의식을 확산하기 위한 활동이 주를 이룹니다. 세부내용으로는 자살방지 및 사회적 약자 보호와 같은 생명존중 교육 프로그램 개발, 학교폭력 및 왕따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학교 강연,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인 다문화가정 보호 및 교육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법연구회에서는 이러한 교육사업을 통해 생명을 존중하는 시민문화를 확산하고, 삶의 목표와 가치관을 바로잡고, 행복의 기준을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셋째, 단면적 접근이 아닌 입체적 접근을 통한 홍보 및 컨설팅활동입니다. 이를 위해, ‘생명사랑’기념 콘서트를 개최하거나, ‘너의 심장소리가 들려’와 같은 거리캠페인을 진행하고, 생명존중 서포터즈를 통해 생명지키기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참 다행스러운 점은 이런 활동들을 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인재들이 저희 연구회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 연구회에서는 행정경험이 풍부한 관료들이나 관련법에 정통한 법학자들, 생명존중 의식을 설명하는데 탁월한 교육자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생명존중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는 누구도 관심을 가질 수 있지만, 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는 이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쁜 현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오늘날의 생명가치에 대한 무관심과 무대응에 심각성을 인식하고 참여하는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히 그동안 다양한 문화운동은 이벤트성으로만 끝나 그 영향력이 크지 않았습니다. 이런 문화운동을 제도적 변화로까지 이끌려면 책임있는 정책부서나 현안과 관련된 기관과의 협업이 필요합니다. 이에 법연구회는 법제처와 국민권익위원회와의 협업을 통해 실제적으로 정책에 효과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Q. 이번 포럼에 참석한 토론자들은 자살예방센터가 의무사항이 아닌 권고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자살예방을 체계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어떤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A.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자살문제를 일종의 복지 차원으로 접근하는데 있습니다. 저도 자살예방센터가 출범할 당시 참여해서 잘 알고있습니다만, 정신의학자들이 자살문제를 의학적인 병인으로만 접근해 자살 충동이 있는 사람만 진료를 하고 자살예방 활동을 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자살 문제는 우리 사회의 모든 병리현상의 종합판이라고 여기고 접근해야 합니다. 의학적인 병인은 복합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일 뿐이므로, 다양한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자살예방센터는 보건복지부에서만 관여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청소년위원회, 교육부, 국방부, 노동부 등 모든 행정부처가 협업하여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리라 봅니다.
Q. 우리나라에서 자살률이 높은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A. 우리나라는 선진국형 복지자살의 흔적도 조금 엿보입니다만, 근본적인 원인은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것에 있습니다. 70년대 산업화 과정을 이루는 시기에는 선진국의 전례를 연구해서 가족의 울타리가 해체되고 사회 안전망이 무너지는 것을 예측하면서 대책을 세웠어야 했습니다만, 그런 대책마련에 미흡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우선 경제성장을 한 다음에 환경이 이미 다 파괴되고 난 다음에 그걸 나중에야 복원시키려고 하니, 각종 사회적 병폐가 드러나고 부작용이 속출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중산층이 파괴되고, 사회적 차별에 희망을 상실하고, 삶에 염증을 느껴 자살을 결심하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나아가면서 산업화가 가져올 독일사회의 변화를 예측하기 위해 막스프랑크연구소라는 책임연구소를 세워서 각종 환경요인들을 분석한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이처럼 선진국들은 도시건설이나 공장건축 시에는 이에 대한 산업영향을 평가하면서 삶의 터전과 건강요소를 고려하고 예방책을 세워갑니다. 우리 사회는 거시적인 안목에서 전략을 세우고 대책을 마련하는 선진국의 탁월한 안목을 배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부처나 국책연구기관이 정권에 흔들리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자살예방대책을 풀어나가는 형태가 필요합니다. 현재 총리 산하에 국책연구기관이 20여개나 되고 과학기술연구소도 많이 설립되어 있으며, 창조경제에 정부의 역량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창조경제 다음이 무엇인지, 국민소득 4만불이 실현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연구도 수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가경제 발전에 발 맞춰 생명존중 의식을 국민에게 심어주어야만 균형있는 국가발전이 가능하리라 봅니다.
Q.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문화가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A. 종교, 교육, 정치, 경제가 바로서야 합니다. 선진국들이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한 사회가 바로 서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연구해보니 이 네 가지 요소가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체계는 백년대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이미 오래 전부터 대 혼란을 겪고 있으며, 정치인들은 당리당략을 앞세운 제 몫 챙기기에만 연연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경제적으로는 성장을 거듭해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국가가 되었습니다만, 비정상적인 성장을 거듭하는 점은 안타깝습니다. 경제적으로 중간층이 취약하다보니 가계부채는 늘어나고 있고 위아래로 빈부의 격차는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최근 인천에서는 빌라 15채를 보유하고도 빚에 시달려서 자살한 일가족 사건이 있었으며, 군에서는 집단구타로 인한 윤일병 사망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건들은 단순한 개개의 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나이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무의 기둥을 잘라보면 나이테가 드러나듯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중요한 가늠자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종교의 역할 부재입니다. 종교는 사회 내에서 정신적으로 중심을 잡아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국내에는 카톨릭이나 개신교나 불교 같은 여러 종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뛰어넘어 영적인 힘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나 부도덕성을 떨쳐버리고 인격의 변화를 겪기 위해서는 종교가 제 역할을 해야 하며, 가정의 해체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종교의 힘이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는 종교에 대한 불신이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예를 들면, 성도들의 마음에 불신의 벽을 만든 교회 지도자들의 책임도 있습니다만, 교회의 신성성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이 제멋대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영적인 교훈과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종교의 힘이 하루 빨리 회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Q. 향후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A. 우리 사회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한 리걸노이즈(법적인 소란)나 문화운동이 좀 더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문화적인 이벤트나 캠페인을 개최하여 생명존중 의식을 전 국민적 이슈로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저명인사나 지도층들이 이런 행사에 함께 동참하여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생명은 그 자체로 소중합니다. 그리고 어떤 생명이든지 보호받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한국생명존중법연구회는 생명존중 문화의 질적 향상을 꾀하며, 생명과 관련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법제도를 연구하고 생명존중 문화를 달성하기 위한 교육·홍보활동을 꾸준히 해나갈 것입니다.
MeCONOMY Magazine December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