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노쇼 현상
<M이코노미 최종윤 기자> 노쇼(No Show)는 주로 외식·항공·호텔 업계 등에서 예약을 했지만 취소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용어다. 예약부도라고도 한다. 예약은 말 그대로 계약이 예정돼 있을 뿐 취소가 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과 함께 나타나지 않을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타인이 입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 각종 업계는 노쇼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매년 노쇼로 인한 매출 손실만 약 4조원 가량에 관련 업종까지 합치면 8조원 가량에 육박한다는 보고서와 함께 최근 노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 손실이 허용치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 8월17일~18일 코레일에서 받은 추석 열차 온라인예약은 시작한지 30분 만에 매진됐다. 하지만 30분 만에 매진된 약 195만표 가운데 약 5분의 1인 41만표가 출발 당일 취소됐다. 지난해도 마찬가지다. 예약 예매 인원 135만명 가운데 약 29만명이 출발당일 취소했다.
급속한 인터넷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대중화, 이로 인한 예매와 취소의 편리성은 예약부도, 즉 노쇼(No show)의 만연화라는 기형적인 소비행태를 불러왔다. 노쇼의 심각성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 부족 현상이 확산되면서 일각에서는 노쇼(No show·예약부도)의 사회·경제적 비용이 너무 커져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 김종석(새누리당, 여의도연구원장) 의원이 10월11일 국정감사 자리에서 공개한 현대경제연구원의 ‘예약부도의 경제적 효과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5대 서비스업종(음식점·병원·미용실·공연장·고속버스)은 매년 노쇼로 인한 매출 손실만 약 4조 5천억원으로 나타났다. 관련 제조업체의 손실 약3조8천억원까지 합치면 8조3천억원, 고용손실은 무려 약 11만명에 이른다.
김종석 의원은 “평균 15%인 예약부도율을 선진국 수준인 10%로 낮출 경우, 매년 매출 손실액 약 2조 790억과 생산 손실액 3조8310억을 합쳐 5조9100억을 절감 할 수 있고, 5만명의 추가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전 사회에 만연한 노쇼(No Show) 현상
“못 오시게 되면 편하게 전화 한통만 주세요.” 예약을 잡는데 가게 측에서 말미에 예약을 취소하셔도 괜찮으니 편하게 전화 한통만 달라고 말한다. 현재 외식·교통(항공·철도·고속버스)·호텔·영화관 등 예약을 받고 진행하는 거의 대부분의 곳에서 노쇼 로 인한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소규모로 운영되는 식당은 잦은 노쇼로 인해 그 피해가 더 심각하다. 이에 예약자체를 받지 않는 가게도 늘고 있다. 홍대입구에서 5개 테이블을 두고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정식 씨(가명, 38)는 “영업을 시작하고 처음에는 예약을 받았으나, 연락도 없이 오지 않는 사람이 많고, 오히려 예약 때문에 직접 찾아오는 손님들을 받지 못하게 되자 오히려 손님이 줄어들었다”면서 “지금은 아예 예약을 받지 않고 오는 손님만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예약 취소전화도 괜찮으니 편하게 달라고 말해도 연락 없이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 손해가 컸다”며 “노쇼로 인한 손해는 단순히 빈 테이블 하나로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같은 시간에 예약을 잡지 못한 손님, 직접 찾아왔으나 자리가 없어 앉지 못한 손님들에게까지 확대되고 고스란히 가게가 피해를 떠안게 된다”고 토로했다.
서울 관악구 동네빵집에서 근무하는 김혜진 씨(34)는 어쩌다 한번 씩 들어오는 예약주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한다. 김혜진 씨는 “수십 개의 빵을 주문해 놓고 나타나지 않거나, 예약 주문한 케익을 당일 취소하게 되면 난감하다”면서 “빵은 특히 미리 재료를 준비해 놓고 당일 새벽부터 빵을 굽는 것이기 때문에 취소할 경우 최소 하루나 이틀 전에 미리 연락을 달라고 부탁하지만, 그냥 당일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도서관, 예약은 꽉 차 있으나 절반이 가방만...
현재 우리나라의 노쇼 현상은 비단 음식점·영화관·교통 등 소비상황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예약이 가능한 곳이면 어김없이 노쇼 현상으로 골머리를 앓는다. 정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각종 시·구·도립 도서관은 물론이고, 대학도서관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예약시간만 되면 서버가 불안정할 정도로 사람이 몰리지만 실제 자리는 절반 정도가 항상 비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별히 시험기간이 아니라도 대학도서관은 언제나 예약이 힘들다고 대학생들은 불만을 호소한다.
하지만 실제로 가본 도서관은 절반은 빈자리 상태로 자리에는 가방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수도권 A대학에 다니는 김선미(가명, 23) 씨는 “시험기간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도서관 자리는 예약하기가 힘든데, 문제는 항상 그렇게 가득 찬 예약에 비해 자리는 항상 절반가량이 비워져 있는데 있다”며 “예약을 하지 못해 자리를 찾아 떠돌다 한 사람이 가방 여러 개로 자리를 맡아 놓는 모습을 보고 싸운 적도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러다보니 이제는 나도 친구도 서로 자리를 맡아 놓게 되고, 이런 하루하루가 매일 반복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방문해 본 도서관의 빈자리들은 수 시간이 지나도 채워지지 않고 그냥 그렇게 가방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수수료 없는 예약, 자리 옆 함께 예약 후 취소하는 얌체족도
영화관도 마찬가지다. ‘영화 예약쇼핑’이라 불릴 만하다. 10월11일 새누리당 김종석 의원(정무위)이 국정감사 자리에서 공개한 국내 멀티플렉스 C사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예매 취소율은 30% 수준으로 나타났고, 이 가운데 15%가 영화상영 30~15분전 사이에 취소됐다. 예약 행태를 보면 복수의 영화를 다양한 시간대에 예약하거나, 좌석의 양옆 등 3자리이상 예약한 후 영화상영 직전 사용 좌석을 제외하고 취소됐다. 영화상영 직전에 취소되는 표는 예매자가 거의 없어 대부분 빈자리로 남는다.
한국공정거래위원회·소비자원, 캠페인 나서
정부도 우리 사회의 노쇼현상에 대해 심각성을 인지하고 올해 초부터 ‘예약부도 근절 캠페인’에 나서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한국소비자원 등이 주축이 돼 예약부도 근절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비합리적, 비윤리적 소비자행태에 대한 사회문제가 부각되고 있고, 예약부도에 따른 사회적·경제적 문제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김학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3월25일 한국외식업중앙회 본부에서 소비자단체(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한국소비자교육원), 한국외식업중앙회임·직원, 한국소비자원장과 간담회를 열고 소비자단체, 사업자단체의 의견을 들었다. 김 부위원장은 “예약부도는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다른 소비자의 기회를 뺐고, 영세사업자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히므로 이를 근절할 필요가 있다”면서 “소비자원과 협력해 예약부도 근절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고 캠페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를 대표하는 소비자단체, 사업자단체 등 민간
부문이 함께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정감사에서도 지적, 김종석 의원 “정부 역할도 중요”
국정감사에서도 문제점은 지적됐다. 정무위 김종석의원(새누리당)은 늘어난 노쇼는 결국 다른 소비자의 피해로 전가되고 이는 전형적인 시장의 실패로 볼 수 있다며 정부의 역할을 지적했다. 김종석 의원은 “노쇼는 선의의 소비자들의 문화 향유권 박탈과 사업체의 매출 손실과 고용손실 등 심각한 사회·경제적 손실 초래하고 있다”며 “이를 문제시 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의 부재를 바꾸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정재찬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올해 초부터 ‘이 문제에 대해서 저희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뭘까’ 고민했는데, 현재 상황에서는 캠페인 정도 밖에는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견표 한국소비자원 원장도 “소비자에 책임의식을 고양해 부작용을 해소해야 한다”고 원론적인 답을 했다. 이에 김종석 의원은 “공정위와 소비자원에서 실시하는 공익광고나 캠페인만으로는 근절이 어렵다”면서 “노쇼는 다른 선의의 소비자들의 기회를 뺏는 것으로, 소비자의 권리 못지 않게 의무도 지킬 수 있도록 예약보증금제도와 위약금제도를 해외 수준으로 부과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코레일의 열차 취소 위약금은 선진국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미국은 강력한 취소수수료 정책으로 2013~15년 동안 철도예약 9천587만여 명 가운데 ‘노쇼고객’은 3%(287만여 명)에 불과했지만, 코레일의 경우 출발 한 시간 전까지 위약금 400원, 한 시간 이내에 취소해도 표 값의 10%만 물면 되는 수준이다.
김종석 의원은 이어 시대흐름에 뒤처진 소비자 표준약관도 문제 삼았다. 실제 현재 영화관람 표준약관과 여객운송약관의 취소관련 약관은 실시간 예약·예매와 취소·환불이 가능한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이전인 2001년 2월2일과 2005년 1월1일에 제정·시행된 것이 특별한 수정없이 지금까지 오고 있다.
김 의원은 “당시에는 ‘영화예약쇼핑’과 ‘열차표 허수예약’ 같은 스마트폰으로 인한 노쇼 부작용을 당시 공정위는 예상하지 못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표준약관이라는 것은 사업자 단체가 약관개정을 신청했을 때 검토를 하는 것이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입장을 내세우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고 답했으나 김종석 의원은 “행정지도로서라도 적극적인 검토를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만연한 노쇼(No Show), 결국 강한 취소수수료 등 제재조치만 불러올 뿐
예약은 말 그대로 계약이 예정돼 있는 것일 뿐 취소가 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 하나쯤이야’하는 생각으로 무심코 하는 행동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타인에게 전가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예약을 해놓고도 어떠한 이유에서든 이를 실천하지 않는 행동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행계획에서도 차질을 빚게 만든다. 노쇼 문제가 사회적으로 자정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결국 해결책은 강력한 취소수수료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은 손님을 왕처럼 서비스 한다는 말이지, 결코 소비자인 우리가 왕이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MeCONOMY magazine November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