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내내 집 근처 스타벅스에 와서 글을 쓰다가 노트북이나 휴대폰을 펼쳐놓고 공부하거나 일을 하는 젊은이들이 꽤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곳에서 공부하면서 취업에 대비하거나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을 준비하거나, 나처럼 글을 쓰거나 하는 이도 있을 테지만, 그들이 뭘 하든 필자는 문득 이들이 내가 그들 나이 때 경험했던 세상과 분명 달라진 세상에 살고 있으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을 졸업하면 좋은 기업에 취업할 자리가 많았던 우리 세대와 달리 요즘은 비정규직 일자리가 노동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공시족이 넘친다는 소리가 나온 지도 10년이 넘는다. 게다가 부동산 가격이 치솟아 평생 저축해도 수도권에서 아파트 한 채 장만하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어 버렸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 세대'를 넘어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건강, 희망 등도 포기하는 'N포 세대'가 등장한 지 오래됐고, 나만의 노력만으로 집 장만을 하기가 어려워 우리나라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말한 '세습 자본주의' 단계로 접어든 게 아닌가 싶다.
피케티는 '21세기 자본'(2014)‘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자산 불평등이 점점 심해져 세대 간 '부의 대물림' 효과가 커지면서 자본주의 사회는 소득 불평등이 악화하고 세대 간 계급이 대물림되는 세습 자본주의 단계로 들어간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높은 수준의 불평등은 덜 부유하지 않은 이들이 삶의 질을 증진할 기회를 빼앗고 사회경제적 사다리에 오르는 것을 막아 버린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교육혁명을 일으키고, 지금과 다른 노동 시장을 창출하면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뿐이라고 나는 커피를 홀짝이며 생각하고 있다.
필자 역시 살기 팍팍하지만 그나마 우리나라 국민이라서 위로가 되는 게 있다면, 최근 전 세계적으로 빈곤감소에 대한 진전이 거의 정체 상태여서 세계 인구의 7억 명이 여전히 하루에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 한 잔 값인 4500원의 절반인 2달러 15센트(약 2800원) 이하로 살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가난과 불평등의 원인은 나라마다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최근 들어 세계 각국의 경제 성장이 찔끔거리고, 코로나 19의 변이와 같은 전염병의 창궐을 경험했고, 지정학적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점점 악화하는 기후 위기로 세상이 들끓고 있는 게 아마 대체적인 원인일 것이다.
실제로 세계은행이 새롭게 낸 「가난, 번영, 그리고 지구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가난과 사회적 불평등의 궤적을 바꾸기 위해서는 빈곤과 공동 번영, 그리고 기후 위기가 서로 연계되어 있다는 것부터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고 지적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지구촌의 평화가 깨지면 나라마다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사회적 불평등도 덩달아 심해진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과 같은 지구적 대사건이 없거나 약했던 지난 4반세기 25년 동안 세계는 에너지 가격이 비교적 안정된 가운데 경제 번영을 누렸고 평화가 유지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평화와 경제 성장이 왜 깨지게 된 것일까? 필자는 화석 연료를 기반으로 한 산업 발전이 한계에 도달하면서 지난 50년간 몸살을 앓아 왔던 자연이 더 참지 못하고 인류에게 보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점심을 싸 오지 못한 학생들에게 가마솥에 끓인 옥수수죽을 나눠줬던 시절, 필자를 비롯해 다들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학교가 끝나면 산과 들로 뛰어다니면서 자연과 한 몸이 되어 놀았다. 어디서든 맑은 시냇물이 흘러 엎드려 입을 대고 마셨고 개구리는 어찌나 많은지 닭 모이로 잡아도 잡아도 한이 없었다. 엄청난 숫자의 이들이 밤마다 울어대는 바람에 잠을 설칠 정도였다.
그러다가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고,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고 자동차가 많아지면서 도로가 포장 되고....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각종 생활하수와 공장 폐수가 흘러들어 강과 하천을 시커멓게 오염시켰다. 결국 우리는 30년 전부터 생수를 마셔야 했고 경제가 발전된 만큼 부동산값부터 시작해 모든 생활 물가가 올랐으며 빈부의 격차가 벌어졌다.
서민 음식의 대표주자인 짜장면은 1970년대 한 그릇에 100원 수준이었으나 최근 만원으로 뛰어 반세기 만에 100배 가까이 올랐다. 어디 이뿐이랴, 서울·지방 집값 차이는 20년간 ‘악어 입’처럼 벌어졌다. 그래서 사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서 신분도 나뉘었다. 부동산 불패는 가장 큰 빈부의 격차를 몰고 왔다.
따라서 이제는 자연과 생물 다양성을 훼손하고 우리의 생활비를 크게 올려놓은, 이를테면 화석 연료, 콘크리트(시멘트), 물과 공기, 흙을 오염시킨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책임을 물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재생가능에너지 전환과 보급 확대, 산림 생태계 복구, 지속 가능한 농업 등을 통해 자연을 복원해야 한다. 그래야 빈부의 격차를 줄이고 사회적 불평등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공기와 빗물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지듯 자연은 공평하고 정의롭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지금의 대기업이나 공기업보다 인공지능으로 자연을 복원하는 회사가 각광(脚光) 받을 수 있다. 자연이 자연답게 존속할 때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 다른 변화된 삶을 살 수 있고, 더 행복해질 수 있다. 필자와 같이 스타벅스에 앉아 저마다의 일에 몰두하는 젊은이들에게 진심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인류가 공동 번영을 이루려면 건강한 지구가 먼저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