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심해에 막대한 양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세계적인 심해 평가 전문기관의 분석 결과 석유·가스 매장량이 최대 140억배럴로 추산돼 개발에 성공하면 에너지 자립은 물론 수출까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다만 과거 동해 가스전 개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정확한 매장량과 상업화 가능성은 실제 시추를 통해 확인해야 할 부분이어서 아직 섣부른 기대를 하기엔 이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오늘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정브리핑을 열고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최근 140억배럴에 달하는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가 나왔고, 유수의 연구 기관과 전문가들의 검증도 거쳤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날 산업통상자원부의 탐사 시추 계획을 승인했다며 내년 상반기까지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이어진 브리핑에서 "물리 탐사는 객관적 수준에서 다 진행해 검증까지 받은 상황이고, 실제 탐사 시추에 들어가서 어느 정도 규모로 매장돼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한국석유공사가 동해, 서해, 남해에서 석유·가스를 시추해 오다 동해 경북 포항 영일만 인근 심해에서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수 있다는 높은 수준의 확률을 확인했다는 설명이다.
이번에 동해 심해 평가를 수행한 곳은 미국의 액트지오(Act-Geo)사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심해 평가 전문기관이다.
정부는 동해 심해 석유·가스 추정 매장량이 최소 35억배럴에서 최대 140억배럴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가스는 75%, 석유는 25% 수준으로 추정된다.
금세기 발견된 최대 심해 유전으로 평가되는 남미 가이아나 광구의 자원량이 110억배럴 규모인 것을 감안하면 동해 심해 개발이 현실화한다면 '잭폿'이라 부를만하다.
윤 대통령도 브리핑에서 "이는 1990년대 후반에 발견된 동해 가스전의 300배가 넘는 규모이고, 우리나라 전체가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안덕근 장관은 "상당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세계적 에너지 개발 기업들이 이번 개발에 참여할 의향을 밝힐 정도로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국은 에너지의 97∼98%를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로, 특히 원유는 수입 에너지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동해 심해 석유·가스 개발이 실제로 이뤄지면 에너지 가격이 크게 안정되면서 국내 산업 기반이 공고해지고 기업의 경쟁력이 향상되는 등 국가 경쟁력이 크게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 동해 천해에서 첫 상업적 가스를 발견해 한국은 '95번째 산유국'에 올랐으나, 매장량은 4천500만 배럴에 그쳤다.
정부가 이번에 추산한 '최대 140억배럴'은 동해 천해 매장량의 311배로, 시추 결과 이 같은 석유·가스 매장이 확인되면 명목상 산유국을 넘어 실질적 산유국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석유·가스가 실제로 생산되면 생산량에 따라 수입 의존도가 높은 석유·가스의 에너지 자립은 물론 수출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날 정부세종청사 열린 브리핑에서 "140억배럴 기준으로 원유와 가스를 수입하는 평균 가격 환산 1조4천억달러 정도 된다고 말하지만, 그것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은 맞지 않다고 판단한다"면서도 "어느 정도는 국내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해외에 판매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석유공사의 수입과 정부 재정 수입으로 환원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기대감에 이날 주식시장에서도 에너지 관련주 가격이 발표 직후 급등하기도 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브리핑에서 개발 성공률에 대해 "저희가 받은 자료에는 20% 정도로 나왔다"고 밝혔다.
이는 석유·가스 개발 사업 분야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평가받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여전히 실패할 확률이 80%에 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은 지난 1998년 울산 앞바다에서 가스전을 발견하고 시추 등 과정을 거쳐 '동해 가스전'을 개발한 경험이 있다.
당시도 지금처럼 큰 기대가 이어졌으나, 동해 가스전은 지난 2004년부터 2021년까지 약 4천500만배럴의 가스를 생산하고 가스 고갈로 문을 닫았다. 약 17년 동안 매출은 2조6천억원, 순이익은 1조4천억원에 그쳐 개발 초기의 큰 기대에는 못 미쳤다.
이날 발표된 동해 심해 석유·가스 개발 프로젝트 역시 이제 첫발을 뗀 수준이어서 탐사 시추를 통해 석유·가스 부존 여부를 확인하고 사업성을 검증하는 과정 등을 거쳐야 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동해 심해 물리탐사 결과를 미국의 액트지오에 맡겨 결과를 받아보니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를 받은 것이고, 실제 부존 여부는 시추를 통해 확인해봐야 한다. 시추 전까지는 석유·가스가 있다거나 없다고 할 수 없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연말까지 1차 탐사 시추에 착수할 계획이다. 1차 시추에서 개발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더라도 최소 5차에 걸쳐 부존 가능성을 확인할 계획이다. 심해 해저에 1개의 시추 구멍을 뚫는 데는 약 1천억원이 소요된다.
심해에 깊은 구멍을 뚫는 시추는 전문 장비와 기술력이 필요해 미국·유럽 등 글로벌 전문기업에 맡겨질 전망이다. 다만 이후 유전·가스전 개발 사업이 본격화되면 국내 업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전망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제 탐사시추를 시작하는 단계인 만큼 추후 절차를 보면서 차분히 기다려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