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이코노미 최종윤 기자] 노량진수산시장이 시끌시끌하다. 원래 재래시장이 요란스럽고 활기가 넘치지만 조금은 다른 소란스러움이다. 지난 1월 취재원이 방문한 노량진수산시장은 평소와 다를 게 없어 보였지만 상인들이 입고 있는 옷이 이상했다. 모든 상인이 가슴팍에 ‘단결’, ‘투쟁’이라고 적힌 붉은 조끼를 입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노량진수산시장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 속으로 들어가 봤다.
네비게이션에 ‘노량진수산시장’을 찍고 가다보니 여의도를 마주보고 있는 거대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 좌측상단으로 ‘노량진수산물도매시장’이라고 적힌 팻말이 보이는데 외관상으론 그 위용이 굉장하다. 그러나 차가 건물 앞에 도착하면 주차장으로의 차량 진입이 막혀있다. 복잡해야할 시장주차장에 차량진입을 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뭘까?
총 공사비 5천237억원...그러나 상인들은 불만
지난해 10월 노량진수산시장의 현대화시장이 완공됐다. 총 공사비만 5천237억원(토지 2,670억원, 건물 2,567억원)이 들어갔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곳은 여전히 비어 있는 상태다. 왜 상인들은 깨끗한 건물을 두고 굳이 재래식 시장을 고집하는 걸까. 취재원이 이곳을 찾은 날(1월 중순) 노량진수산시장 각 점포들에는 생선과 각종 해산물만이 수족관을 지키고 있을 뿐 상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함성이 들릴 뿐이었다. 상인들이 모여 있는 곳은 시장과 외부주차장이 있는 건물 사이. 이들의 손에는 ‘생존권을 보장하라’ ‘수협중앙회 OUT’ 등의 손 펫말이 들려 있었고 현대화시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뜨거운 외침만이 차가운 겨울 공기를 데울 뿐이었다.
우리나라는 1927년 최초로 서울역 근처 의주로에 경성수산 주식회사가 개장하면서 우리 수산의 현대화가 시작됐다. 이후 1971년 현재 노량진에 한국냉장(주)이 도매시장을 건설하면서 상인들이 여기로 옮겨오게 된다. 노량진수산시장의 노후화는 이후 40여 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현재 건물이 안정등급 상 C판정을 받으면서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이 본격적인 절차에 들어가게 됐다. 이 사업은 2008년 현대화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이 완료된 후 2012년 12월 착공식을 거쳐 지난해 10월 완공됐다. 그러나 깨끗하게 정리된 신 건물을 본 상인들은 ‘거기에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고 반발하면서 현재(2016년 1월말)까지 비어 있는 상태다. 상인들은 거기서 물러서지 않고 매 주마다 2회씩 집회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화시장, 그리고 면적 논란
상인들이 신 건물에 입주를 거부하는 이유는 1차적으로는 면적 때문이다.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비상대책총연합회 이승기 공동위원장은 “노량진수산시장이 2만여 평의 큰 대지에 지어졌는데도 현대화시장은 너무 좁게 졸속으로 지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2009년도 양해각서를 체결할 당시에는 현재 노량진 수산시장의 수평이동을 약속했는데 완공된 건물을 본 상인들은 ‘사기 맞았다’는 생각에 분개와 분통을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상인들이 건물 내부를 본 것은 완공되기 2달 전”이라며 “아파트를 짓더라도 견본을 보여주는데 수협 측에서는 우리에게 공청회나 시뮬레이션 등 그 어느 것도 보여준 것이 없다. 지어지기 전에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는데도 ‘허허벌판인데 뭘 공개하느냐’는 답변만 돌아왔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현재 상인들이 요구하는 것은 현대화시장 건물과 관련한 공청회, 시뮬레이션 등”이라며 “현대화시장에 대해서 공청회를 한 번도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협측은 ‘무조건 잘해 놨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상인들이 보기에는 제대로 해놓은 게 없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전문가들과 공청회,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검증해보자는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수협중앙회 측은 시장 점포면적과 똑같은 1.5평으로 만들어진 만큼 잘못된 것은 없다는 반응이다. 수협노량진수산(주) 현대화사업 T/F팀 이연우 과장은 “그동안 크게 문제 삼아오지 않았을 뿐이고 노량진수산시장이 40여 년이 넘은 재래시장이다 보니 뚜렷한 경계선이 없어 계약상의 면적보다 상인들이 통로를 무단으로 사용해 왔을 뿐”이라며 “현대화시장의 점포면적은 현재와 같은 1.5평이 맞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대화시장 원안은복층으로 1층에는 경매장이 들어서고, 2층에는 소매점이 들어가게 설계해 점포당 2.5평에서 3평 정도로 설계를 했었다”며 “하지만 당시에 ‘도매시장을 어떻게 복층으로 하느냐’는 상인 측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여 다시 판매장을 1층으로 내리는 재설계를 해야 했다. 판매자리를 1.5평으로 계획한다는 것은 2012년 11월23일 상우회 안내문으로도 이미 공지가 됐고, 도면도 배부가 됐다. 시장 종사자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을 이제 와서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억지”라고 주장했다.
한 상인(전창배 씨)은 “상인들은 40여 년 넘게 이 자리에서 장사를 해왔다. 2000년대 초반 노량진수산시장을 인수해서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인들에게 1.5평이라며 사인을 받았다. 이제 와서 그걸 무단점용이라고 운운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현대화시장 점포, 가로·세로 비율 바뀌어
현대화된 노량진수산시장은 축구장 6개 정도를 합쳐놓은 40,450㎡(12,236평)의 대지에 지하2층, 지상6층, 연면적 118,346㎡(35,800평) 규모로 건립된 최첨단 현대식 건물이다. 기존시장의 연면적 68,395㎡(20,689평)에 비해 49,951㎡(15,111평)이 증가해 약 1.7배가 늘어났다. 수협중앙회 관계자는 “현대화된 노량진수산시장의 대지면적은 비축기지 부지 22,146㎡(6,699평)을 활용했다. 현 시장상권 유지를 위해 영업을 지속하면서 공사를 시행해야 했기에 기존 시장부지 66,636㎡(20,157평)에 비해 사업대상 부지면적이 26,186㎡(7,921평) 감소될 수밖에 없었다. 과거 70년대 초 부지의 효율적 이용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 만들어진 기존시장의 단층건물과 최신 건축기법을 사용해 완공된 현대화된 복층건물을 1층 바닥면적의 크기만으로 단순 비교해 턱없이 작다는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모순적인 사고”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취재원이 살펴본 노량진수산시장의 현대화건물은 상당히 넓었지만 상인들을 위한 점포는 다소 작아 보이는 느낌이었다. 현대화시장을 안내한 수협 관계자는 “판매자리의 전용면적은 현대화 전후 모두 1.5평으로 동일하게 만들어졌다”면서 “다만 가로세로의 비율이 바뀌었는데 이는 진열효율을 높이고 판매를 늘리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신축건물은 시장을 찾는 고객이 지나다니는 통로 쪽을 길게 만들어 진열효율을 높였고, 고객대면 길이를 넓혀 현대화된 시장에 적합한 영업환경을 구현했다”고 덧붙였다. 면적 논란이 일자 수협은 현대화시장 점포 가운데 몇 개의 점포에 시뮬레이션을 위한 수족관 등 매대를 채워 놓았다.
계속 연기되는 공청회
상인 비상대책총연합회는 현재 공청회를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0월29일부터 계속되는 요구에 국회의원 전병헌 의원 주관으로 1월22일 공청회 날짜가 잡혔지만 다시 같은 달 29일로 연기됐다. 그러다 또 다시 3월 이후로 공청회를 연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공청회 연기는 상인측이 요구하고 있다.
이승기 위원장은 “지난해 11월부터 공청회에 필요한 자료(현대화시장 관련 자료)를 계속해 요구하고 있지만 수협 측에서 ‘극비문서’라며 주지 않고 있다”면서 “시장 종사자들에게 감춰야할 무슨 문제가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형식적인 공청회가 아니라 노량진수산시장의 현대화가 이 시장의 역사적·문화적·사회적 가치를 충족하고 우리의 생존권 보호를 위한 이상적 방향으로 진행되는지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자료는 주지 않고 공청회 연기의 책임을 우리라고 몰아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비상대책총연합회가 요청하는 자료는 현대화시장의 CAD도면자료, 타당성조사, 설계변경 내용 등이다. 수협 측은 상인들의 이 같은 자료 요청행위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수협중앙회 관계자는 “사실상 지난해 10월부터 필요한 자료들을 직·간접적으로 보냈다. 그런데 갈수록 상인들은 ‘자리가 좁다’는 현상과는 상관없는 시장운영, 설계 등 지적재산에 관한 현대화사업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며 황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우리한테는 언제든지 열람(복사)가능한 도면이 비치되어 있고, 현대화시장 점포에는 시뮬레이션용 판매시설도 배치돼 있는 상황이다. 공청회를 하루빨리 열자고 해서 원하는 날짜에 공청회도 응했는데 이제 와서 자료가 불충분하다는 말을 하는데 도통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수협과 상인의 팽팽한 줄다리기
현재로서는 양측의 명확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상인 비대위측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현대화시장은 절대 들어갈 수 없다는 입장이다. 비대위측은 “수협 측에다 건물을 증축해주든가 현재 구 시장을 리모델링 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수협 측은 건물이 이미 완공된 상황에서 공청회 개최도 많이 양보한 만큼 더 이상 끌려갈 수 없고, 공청회 개최를 위해 연기해 재공표 한 3월15일을 목표로 이전·입주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승기 공동위원장은 “단순히 우리가 점포면적만 가지고 문제를 삼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면서 “아파트 지을 때 볼 수 있는 그 어떤 견본이나 모형같은 것조차 본적이 없다. 이제라도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 잡아 가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량진수산시장은 지금까지 세계3대 먹거리 재래시장으로 선정되는 등 여러 사회문화적 브랜드가치를 높여왔다. 이 상태로는 노량진수산시장은 힘들어 질 수밖에 없고, 증축이나 현재 시장 리모델링 등의 추가 대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비대위 측의 주장에 대해 수협중앙회 관계자는 “2007년부터 현대화사업을 추진하면서 워크숍, 설명회, 대책위원회, 토론회, 간담회 등 수십 차례의 각종 회의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공감을 형성해 왔다. 사실상 모든 것이 진보된 시장형태이기 때문에 검증자체가 불필요하다고 본다. 그래도 오해와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공청회에 진지하게 임하려고 했는데 이마저도 무산시키니 더 이상 끌려 다닐 수는 없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양측 주장보다는 소비자 생각해야
위에 살펴본 바와 같이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은 완공을 해놓고도 서로 간의 의견차로 진통을 겪고 있는 양상이다. 최근 상인들이 주축이 된 비상대책총연합회 집회에는 중도매인들까지 가세(1월28일)하면서 수산시장 전체의 문제로 번질 조짐도 보인다. 상인들은 증축을 하거나 구 시장 리모델링을 요구하고 있으며, 수협중앙회는 일부 상인들의 억지 주장으로 선량한 상인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손해배상 청구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수도 있음을 비대위 측에 알린 상태다.
서울과 수도권 등 일대에 수산물 유통의 40% 이상을 유통하고 있는 노량진수산시장이 겪고 있는 진통은 시장의 성장통과도 같다. 그러나 상징적으로나 역할 면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만큼 자신들의 주장만을 앞세워선 안 된다. 양측이 서로의 입장을 내려놓고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아쉬운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