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권거래제가 기업의 실질적인 탄소감축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기업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비판을 받고 있다.
오는 27일 제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안 공청회가 열릴 전망이다. 이에 따라 18일 시민사회계는 제4차 배출권거래제가 “산업부문의 실질적 감축을 이끌어내어야 한다”며 공동 입장문을 발표했다.
18일 광양환경운동연합,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 기후솔루션, 당진환경운동연합, 충남환경운동연합, 포항환경운동연합 등 6개의 국내 환경시민사회단체는 공동 입장문을 내고 “실질적인 감축 규제 수단인 배출권거래제는 지금 제도의 취지나 목적과는 달리 산업의 탄소 배출 저감을 거의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며 탄소 감축의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선 2030 NDC를 전면 재설정하고, 탄소누출업종에 대한 유상할당을 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하고 시행령을 통해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의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것으로 목표로 세웠다. 이 같은 목표를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NDC)라고 한다.
입장문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NDC를 달성하기 위해선 국내 배출량의 약 36%를 차지하는 산업계의 탄소 저감 노력이 매우 절실하며 특히 연간 약 1억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단일 산업 중 배출량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철강산업의 탈탄소화가 시급하다.
특히 산업부문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선 이 ‘배출권거래제’가 중요한 정책 중 하나로 꼽힌다. 우리나라 정부도 효과적으로 NDC를 달성하기 위해 2015년부터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했다.
배출권거래제는 정부가 기업에 일정량의 온실가스 배출권을 할당하고 할당량보다 적게 온실가스를 배출한 기업은 남은 배출권을판매해 이윤을 남길 수 있도록 하고 반대로 할당량보다 많이 배출한 기업은 배출권을 구매해야 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기업이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고 판단해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할 수 있도록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는 핵심이다.
그러나 2023년 온실가스 명세서배출량에 따르면 2015년 대비 배출권 할당업체 전체의 배출량 합계에선 2.6%, 전환부문에서는 12.1%가 감소했으나 산업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오히려 3.4%가 증가했고, 철강부문은 7%나 증가했다. 배출권거래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더 큰 문제는 온실가스 감축의 키(Key) 정책인 배출권거래제가 오히려 ‘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 김 민 대표는 “배출권거래제는 기업의 자발적인 탄소 감축 노력을 촉진하기 위해 도입 및 운영되었지만 오히려 배출을 장려하고 있는 제도가 됐으며 국내 온실가스 다배출 1위 기업 포스코는 배출권거래제로 오히려 300억 원을 벌어들였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배출권거래제 제4차 계획기간(2026~2030)을 앞두고, 배출권거래제의 개정에 따라 NDC 목표 달성 여부와 철강산업의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시민사회계는 제4차 배출권거래제 동안에도 산업부문의 부진한 감축 실적이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입장문에 따르면 배출권거래제의 ‘오작동’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 중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배출허용량을 넉넉하게 할당하는 것과 배출권거래제 전체 배출량의 43%를 차지하는 산업부문의 대부분의 다배출 업체가 전량 무상할당 대상으로 배출권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무료’로 배출권을 받고 있는 점을 꼬집었다.
특히 배출허용량이 넉넉한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배출권거래제 내 감축 목표를 국가 NDC 목표에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정부는 2018년 대비 2030년 산업 감축 목표를 14.5%(목표 배출량 222.6 백만톤CO2eq)에서 11.4%(목표 배출량 230.7백만톤CO2eq)로 오히려 하향 조정했다. 따라서 이번 제4차 배출권거래제에서 이러한 하향 조정된 감축 목표가 적용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또한 시민사회계는 유명무실한 현재의 배출권거래제가 유지될 경우 산업의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과 동시에 2034년까지 CBAM 업종의 무상할당을 폐지할 계획이며 수입 및 수출국 간의 유상할당 비율과 배출권가격의 격차가 클수록 관세가 늘어날 전망이다.
이미 철강과 같은 다배출 업종에 전량 무상할당을 부여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CBAM 품목 중 철강 제품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막대한 탄소 관세를 지불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철강업계가 지불해야 하는 탄소 관세를 10년간 누적 3조 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했다.
시민사회계는 EU CBAM과 같은 탄소 관세가 주요 권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에서도 철강업종과 같은 다배출 산업에 대한 유상할당을 확대해 기업의 자발적 감축을 유도하고 해외에 지불할 무역 관세를 국내로 거둬들여 저탄소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솔루션 철강팀 김다슬 정책연구원은 “배출허용총량을 축소하고 전 업종의 무상할당을 2030년까지 폐지하면 2040년에는 철강업계가 부담할 연간 약 1410억 원의 CBAM 인증서 비용을 국내 재원으로 되돌리고 정부는 누적 약 621조 원의 유상할당 경매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유상할당 확대로 기후대응기금 재원을 확보해 기업의 탈탄소를 지원하는 선순환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충남환경운동연합 임수진 팀장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지 않는 현재의 배출권거래제는 국민의 건강뿐만 아니라 미래의 국가 경쟁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제4차 배출권거래제와 2030 및 2035 NDC 수립을 통해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포항환경운동연합 정침귀 국장은 “탄소배출, 대기오염물질 배출 등 현재의 기후 위기 상황에 가장 책임이 클 수밖에 없는 일관 제철소와 국내 최대 배출 산업인 철강기업의 획기적인 전환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라며 제철소에 대한 역할도 강조했다.