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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흙의 반란이 시작됐다(2)

윤영무 기자가 간다
소멸하는 지방재생을 위한 12가지 경제원칙 89

20세기 초 미국에 화학비료가 도입되자 흙의 생태계를 파괴한다면서 반기를 들었던 미국의 토양과학자 플랭클린 히람 킹(1848~1911)은 113년 전인 1909년 미국을 떠나 화학비료 없이 4천 년간 지속가능한 농사를 대대손손 지어온 조선의 자연생태농업을 답사하고 돌아갔다. 

 

 

미국은 그의 예언대로 흙속의 미네랄이 고갈되고 병충해가 들끓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농무부는 1929년 ‘동양식물원정대’를 파견해 뿌리에서 스스로 질소비료를 만드는 콩 종자를 조선에서 무려 3천점 이상을 수집해 돌아오게 함으로써 화학 비료와 농약이 필요 없는 새로운 작물 개발을 꿈꿨다.

 

‘농업의 황금기’를 거친 뒤 미네랄이 고갈되고 병충해가 닥친 미국


조선 고종 26년(1889년). 고종은 식량난으로 식량 수출을 금지하는 방곡령(防穀令)을 선포했다. 하지만 고종 21년 조선과 통상조약을 맺고 있었던 미국은 조선이 방곡령을 선포한 그해 워싱턴 DC에 농무부를 설립하고 식량 증산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20세기 초부터 본격화된 화학비료 농법에 힘입어 1910년~1914년 동안 농업의 황금기(golden age)를 구가하며 세계 최대 농산물 생산국과 수출국으로써의 위상을 확립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로부터 10여 년 후 화학비료를 사용한 농경지에서 비료로 인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병충해가 만연해 수백만 에이커의 농작물이 공격을 당했다.  농무부가 생긴 이래,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이상 현상으로 비료 과용에 의한 흙의 생태계가 교란되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강한 의심이 만연해 있었다. 

 

 

그랬다. 식물은 흙 속 미생물과 공생하면서 병충해를 물리치는 방제 물질을 자체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화학비료가 사용되면서 식물의 성장이 빨라지고 생산성은 좋아졌지만 그럴수록 식물의 자생력이 떨어졌다. 비료의 독성물질이 흙 속에 잔류하면서 흙이 산성으로 바뀌고, 흙이 산성으로 바뀌면 미생물이 살 수 없게 돼 자생력을 키우지 못한 식물은 병충해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병충해는 이렇게 자생력이 떨어진 식물을 귀신처럼 찾아냈다. 화학비료를 사용하면 할수록 흙의 상태가 나빠지고, 흙이 안 좋아지면 미생물이 죽고, 미생물이 소멸하면 식물은 자생할 능력을 상실했다. 그러니 비료를 주면 줄수록 병충해가 기승을 떨어 농약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화학비료와 농약은 같이 가야만 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화학비료의 사용량을 줄이는 대신 수많은 농약을 개발해 대처했다. 문제는 농약이 병충해만 없애는 것이 아니었다. 흙과 농작물, 심지어 인체까지 유독한 피해를 주었다.

 

1930년대와 40년대는 비소와 납 계열의 살충제도 광범하게 살포됐다. 이렇게 수백만 에이커의 농경지가 다량의 비료와 농약으로 범벅이 되고 말았으니, 자연히 흙 심(흙의 생산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파괴된 흙의 생태계를 살려라! 흙속의 ‘질소고정 박테리아’의 발견

 

그렇다면 어째서 화학비료와 농약은 흙의 생태계를, 다시 말해 미생물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것일까? 비료의 3대 요소인 질소, 인산, 칼륨 중에서도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질소비료의 예를 들어보자. 

 

중년 이후 운동으로 근육(筋肉)을 단련하려면 아미노산을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미노산은 단백질을 만드는 기본 재료이고, 단백질은 근육의 주성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미노산을 합성하는 데는 많은 질소가 들어간다. 사람은 고기와 달걀, 두부 같은 음식을 통해 아미노산을 얻지만, 식물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상당수 미생물도 아미노산을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다.

 

식물이나 미생물이 아미노산을 만들려면 질소가 필요하다. 이런 질소는 공기 중에 80% 정도 함유되어 있는데, 모두 삼중결합으로-두 개의 질소 원자가 각각 3개의 전자를 내놓으면서 서로 단단하게 뭉쳐있다. 쉽게 말해서 둘 사이가 너무나 돈독해서 다른 사람과 교제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단짝이기 이기에 식물이나 미생물은 이들의 결속을 깨뜨릴 수가 없다.

 

 

그래서 식물과 일부 미생물은 흙 속에 녹아 있는-이를 이온이라고 생각하자-질산이온(NO₃-), 혹은 암모늄 이온(NH₄+)과 같은 질소화합물에서 질소를 얻는다. 그렇다면 질소화합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그 답의 실마리는 1885년, 네덜란드의 미생물학자에 의해 밝혀졌다.


마르니투스 베이제린크(1851~1931)는 공기 중에 함유된 질소 기체(N₂)를 얻어 암모니아(NH₃)를 만드는 박테리아(세균), 이른바 ‘질소고정 세균-앞으로는 ’질고세‘라 부르자’-이라는 녀석들을 흙에서 찾아낸 것이다. 엄지와 검지를 꽉 눌렀을 때 그 사이에 들어갈 수 있는, 전자 현미경으로 겨우 볼 수 있는 크기의 녀석들은 아교로 들러붙는 나무 조각처럼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질소의 결합을 끊고, 수소 원자를 붙여 암모니아를 만든다.

 

수십억 마리 흙속 미생물이 소금 뿌린 미꾸라지처럼 죽는 이유


‘질고세’가 만든 암모니아는 다른 세균들의 먹이가 된다. 녀석들은 우리가 밥을 먹고 일을 보듯이 암모니아를 먹고 질산염을 배설한다. 식물은 바로 이 물질을 통해 식물은 질소를 취해 아미노산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콩과 같은 일부 식물은 아예 ‘질고세’를 자기 몸 안으로 받아들여 키운다. 콩 뿌리에 주렁주렁 매달린 뿌리혹을 봤는가? 뿌리혹이 바로 ‘질고세’가 묵는 사랑방이다. 식물은 자기 뿌리 주변으로 특정 화합물을 분비해서 ‘질고세’를 유혹한다.


식물은 ‘질고세’가 ‘오케이’ 사인을 보내면 뿌리 모양을 바꿔 막으로 둘러싸 방을 만들어 ‘질고세’가 들어와 살게 한다. ‘질고세’들은 부지런히 질소를 고정해 암모니아를 만든다. 만약 나무가 보기에 농땡이를 부리는 ‘질고세’가 있다면 바로 방을 폐쇄해 버린다. 이처럼 식물과 흙 속의 세균이 상생하며 질소공장을 운영하는 걸 인위적으로 돕는 물질이 질소비료다.

 

질소비료는 1905년 프리츠 하버(1868~1940)의 인공 질소 고정법이 발명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는 유명한 화학회사 바스프(BASF)의 화학자 카를 보슈(1874~1940)와 함께 ‘하버-보슈’ 질소비료 생산법을 개발해 농업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어나게 한 공로로 191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질소비료는 황산암모늄(유안), 요소, 질산암모늄, 염화암모늄 석회질소 등의 형태를 띤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이 식물은 모든 비료의 성분을 모두 흡수하지 않고 질소만 흡수할 뿐이어서, 나머지 황산이나 염소 같은-산성 물질이 흙 속에 그대로 남아 흙을 산성으로 만들거나 염류(鹽類) 집적을 일으킨다. 특히 질산염은 물에 잘 녹기 때문에 빗물에 씻겨 지하수와 하천을 오염시킨다.


염류집적이라고 할 때 염(鹽)이라는 단어는 소금이라기 보다는 산성을 띠는 황산, 질산, 그리고 탄산 등과 같은 물질이 칼륨, 암모니아, 마그네슘, 칼슘 등과 같은 알칼리성 물질과 붙어 만들어지는 여러 화합물을 일컫는다. 종류가 많아서 뭉뚱그려 염류(鹽類)라고 하는데 흙에 축적되면 뿌리 생장이 저조하고, 뿌리가 시원치 않아 생육에 문제가 생긴다. 유용한 미생물이 살 수 없는 흙이기 때문이다. 

 

흙 속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우리 눈으로 관찰할 수 없으니,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소금으로 해감할 때 미꾸라지가 몸을 뒤틀면서 죽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흙이 산성화되어 있거나 염류집적이 일어나면, 아마도 수십억 마리의 미생물들이 그처럼 죽어갈 것이다.

 


 

화학비료가 필요 없는 새로운 작물로 각광을 받은 조선의 콩


1927년, 미국 농무부는 마침 1년간 중국 만주에서 두 번째로 식물 탐험을 마치고 돌아온 팔레몬 도르세(Palemon H. Dorsett, 1862~1943)로부터 화학비료의 피해 상황이 심상치 않으니 다 식물 스스로 질소비료를 만드는 콩이라는 작물을 들여와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있었다.


“지금처럼 우리가 비료와 농약을 계속 쓴다면 수확량을 늘리기는 커녕 머지않아 흙은 망가져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오. 농경지가 망가지면 미국인의 생명과 건강을 지길 수
없는 건 당연하고, 지구의 대 멸종, 세상이 끝장날 거란 말이오.”

 

그의 말을 듣던 농무부의 한 관료가 “너무 지나친 우려 아닌가요?”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그런 말에 굽힐 그가 아니었다. “우려요? 우려는 무슨 우려, 죽느냐 사느냐에 관한 문제요. 지금 우리 농경지에서 병충해가 들끓고 있는 걸 보고도 모르겠소이까? 지금 당장 화학비료 사용량을 줄이고 동양에서처럼 자연퇴비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그가 물을 한 잔 마시고 나서 말을 이어 갔다.


“제가 조사했듯이 동북아시아에서 자라는 콩을 들여와 심어야 합니다. 콩은 스스로 천연 질소비료를 만듭니다. 비료를 줄 필요도 없고, 농약을 뿌리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콩에는 뿌리
혹박테리아가 있고, 그게 천연 질소 공장이라는 건 오래전에 밝혀졌잖소. 그런 동양의 콩 종자를 우리나라에 들여와서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곡류를 생산하고, 그런 콩 종자와 다른 작물을 교배해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도 병충해의 피해 없이 자랄 수 있는 새로운 작물을 만들어야 하는 게 우리가 살길이외다.”


그는 또 “만주를 둘러보다 보니, 조선이 콩의 원산지인 것 같았다”면서 “일본의 지배 아래 있지만, 조선은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비료 없이 지속 가능한 농사를 지어오고 있소. 그들이 콩을 심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조선을 포함한 동양 3국의 콩 종자를 수집할 원정대를 당장 꾸려야 합니다”고 했다.

 

 

콩 종자를 확보하라! 「동양농업탐험대」의 결성


29살 때인 1891년, 미 농무부 식물 병리과 직원으로 들어온 그는 농무부에서만 30년 넘게 잔뼈가 굵은 농업생산과 식물병리에 관한 전문가이자 관료였다. 그런 그는 60대였는데도 불구하고 만주를 두 번이나 답사했다. 이미 브라질, 파나마 등 북남미 지역 해외 식물 탐험 원정을 했을 정도였다. 그가 해외 식물 탐사 원정을 자주 했던 것은 아마도 자신의 불행을 잊어보기 위한 측면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35살 때인 1907년, 부인과 장녀를 잃었다. 또 2년 뒤에 작은딸마저 떠나보내야 했다. 더구나 그가 2차 만주 식물 탐험을 끝내고 귀국한 1927년, 1차 원정에 동행했던 외아들도 그해 10월 세상을 떠났으니, 그는 어디론가 떠나지 않으면 미쳐버릴 만큼 극도의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었을 듯했다.


1929년 2월 18일, 그는 농무부 사료 작물과에 근무하는 모르세(William Joseph (Bill) Morse, 1884~1959)와 동양농업탐험대(Oriental Agriculture Exploration Expedition)를 꾸렸다. 그리고 혼자 몸이 된 자신의 며느리 Ruth B Dorsett와 모르세의 부인 에드나(Edna), 그리고 그들 부부의 딸인 마가렛(Magaret)을 대원으로 삼아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항을 떠났다. 그들은 하와이 호놀룰루를 경유해 1929년 2월 26일, 일본 요코하마를 향해 돛을 올려 같은 해 3월 19일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했다. 도쿄로 이동한 그들은 그곳에 원정대 본부를 차리고, 통역과 조수로 일본인 N. Suyetake을 합류시켰다.


원정대의 콩 종자 수집 활동은 4월 초부터 10월 중순까지 일본의 혼슈와 홋카이도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10월 21일에 조선으로 왔다. 조선에서 그들은 저명한 러시아의 식물학자 니콜라이 이바노비치(Niklai Ivanovich)를 만나, 그와 함께 수원농림시험장을 방문하는 동안 수백 종의 콩 종자를 얻었다.


수원농림시험장 등 조선에서만 수천종의 콩을 얻은 미국의 동양농업탐험대

 

그들은 같은 해 12월 11일 도쿄로 돌아와 이듬해 1930년 3월 말까지 원정대의 주 업무를 일본의 콩(대두) 산업 연구와 조사에 집중하는 가운데 3월에 오늘날 대련항(大連港, 러시아어로 달니이Дальний, 중국어로 뤼다旅大, 일본어로 료준旅順)에 도착해 만주 지역의 콩 산업을 답사하고 종자를 수집하려 했다. (대련항은 당시 만주의 콩이 모이는 집산지로 콩기름을 짜서 전 세계로 수출하는 항구였다. 필자 주)


그러나 도르세는 거기에서 지병이 도져 양쪽 폐렴 진단을 받고 탐사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미 농무부는 그에게 베이징으로 가서 의료 치료를 받으라는 명령서를 보냈다. 그가 의료 치료를 위해 베이징으로 떠나자, 모르세는 혼자 1930년 4월부터 10월까지 6개월간 만주와 한국을 다니면서 콩 산업을 조사하고 특히 조선에서 수천 종의 콩 종자를 수집했다. 그가 일본, 한국, 만주 등지에서 보낸 기간은 총 2년여. 조선에서 보낸 기간은 이 중 겨우 2달이 채 안 된다. 그런데도 조선에서 많은 콩을 수집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를 가도 열리고 있는 장터가 있어서 콩을 수집하기가 수월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모르세는 그 기간에 독일의 콩 전문가이며 종자 수집가인 Lene Muller를 만났고, 콩 연구로 유명한 중국 하얼빈의 자연사 박물관 소속의 B.W. Skvortzow도 알게 됐다. 한편 베이징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도르세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감(persimmon)을 보존하는 실험을 했다. (그가 어떤 실험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곶감이나 감식초 만드는 실험이 아니었을까? 필자 주)


그는 1931년 4월 그의 며느리와 함께 중국 베이징을 떠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이보다 앞서 모르세는 1930년 12월 18일 일본으로 돌아와 탐험대의 행정 일을 마저 처리하고 1931년 2월 17일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이들은 대략 9천 종의 신규 식물자료를 발굴해 워싱턴 DC의 미국 농무부, 식물 산업국(Bureau of Plant Industry)으로 보냈고 이들이 보낸 자료는 외국식물도입부서(Division of Foreign Plant Introduction)가 발간한 재고자산 목록에 기재돼 있다.

 

병충해에 강했던 조선의 콩, 신품종 개발의 원조가 되다 

 

전체 식물자료 가운데 원정대가 수집한 콩이 총 4471점으로 조선의 것이 3379점(76%) 일본이 579점(13%), 만주 513점(11%)이었다. 이들은 조선에서 모은 자료와 사진만으로도 훌륭한 책을 쓸 수 있을 정도라고 놀라워했다. 실제로 이런 종자로부터 신규 종자가 개발되었고, 품종 개량이 시도되었다. 또한, 이들이 수집한 콩 가운데는 원산지에서 멸종된, 혹은 멸종되어 가는 것도 있어서 멸종된 종자나 멸종 위기종의 유전자를 보존하는 역할도 했다.

 

탐험대가 식물표본집에 압착해 보낸 종(種)들도 당시의 상태 그대로 국립 식물표본실에 저장되어 있다. 이들은 곤충, 국내 출판물, 콩 제품, 대나무 제품들, 동영상 필름, 그리고 모으거나 찍은 3천여 장의 사진도 가지고 왔는데 아쉽게도 사진의 절반 이상은 어디서 모았는지, 어디서 찍었는지가 불분명하다.

 

원정대가 수집한 콩은 미국의 줄기세포로 분류되어, 오늘날 국립 식물 생식세포 시스템(National Plant Germplasm System)에 의해 범세계적으로 연구가 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다. 특히 원정대가 수집한 품종을 토대로 특성이 있는 품종을 개량해서 현재 전 세계의 식품원료로 공급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콩은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콩 종자이다-필자 주)


특히 원정대가 가져온 콩은 수많은 식물 병해충에 저항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콩의 특성을 이용해 다른 식물과 교배하여 비료와 농약이 필요 없는 미래 작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도르세의 주장은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한편 모르세는 원정 이후 미국 대두 협회 회장을 3번이나 역임하는 등 미국에서 콩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미 상원, ‘흙의 미네랄 결핍’ 선언과 ‘흙의 보전에 관한 법’을 제정


이들이 콩 종자를 가지고 와서 비료와 농약 농사를 비판했던 탓일까? 1936년, 미국 의회는 흙을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면서, 처음으로 ‘토양보전과 국내할당법(Soil Conservation and Domestic Allotment Act)’을 제정했다. 아울러 같은 해 미 상원은 과도한 비료의 사용으로 우리의 농토에는 미네랄이 없다면서 그런 흙에서 자란 과일, 채소, 곡식 등은 아무리 먹어도 몸에 도움이 안 된다는 흙의 미네랄 결핍 선언을 했다.

 

그러니까 비료와 농약을 쓰기 전에 사과 하나만 먹어도 인체에 필요한 충분한 미네랄을 얻을 수 있었지만 (지금이나 당시에도) 15개 이상을 먹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식물의 미네랄 결핍으로 미국인의 99%가 미네랄 부족으로 각종 질병에 노출되어 있다고 미 상원은 밝혔다.

 

미네랄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110가지의 원소 중 인체의 96.5 %를 차지하는 산소(65%), 탄소(18%), 수소(10%), 질소(3.5%)를 제외한 나머지 3.5%(칼슘1.5%, 인1%, 기타1%)의 모든 원소’를 말한다. 주로 우리 몸의 뼈·치아 구성, 혈액 속 산소 운반, 소화·삼투압 조절 등 몸속에서 다양한 일에 관여하는데 체내에서 합성이 안 돼 식물(품)로부터 섭취해야 한다.


195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라이너스 폴링(Linus Carl Pauling, 1901~1994년)은 모든 질병이 한두 가지 미네랄 결핍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칼슘은 수축기 혈압을 낮추고, 마그네슘은 고혈압 치료에 역할을 하며, 칼륨은 혈압에 영향을 주는 등 미네랄이 부족하면 수백 가지의 질병의 원인이 된다고 현대 의학은 밝히고 있다.

 

건강하고 오래 살고 싶다고? 그럼 흙부터 살려야 한다


오늘날 수를 셀 수 없이 만나는 각종 미네랄 제품이나 건강보조식품은 아마도 지구촌의 흙 속에 미네랄이 고갈되어 있고 흙 속 미생물의 생태계가 파괴되어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일까? 필자가 요즘 먹는 과일, 채소, 그리고 곡식의 맛이 예전과 다르다. 싱겁고 밋밋하다. 최근 먹었던 사과가 그랬고, 상추도 풀을 먹는 것처럼 쌉쌀한 맛이 없었다. 그렇지 않은 농산물도 많겠지만 필자의 경험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초까지 동양 3국을 돌아보고 예견했던 흙 속 미생물들의 반란은 지금도 어느 나라, 어느 농경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흙에 귀를 기울여 보면, 그들의 비명과 아우성이 쟁쟁하게 들려온다. 지금까지 인류가 알아낸 흙 속 미생물은 전체의 0.1%에 불과하다. 페니실린, 폐렴 치료제에 이어 최근 흙 속 미생물을 이용해 암세포만 공격해 죽이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처럼 인류를 질병에서 구할 실마리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흙 속 미생물에 있지만, 그 99.9%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다. 

 

건강하고 오래 살고 싶다고? 그럼 흙부터 살려야 한다. 흙 속의 미생물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하면, 그들은 세상의 모든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치료제를 주고, 대기의 탄소를 저장해 인류를 기후재앙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줄 것이다. 

 

(다음은 미네랄 결핍으로 인한 질병과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소개합니다)

 

MeCONOMY magazine February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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