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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폭염이 던진 경제적 시한폭탄

◇ 기후 위기가 요구하는 인류의 상상력과 용기


독일계 미국인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변할 기회를 주고, 변해야겠다는 용기와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머리에 떠오른 것은 우리나라에서 기후 위기로 매년 축구장 1,200개 규모의 과수원이 사라지고, 6월인데도 80년대까지 입던 한여름 재킷을 입을 수 없다는 재앙적인 상황인식을 하고 나서다.  

 

그것은 생태계를 파괴한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끊임없이 추구해온 경제성장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지극히 잘못됐다는 자각(自覺)이요, 화석 연료에 의한 성장을 탈피하고 탈-성장의 새로운 경제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인류의 용기와 상상력이 절실하며, 우리의 경제활동이 지구의 생명 시스템과 화해하고, 우리 자신을 다른 피조물과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뉘우침이었다. 그렇다면 기후 위기 시대에 인류의 용기와 상상력이 필요한 ‘탈-성장’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지난 2016년, 런던의 한 교수가 잉글랜드 동북부 뉴캐슬에서 “Brexit(브렉시트)는 영국의 국민 총생산을 가파르게 추락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때 한 여성이 나서 그에게 “빌어먹을 GDP, 그건 우리의 것이 아니야!”라고 야유를 퍼부었다. 교수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 여성이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던 것은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면서 느꼈던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의문이 폭발했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성장에서 발생한 이득은 가장 부유한 자들의 재산을 가득 실은 배를 뜨게 했지, 모든 사람이 탄 배를 띄운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영국처럼 자본주의가 가장 번영한 나라에서조차 성장은 그처럼 모든 이에게 공유되지 않고 야유를 받고 있었다.  


공유되지 않는 성장에 대해 분통을 터뜨린 사람들의 관심은 불평등에 쏠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정설로 여겨지던 성장 위주의 기존 경제 체제에 금방 균열이 갔다. “도대체 경제성장이니 뭐니 어쨌단 말인가?” 마치 대형 콘크리트 건물을 부수는 레킹 볼(wrecking ball)이 쾅! 하고 부딪칠 것 같은 급진적 말 폭탄이 퍼부어지고 있다.   

 

◇모두와 공유되지 않는 성장은 불평등


불과 20년 전까지 “안정-상태의 경제(steady-state economy)”를 주장했던, 허먼 데일리(Herman Daly)와 같은 경제학자는 국외자로 취급당했기 때문에 그의 동료인 벤자민 프리드맨(Benjamin Friedman)같은 경제학자는 “사실상 경제성장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 선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세상이 많이 변했다.

 

성장 만능주의였던 세상은 오늘날 “한정적 자원에서 경제와 인구가 무한히 성장할 수 없다는 인식, 포스트-성장(post- growth)”과 그런 인식을-저널에서, 팟 캐스트에서, 회의에서-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는 “탈-성장, de-growth” 운동 이 일어나고 있다.   

 

그와 관련해 지난 몇 년간 많은 책도 발행되었는데, 이를테면, ▲팀 잭슨(Tim Jackson)의  “Post- Growth: Life After Capitalism,” ▲케이트 소퍼(Kate Soper)의 “Post-Growth Living,” ▲지오르고 스 칼리스(Giorgos Kallis)의 “In Defense of Degrowth,” ▲빈센트 리게이(Vincent Liegey)와 아니트라 넬슨(Anitra Nelson)의 “Exploring Degrowth,” ▲제이슨 히켈(Jason Hickel)의 “Less Is More: How Degrowth Will Save the World.”등이 대표적이다.  

 

그들 책 제목에서 보듯 ‘탈-성장’이란 단어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지금 ‘탈-성장’의 문학이 자라나고 있다는 좋은 시그널이다.   

 

1972년, 프랑스의 앙드레 고르즈(André Gorz)는 데끄로아상스(décroissance)라는 단어를 만들어 “지구의 균형”을 위해서 자본주의 시스템의 생존에 역행한다고 할지라도 물질을 생산하는데 있어서 ‘제로성장(no-growth)’-더 나아가 ‘탈-성장(de-growth)’이 필요한지 아닌지를 물었다. 

 

고르즈(Gorz)는 같은 해, 인구 증가와 경제 행위는 궁극적으로 지구의 수행 능력을 앞지를 것이라고 경고하는 일단의 과학자들이 쓴 보고서를 모아, “The Limits to Growth, 성장의 한계”라는 한 권의 책으로 발간했다. “The Limits to Growth”는 처음에 회의주의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대상이었고, 심지어 조롱당했다. 비평가들은 부인할 수 없는 인간이 이룩한 기술적 혁신이란 인상적인 기록을 들먹였다. 대표적인 경제학자 중 한 사람은 “우리가 예측하는 사실은 그러한 문제들이 과거에 극복되어 온 방법에 대한 연구에 확고하게 터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탈-성장’은 성장주의자들의 기세를 눌려 수십 년 동안 변두리를 전전하다가 마침내 지구 온 난화의 심각성이 점점 인식되면서 21세기 들어선 초기 10년간 각종 공개 토론회에 스며들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우리가 생태적 곤경을 벗어나는 길을 혁신하지 못했다’는 깨달음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벌거숭이 임금님처럼 발가벗겨진 불평등과 함께 자본주의의 전통적인 지혜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을 초래하는 기름 역할을 했다. 만약 그런 깨달음이 없었다면 아마도 자본주의식 경제성장은 독성을 가졌지만 절대 놓지 않을 만병통치약이었을 것이다.   

 

◇ 광기(狂氣)의 성장주의 이데올로기  

 

그러니까 신중한 불가지론(不可知論)에서부터 단정적인 종말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기존의 경제성장에 대해 의문을 품었는데 ‘탈-성장’론이 품은 의문은 아마 불가지론과 종말론이 포괄할 수 있는 의문의 범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끝자락에-보일 듯 말 듯 위치하고 있었다.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 ‘탈-성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핵심 교리는 ‘자본주의가 고소득 국가에서 끊임 없이 요구하는 팽창(확장, 성장)은 사람들의 삶을 증진시켰을지는 몰라도 성장에 뒤따르는 불평등과 환경의 대 파괴가 빈번하여 오히려 사람들의 삶을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런던과 바르셀로나에서 가르치고 있는 인류학자 힉켈 (Hickel)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탈 성장’ 운동을 이끄는 기백이 넘치는 여러 주창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통제되지 않는, 고삐 풀린 성장 만능 주의를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혹독하게 비판하는 이 시대의 비평가들처럼 그도 기후 위기로 인한 인류의 종말을 경고하고 있다. 

 

그가 쓴 책은 죽어가는 지렁이들, 수확량 감소, 어획량 의 붕괴 등 생태계 파괴의 주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성장주의”이데올로기를 “일종의 광기”와 동일시하면서, GDP 성장과 에너지 사용량 간에 어떤 관계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고의적으로 GDP를 축소하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가 에너지를 소비하는 대신에 보존한다면 GDP가 정체되거나 기울어도 괜찮다는 말이다.  

 

히켈은 ‘탈-성장’ 운동의 강령으로 삼아도 될 것 같은 말을 하고 있다. 

 

“‘탈-성장’은 소득과 자원을 더 공평하게 분배하면서 필요 없는 일로부터 사람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번영하기 위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공공재에 투자하고 생태계와의 균형을 복원하기 위해 경제활동에서 물질과 에너지 소모량을 줄이자는 것이다.”  

 

그가 주창한 프로젝트는 기존 자본주의의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수정하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부 개혁주의자들처럼 가장자리를 만지작거리는 수준이 아니며, 그렇다고 개혁주의 지지자들처럼 기술적 해결책이 있어서 잔뜩 희망을 갖도록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녹색 성장’은 ‘탈-성장’과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말하는 히켈은 자신이 칼리스(Kallis)와 함께 연구를 수행한 논문을 인용하면서 “‘녹색 성장’은 경험적인 뒷 받침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물론, 히켈이 주창한 ‘탈 성장’은 기술적인 해결책보다는 포괄적 선언을 앞세운 것이니 이에 대해 반대자가 없을 리는 없다. 폴 크루그먼(Paul Krugman)과 같은 경제학자나 한나 리치(Hannah Ritchie)와 같은  데이터 과학자들은 “경제적 번영이 생태적 저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히켈과 다른 ‘탈-성장’ 주의자들의 차별화된 주장은 탄소배출에 따른 가격결정, ppm(백만분의 1), 그리고 지구 온난화에 대한 토론을 제외한다면, 궁극적으로 도덕적인 주장에 가깝다. 이를테면 “‘탈-성장’을 위한 우리의 정치력을 성장의 미적분학에 양보하고 말았 다”는 식이다.     

 

◇ 지구와 평등하게 살아가라! 지구 행성을 약탈한 성장

 

다른 말로 바꿔 표현하면 “우리는 지구와 서로 평등하게 살아가는 방식을 생각해 내기는커녕 지구 행성을 약탈했 다”는 것이다. 힌켈은 “성장주의는 우리들이 가장 어렵다고 보는 (성장) 재분배를 위한 정치적 관심을 수십 연간 딴 곳으로 돌리게 했다”고 쓰고 있다. 

 

그런 사이 정치인들은 수세대에 걸쳐 경제성장을 마치 자신들의 치적인 양 앞세우고 성장이 되면 모든 것도 성장한다는 듯이 성장을 칭송하면서 정작 (성장의) 재분배와 같은 가장 치열한 논쟁거리를 회피했다. 오로지 성장에만 신비로운 능력을 부여해 왔다. 하지만 우리가 성장 재분배 문제를 회피함으로써, 우리는 생태적 문제뿐만 아니라 도덕적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 환상에 불과했던 경제성장에 대한 의견일치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 

 

다니엘 서스킨드(Daniel Susskind, 옥스퍼드 대학 경제학과 교수)가 새롭게 쓴 “Growth: A History and a Reckoning”에서 지적했듯이 벼랑 끝에 내몰렸던 자유, 평등, 그리고 정의의 개념에 대한 중요한 질문이 맹렬하게 되살아나고 있다.    

 

서스킨드 교수는 “성장은 결국 먹고살기 위해 지독하게 싸워야 했던 많은 사람을 해방시켰다는 거부 할 수 없는 약속을 지켜 기적을 일으켰으나, 한편으로 대단히 파괴적이었으므로 성장은 우리들이 견뎌내긴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성장에 따른 과실 배분의 애매모함으로 인해 또다시 자유, 평등 그리고 정의의 개념에 대한 중요한 질문이 되살아나나고 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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