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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기숙 시낭송가

우리겨레는 예로부터 시로부터 하루를 열고 시를 끝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민족이었다. 자연과 소리 어느 하나 시로 읊어내지 않은 것이 없었다. 문자를 알면 아는대로 모르면 모르는대로 시를 읊었다.

시낭송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시의 운율을 살려 시를 눈으로 보는 것에서 귀로 듣는 것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들이다. 장기숙 시낭송가는 ‘시낭송가’라는 명칭을 받은 최초의 인물이다. 시낭송가를 시작으로 시인, 작가의 삶을 살고 있는 장기숙 시인을 만나보았다.


시낭송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1991년 김수남선생님의 권유로 1회 전국시낭송대회에 참여 최우수상을 받고 ‘시낭송가’라는 새로운 칭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해, 청와대 춘추관에서(노태우 대통령) 김옥숙 여사가 논개를 좋아한다고 하여 ‘논개’를 낭송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배재, 대광, 계성 등 중고등학교 문학행사에서 청소년을 위한 시낭송을 했습니다. 1993 ‘민주자유당 시와 음악’, ‘기관행사’, ‘국화축제’, ‘일반 초청행사’ 등 행사에서도 시를 낭송하였습니다.

근래에는 낭송대회도 다양화되고 많아졌습니다. 시를 좋아하고 낭송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사회가 아름다워져 가고 있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는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나요?

네루다는 시가 나를 찾아왔다고 했어요. ‘내가 헤매고 다니던 길거리에서, 밤의 한자락에서, 뜻하지 않은 타인에게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속에서 고독한 귀로길에서 그곳에서 나의 마음이 움직였다’ 라고 말이죠.

어려서부터 문학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했기 때문에 상을 많이 받았어요. 문득 삶 자체가 문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소설을 써보려고 긁적여 보았죠. 그러다 여러 가지 삶을 색칠하고 공상하는 작품을 쓰는 일보다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시를 썼어요. 시는 뜻하지 않은 순간에 찾아와요.

시몸살을 앓으면서 중앙대예술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춘문예 등단이 어려운거예요. 그래서 한맥문학, 아세아문학에서 시로, 한국 아동문학 동시로 등단하면서 시인과 시낭송이라는 이름을 걸게되었습니다.


시는 무엇이라고 보나요?

시를 정의하기가 참 어려워요. 굳이 표현하자면 개인의 생각과 경험, 상상의 느낌과 진실을 운율이 있는 언어로 압축해서 표현한 언어예술입니다.

예술은 예(심을예 藝) 술(꾀술 術), 자전에서는 예자를 종(씨종 種) 야(잇기야 也)라 풀이하고 있는데, 종의 뜻은 심다입니다. 종자란 생명의 씨눈이 잠들어 있는 집입니다. 씨앗을 심고 그 속에 잠들어 있는 생명의 잠을 깨워 자라게 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하는 기술이 곧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조선일보에 ‘우리나라의 시가 무엇이냐?’ 고 시인들에게 묻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신달자 : 내 뼈안에서 울리는 내재율
김종철 : 시인은 목월도, 미당도 김구용, 소설창작을 가르치는 동리도 불쑥 한마디 했던 그것 나도 한마디 할란다. ‘똥이야’
허영자 : 자기존재의 확인이며, 자기정화의 길이요. 참회의 마음이다.


시낭송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신의 나라에서는 열매를 팔지 않고 씨앗만을 판다고 하죠.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경작하여 결실을 거두는 것은 문인의 몫입니다. 낭송가는 결실된 열매에 소리를 담아 감동을 주는 일을 합니다. 그러면 씨앗을 뿌리고 하나의 결실을 맺기까지의 과정을 들여다 보아야 하겠죠.


영화 <일 포스티노>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이 시 어떤가?”
“이상해요”
“이상하다니, 무슨 뜻이야? 무서운 비평가로군”
“아뇨, 시가 아니라 목소리가 이상하다구요”
“느낌이 어땠는데?”
“모르겠어요. 단어가 왔다갔다 하는 것 같아요”
“바다처럼 말이지?”
“맞아요. 바다처럼요”
“그건 운율이라는 거야”
“멀미까지 느꼈어요”
“멀미?”
“마치 배가 단어들로 이리저리 튕겨지는 느낌이었어요”

운율은 율동적인 리듬이예요. 온 몸에서 터져나오는 시인의 호흡, 숨결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시를 노래한다고 해요. 시인이 쓴 운율적 리듬을 찾아내서 시인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시낭송자의 몫입니다. 그래서 시를 꽃이 되게하고, 향기가 되게하고, 안식과 치유가 되게하고, 민족애를 느끼게 한다고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낭송가라는 칭호를 받은 사람은 듣는이의 가슴에 감동을 주기위해 하나의 시를 된장 곰삭히듯 숙련된 연습이 필요합니다.


시낭송을 즐기고 싶다면

시를 사랑하는 것은 삶을 사랑하는 것이요, 우리말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느낌은 육감이지만, 영혼의 느낌은 영감입니다. 마음이 살아있는 것은 정감입니다. 시낭송은 시마다 가지고 있는 영감과 정서가 다르기 때문에 신과의 교감을 느낄 수 있는 영감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숙연한 자세로 읽고 연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육체가 죽는 것은 死(사)로 표현하고 사는 것을 生(생)으로 표현하지만 영혼이 사는 것은 興(흥)자로 표현하지요. 시낭송도 흥이 있어야 합니다. 노래가 재밌는 것은 리듬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를 즐겨 읽는다는 것은 가슴을 열게하는 감성활동의 지름길이요 상상력과 창의성을 기르는 정신활동의 즐거움입니다. 문학은 상처를 낫게 하거든요. 그렇기에 우선 시집을 들고 읽어야 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소리내어 읽으면서 자신의 호흡으로 살아 움직이도록 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즐거운 정신의 교향악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가 물량주의를 거부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고양시켜 인간다운 풍요로움을 찾고자 할 때 예술을 갈망하고 시를 필요로 하게 됩니다. 아는 것을 즐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낭독이든 낭송이든 시를 알고 즐겨야 합니다.


시를 들려주고 싶다면

시인의 마음과 영혼속에서 무엇을 찾아내야 하는지, 시의 중심의도가 무엇인지. 작가가 쓴 의도를 전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시인이 차려놓은 말의 성찬에 거침없는 식욕을 발휘하여 내 것으로 씹어먹되, 소화시키지 못할 것은 낭송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서정시가 우리에게 주는 것이 있다면

신라시대 원성왕 때 영재라는 시인이 있었는데, 그는 시를 잘 짓고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날 도적을 만나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습니다. 도적의 무리에 둘러싸여 위태로운 상황에서 시를 짓고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가 감동적이어서 도적들이 감화받고 창을 버리고 제자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이 서정시가 주는 위대한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힘으로 맞서려 했다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리지 않습니까. 우리가 자녀양육이나, 인간관계라는 삶의 언저리에서 시 한편이 주는 감동과 아름다운 향기를 오래 느꼈다면 그것이 바로 나를 흔들어 깨운 시의 힘일 것입니다.


정현종의 ‘섬’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3행)


인생을 살아가는데 사람들 사이에 世(세)가 있어요. 그렇다면 누구나 그 섬에 가보고 싶은 것이 사람입니다. 왜? 외로움, 소외감, 떨어져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죠. 서정시를 읽고 들려주면 인간사회가 아름다워집니다.


윤동주문학관에서 하시는 일은?

문학관에 오시는 분들은 학생 단체, 가족, 외국인 등 다양한 사람들입니다. 윤동주문학관에서는 방문하시는 분들에게 윤동주 시인의 언덕 안내와 윤동주 시해설, 낭송을 들려줍니다. 윤동주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닦는 사람들, ‘서시’가 내 삶의 지평이 됐다는 사람들도 많아요. 윤동주 시를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민족애를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미국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성조기의 중요성을 배우며 애국심을 고취시킵니다. 영국인들은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외우며 품격과 긍지를 심어줍니다. 프랑스인들은 어려서부터 명시를 외우게 하여 조국어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우리나라도 어려서부터 윤동주의 시를 읽고 낭송하게 하면 좋겠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이 윤동주의 시를 낭송했으면 합니다. 윤동주 문학상 수상자 이재무 시인은 윤동주의 시를 읽는 것은 우리의 자부심이자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도종환 시인은 우리의 의식 저변 깊은 곳에 자리잡은 정신의 정화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윤동주 시낭송 CD도 만들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시가 있다면

윤동주의 <서시>, <별헤는 밤>, <이적>, <십자가>
김춘수의 <꽃>
도종환의 <벽>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스티븐 코비는 우리에겐 세종류의 삶이 있다고 했습니다. 공적인 삶, 사적인 삶, 내면적인 삶입니다.우리에게 중요한 삶이 있다면 내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를 좋아하고 사색을 좋아했던 희랍은 철학을 남겼지만, 돈과 노예와 권력을 좋아했던 로마는 폐허만 남았습니다.

모든 생명은 죽으면 썩습니다. 그것을 부패라 하지요. 오늘 사회가 부패한 것은 시가 없고 언어만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작업에 종사하는 문인이나 시를 전문적으로 읊는 사람들은 인간의 정신적 자유를 위해 기여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시를 낭송하는 문화운동으로 사회의 거칠어진 언어를 회복하고, 詩(시)문화의 따뜻한 모성으로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낭독과 낭송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책을 읽는 데는 몇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눈으로 읽는 묵독, 소리내어 읽는 낭독, 마음속으로 읽는 심독이 있습니다.

낭송은 위의 세가지 방법으로 읽은 것을 암기하여 즐기거나 대중 앞에 보여지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언어중추신경은 뇌 속의 모든 신경을 지배한다고 합니다. 반복해서 읽고 암송하는 동안 언어중추 신경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여 변화시켜가도록 소리예술을 만들어 냅니다.

시가 노래요, 노래가 시라고 한다면 입으로 전하지 않고 노래하지 않는다면 땅속에서 잠자는 두더지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동을 주고 싶고 알리고 싶다면 낭독이든 낭송이든 들려져야 합니다.

물론, 각자의 성량과 재능에 따라 표현이 다르겠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이 더 멋진 무대를 이끌어 낼 것입니다.


<MBC 이코노미 매거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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