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최근 2년간 진행한 해상풍력 고정가격계약 입찰 선정 사업들이 대부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정부는 2025년 상반기 ‘공공주도형 해상풍력’ 경쟁 입찰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산업부는 풍력 사업 부문에서 ▲고정가격예약 경쟁 입찰 변경사항(예상 공고물량, 공공주도시장의 안보 및 실증우대사항) ▲경쟁 입찰 연계 PPA중개시장 변경사항 ▲공공 단독 출자와 정부 R&D 실증 여부 등에 따른 지분 차등 적용 ▲안보 평가지표 신설(8점) 등을 공개했다.
하지만 조기 대선을 한달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풍력 고정가격계약 경쟁 입찰을 상반기에 하면서 일각에서는 "입찰을 횟수보다 내실을 다지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만약 예정된 7월에 입찰업체가 선정된다면 차기 정권과 의견 조율도 없이 사업이 진행될 수도 있다.
에너지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에서 해상풍력 산업이 지지부진한 지금, 더불어민주당 소속 산업통상자원위원회 허성무 의원이 "에너지 대전화의 시대에 속도보다 중요한 것이 방향"이라고 말한 의미를 되새겨볼만하다.
●낙찰된 지역주민 설득 문제...불확실성에 부동산 PF·금융 문제까지
무엇보다 정부가 발표한 해상풍력 보급 용량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신속한 사업 추진이 필수인데, RPS(재생에너지 발전 의무할당제)와 REC(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제도의 불확실성, 지역과의 마찰 등의 이유로 사업들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해상풍력업계에 따르면, 지난 2023~2024년 입찰에 낙찰된 10개 프로젝트 중 현재 사업이 착수된 곳은 영광낙월해상풍력(364MW)이 유일하다. 이는 2년간 선정된 총물량 3.3GW의 11%에 불과한 수준이다. 지난 2023년 낙찰된 프로젝트는 ▲신안우이해상풍력 ▲영광낙월해상풍력 ▲완도금일해상풍력1·2 ▲고창해상풍력이다.
신안우이해상풍력은 지난해 한국남동발전이 정부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한 차례 떨어지면서 사업이 지연됐고, 선박 문제로 사업이 멈춘 상태다. 고창해상풍력은 지역 주민들과의 마찰(지역 수용성 문제)로 인해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완도금일해상풍력1·2 사업은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공단으로부터 REC 연계 가중치 하향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을 받았다. 다만 최근 산업부가 공고한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 및 연료 혼합의무화제도 관리·운영지침’ 일부개정안에 따르면 발전사업자인 남동발전이 기존에 계산했던 REC 가중치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낙찰된 ▲태안해상풍력 ▲안마해상풍력1·2 ▲야월해상풍력 ▲반딧불이해상풍력 또한 통상 입찰 선정 통보 이후 2개월내에 체결해야 하는 ‘REC 매매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권에서 RPS 공급의무사와 계약 체결 방식을 놓고 불확실성이 제기되면서 사업 진행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REC 매매 계약 기간을 최대 7개월로 연장하고 RPS 계약 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 조항을 추가하는 등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최종적으로 REC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는 사업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김종화 한국풍력에너지학회 전략위원장은 "유동적으로 입찰 시기를 변경해 버리면 업체 측에선 사업을 '울며 겨자먹기'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며 "이번에 신설된 안보 지표 부분은 국산 기자재 사용을 늘리기 위해 노력이지만 박빙의 점수 차이에서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M이코노미뉴스와의 통화에서 양진영 산업풍력협회 팀장은 "케이스마다 다르지만 해상풍력 사업 절차가 많아 기한을 맞추기가 힘든 점도 있고, 한국전력이 공사를 주관하는 '계통'이 부족한 것도 이유가 된다"며 "해상풍력 뿐만 아니라 육상, 태양광 등 주파수를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출력제한의 문제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언급했다.
풍력발전합동지원단 관계자 또한 “육상 사업의 경우는 지역 주민과의 마찰의 문제는 있으나 낙찰 이후 수정·보완하는 작업이 오래 걸리는 편이고, 해상 사업은 사업 불확실성에 따른 부동산 PF나 금융상의 문제로 업체가 바뀌는 일도 있다”며, “정부 측에서도 사업 착공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 ‘해풍법’ 통과로 탄력을 받으면서 입찰 과정, 낙찰가격, 수익성 등을 고려해 사업 진행을 앞당기는 노력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허정민 산업부 에너지정책과 공업사무관은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입찰 선정은 계획된대로 진행되며 사업 진행이 늦어지는 과정에서 업체 측은 자체적인 패널티를 받기 때문에 착공률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며 "단, 산업부는 사업계획, 공급망 확대 등 낙찰 이후 관리를 하고 있다. 특히 업체 측의 준공기간을 늘리는 제도적 보완을 통해 인허가 리스크를 줄이는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LS-한진 연합 vs 반 호반그룹...전선업계 분쟁에 속 터지는 중소기업
지난 7일 LS그룹과 한진그룹이 미래 사업을 고리로 협력 관계를 맺고 반(反)호반그룹 전선을 구축했다. 최근 몇 년 사이 호반그룹은 LS그룹의 지주사인 ㈜LS의 지분을 사들였고, 호반 계열사인 대한전선은 LS전선과 수년째 특허 소송을 하면서 전면전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현재 호반그룹은 한진칼 경영권 분쟁을 일으켰던 사모펀드 KCGI의 지분을 약 14% 매입, 한진칼 2대 주주로 올라서 있다.
국내 전선업계 1, 2위인 호반그룹과 LS그룹 간의 사활을 건 경쟁은 2019년 ‘LS전선과 대한전선 간의 특허분쟁’에서 발발했다. LS전선은 대한전선의 부스덕트용 조인트 키트제품이 자사의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소를 제기했다. 이후 대한전선은 즉각 항소했지만, 최근 1·2심 재판부가 모두 LS전선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대한전선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15억1628만원 배상금 지불판결이 확정됐다.
반면 LS전선과 대한전선은 2018년 기아 화성 공장에서 발생한 정전사고에서 책임소재를 두고도 갈등을 빚었다. 최근 확정된 판결에 따르면 LS전선의 단독 배상책임이 확정됐다.
두 회사의 경쟁은 글로벌 전선업계가 ‘수퍼사이클’(조기호황)을 맞아 두 회사가 외형적 성장을 이룬 데다 LS전선이 주도하던 해저케이블 시장에 대한전선이 뛰어들면서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 시장에서도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초고압 케이블과 해저케이블 시장에서 LS전선이 독점적 지위를 유지했지만, 대한전선이 호반그룹에 인수된 후 자금력을 바탕으로 추격에 나섰다.
LS전선은 2008년 강원도 동해시에 국내 최초 해저케이블 공장을 설립한 이후, 현재까지 4개 공장을 운영하며 국내 최대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1조원을 투입해 미국 버지니아주에 해저케이블 공장 착공에 들어간다. 지난해는 네덜란드에 9073억원 규모의 초고압직류송전(HVDC) 케이블 공급 계약을 따냈다.
대한전선은 2021년 호반그룹 인수 이후 해저케이블 시장의 다크호스로 등장했다. 충남 당진에 해저케이블 1공장을 건설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는 2단계 공사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또한 2027년까지 외부망 해저케이블을 생산할 2공장 준공을 목표로 삼고 있다.

문제는 양 사의 경쟁 체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한국해상그리드산업협회의 구조의 지적이 나오면서부터다. 업계에서는 국내 해상풍력 산업 발전을 목적으로 창립된 한국해상그리드산업협회는 회장사인 LS전선의 이익만을 위해 운영되고 있다는 논란이 줄곧 제기돼 왔다. 이에 관리·감독을 맡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023년 창립된 한국해상그리드산업협회는 협회장인 구본규 LS전선 대표이사를 비롯해 LS그룹 인사들이 대부분 장악하고 있다. 협회 등기임원(이사) 10명 중 5명이 LS그룹 소속이다. 협회 정관에 따르면 이사회 개최는 재적 이사 과반의 출석으로 이뤄지며, 출석 이사 2분의1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이 이뤄진다. 찬반 동수일 경우 의장(협회장)이 결정권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구조 속에서 최근 협회가 LS전선이 사업 참여에 실패한 ‘낙월해상풍력 사업’의 시행사인 명운산업개발에 대해 민형사 소송을 제기해 논란이 됐다. 지난해 5월 이 회사 임원 등을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형사 고발한 데 이어, 지난 3월에는 사업에 투입된 대형 크레인 ‘순이 1600호’(한산 1호)를 퇴거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까지 제기했다.
전선업계 한 관계자는 “양사의 대립이 서로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정도로 확대된다면,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위해서라도 정부 차원에서도 중재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업종은 다르지만 지난해 10월 호주 호위함 사업 입찰에서 나란히 고배를 마신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갈등 사례를 참고해 상생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두 회사가 한국형 차기 구축함 사업 수주를 놓고 개별입찰에 나선 것이 수주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상일 군산대 풍력에너지학과 교수는 "기업간의 문제에 정부가 시장 개입을 하기 애매해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며 "하지만 해저케이블 사업 공급망 결정에 있어 독과점 방지를 위해 최대 70%로 제한을 두는 등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단, 국내 업체가 협력을 통한 국내 기업을 보호를 기본 전제로 한 뒤에 공급망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