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이코노미 최종윤 기자] 2016년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신입사원 공개채용 필기시험이 ‘베끼기’ 논란에 휩싸였다. 수험생들은 단순 베끼기가 아니라 ‘채용비리가 의심된다’고 까지 문제를 제기했다. 4명을 뽑는 기술직 전기분야 필기시험 문제 전체가 전기기사 한 회차 시험문제에서 출제됐다. 문제은행 형식의 출제방식을 많이 취하기 때문에 각종 시험에서 기출된 문제를 따올 수 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25문항 전체가 2011년도 전기기사 일반검정 1회차 100문제 가운데에서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베끼기 논란 속에 채용비리 연루 의혹까지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다. 시험을 치른 취업준비생인 이상우(가명, 33) 씨는 “누군가가 ‘2011년도 전기기사 시험 1회차 에서 출제될 것’이라는 말만 전해준다면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면서 “‘채용비리’가 의심된다”고 알려왔다.
필기시험 치른 수험생 10여명 문제 복기에 딱 걸려
수험생들, “당연히 출제자 고의”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2016년 신입사원 공채 채용 필기시험은 서류전형 합격자를 대상으로 10월15일 치러졌다. 필기시험은 각 분야별로 영어와 채용분야에 따른 전공시험으로 치러졌다. 시험을 보고 나온 수험생 10여 명은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은 뒤 시험문제 복기에 나섰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채용시험을 치른 뒤 시험문제 유출 등을 이유로 시험지를 다시 회수해 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본인의 성적을 확인하고, 다음 시험을 준비한다.
이들은 휴대전화 SNS 메신저상에 단체채팅방을 만든 뒤 하나씩 복기해 나가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기출문제 등에서 많이 출제가 되므로 기출문제를 확인하고, 새로운 문제는 뭐였는지 체크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수험생들은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을 맞이했다. 전체 시험문제가 2011년도 전기기사 일반검정 시험 1회차 시험에서 출제된 것이다.
필기시험을 치른 이상우 씨(가명, 33세)가 이 같은 사실을 기자에게 알려왔다. 이상우 씨는 “복기를 완료하고 어이가 없었다”면서 “이런 식으로 한 회차에서 문제를 골라 낸 경우는 처음 경험했다”고 말했다. 이어 “시험문제는 필연적으로 출제자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이 경우는 고의로 이렇게 낸 것”이라며 “만약이지만 의도적으로 시험문제 출제로 채용비리를 저지르려고 했다면 해당 수험생을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래도 문제를 조금은 바꿔서 출제하지 않았겠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렇지 않다, 기억에 따르면 문제의 보기는 조금 바꿔 냈을지 모르지만, 문제의 숫자까지 다 동일하기 때문에 답도 같다”면서 “시험을 보기 전에 문제와 답만 외우고 들어간다면 그냥 풀지 않고 다 맞출 수 있게 출제됐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억울함에 연락처를 받았던 기계분야 수험생에게도 문의했으나, 다른 분야 시험문제는 그렇게 출제되지 않았다는 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 씨는 “취업이 힘들고 경쟁도 치열하기 때문에 취업준비생들은 수일을 밤잠을 설쳐가면서 채용 시험을 준 비한다”면서 “이 같은 취업준비생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사실 그대로 드러나, 2개월 지난 시점까지 파악 안돼
M이코노미가 윤영일(국민의당, 전남 해남군완도군진도군) 의원실을 통해 해당 시험문제를 입수해 확인한 결과, 취업준비생들의 제보는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4지선다형인 전기기사 시험문제에서 보기 한항만 더 추가해 5지선다로 만들어 출제됐다. 문제들은 한 문제 빼고는 토씨 하나 바뀌지 않고 출제됐다. 그 한 문제도 단어 하나만 바뀌었을 뿐 문제의 취지와 보기의 답은 가공이 없었다.
처음 이 같은 내용을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사장 박현출)에 알렸으나,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인사담당자는 “채용 시험문제 같은 경우는 아무리 기자분이시라고 해도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자가 “채용시험문제를 받을 필요까지는 없고, 그 자리에서 함께 확인해보면 되지 않느냐”고 요청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고, 자체적으로 빨리 진상조사를 해보겠다”고만 답했다. 이후 제보내용이 사실로 드러나자,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인사담당자는 “제보내용과 같이 문제가 일부 보기 조항만 조금 바뀐 채 그대로 출제된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면서 “짧은 자체 조사 결과로는 일단 서류상으로는 문제가 없고, 시험문제 사전 정보유출 정황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전혔다. 그는 이어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공사 내 인사담당자·최종합격자 연루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독립 기관인 감사실을 통해 조사를 하고, 출제 대행기관에 대해서도 경위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인사담당자는 “공정성과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신입사원 채용 필기시험은 공사에서 업무대행 계약을 체결해 진행했다”면서 “문제 출제기관 및 출 제자 선임 등 모든 업무를 대행사인 잡코리아에서 수행했으며, 공사는 필기시험 출제 관련업무 일체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채용대행, 줄줄이 하청 … 채용절차 과정에서도, 이후에도 따로 검증절차 없어
… 수험생 시험지는 이미 전량 파쇄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잡코리아에 채용대행을 맡겼고, 시험문제 자체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인사담당자는 “필기시험 출제 관련업무 일체에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아 필기시험 문제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면서 “이번 관련 내용도 제보 이후 문제를 파일로 송부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이후 면접과정까지 모든 정보를 블라인드 처리하기 때문에 최종합격자 이외에는 개인정보도 스펙도 알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인사담당자는 마지막으로 “위탁계약을 통해 채용대행을 진행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채용비리 등 문제가 발생했다면, 적극적으로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 또 다시 이런 불미스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채용대행을 진행한 잡코리아측도 시험문제 출제 부분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잡코리아 관계자는 “잡코리아도 문제출제 부분은 공기업·공 공기관 채용 필기시험 출제경험이 있는 업체를 선정해 출제의뢰를 맡길 뿐, 출제된 문제는 우리 잡코리아도 볼 수 없으며, 시험 당일에도 출제의뢰를 맡긴 업체가 직접 시험장으로 배송한다”면서 “시험이 끝난 이후 회수까지도 관련업체에서 맡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공사와 채용대행을 맡은 잡코리아도 모두 시험의 공정성을 위해 시험문제를 볼 수도 없고, 가지고 있지도 않다고 밝혔다.
그럼 문제를 출제한 곳은 어떨까. 관련업체는 수년째 공공기관·공기업 등의 시험 문제 출제 등 채용대행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었다. 업체 대표는 “시험문제 출제와 관련해서는 출제위원과 유출에 대한 보안각서를 받고 진행했고, 출제에서부터 시험, 그리고 성적 통보까지 모든 용역에 대해 적법한 프로세스상에서 진행됐다”면서 “지금 제기되는 의혹인 채용비리나 문제유출 등 부분은 별개의 민·형사상 문제인 것 같고, 채용대행 과정에는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또 “출제위원에게 어느 기관의 시험인지 알리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업체 대표는 출제위원 선정과 관련해서도 “각 전공별로 조교수님 이상에서 출제지침을 가지고 출제난이도 조절까지 하실 수 있을 정도로 다수의 시험출제 경험을 가진 분들 중에 선정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출제위원 교수의 공개를 요청했으나, 계약상 문제로 알려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필기시험을 치른 취준생, 최종합격자 등의 실제 시험지를 확인해 보고 싶었으나, 업체 대표는 채용절차 종료 이후 보안을 위해 해당 공사 감 사팀 입회하에 전량 파쇄처리 했다고 밝혔다.
그는 “수학능력시험, 국가 공무원 시험, 전문자격증 같은 국가 주관 하에 1년에 1회 시험을 치르는 것들은 시 험 후에도 이의제기 기간을 두거나 검증기간을 두는데 반해, 일반적으로 기업, 기관의 채용시험 같은 경우는 부정기적으로 시험이 치러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기관별로 관련 규정이 다 다르기 때문에 저희는 거기에 따르는 것이지 따로 정해진 원칙 같은 것은 없다”고 밝혔다. 덧붙여 “수년간 이 업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이런 부분에 문제인식은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객관성 확보 위해서라는 채용대행, 사전·사후 검증절차 따로 없어
채용대행 업체 전문성 확보 힘써야
현재 많은 공공기관이나 기업들은 채용절차를 외주에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업들은 비용과 시간 측면에서 대행기관을 이용하는 것이 유리할 수밖에 없고, 공공기관이나 공기업들은 인사에 있어서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이유가 가장 크다. 하지만 매번 잊을만 하면 터지는 채용비리 사건을 들여다보면 비리를 막겠다는 채용대행이 비리의 창구가 되고 있어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사실 채용대행과정에서의 채용비리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2014년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공공기관 운영혁신을 위한 공공기관 비정상적인 사관행 개선방안’에서도 승진시험을 대행하는 사설 위탁업체를 통해 시험지가 유출되는 등 공공기관 승진과 관련된 대규모 비리가 발생해 제도의 취지가 무색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객관성을 담보하고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는 명목은 결국 채용절차나 과정상에서의 검증을 막고 있고, 이는 절차종료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는 채용대행 업체에 대한 검증은 빠져 있다는 점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채용대행 업계의 한 관계자는 “채용대행 시장은 양적인 면에서만 많이 성장해 왔을 뿐, 질적인 면은 여전히 그대로”라며 “채용대행 업체의 전문성 확보 등에 일정부분 규제가 가해져, 겉모습만 대행이 아닌 제대로 평가하고 검증하는 채용대행서비스로 변해야 할 때가 왔다”고 지적했다.
윤영일 의원, "희망이 아닌 또다른 박탈감 우려"
이번 사건을 함께 지켜본 윤영일(국민의당, 전남 해남군완도군진도군) 의원은 “현재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사태 속 ‘정유라 이화여대 교육농단’의 핵심은 바로 아이들에게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박탈한 것에 있다”면서 “안 그래도 청년들 사이에서 헬조선이란 말이 나오고, 취업포기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이런 사건이 희망이 아니라, 또 다른 박탈감을 주지나 않을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건이 ‘취업비리’인지, ‘단순 베끼기’인지는 추후조사를 벌여 밝혀야 할 것이지만, 단순 베끼기라고 하더라고 이런 무성의한 시험출제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면서 “이번 사건의 철저한 조사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뿐만이 아니라 다른 공기업·공공기관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채용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공공기관과 공기업들은 매년 채용대행 비용으로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 단위가 넘는 비용을 들이는데, 필기시험 문제가 국가기술자격 시험 한 회차 시험에서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전부 그대로 출제됐다. 채용비리가 아니더라도 문제출제라는 명목으로 빠져나가는 돈은 출제위원 교수의 단순 돈 벌이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채용대행은 말 그대로 ‘대행’일 뿐 최적의 대안은 아니다. 인사의 객관성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MeCONOMY magazine January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