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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물을 영원히 퍼 올릴 ‘시시포스’의 하천인가?

에코경제학(4)

【M이코노미뉴스 = 윤영무 본부장】지난 호에서는 안양천을 흐르는 물은 하늘에서 내린 빗물이 아니라고 했다. 안양천과 지천은 오염된 물조차 말라버려 안양하수처리장의 방류수 중 일부를 소독한 다음 상류 하천으로 퍼 올리고 있다고 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난 반세기 도시화가 진행돼 안양천 유역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땅바닥을 덮어 빗물이 흙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도로 등의 배수구를 따라 흘러가 버렸다. 이 때문에 빗물이 안양천 유역의 지하수를 채울 수 없게 되자, 자연히 안양천 일대(一帶)의 지하수위(地下水位)는 낮아졌다.

 

여기에다 70여 년 이상 안양천에 내다 버린 오염물질과 토사가 하천바닥에 쌓여, 그 퇴적층의 높이가 지하수위보다 높아짐으로써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물은 지하수위보다 높아진 하천바닥을 통과해 지하수위까지 빠져나가 버리니까 당연히 하천바닥이 마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빗물의 순환 사이클이 깨져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상류로 물을 퍼 올리고 올리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안양천에서 자연스럽게 산에서 내려온 맑은 물이 마르지 않고 흐르게 될 것인가. 치산치수(治山治水)의 관점에서 안양천의 미래를 다시 생각해 본다.

 

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낸 황하(黃河) 서해에 다다르지 못하다 안양천이 마르고 있다고 해도, 듣는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듯해서 중국의 황하(黃河)를 예로 들어 시작해보자.

황하는 총길이 5천km가 넘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긴 강이다. 줄잡아 5억이 넘는 인구가 황하의 강물을 식수와 농업용수로 이용한다. 덕분에 중국은 밀 생산량 세계 1위, 옥수수는 세계 2위였다. 

 

 

그러나 황하의 강물이 마르면서 서해에 다다르지 못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중국의 성공신화가 위협받고 있다. 황하의 발원지인 티베트 고원 동쪽은 ‘수천 개의 호수가 있는 땅’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호수의 절반이 사라졌고, 목초지의 3분의 1이 사막으로 변했다. 중류(中流) 지역에 물을 대던 관개수로(灌漑水路)가 마르면서 농지가 사막화되었다. 여기에서 형성된 엄청난 황사 폭풍이 동쪽으로 퍼지고 있다.

 

베이징은 숨쉬기 힘들고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황사가 대기를 뒤덮는다. 심지어 태평양 건너 캐나다 산악지대에서는 비가 내린다고 한다. 비옥한 화북평원, 황하의 하구(河口) 근처에 있는 샘과 풀밭이 마르고, 점점이 흩어져 있던 호수들도 몇 곳만 남아있을 뿐이다. 황하와 그 유역(流域)에서 물이 마르는 현상은 환경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재앙이다. 물 사정이 나빠지자 밀 수확은 6년 만에 3분의 1로 감소했다. 세계은행은 황하 유역이 사막화되면 중국의 자급자족에 끔찍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하수 90% 이상 사라진 베이징 인근 ... 지하수위는 최대 1000m로 낮아져

 

20여 년 전, 황하는 산동성(山東省)에 이르지 못해 밭작물이 그대로 말라 죽어갔다. 당황한 중국 정부는 각 성(省)마다 황하의 물 사용량 기준을 마련하고 초당 50㎥의 강물이 항상 서해에 이르도록 관리하게 했지만, 하류에서 찔끔찔끔 흐를 뿐, 황하의 물이 말라 버릴 위기는 가시지 않고 있다. 

 

 

강이 바닥을 드러내면 농촌이나 도시에서 지하수를 끌어 올려 쓴다. 산동성의 관개용수 중 지하수가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을 넘고 빗물이나 강물에 의해 다시 채워질 수 있는 양보다 2배 이상 양수(揚水, 물을 퍼 올림)한다. 그래서 1960년대 지하수위는 거의 지표에 머물러 있었지만 지금 지하 30m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수의 90%가 사라진 베이징 인근 지역에서는 지하 1000m에 있는 화석 대수층에서 뽑아 올린 물을 상수원으로 사용한다. 이 대수층은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물이 지하 바위틈을 통과해 1m 아래로 내려가는 데 100년, 지하 1000m에 도달해 고이려면 10만 년이 걸린다-필자 주)

 

2004년에는 바다에서 1500km나 떨어진 네이멍구자치구에서 황하의 강물이 쪽 말라버렸다. 강물이 마르자 중국은 수리적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여기에다 며칠 전 외신 보도에 따르면, 산동성 지하수에서 미세 플라스틱까지 검출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강바닥에 쌓이는 토사 퇴적물, 10년마다 1m씩 높아져


황하는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홍수가 나고 물길이 바뀌었다. 기원전 600년부터 1949년까지 화북평원을 지나는 황하의 물길은 26번 바뀌었다. 대략 1세기에 한 번꼴이다. 이런 대격변으로 여러 왕조가 몰락하기도 했다. 고대에는 강물의 방향이 바뀌면 하늘에서 황제의 통치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물길이 바뀌면서 어마어마한 농토와 수십만 명이 물에 잠기는 대격변은 바다 건너 유럽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설이 있다. 14세기 유럽인 절반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은 황하의 물길이 바뀔 때 몸을 피한 쥐들이 병균을 옮겨오면서 시작되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래서 농민들은 황하가 일정한 물길을 따라 흐르도록 제방을 쌓았다. 그런데 제방을 쌓자 농지를 비옥하게 해주는 토사가 운반되지 않았다. 대신 토사(土砂, 흙모래, 연간 30억 톤~5억 톤)가 새로 만든 황하의 바닥에 쌓이기 시작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강물에 의해 운반된 토사는 7일 만에 절반 이상 바다로 들어갔다.

 

그러나 오늘날, 전체 토사 중 10%만이 바다에 이르는데도 18일이 걸린다. 강물의 수량이 줄어든 만큼 유속이 느려짐으로써 토사를 운반할 힘이 떨어진 것이다. 바다로 가지 못한 토사의 대부분은 댐 바닥이나 강바닥에 퇴적이 됐다. 이로 인해 황하의 강바닥은 10년에 1m씩 높아졌다. 이에 따라 제방의 높이도 높아져, 지금 황하는 사람이 거주하는 땅보다 높은 위치에서-그러니까 머리 위에서 제방을 따라 흐르고 있다. 중국인들이 지난 50년간 쌓은 제방의 길이는 만리장성 13개와 맞먹는다. 

 

 

강바닥 퇴적물, 상류 댐,  그리고 도시화는 강과 하천을 죽이는 3대 원인 


우리나라는 다를 것 같은가? 아니다. 규모만 다를 뿐, 강과 하천의 제방을 높이 쌓는 것이나, 강이나 하천바닥에 퇴적물이 쌓이고 물이 마르는 현상은 황하와 유사하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나 하천물이 불어났을 때 물이 누런 황토색을 띠는 걸 기억하시는지? 토사가 섞여서 그렇다는 건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천이나 강이 생기면서 수십만 년 이상 강물을 따라 운반된 토사는 강바닥에 쌓이거나 범람(汎濫)해서 농토를 만들고, 바다로 가서 갯벌을 만들었다. 여기에다 우리나라 특유의 온돌문화로 인해 막대한 양의 나무를 소비해야 했다. 특히 이렇다 할 대체 연료가 없었던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마을 주변 산으로부터 시작된 산림 남벌이 점점 확대되어 전국의 산 가운데 절반이 민둥산으로 변했다.

 

더구나 6.25 전쟁이 겹치면서 국토는 황폐(荒廢) 직전이었다. 다행히 산림녹화가 시작되긴 했지만 60~70년대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강의 상류에 댐이 건설되기 시작했고, 더불어 수도권 인구집중과 산업화 도시화와 난 개발에서 나오는 엄청난 양의 토사가 전국의 하천과 강으로 유입돼 하천바닥에 쌓였다. 댐에 막힌 강물이 저수지로 변해서, 물의 흐름이 느려지고, 수량도 크게 줄면서 퇴적 작용은 더욱 심각해졌다.


프랑스 군함이 항행(航行)한 한강, 수심은 6m 이상이었을 듯

 

여의도 한강 물이 많은 듯이 보이는가? 그렇지 않다. 지금 당장 김포대교 아래에 있는 길이 1007m, 높이 2,7m의 신곡 수중보(水中洑)를 철거하면, 한강은 퇴적된 강바닥이 흉물스럽게 드러날 것이고, 강물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의 물이 찔끔찔끔 흐를 것이다. 하지만 한강은 156년 전 만 해도 수중보를 설치해야 물이 확보되는 쪼잔한 강이 아니었다.

 

 

때는 1866년 병인양요, 주중(駐中) 프랑스 함대사령관 로즈(Roze, P.G, 魯勢)는 9월 18일부터 10월 1일까지 강화해협을 중심으로 서울까지의 수로를 탐사하기 위한 제1차 원정에 나섰다.

그는 군함 3척을 이끌고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염하(鹽河)와 한강을 항행(航行)하며 북상해 서울 양화진(楊花津)·서강(西江)까지 올라왔다. 

 

필자가 주목하는 건 프랑스 군함이 한강을 항행(航行)했다는 것인데, 바다가 아닌 강으로 군함이 다닌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당시 프랑스 군함의 제원을 알아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다만 참고할 만한 자료가 있었다.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군함대사령관 해군소장 「죤 ·로저스」의 기함인 코로라도호의 배수량이 3,425톤이었다. 이 무게를 기준으로 보면 한강으로 항행했던 프랑스 군함은 기함이 아니라 소형 구축함이나 측량선이었을 테니까, 약 1,000톤가량이 아니었을까? 하는 게 필자의 추측이다. 그런데 이런 무게의 소형 구축함이 강을 항행하려면 적어도 강의 수심이 6m는 확보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배의 바닥이 강바닥에 걸려 좌초할 테니까.

 

한강 바닥 4~5m 높이로 퇴적물 쌓여, 지금도 오니(汚泥) 침전으로 바닥 높아져


한강은 서해의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받고 있다. 서해가 밀물일 때 한강 수위는 상승해 여의도 부근까지 수위가 1m 이상 높아진다. 그래서 프랑스 군함이 한강을 항행할 당시 밀물 때 였을 것이고, 한강의 본래의 수심 6m에다 밀물로 상승한 1m를 더한 7m의 수심을 확보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정도의 수심이었기 때문에, 3척의 군함이 한강을 항행해 양화진까지 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의 계산이 맞는다면, 지금 김포대교 아래 한강 신곡 수중보의 높이가 2.7m라고 하니까, 한강의 강바닥은 156년 사이에 적어도 4m~5m까지 높아졌다. 다시 말해 그 높이만큼 퇴적물이 강바닥에 쌓였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필자는 오래전 홍수로 인해 한강 둔치에 물이 찼다가 빠졌을 때의 둔치의 상태를 확인한 적이 있었다. 둔치 전체에 질척거리는 오니(汚泥) 퇴적물이 무릎까지 쌓여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처럼 한강은 지금도 끊임없이 계속되는 퇴적 작용으로 바닥이 높아지는, 다시 말해 수심이 낮아지고 있다. 특히 상류 댐에서 물을 의무적으로 방류하게 되어 있지만, 상황에 따라 들쭉날쭉해서 한강을 흐르는 수량은 홍수 때가 아니면 늘 부족해 수중보 같은 물막이 댐을 만들지 않으면 곧바로 바닥을 드러내고, 도랑물 수준으로 전락할 처지이다.

 

건천의 원인은 강과 하천바닥에 쌓인 퇴적물로  지하수위 낮아진 탓

 

필자가 강이나 하천바닥의 퇴적 상황을 자꾸 언급하는 이유는 퇴적물이 쌓이면 강이나 하천의 바닥이 마르고 물이 흐르지 않게 되는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므로, 어느 강이나 하천에 물이 흐르고 있다면 그 물의 흐르는 높이와 주변의 지하수위가 같다고 보면 된다. 왜냐하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물의 성질상, 물이 흐르는 높이보다 지하 수위가 낮다면 물은 수위가 낮은 지하로 스며들어 바닥이 마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퇴적물이 없어 강이나 하천이 깊으면, 다시 말해서 강이나 하천 수위가 주변의 지하수위보다 낮아지면, 주변의 지하수가 모여들어 가뭄이 들어도 강과 하천은 마르지 않고 늘 물이 흐르게 된다. 이와 반대로 홍수가 되어 강이나 하천 수위가 올라가면 주변의 지하수위가 낮아지므로 물은 지하로 빠져나간다. 홍수가 졌을 때 강이나 하천 주변에 있는 우물의 수위가 높아지는 것은 바로 강이나 하천물이 지하로 빠지면서 지하수위를 높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강이나 하천바닥이 말랐다면, 주변의 지하 수위가 낮아져 물이 지하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다시 말하지만, 하상(河床)이라고 하는 강이나 하천바닥에 퇴적물이 쌓이면 지하수위도 낮아지게 되므로 물이 지하로 빠져나가 빗물이 유입되었다가도 얼마 가지 않아 바닥이 말라버리게 되는 것이다.


1930년대 놓인 안양천, 콘크리트 다리의 증언

 

여기까지 이해가 되었다면, 안양천과 안양천 상류의 지천이 마르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호에 소개했듯이 안양천에는 일제 강점기 때인 1930년대에 놓은 콘크리트 다리-뱀쇠다리-가 있다. 이 다리를 보면 지금까지 안양천 바닥에 얼마나 많은 퇴적물이 쌓였는지 짐작할 수가 있다. 

 

다리라는 건축물은 100년 만에 큰 홍수가 났을 때라도 넘치지 않을 높이가 유지되어야 한다. 안양천 콘크리트 다리 역시 그런 기준에 따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 다리는 안양천의 물이 불어나면 잠수교처럼 잠긴다. 그 당시 이 다리를 놓은 사람들이 물에 잠기도록 설계했기 때문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만약 그런 자료를 제시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지금 이 다리는 사람과 자전거만 통행하게 했으니까 혹자는 그럴지 모른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건 오해다. 1930년대 안양천을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다리는 당시의 건설 기술로도 제법 큰 공사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 다리 한복판에서 서서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면 안양천 바닥이 바로 코앞까지 높아졌다. 폴짝 뛰어내려도 될 만큼 퇴적물이 쌓여 얕아진 것이다. 하지만 이 다리가 놓일 때는 안양천의 깊이가 상당했고 수량이 엄청났을 것이다. 그래서 콘크리트 다리를 놓았을 것이다.

 

다리가 완공된 뒤, 다리 위에서 밑을 내려다봤던 누군가가 생존해 있을 텐데, 그분이 나타나셔서 증언을 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도 그분은 다리 위에서부터 수면까지 거리가 멀어서 눈앞이 아찔했을 것이다. 필자가 한강 다리 위에 서서 수면을 내려다보면 어지럽듯이 말이다.


안양천과 지천을 마르게 하는 원인은?


필자는 앞글에서 한강에 최소한 4~5m의 퇴적물이 쌓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안양천은 한강으로 흘러들어 합류하니까 한강의 바닥보다 퇴적물이 더 높이 쌓였을 것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니까 말이다. 그런데 안양천 본류에만 퇴적물이 쌓인 게 아니다. 관악산, 삼성산, 청계산, 수리산, 백운산 등에서 발원해 안양천으로 흘러드는 왕곡천 오전천, 당정천, 산본천, 학의천, 수암천, 삼성천, 상봉천 등의 많은 지천 역시 퇴적물이 쌓일 대로 쌓여있다고 보는 게 옳다. 역시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해 흐르니까. 

 

이처럼 하천과 지천 바닥에 퇴적물이 쌓여가는 상황에서 안양천 유역은 350만 명이나 되는 인구가 모여 사는 산업화의 거대 도시로 바뀌었다. 지하수는 고갈되었고, 무수한 건물이 들어섰으며, 땅바닥은 거의 모두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땅속으로 스며들어야 할 빗물은 도로변의 배수구를 따라 안양천으로 흘러가 버리는 일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었다. 그러니 안양천 유역의 지하수위는 낮아질대로 낮아져 비가 많이 와서 안양천이나 지천으로 흘러든 물도 (낮아진 지하 수위까지) 빠져나가 하천이나 지천의 바닥이 허옇게 드러나는 사막화 현상은 필연적이었다.


빗물이 흙으로 스며 지하수위가 높아지면 가뭄에도 하천물 흘러


사막화하고 있는 안양천이나 지천에 자연스럽게 빗물이 고여 흐르게 하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빗물을 안양천 유역의 땅속으로 스며들게 해서 하천 주변 지하수위를 높이고, 동시에 하천이나 지천 바닥에 쌓인 퇴적물을 긁어내어 안양천과 지천의 깊이를 유지해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물은 절대로 하천에 모이지도 않고 흐르지도 않는다.

 

이 같은 필자의 주장을 처음 듣는 분도 많으실 것이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하시는 분도 있으리라. 만약 필자의 방법 이외에도 인위적이 아닌, 자연적으로 빗물이 하천에 흐르게 하는 방법이 있다면 제시해 주시라.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댐이나 저수지를 쌓아 상수(上水)를 공급받는 광역 상수도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콸콸 나오는데 하천이 마르건 강이 마르건 그건 내 일이 아니라고 무관심하다. 하지만 지하수위가 낮아져 하천이나 강이 마른다는 것은, 곧 물의 재앙이 닥친다는 경고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왜 그런지는 다음 기회에 설명하기로 하겠다.

 

 

여하튼 댐을 막아 그 물을 사용하는 광역 상수도 시스템인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의 대부분 도시에서는 지하수를 원수(原水)로 사용하고 있다. 지하수가 마르면 비극을 맞을 수 밖에 없는 나라여서 빗물을 지하로 스며들게 하는 기술을 1980년대부터 개발해 보급하고, 빗물을 지하로 흘러들게 하는 규정을 법으로 정하고 있다. 독일도 하는데 우리나라가 못할 게 없다. 빗물을 땅속으로 흘러 들어가게 하는 방법을 우리식으로 찾으면 될 것이다.

 

산을 다스려야 개울과 시내에 물이 흐른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산이 좋고 물이 맑은 나라였다. 그런 명성을 가진 우리나라는 전국 어디를 가나 그 자리가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그러나 도시화 되고, 도로가 뚫리고, 산업화로 공장이 들어서고, 전국이 아파트 공화국이 되면서 자연은 파괴되고, 난 개발이 이어지며, 국토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헬기에서 내려다보면, 우리나라는 국토의 절반이 도로인 듯하고, 하천마다 퇴적물이 쌓여 바닥을 드러내며, 그 사이로 도랑을 이루어 겨우 물이 졸졸 흘러간다.

 

산이 많아 맑은 물이 풍부했던 안양천 유역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안양천과 지천에 빗물이 자연스럽게 다시 흐르게 하려면, 지하수위를 높이고 하천의 깊이를 유지하는 일과 함께 안양천 유역의 빗물 저장능력이 있는 산림을 가꿔가야 한다. 산의 흙은 미세한 공극(孔隙, 틈) 사이로 빗물을 저장해 두었다가 산 아래로 서서히 흘려보낸다.

 

산림토양이 잘 발달 된 숲에서는 땅속에 스며든 빗물이 비가 오지 않더라도 길게는 5개월까지도 흘러나올 수 있다. 또 비가 적게 오는 갈수기에도 하루에 1ha(=3,025평)당 2.5 톤의 물을 더 흘러나가게 해서 계곡을 마르지 않게 해준다.


산림토양은 학교 운동장과 같이 단단한 토양에 비해 거의 20배 이상 빗물이 스며든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오더라도 땅 위를 흐르는 물이 거의 생기지 않고. 땅속으로 스며든 빗물은 토양 속을 천천히 흘러서 비가 그친 뒤에도 오랫동안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더구나 산림은 홍수조절기능까지 가지고 있어 시간당 100mm 이상의 비가 내리더라도 산에서의 홍수 유량은 증가 폭이 크지 않다.

 

필자는 지난해 비가 많이 오는 날, 일부러 서해 낙조와 진달래꽃이 아름다운 김포시 가현산(歌絃山, 215m)에 올라서 산속에서 빗물의 흐름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었다. 빗물은 뱀이 지나간 자리처럼 흙이 단단히 굳은 30도가량의 등산로를 따라 도랑을 이루며 산 아래로 세차게 흘러갔다. 그러나 부엽토로 된 숲은 빗물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있었다. 가현산 기슭은 지금 산을 깎아내고, 각종 건물을 짓는 난개발이 한참이다. 그런 와중에도 산 속 부엽토에서 나온 듯 한 가느다란 물이 흐르던 도랑이 얼마 전에 보니, 흙더미에 묻혀 온데간데 없어졌다.

 

흙으로 도랑을 덮어버렸으니, 언젠가 그 물이 모여 건물 하부로 파고들거나, 다른 물길을 찾다가 건물과 주변 땅을 꺼지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맑은 시냇물 흐를 때 친환경 지역 경제도 순환

 

안양천 뿐만 아니라, 전국의 어느 하천이건 강이건 수량이 줄고, 말라가기 시작했다. 비가 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렇지 않을 것이다. 가뭄을 탓하기 전에 50~6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그때는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강이나 하천에서 물이 마르지 않고 흘렀으며, 샘물도 마실만큼 나왔다. 홍수가 되든 가뭄이 들든, 예전의 강과 하천처럼 변함없이 맑은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해야 한다. 하천물이 말라 이 땅에서 어떤 생명도 살 수 없는 사막의 폐허가 되기 전에 말이다.

 

안양천에 참게와 숭어가 돌아왔다고 안양천이 살아난 건 아닐것이다. 하류에서 퍼 올린 물을 상류에서 흘려보내면서 생태복원 운운하는 것은, 왠지 어색하게 들린다. 하천은 빗물이 모여 자연스럽게 맑은 물이 되어 흘러야 정상 아니겠는가?

 

(다음 편에는 청계천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조선 시대의 치열했던 준설 논쟁을 다뤄보고, 청계천으로 진짜 계곡물이 흘러들게 할 수는 없는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MeCONOMY magazine July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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