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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청년들의 슬픈초상 ''대학5학년''

오늘날 대한민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잉여인간’이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나머지란 뜻의 잉여에 인간이 붙은 이 단어는 ‘쓸모없는 인간, 남아도는 인간’을 의미한다. 현대소설 제목으로 도서관에서나 볼 수 있던 이 단어가 어느새 이 시대 젊은이들의 자조 섞인 해학이 담긴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했다. 현재 존재하고 있는 수 많은 잉여인간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청년 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시 못 할 수준이다. 취업난으로 잉여인간이 될 위기에 처한 청년들이 점차 대학의 울타리 안에 갇혀 캠퍼스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그의 저서 <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현대를 사는 인간은 쓰레기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졌다”라고 규정했다. 현대의 기술적 진보는 경제 활동 과정에서 인간의 영역을 기술이 대체하도록 만들었고 이러한 기술화의 산물로 실업자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서 말하는 기술적 관점은 젖혀두더라도 오늘날에는 보다 희소해진 취업 기회를 놓고 경쟁 하느냐고 잉여가 되어버린 인간들이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그 중에 대학을 갓 졸업하고 건강한 사회를 위해 수혈되어야 할 20대 젊은 피가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취업난으로 잉여가 되어버린 혹은 잉여가 될 위기에 처한 젊은이들은 대학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선택을 하고 있다.

잉여청년들의 탈출구는 없나?
올해 1학기 동국대 9학기(5학년) 이상 등록자가 개교 이래 처음으로 졸업자 수를 넘어섰다. 서울 시내 15개 대학의 경우에도 졸업을 연기한 대학 9학기 이상 등록생 비율이 졸업생 대비 약 40%를 차지했다. 그 수를 보면 서울대가 졸업생 대비 49%인 1,852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화여대 역시 동일한 비율로 1,539명에 이르렀다. 서울 소재 15개 대학 가운데 9학기 이상 이수자가 900명 이상인 대학은 서울대와 이화여대 외에도 홍익대(1,500명) 성균관대(970명) 숭실대(960명) 한양대(955명) 등 7개 학교가 포함되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학력별 노동시장 미스매치 분석과 교육제도 개선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졸업 유예’ 등으로 장기 학적을 보유하고 있는 학생이 100만 명을 넘은 것으로 확인된다.

고의로 졸업을 늦추는 이들을 칭하는 신조어로 ‘NG(no graduation·졸업유예)족’이란 말도 생겨났다. NG족이 늘어난 데 한해 당사자들 대부분은 ‘취직할 때 졸업생보다 재학생이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한다. 기자가 만난 ㅎ대학교 경영학부 ‘5학년’ 이모 군(25)은 “백수로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것보다 학생 신분으로 남아 어학연수 경력이나 스펙을 쌓는 것이 취업에 덜 불리하겠다고 생각해 졸업을 미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주변 동기나 다른 학교 친구들 중에도 급하게 구직 시장에 나서는 것보다 취업 준비를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NG족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졸업생이 되기를 꺼려하는 기현상이 나타난 것은 사회적 시선과 무관하지 않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삼성그룹에서는 취업재수생 문제를 차단하기 위한 최선책이라는 명목 하에 졸업예정자(혹은 직전학기 졸업자)만이 입사에 지원할 수 있게끔 했다. 우리나라 최대 기업인 삼성이 이런 채용 방침을 정한 이후로 취업재수생을 막는 입사전형이 취업 시장 전반에 퍼지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기졸업자와 고령자의 취업 기회는 더욱 위협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정부가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며 차별 수습에 나섰고 취업 시장은 진정되는 듯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대부분의 기업에서 대학 재학생들만을 위한 ‘인턴십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고, 비록 기졸업자 또한 입사지원은 가능해졌지만 실제 채용 과정에서는 졸업예정자에 비해 불리한 입장에 놓이는 등 취업 전선에선 여전히 졸업자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기업의 기졸업자 기피현상은 ‘대학 졸업장은 곧 실업 증명서’라는 사회적 인식으로 이어졌고 학생들은 실업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을 피하고자 대학 울타리 안을 은신처로 삼은 것이다.

섣불리 NG족이 되었다간 NG(No Good)로 이어질 우려도

취업정보 전문 업체 ‘사람인’(www.saramin.co.kr)이 기업 인사담당자 365명을 대상으로 <취업을 위해 휴학, 졸업유예를 하는 구직자에 대한 생각>에 대해 설문한 결과 절반이 넘는 50.7%의 응답자가 졸업유예 구직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들 중 17.3%는 ‘실제로 졸업유예 때문에 구직자를 탈락시킨 경험이 있다’고 밝히며 ‘졸업을 위한 편법이라 여겨져서’, ‘사회진출에 두려움이 있어 보여서’, ‘취업에 대한 눈이 높아 보여서’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그 중에서도 ‘시간을 낭비한 것 같아서’가 27%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들의 견해가 기우가 아닌 것이, 자신의 현재 역량, 스펙, 준비 사항에 대한 고려 없이 ‘남들 다 하니까’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졸업 유예를 하게 될 경우 그 결과가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졸업 예정자들이 대학에 남아 있음으로써 발생하는 ‘포기 소득’ 등을 합친 간접 교육비만도 약 5조 4,178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섣부른 졸업 유예는 개인의 시간 낭비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국가의 경제적 손실과도 직결된다. 또한 인재가 자원이라 여겨지는 우리나라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젊고 우수한 인력이 상아탑 안에 갇혀 낭비되는 현실이 우려스럽다는 것이 사회적 인식이다.

울타리 전세 값 내놓아라? 대학의 ‘등록금 장사’

또 다른 문제는 추가 등록에 따른 등록금으로 취업 준비생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서울 소재 대학 중 유일하게 숭실대는 졸업 논문을 내지 않을 시 추가 등록금이나 학점 신청 부담 없이 졸업이 유예되고 있지만 ‘조만간’ 졸업 연기자에게도 등록금을 받을 방침이라고 한다. 실제로 숭실대를 제외한 서울 소재 대부분 대학들은 8학기 초과 등록 학생들에게 1학점 이상의 수업을 의무적으로 듣게 하고 60~80만 원의 등록금을 받고 있다. 동국대의 경우 9학기 이상의 등록 학생으로부터 받는 한 해 추가 등록금 총액이 50억 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한 학교 측의 입장은 “최근 졸업 유보자가 크게 늘어 어쩔 수 없는 처사”라고 하지만 졸업 유예 학생들은 취업에 대한 압박과 함께 추가 등록금에 대한 부담까지 떠안게 되었다. 실업자가 되는 것을 유예시켜주는 대가인 셈이니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학교 측이 정한 방침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잉여청년들의 탈출구는 없나?

기업은 졸업 시기를 떠나 학생들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시스템개발이 시급한 과제다. 우수인력 채용과 취업 재수생 감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동시에 스펙 일률적 취업 준비에서 벗어나 학생 개개인이 적성에 맞는 경력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제공의 노력도 필요하다.

한편, 졸업 유예 학생들의 추가 등록 부담에 대해 대학 당국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앞서 밝혔듯이 숭실대에서도 조만간 ‘대학 5학년에 대한 등록금을 부과할 예정’이라고만 전하며 구체적인 시행 시기와 등록금 정책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은 내놓지 못했다. 추가 등록금 부과 계획에 대해 숭실대에 재학 중인 한 여학생은 “졸업 유예를 하고 그 기간에 구직 활동을 하려는 학생들이 이미 필요한 학점을 모두 이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추가 학점을 이수해야 한다면 수업이 구직 활동에 지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전했다. 학생의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내 사회의 건강한 일꾼으로 배출해야 할 임무를 지닌 대학에서 그들에게 등록금이라는 이중 족쇄마저 채우는 행위는 결국 학생은 물론 학교와 사회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불러오고 있는 셈이다. 사회적 편견 타파와 함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등록금 정책이 함께 모색되어야만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암울한 초상을 밝힐 토대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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