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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굳이 아무도 묻지 않았던 아버지의 인생

누구에게나 아버지가 있다. 그러나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은 각자마다 다르다. 때로는 함께 웃었고 때로는 함께 울었고 또 어떤 날은 서로가 서로를 울게 했던 가족 그리고 아버지. 늘 아버지로서만 바라봤을 때는 몰랐었던 한 남자의 고독과 좌절. 아버지와 남성이라는 두 이름으로 분열되고 소외됐던 한 인간의 삶. 한국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몸부림쳤던 아버지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소환해본다.


73년 인생을 담은 43통의 이메일


사람들은 이상적인 아버지 상으로 자애롭고 공정하며 절대적으로 강력한 가장을 떠올린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남자들이 그런 이상적인 가장이 되기에는 수많은 난관과 장애물이 있다. 그래서 수많은 남성들은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가장이 되지 못할 때 분노하고 좌절하며 이중성의 간극에서 분열한다.


2008년 컴맹이던 일흔셋 노인이 생의 끝자락에 혼신의 힘을 다해 한 자 한 자 독수리 타법으로 자신의 출생부터 현재까지의 일생을 1년 동안 43통의 이메일로 딸에게 남겼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친 뒤 다시 열어본 메일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가족 모두에게 건넨 자신의 이야기였다. 아버지 당신의 걸음이 흔들릴 때마다 가족의 삶도 함께 흔들렸다. 아버지는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 <아버지의 이메일>은 홍재희 감독의 아버지와 가족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아버지의 이메일>은 딸인 감독이 그 아버지의 이메일을 단초로 아버지가 살아온 73년의 역사를 거슬러 가며 당신이 살아온 한국 현대사의 질곡과 그 안에서 그들 가족이 함께 겪었던 불운한 시간을 소환하고 우리시대 부모들이 살았던 삶을 이해하고자 그 출발점에 서는 이야기다. 그땐 그랬다…라고 표현했던 그 시절의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한 인간의 삶을 추적하며 소외돼온 우리 시대의 아버지라는 존재를 탐구했다.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수상


홍재희 감독은 이미 고인이 된 아버지와 가족 간의 이야기를 집요하게 추적했다.


용감하게 추적했기 때문일까. 홍재희 감독의 이 영화는 2012년 제9회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후 아버지 세대의 진심을 이해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자녀 세대의 이야기로 뜨거운 공감을 모았다. 같은 해 국내최대 독립영화축제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돼 “한편의 훌륭한 이야기이며 어떤 식으로든 우리 개개인의 심장을 건드리는 아픔이며 무엇보다 그 아픔을 들여다보게 하는 치유의 영화”라는 극찬과 함께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이어 제1회 무주산골영화제의 전북비평가포럼상을 수상했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서울노인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발, 파리한국영화제, 대만여성영화제, 제주여성영화제 등 국내는 물론 해외 영화제에도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감독 개인의 사적인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됐지만 현재의 우리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용서 이전에 이해가 먼저


홍 감독은 이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 중에 중요한 것은 용서가 먼저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와 가족사를 파고들면서 가족 구성원인 아버지, 어머니, 언니, 남동생 그리고 자신을 마주하면서 감춰지고 왜곡된 개인사와 가족사. 알코올중독자 아버지, 가정 폭력, 가난, 심리적 분리,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찬 어머니, 거짓, 비밀 그리고 아버지를 부정하고 외면하는 자식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가족의 모습은 누구도 꿈꾸지 않는 모습이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어떤 가족의 모습이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민에 빠지지 않고 객관적으로 이야기와 마주하고 있다.


마주하면서 아버지, 남편이라는 이름이 아닌 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용서를 위해 선행돼야할 과정이라고 홍재희 감독은 전했다.


그는 “남성우월적인 가부장으로, 좌절한 패배자 마초로, 폭압적인 독재자로, 한국 현대사의 희생양으로 살아야 했던 내 아버지. 그리고 이 시대의 아버지들, 한국인. 나는 아버지의 삶을 통해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또한 살고 있는 한국 남성의 삶을 들여다보고자 한다”며 “한 마디로 이 영화는 남자 판 ‘여자의 일생’이다. 다시 말해 ‘남자의 일생’, ‘어느 아버지의 일생’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그렇게 그 누구도 쉽사리 누군가를 용서하지도 그 용서의 차원으로 관객을 데려가지도 않는다. 그저 아버지의 흔적과 그곳에 아직 남아 있는 가족들의 상처를 기억해낸다. 그렇게 기억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가족 모두를 위한 영화가 된다. 강요된 이해, 강요된 깨달음, 강요된 용서가 아닌 용서를 향하는 어렵고도 두려운 작은 걸음걸음에 관한 영화인 셈이다. 그렇게 가족이란 이름으로 상처받은 또 다른 개인들에게 이 영화는 선물이 된다.


아버지였던 한 남자를 이해하면서…


홍 감독은 아버지였던 한 남자의 인생을 이렇게 정리했다.


“그는 남조선으로 가고자 목숨을 걸고 38선을 넘은 탈북자였으며 돈을 벌려고 이를 악물었던 가난한 고학생이었고 서독 파견 광부를 자청했던 패기 넘치는 청년이기도 했으며 미군부대의 기술자로 베트남 전쟁의 복판에 있었다. 또 중동 건설 붐이 한창이던 1980년대 열사의 땅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건설 노동자였으며, KBS 이산가족 찾기 열풍 속에 북에 두고 온 어머니와 누이들을 찾으려 여의도 광장을 미친 듯이 헤매고 다닌 실향민이기도 했다.


알코올 중독으로 십여 년을 한 평 방에서 두문불출하다가 한때 88올림픽 자원봉사에 지원해 외빈 초청 팀에서 활동했고 공인중개사 1회로 합격한 후 부동산 중개업에 뛰어들었다가 사기를 당해 망했으며 트럭 운전수가 된 후 사고를 내고 감옥에 수감됐다가 출옥 후에는 비정규 용역 노동자로 빌딩을 청소하며 쓰레기를 줍고 유리창을 닦았다. 그리고 는 아파트 주민으로 사는 대신 남의 아파트를 지키는 초라하고 늙은 경비원이 됐다.


독서실 청소 노인 봉사로 늘그막을 소일하며 자신의 일생을 책망하던 그는 삶의 끝자락에서 그의 일생에서 유일하게 남은 금호동 구옥 집 한 채를 아파트 재개발 광풍에서 지키려다 처절한 회한 속에 결국 술로 스스로의 생을 마감했다. 그는 바로 내 아버지다.”


아버지의 고백과 자녀의 화답


아버지 세대와의 소통에서 명확한 한계로 보이는 부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이해의 시작이다. 조금 늦게 당도한 아버지 세대의 참회이자 자녀 세대가 그들에게 건네는 아직은 늦지 않은 따뜻한 응답이다.


그러면서 홍 감독은 “나는 앞으로 이런 아버지가 만개하는 세상을 꿈꾼다. 타인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과 감정을 나누는 삶이 곧 남성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이를 먹을수록 자기안의 여성성과 기쁘게 화해하고 연대하는 방법을 깨우친 그런 남성 아버지를. 그리고 여성인 나는 이런 남성을 기꺼이 사랑하고 존중할 것이다”고 말했다.


MeCONOMY May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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